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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41화 (41/237)

# 41

Hell's kitchen

대충 이야기를 마친 다음 휴식을 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서지현이 그런 나를 보고 미안함과 걱정이 뒤섞여 있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독감 걸린 어머니가 그녀 대신 설거지를 하는 여덟 살 짜리 아들을 보는 표정이 아마 가장 비슷할 거다.

"괜찮아요?"

"그럭저럭."

어차피 여기에서 몇 분 더 누워있는다고 이 이상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돌아가서 약 먹고 쉬면 모를까. 잠깐 숨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게다가 짧게 쉰 것도 아니잖아. 내 말에 서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서지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면, 오늘은 네가 요리나 설거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그러죠 뭐. 대단할 것도 아닌데. 아, 1층은 제가 전부 살펴봤어요.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던데. 너무 멀리 떨어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보류했죠."

그럼 2층을 조사해보면 되겠군. 나는 서지현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탁 트인 공간에 테이블이 놓여 있던 1층과 다른 구조다. 너른 복도가 있고, 양 옆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룸이 마련된 형태다.

문 앞에 붙은 이름을 살펴보던 우리의 앞에 사람 다섯은 한 번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붉은 문이 나왔다. 문의 크기에 걸맞을 정도로 커다란 현판에는 'RUBY' 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여기네."

문을 열기 전에, 나는 먼저 손거을을 사용해 문 너머를 살펴봤다. 문 너머에는 커다란 바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뒤 편에는 오픈 키친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븐과 그릴, 튀김기, 싱크대 같은 온갖 종류의 주방 기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부는 거대한 문의 크기가 다소 작아 보일 정도로 넓었다. 못해도 평수로 따지면 한 250평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방 안의 벽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 드넓은 공간에 있는 거라고는 그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정작, 그 키친에서 요리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마 델리라는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손거울을 통해 방 내부를 이리저리 뒤져보던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마마 델리라고?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금발의 여성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여리여리한 몸매는 물론이고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의 선이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미인이다.

이상한 점은, 30초 넘게 그 여자를 살펴봤는데 밀랍인형처럼 손가락 하나 꿈쩍하는 법이 없다는 점.

내부의 모습을 설명해주자 서지현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럴리가요."

"목소리에 선입견을 가진 건 아닐까."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아니요, 이 선입견은 인육을 먹는 괴물에 대한 선입견이에요."

어쨌든, 여기에서 더 조사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나와 서지현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거대한 문을 양 옆으로 열어 젖혔다. 그그긍, 둔중한 소리와 함께 양 옆으로 열린 문 너머에는 아까 손거울로 내가 확인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눈여겨 봐두었던, 눈을 감고 있던 금발의 여성이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눈은 흐리멍덩하다. 한쪽 무릎에 양 손을 포개놓은 채로 우리를 바라보던 여자의 입이 열렸다.

"너희. 오늘 여기서 죽어."

스피커 너머로 들리던 꿀꿀거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헤로인 같은 걸 해서 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나간 것 같은 맥없는 목소리였다. 여자가 입고 있던 붉은 드레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좋아, 이게 웨딩 피치도 아니고, 변신하는 녀석을 기다려 줄 필요는 없지.

"서지현!"

나는 그렇게 외친 다음에 검을 들고 바닥을 미끄러져 여자 쪽으로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내려쳤다. 뒤 이어서 서지현이 뿜어낸 불꽃이 여자의 몸을 휩쓸어 버렸다.

- 너희는, 오늘 여기에서 나, 마마 델리에게 죽는다!

퍽, 하고 껍질이 깨진 달걀처럼.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던 여자의 피부가 박살나며 그 안에서 뭔가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이쁜이는 아닐 것 같았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미녀의 살갖을 찢고 나온 괴물도 여전히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머리카락도 금발이었고. 다만, 챙이 넓은 모자에 드리워진 검은 베일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차이를 찾아보라고 하면... 덩치라고 해야 하나. 몸집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4m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여자였다. 키가 4m 인데 몸무게는 한 4t 정도 나가 보이고.

