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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21화 (21/237)

# 21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후딱 아침을 챙겨먹은 우리는 이빨 닦고 짐 싸고 모텔을 나와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안동역까지는 이제 20km도 남지 않았다. 서두른다면 오늘 안에는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새로 배운 스킬에 익숙해 질 겸, 걷는게 아니라 도로 위를 쭉쭉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거, 엄청 편해 보이네요. 얼마에요?"

"800pt, 물론 반사신경 카테고리를 2단계까지 올려야 해."

서지현이 잠깐 계산을 하나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못 사겠네요."

그렇겠지. 손에서 불을 뿜는걸로는 부족해서 남의 기술까지 탐내다니. 도로를 걸어가던 중,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무언가가 눈에 잡혔다.

"온다."

서지현이 내 시선이 향한 쪽을 바라봤다.

"그러네요. 혹시 뭔지 잘 보이시나요?"

"목도리 도마뱀 같은데, 두 마리."

서지현이 자기 목 좌우로 양 손을 가져다 붙이고는 손가락 열개를 꿈틀거린다.

"이거?"

"... 그래 그거."

굳이 시각적인 효과까지 더해줄 필요는 없었는데. 달리는 도마뱀과, 그 근처에 있는 나무의 크기를 비교해보니 엄청나게 큰 녀석은 아니다. 3-5m 정도. 임동면에서 안동으로 가는 길은 아직까지 요전에 경험했던 거울 미로 같은 장애물이 보이지 않고 있엇다.

그 대신 주변을 돌아다니던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달려든다. 임동면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굳이 안동으로 향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이런 녀석들이랑 싸우느니 그냥 임동면에 남아있는 편이 안전하다는 거겠지.

어쨌든, 100m 정도까지 접근한 녀석들의 입에서 녹색의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독이 있는 모양이네. 아니면 그냥 원래 침이 녹색이던가."

"그냥 편하게, 있다고 생각하고 싸우죠. 없으면야 다행이지만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 우리는 각자의 위치를 찾아갔다. 서지현은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목도리 도마뱀들에게 달려들었다. 먹잇감이라고 생각한 녀석이 덤벼드는 꼴이 썩 보기 역겨운지, 도마뱀의 목을 둘러 싸고 있는 피막이 파르르르 떨리는게 보인다.

두 마리 중 한 놈이 나에게 손을 휘두른다. 나는 곧바로 양 발의 마칠 계수를 낮췄다. 달리던 몸이 그대로 쭉 미끄러진다. 나는 허리를 뒤로 확 젖히고 균형을 잡았다.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목도리 도마뱀의 팔.

그대로 다시 마찰 계수를 정상으로 돌리자 미끄러지던 몸이 확 멈추고, 그 여력으로 허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나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녀석의 다리를 칼로 후려쳤다. 도마뱀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서 다시금 팔을 휘둘렀다.

오른다리로 땅을 세게 밀고 곧장 들어올리자. 마찰 계수를 낮춘 왼 다리 하나에 의지한채 내 몸은 빠르게 도마뱀의 팔이 닿는 거리에서 벗어난다. 내가 있던 자리에 도마뱀이 할퀸 자국이 남는다.

옆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니 도마뱀의 머리통 하나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 중이었다. 머리통이 잘려나간 단면은 바싹 구워져서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서지현이 손에 쥐고 있는 검에는 불꽃이 날름거리고 있다.

"좀, 서두르죠?"

"아, 연습 중이잖아. 급하기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대하고 있던 도마뱀 녀석에게 다시금 달려들었다. 도마뱀의 입에서 걸쭉한 가래같은 녹색 침이 나를 향해서 뱉어졌다. 그렇게 대단한 속도로 날아오는 건 아니다.

몸을 살짝 틀어 피하고, 그대로 뛰어오르자 대번에 나와 도마뱀의 눈높이가 맞춰진다. 팔에 힘을 빡 주고 칼로 목을 힘껏 후려친다.

목이 날아간 도마뱀의 몸이 잠깐 움찔 하고는 그대로 쓰러진다.

"그럼 이제."

허공에 뜬 상태에서, 나는 다시 프릭션 컨트롤을 사용해 양 발의 마찰 계수를 확 줄였다. 그대로 착지.

"어걱...."

다리로 시작된 착지는 꼬리뼈가 땅에 찍히는 엉덩방아로 끝났다. 옆에서 서지현이 살짝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와, 10점!"

그래, 놀려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이를 슬쩍 쓰다듬었다. 착지가 생각보다 어렵네. 연습해도 잘 안되는 걸.

"조금 더 노력하면 망한 세상의 남자 김연아를 노려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트리플 러츠 같은 거 하면서 칼질하면 폼이 꽤 그럴 듯 하겠는데."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예술 점수로 괴물에게 추가 데미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글쎄요, 엉덩방아라는 화려한 기술이 가진 예술성에 경탄하며 감상하느라 잠깐 멍해지지 않을까요."

아님 말고 식의 한 마디 잘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놀려."

아픈데 놀림 받으면 얼마나 서러운지 아냐. 우리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꽤 오래 걸은 것 같은데."

느낌 상으로는 슬슬 안동에 도착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서지현이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살짝 닦아내고는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안동 대학교가 나올 거에요. 대학교에 도착하고 나서는 몇km 정도 더 걸으면 안동역이 나올테고."

"그래? 의외로 장애물이라고 할 만한게 없었네."

서지현이 손수건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으며 하하, 하고 웃었다.

