# 42
Hell's kitchen
알아내도 해결 할 방법이 없으면 도리가 없다. 마마 델리의 몸 안에 파백라고 하는, 백을 부수는 힘이 있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떻게 꺼내느냐. 잠깐 서지현을 본 나는 목청을 높였다.
"서지현, 한 방 크게 먹여봐!"
내 말에 서지현이 나를 슬쩍 한 번 보고는 다시 마마 델리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대로 화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맹렬한 화염이 마마 델리의 몸을 불태우며 방 안을 후끈하게 달군다.
- 의미 없다고 했지 않니.
검게 타버린 살갗이 부스스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다시 살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서지현은 좀 지친 모양이다. 잠깐 이야기 나눌 시간은 벌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나, 아직 바람개비 쓰지 않았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1층에서 사용하지 않았어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검을 살짝 흔들었다. 이미 바람개비의 코등이는 파랗게 빛나고 있다.
"이렇게 되었는데도 경계하는 눈치가 아니야."
마마 델리는 내가 바람개비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부엌의 짐승 대가리 요리사들을 쓸어냈을 때, 내가 바람개비를 휘둘렀던 건 창고 안에서였다. TV가 시야를 공유한다고 해도 부엌 안에 화염이 몰아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을거다. 레스토랑에서도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계획이?"
서지현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중식칼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다음에 되물었다.
"버튼을 누른 바람개비를 몸에 박아넣을거야."
그럼 바람개비는 막대한 바람을 저 괴물의 몸 안에 쏟아낼 거다. 내 말에 서지현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기 풍선이네요."
"바람개비가 뿜어내는 바람이면, 풍선이 되는게 아니라 통째로 터져버릴걸."
물론, 저 괴물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몸이 터진 다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복하겠지만. 마마 델리의 몸 안에 있는 것이 확실시 되는 파백이라는 물건을 찾아낼 수는 있을거다.
"가능성은 있는데. 결국 또 제가 미끼인가요. 하지만, 제가 마마 델리의 시선을 끈다고 해도 내가 접근하면 결국 또 어디에선가 팔이 쑥 하고 튀어나와서 저지하려고 들 텐데요.
그 공격을 피해서 칼을 마마 델리의 몸 안에 박아넣는 건 내 몫이다.
"부상 당할 각오를 하고 달려 들어야지."
다쳐도 계속 회복하는 녀석 입장에서는 크로스 카운터 상황을 피할 이유가 없다. 내가 피해를 각오하고 공격한다면 마마 델리는 방어하는 대신 나를 공격하려들겠지.
그럼 후발선타가 발동해 내 검이 먼저 마마 델리의 몸에 박혀들거다. 어쩔 수 없이, 마마 델리의 공격은 몸으로 받아야 한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그럼, 제가 시선을 끌어야 하는 건 저 중식칼 같은 흉기를 들고 있는 팔이겠네요."
그래, 칼을 맨몸으로 받는 건 너무 위험하다. 그냥 쑥 솟아오른 팔이라면 할 만한 공격이 붙잡거나, 후려치는 정도다. 더럽게 아프고, 어디 한 군데 부러질 수도 있겠지만 칼에 찔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서지현의 말에 나는 가볍게 그녀의 등짝을 두들겼다.
"힘내라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서지현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래 사람들이 힘든 일 시킬 때, 빈 말이나마 듣기 좋은 말을 해주더라고요."
"감사 인사는 공짜잖아? 게다가 지금 한 말은 빈 말 아니야."
"어머, 봐요. 또 듣기 좋은 말을 하잖아."
대화를 마친 우리는 마마 델리의 몸이 다시 새것처럼 말끔해 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흩어졌다. 서지현은 곧장 마마 델리의 정면에 서서 불꽃이 타오르는 검을 마마 델리에게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검에 엉겨붙어 있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덤벼. 한 번 속 까지 바짝 구워지고 나서도 회복하나 보자고."
- 멍청하구나. 이미 보았을텐데.
"너도 언젠가는 한계에 도달하겠지. 한 번 서로 끝까지 가보자고."
서지현의 말에 마마 델리가 키들거리며 팔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마마 델리도 방금 전의 화염이 꽤 거슬렸는지, 서지현을 먼저 처리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뽑아낸 위장과 중식칼들이 서지현을 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나도 마마 델리를 향해서 달려 들었다. 쑥, 하고 튀어나온 눈알 하나가 나를 응시하며 등 짝에서 팔 하나를 뽑아내 휘두른다. 멀리 피하면 안된다. 다시 접근하기가 힘들다. 나는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틈이 찾아온 것은, 서지현의 칼이 중식칼을 들고 있는 마마 델리의 팔을 다시 한 번 잘라내는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나는 곧바로 전력을 다해 마마 델리의 뒤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 어리석은 것.