- 요즘, 다이어트 중이어서 배가 고팠는데 잘 되었군. 지주님께서 오기 전에 네 놈들의 손질을 끝내고, 함께 디너를 즐겨야겠어!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다이어트라, 조금 더 하는 편이 어때? 입고 있는 드레스가 불쌍하다."

저 드레스는 전생에 뭔 잘못을 해서 저 괴물의 소유가 된 걸까. 소리없는 비명이 뭔지 궁금하면 저 드레스를 보면 바로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숨도 안 막히나?

- 실례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나는 그 말에 가운데 손가락을 척 하고 올렸다.

"인육 뜯어먹는 괴물한테 실례는 무슨 실례. 염병하고 자빠졌네. 좆 같으면 고소 하시던가."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손바닥이 나를 향해서 휘둘러진다. 자리를 피하자 바닥재가 작살이 나서 금이 쩍쩍하고,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뒤로 빠지는 와중에 서지현이 검에 불을 붙인 채로 마마 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서지현이 휘두른 검이 박혀들고, 지글거리는 연기와 함께 살이 구워지는 냄새가 난다. 마마 델리가 한 손을 들어올리자, 오픈 키친에 한쪽에 걸려 있던 사람만한 크기의 중식칼이 날아와 그녀의 손에 잡힌다.

"아, 이게 아닌데."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곧장 검을 뽑아서 뒤로 빠졌다. 중식칼이 바닥을 찍고, 서지현이 만들어 놓은 상처에는 순식간에 다시 살이 차오른다.

기가 막히는 군.

"너도 회복이다 이거냐."

서태혁과는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녀석은 보상으로 받은 반지 덕분에 회복 할 수 있었던 거지만. 저 괴물은 그게 아니잖아. 어디에서 살점을 뜯어서 상처를 메꾼 것도 아니고, 그냥 새 살이 솔솔 마데카솔이다.

- 소용 없다!

"어제 그 대사를 나한테 친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 죽었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쪽으로 휘둘러지는 중식칼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드레스의 뒤 쪽으로 팔 하나가 쑥 튀어나와 내 몸을 잡기 위해서 뻗어진다.

"에헤이."

그런 말과 함께 나에게 뻗어지던 손은 서지현이 휘두른 칼에 잘려나간다. 잠깐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팔뚝은 그대로 다시 마마 델리의 몸으로 날아가 척 하고 붙는다.

- 미개한 것들, 육신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알아라!

중식칼을 들고 있는 마마 델리의 손이 으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팔의 성장으로 피부가 찢어지고, 뼈와 근육이 훤히 드러난다.

"이건 또 뭐야...!"

굉장한 속도로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팔을 보던 나는 당황하며 바람개비를 들어올려 휘둘러진 중식칼을 막았다. 양 팔에 확 부하가 걸리고, 나는 그대로 공중에 붕 뜬 채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 늘어난 팔이 다시금 나를 향해서 뻗어진다.

바닥에 발이 닿기 직전 프릭션 컨트롤을 건 나는 바닥을 구르는 대신 착지에 성공해 그대로 빠르게 바닥을 미끄러지며 다시금 뻗어진 손을 피한다. 그 와중에 서지현이 뛰어 올라 마마 델리의 머리통으로 칼 끝을 내려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흐읍?!"

서지현의 공격은 막혔다.

뒤통수에서 솟아난 팔로 인해서. 그대로 서지현의 머리통을 붙잡은 팔이 그녀를 벽으로 집어 던진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서지현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뒤통수에서 뻗어나온 팔은 다시 쑤욱 마마 델리의 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벽에 부딪치기 직전에 서지현의 몸에 푸른 빛이 잠깐 돌았었다. 마력 운용으로 충격을 줄인 모양이다.

벽에 부딪친 서지현은 곧바로 자신의 몸을 향해 집어 던져진 커다란 밀대를 피하고는 잠깐 쿨럭거린 다음 외쳤다.

"이 괴물, 사각이 없어요!"

그래, 그게 문제다. 어디로 공격을 해도 저 미친 괴물은 대처를 한다. 등을 노리면 등에서 팔이 솟아난다. 입은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한다.