"좋은 일 아니에요? 그때처럼 눈 어지러운 공간이 길을 막는 건 즐겁지 않은데."

물론 틈틈히 괴물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처리하는데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었고. 이대로 잘 풀리면 좋긴 하지만 영 찜찜하다.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던 와중. 나와 서지현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오현석 씨가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거 아니에요. 오늘 점심은 아주 그냥 다 먹었네."

"댁 입맛이 떨어진게 왜 내 잘못은 아니지."

앞으로 쭉 뻗은 도로와, 그 옆을 흐르는 하천을 거대한 벽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시뻘건 벽이었다. 아니, 벽을 닮은 고깃덩어리였다. 피가 뚝뚝 흐르는 살점과 누런 지방을 서로 뒤섞어 벽돌로 삼고, 허연 뼛조각으로 뼈대를 세우고. 내장으로 벽돌과 뼛조각을 한데 묶어놓은 것 같은 벽.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데도 불구하고 꿈틀거리는게 보일 정도였다.

"이런 젠장맞을. 벽에 눈알은 뭐하러 달려 있는 거야."

남들보다 감각이 뛰어나 진게 별로 좋지 않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 시뻘건 육벽에는 수십... 어쩌면 수백개는 될 것 같은 눈알들이 따개비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살살 소름이 타고 올라오는 구조물이라는 건 저런 걸 두고 말하는 거겠지.

"..."

살짝 떨리는 손으로 지도를 꺼내본 서지현이 저 멀리 보이는 벽과 지도를 번갈아 보고 나서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봐도 저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진 벽이 위치한 곳은 안동 대학교 근처 같은데요."

나는 박수를 몇 번 쳤다.

"좋구만.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 떡 하니 자리잡은게 지옥의 정육점에서나 볼 것 같은 인테리어라니."

"악마도 정육점에 고기 사러 왔다가 기겁해서 돌아갈 것 같은 풍경인데요."

일단, 저건 벽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한 번 비슷한 종류의 벽을 경험해 보았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벽은 저런 살점 덩어리가 엉킨 장벽이 아니라 거울로 만들어진 장벽이었다.

"통과해야 하겠죠?"

서지현은 몸을 한 번 파르르 떨고 나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진짜 싫다. 통과 할 필요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그 육벽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서지현의 짐작대로 저 벽이 가로지르는 장소는 안동대학교 인근인 모양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지현이었다.

"벽 모양이... 꼭, 안동 대학교를 통과해서 빠져나가라는 식으로 배치되어있군요."

꽤 떨어진 거리였지만 벽이 가로지르는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지나가고 싶다면 안동 대학교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아마 저 안동대학교의 캠퍼스는 우리가 경험했던 그 거울 미로처럼 뒤틀린 세상이 되어있겠지.

"괘, 괜찮을거에요. 이미 한 번 이겨냈잖아요?"

그래, 토하기 일보 직전인 얼굴을 한 채로 힘차게 말해봤자 별로 희망이 불어넣어지지는 않는데.

우리는 서서히 안동 대학교와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저건...?"

안동 대학교로 들어가는 입구에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서 있었다.

"거기 남녀, 정지!"

바리케이트 근처에서 무기를 챙겨 든 남자 다섯 명 정도가 나와서 우리를 보고 외쳤다.

"외부인의 안동 출입은 현재 제한이 걸려 있다. 지시에 블응한다면, 통과 시켜 줄 수 없어."

서지현과 나는 서로를 잠깐 바라봤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에 벌써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는구나.

"지시라고 하시면?"

서지현의 말에 남자들이 그녀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안동으로 들어오는 모든 인원의 소지품은 전부 압수하고 있다. 안전지대의 치안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행위다. 협조하도록."

소지품 압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댁들의 뭘 믿고 소지품을 넘겨."

내 말에 그가 내 쪽으로 창을 겨누며 말했다.

"지시에 불응한다면 당장 돌아가도록. 우리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안동으로의 출입은 허락할 수 없어."

말을 마친 남자가 다시 한 번 흘긋 서지현을 보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물론, 숨긴 소지품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검사는 전라로 진행된다."

참 잘 굴러가는군.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지현이 내 옆에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래요? 실력이 되면 한 번 벗겨 보시던..."

서지현은 하던 말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뒤로 다시 물러났다.

"뭐야, 왜 그래."

서지현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닥을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분필로 그어진 선이 하나 있었다.

"... 설명하기 어려워요. 한 번 넘으려고 해보세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발을 앞으로 딛어 하얀 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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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랜드 클리어 - 안동

목표 : 안전지대로 설정된 안동역을 제외한 안동의 나머지 지역은 해가 저물면 발생하는 붉은 포식이라 불리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 현상을 끝내기 위해서는, 안동 시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랜드 마크'를 제거해야 한다.

※ 미션을 수락하지 않으면 안동으로 진입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해당 미션을 클리어 하기 전까지는 안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미션은 일회성입니다.

보상 : 4500pt, 장비(랜드마크 제거 참가자 한정), 붉은 포식 완전 종료. 설정된 구역 밖으로의 이동 제한 해제(구역 내부의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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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해당 결정은 번복 할 수 없습니다. 예/아니오]

나는 그 문자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속으로 아니오를 생각했다. 곧바로, 내 다리가 뒤로 밀려났다. 내가 뒤로 움직인게 아니라, 밀려난거다.

"흐, 저것들 표정 봐."

우리를 지켜보던 녀석들이 비웃음을 한 번 날린다.

"떠오른 문자 봤지?"

"방금 전에 그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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