마마 델리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팔을 휘두른다. 허리를 뒤로 확 재낀 나는 달리던 상태 그대로 바닥을 미끄러진다. 마마 델리의 손이 바로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상체를 일으켜 세운 나는 마마 델리의 등짝을 향해 계속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팔 하나가 등에서 솟아나와 나를 향해 달려든다. 상관 없어. 어차피 한 번 크게 맞을 각오 하고 저지르는 일이다.
옆에서 팔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버튼을 누르고 검을 마마 델리의 등으로 내질렀다. 크로스 카운터의 조건이 충족되자, 검에 확 속력이 붙는다. 내 검이 먼저 박혀들었다. 그리고 곧장 내 몸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격통이 달리고, 내 몸은 그대로 마마 델리의 등짝에 처박힌다.
"으... 커헉..."
서지현이 감싸놓은 이마빡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려 붕대를 적시고, 입으로 피가 흘러나온다. 지독하게 아프다.
하지만 고통을 감내한 성과는 있었다. 바람개비는 마마 델리의 등에 박혀 있었고, 나는 검을 꽉 쥐고 있었다.
- 이대로 통째로 몸 안에 집어넣고 으스러뜨려 주...!
마마 델리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바람개비가 살 속을 파고 든 채로 바람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양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압력으로 칼이 뽑혀 나오면 안된다. 막대한 바람이 불어넣어진 마마 델리의 몸이 울룩불룩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압력을 견디지 못한 몸이 통째로 터졌다. 나는 곧장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작살나 흩어진 파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있냐. 찾아라 드래곤볼. 그 와중에도 흩어진 살점들은 꿈틀거리며 한 곳에 모이는 중이다.
마침내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나는 파백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살점은 울렁울렁 맥동하고 있었다. 이건, 뭐지. 심장인가. 나는 곧장 그 덩어리를 손으로 꽉 쥐고 그대로 칼로 그 덩어리를 후비기 시작했다.
- 이... 이 자식이!
그제서야 상황이 거지같이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아직 회복 중이신데. 손에 쥔 덩어리의 모양이 바뀌고, 갑자기 손에 격통이 달리기 시작한다. 끈적한 즙이 손에 묻었다. 또 그 망할 놈의 위액인 모양이다. 나는 고통을 잡고 계속 덩어리를 후볐다.
칼 끝에 뭔가 딱딱한게 걸린다. 나는 곧바로 손을 안으로 밀어넣어 그 딱딱한 물건을 뽑아냈다.
"조금 더 클 줄 알았는데."
손에 엉겨붙은 위액을 닦아낸 나는 손에 쥔 물건을 살펴봤다. 쉼표 모양을 하고 있는,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맨들거리는 하얀색 돌이다. 필요한 물건을 꺼내든 나는 그대로 뒤로 쭉 빠졌다.
[양석 파백 : 백을 부수는 힘을 지닌 보물입니다. 그 자체로는 힘을 발휘 할 수 없지만. 무기에 가져가면 그대로 끼워져, 힘을 발휘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다시 떼어낼 수도 있습니다. 파백이 끼워진 무기가 입힌 상처는 부활에 가까운 치료가 아니면 다시 복구되지 않습니다. 공격당한 대상의 혼이 담긴 그릇인 백이 부서졌기에, 안에 담겨 있는 혼이 서서히 흩어집니다. 상처 입은 대상은 부상의 경중에 따라 정신 능력치가 주기적으로 감소합니다. 정신 능력치가 0까지 떨어지면,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요약, 이거 끼운 무기에 당하면 회복 불가는 물론이고, 시한부 인생이 된다.
나는 히죽 웃으면서 바람개비에 파백을 가져갔다. 파백은 진흙을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바람개비의 칼면을 파고 들어가 그대로 합쳐졌다. 바람개비의 이름이 바뀌었다.
[파백의 바람개비 : 최대 30m/s 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바람의 힘이 당신의 손 안에서 뿜어집니다. 적을 만나면 상대를 칼로 후려치며 외치세요. 파리 같은 놈들! 양석 파백의 힘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야, 대가리에서 또 피가 나고 입에서 피도 질질 흘린 보람이 있네. 나는 잠깐 바람개비를 바라보다가 육체를 거의 다 회복한 마마 델리를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야, 이제 어쩔래?"