- 나는 육신의 굴레를 벗어났다.

마마 델리가 양 손을 깍지낀다. 곧바로 괴물의 양 팔이 서로 뒤엉켜 말도 안되는 크기의 입으로 변해, 나를 노리고 덮쳐든다. 자리를 피하자, 거대한 입이 바닥을 한 움큼 뜯어내 입 안에서 질겅거리다가, 서지현을 향해 토해낸다.

질척한 타액이 섞인 바닥재의 파편이 서지현을 향해 쏟아진다. 서지현이 자리를 피하자 끈적한 타액이 엉겨붙은 바닥재가 벽을 때린다.

- 너희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나는 무한히 재생하고, 의지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마마 델리는 몸에 나 있는 팔 중 하나를 쑥 자기 몸으로 쑤셔 넣다가 꺼냈다. 손에는 거대한 장기가 통째로 들려 있었다. 서지현이 그 장기를 슬쩍 보고는 기겁해서 외쳤다.

"저거, 위장이에요! 식도째로 뽑아냈어!"

서지현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자기 위장을 스스로 뽑아내다니, 뭐하러?

그 대답은 얼마 가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장기를 뽑아낸 손이 그대로 위장을 잡고 쥐어짜자, 식도를 타고 질척거리는 점액 덩어리가 나를 향해 쏟아진다.

위액은 산성이고, 펩신이라는 효소가 단백질을 분해한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졸지만 않았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저걸 뒤집어 쓰면 큰일나겠지. 급하게 자리를 피하고, 철벅거리는 위액은 내가 있던 자리에 철벅이는 소리를 내며 뿌려졌다. 피하는 와중에 한 방울이 튀어서 뺨을 스쳤다. 곧바로 화끈거리는 통증이 날린다. 뒤집어 썼으면 뼈만 남았겠군.

"요리한다면서, 먹을 거라면서?!"

저거 맞으면 뼈 밖에 안 남을텐데, 푹 고아서 곰탕이라도 만들겠다는 거냐?

- 그럴리가. 백은 온전히 남겨두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해주마. 영겁에 시간동안 회복과 파괴를 반복하며 지독한 고통을 맛봐라!

또 다시 저 괴물딱지가 자기 몸에 손을 집어넣고 뭔가를 끄집어 냈다. 그 형태를 본 서지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건, 쓸개?"

마마 델리는 쓸개를 그대로 위장 안으로 던져 넣고, 위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뭔데 저게, 생물학적 칵테일 같은 거냐. 진짜 가지가지 한다.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점액 방울들과 휘둘러지는 팔을 피하던 와중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들었다. 도대체 씨발, 그 파백이라는 물건은 어디에 있는 거야. 여기 있다면서.

뭐 네비게이션처럼 주변에 도착하면 안내를 종료해버리고 그러는 건 아니지?

몰래 다시 꺼내서 살펴 본 파백의 나침반은 정확히 마마 델리를 가리키고 있다. 내가 움직여도 화살표 방향은 마마 델리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바닥을 미끄러져 서지현 근처로 가서 말을 걸었다.

"파백이라는 물건은 마마 델리의 몸 속에 있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뭔가 생각하시는 것 같더니."

서지현이 말하는 와중에 나는 그녀를 들어 안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우리가 있던 자리에 쓸개즙과 위액의 칵테일이 떨어진다.

"너는, 뭐 생각해본 거 없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저 괴물이 방금 전에 오현식 씨에게 한 말이 신경 쓰였거든요. 백은 온전히 남겨둬서 회복과 파괴를 반복시키겠다."

나는 서지현의 말에 그녀를 슬쩍 바라봤다.

"저 괴물이 계속 재생하고, 이상한 곳에 팔이 솟아나고, 몸에서 내장을 꺼내서 무슨 장거리 무기처럼 쓸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닐까요."

육신을 빚어내는 힘이라고 했었나. 나는 그 말에 하아, 하는 소리를 냈다.

"안동의 키워드는 그 한자였던 모양이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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