너 이제 회복 못한다고 하는데.
- 안돼... 안돼...!
마마 델리는 나를 향해서 발작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나는 휘둘러진 팔을 피하며, 검을 휘둘러 팔을 잘라냈다. 동시에, 귓가에 뭔가 쩌적, 하고 금이 가는 것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 끄어어어어어!
격렬한 반응. 떨어진 팔은 다시 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팔도 날아가서 다시 붙는 일은 없었다.
한 걸음 녀석에게 다가가자, 마마 델리가 곧장 뒤로 물러선다. 웃기는 상황이다. 노래 가사가 생각나네. 더 원이 부른 우주의 기운이 담긴 명곡, 그 남자.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기냐?"
나는 잠깐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서지현 쪽으로 쭉 미끄러져 간 다음에 그녀에게 바람개비를 건네주었다.
"나 몸 상태 메롱이야."
부탁 좀 하자. 내 말에 서지현이 픽 웃고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제가 걱정했잖아요. 8년 만에 마시면 맥주로도 취한다니까. 얼마나 취했으면 이제 숙취가 와요?"
서지현은 그렇게 농담을 던지고는 나 대신에 바람개비를 받아 불꽃을 휘감은 다음, 마마 델리에게 달려들었다. 마마 델리와 싸울 때 문제가 되었던 건 회복이었지, 상처를 입히는게 문제가 이니었다.
당연히 지금도 상처를 입히는 건 수월했다. 마마 델리는 최선을 다해 팔을 뽑아내고, 내장을 뽑아들었지만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없는 이상 시간 문제였다. 맞으면서 싸우던 인파이터가 이제 와서 아웃복서 따라한다고 그게 잘 되겠냐.
내가 잠깐 쉬는 동안 서지현은 착실하게 마마 델리를 토막치기 시작했다. 상성이 너무 좋다. 폭우 내리는 날 밖에서 파이리가 꼬부기랑 시비 붙으면 저렇게 처참하게 발릴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눈 앞에는 토막난 마마 델리의 시체가 굴러다니게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눈 앞에 축하 인사가 떠오른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한 번에 셋. 그럴 만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미션 클리어]
저 단어가 떠오르자 끝났다는 실감이 든다. 미션 클리어에 대한 보상으로 포인트가 들어오고, 허공에서 커다란 뭔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대낫이잖아. 잡초 자를 때 쓰는 쬐그만게 아니라 망토 두른 해골바가지 사신 같은 것들이 들고 다닐 만한 커다란 녀석이다. 살짝 들어올려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가볍다. 이거 예상과는 다른 수준이 아니라 비상식적으로 가벼운데. 실험 삼아 무게 중심을 찾은 다음에 손가락 위에 올려놓으니, 사람만한 크기의 대낫이 손가락 위에 척 하고 올려진다.
[에노테르 : 동짓날 모은 밤이슬로 담금질된 이 대낫은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사용자의 마력 운용을 보조 할 뿐 아니라, 밤이 오면 대기 중의 마력을 스스로 끌어모아 저장해두고 필요한 순간 사용자에게 전달해줍니다. 대낫에 걸린 마법은 무서울 정도의 예리함과, 무게를 의심할 정도의 내구도를 보장합니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낫을 서지현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니꺼 해라. 나는 바람개비에 파백을 끼운 걸로 충분하다.
에노테르를 받아든 서지현이 나에게 바람개비를 건네주었다. 내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서지현이 입을 열었다.
"걷기 힘들어 보이는데, 업어드릴 수도 있어요."
나는 그 말에 하하, 하고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업혀서 돌아 갈 수는 없지... 라고 대답하려는 와중에 다리가 풀린다. 나는 잠깐 앉아서 멍하니 바닥을 보다가 말했다.
"부탁해."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업은 채 레스토랑을 나섰다.
"... 자장가 불러 줄까요?'
뭐 임마? 지금 다 큰 성인을 무슨 취급하는거야. 오냐, 한 번 해보자는 거지? 나는 그 말에 업힌채로 잠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답했다.
"아니, 그것보다 배고파서 그런데 젖 좀 먹여주라."
내 말에 서지현이 걸음을 멈추고는 가로수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아하, 저 가로수 옆에 거꾸로 심어드릴까요?"
지금의 나는 저 협박에 저항 할 수 없었기에,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 미안해."
그 대화를 끝으로 서지현은 계속 걸어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안동역으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