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불지르는 소방차
시간이 꽤 지났다.
마침내 기름을 빵빵하게 채운 소방차가 강변 근처의 도로에 정차했다. 해가 쨍쨍한 가운데, 강변에 거대한 악어가 드글드글 모여서 아가리를 쩍 벌리고 쉬고 있는 중이다.
"어때, 여기에서 저기까지 닿을 수 있겠어?"
내 말에 최태훈이 대답했다.
"문제 없어. 충분히 닿을 거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방차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탕 쳤다.
"불장난 한 번 징하게 해볼까. 준비 부탁할게."
이 펌프차 안에 들어있는 휘발유가 자그마치 3000L다. 다 뿌리고 불을 붙이면 최소한 이 일대에는 바베큐 파티를 열어 버릴 수 있겠지.
"뿌리기 시작하면, 악어들이 화를 내겠죠?"
"선텐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휘발유 뿌리면 당연히 머리통이 열리겠지."
하지만 그래도 소방차가 뿜어내는 수압은 장난이 아니다. 잘 뿌리기만 한다면 악어도 쉽사리 이쪽으로 접근 할 수 없을 거다. 살수포가 왜 살수포겠어. 나는 히죽 웃으면서 미션 창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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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악어의 눈물
목표 : 임동면 인근에 위치한 낙동강 지류에 자리잡은 악어 서식지 파괴
보상 : 1800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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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pt와 저 악어 무리를 잡으면서 얻게 되는 막대한 경험치가 코 앞까지 다가왔다.
"준비 끝났다."
최태훈이 소방차 뒤 편에서 얼굴을 내밀며 우리에게 말을 전달했다. 최태훈은 우리에게 버튼 조작법을 알려주고 나서 호스를 잡았다. 우리보다는 아무래도 관련 업종 종사자가 호스를 잡는게 좋을 것 같으니.
"마스크 쓰는 편이 좋을 걸."
최태훈의 말에 나와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렸다. 그 와중에도 악어들은 별 다른 움직임이 없다.
"좋아. 시작하자."
최태훈의 말과 함꼐 우리는 버튼을 조작하고, 곧바로 호스 쪽으로 달려갔다.
혼자서 호스 들고는 못 버틴다. 함께 호스 잡고 버텨야 한다.
콰가가가가각, 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뿜어 올려진 휘발유가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입을 열고 쉬고 있던 악어들이 갑작스러운 휘발유 소나기에 당황하며 입을 닫고 맹렬하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이 휘발유, 얼마나 갈까?'
내 말에 최태훈이 대답했다.
"소방용 펌프차의 고압 방수는 분당 2000L를 쏘아낸다."
우리가 3000L 넣었으니까, 대충 1분 30초 정도 유지되는 군. 그 정도면 저 녀석들 정신 차리고 뭔가 해보기 전에 휘발유를 다 쏟아 낼 수 있다. 그나저나 휘발유 냄새 한 번 지독하네.
"이런 식으로 휘발유를 뿌리면, 잠깐 사이에 발생하는 유증기도 막대할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이 일대는 활활 불타는게 아니라, 폭발할 거라는 뜻이다!"
그렇구만. 소리는 왜 지르는 거야. 니가 알아듣게 말했으면 나도 질문할 필요가 없었을 거 아니야. 나와 최태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지현이 입을 열었다.
"안전거리가 어느정도 될까요?"
서지현의 말에 최태훈이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겠지, 누가 이런 짓을 해봤겠어. 방화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악어들의 눈이 마침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분위기 살벌하네요."
서지현의 중얼거림에 나와 최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인데.
"다 뿌렸다."
쏘아지던 휘발유 대포가 멈췄다. 악어들이 머무르던 강변은 이미 휘발유로 흥건하다.
"그럼 바로 준비하자."
곧바로 나와 서지현은 소방차 뒤 편으로 달려가 펌프를 끄고, 뒤에 매달렸다. 그 사이에 최태훈은 소방차의 운전석 쪽으로 달렸다.
소방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 마리가 그 사이에 벌써 강변의 둑을 넘어왔다. 이렇게 가깝게 다가오니...
"악어가 아니라 숫제 공룡이잖아?!"
저게 몇 미터야. 과장 조금 보태면 한 마리에 10m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런 녀석들이 단검만한 이빨이 주르르 박힌 이빨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달려오는 꼴은 호러 영화가 따로 없다.
"소방관 아저씨, 서둘러!"
지금 존나 무서워!
소방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먼저 기어 올라온, 휘발유를 뒤집어 쓴 악어들이 우리 뒤를 맹렬하게 쫒기 시작한다. 달리는 소방차 뒤를 바짝 쫒는 악어들. 땅 위를 기어다니는게 저 속력이라니. 그냥 칼 한 자루 들고 죽이자고 달려들었으면...
한 녀석이 코 앞까지 다가와서 소방차를 향해 달려든 다음, 입을 닫자 소방차의 한쪽 구석탱이가 그대로 뜯어져 나간다. 식은땀이 등골에서 쫙 솟아나는 광경.
"불!"
내 말에 서지현이 곧바로 녀석들을 향해서 불덩이를 집어 던졌다.
화악, 하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악어들에게 불이 옮겨 붙는다. 일광욕하며 입을 열고 있었던 덕분에, 아가리 안에도 불이 붙었다. 엄청 아프겠는데. 곧바로 서지현은 다시 불덩이 하나를 만들어서 강 쪽으로 집어 던졌다. 어차피 정확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반지의 보석을 손바닥 쪽으로 뒤집고 서지현의 옆에 바짝 붙었다. 최태훈은 소방차 안에 있으니까 충격에서 안전하지만 우리는 소방차에 매달려 있으니까.
서지현이 만들어낸 주먹만한 불꽃이 강으로 날아가는게 보인다.
그 불똥을 기다렸다는 듯이 3000L의 휘발유를 뿌렸던 곳이 통째로 폭발한다.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반지로 만들어진 보호막이 순식간에 찢어지고, 최태훈이 타고 있던 소방차가 뒤흔들린다.
거대한 불꽃의 버섯이 솟구친다. 그리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검은색의 연기. 확 하고 달궈진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할퀸다.
우와, 저 강가에 있던 녀석들은 장담하는데, 다 뒤졌다. 저 안에서 살아 있을 수는 없어.
쉬지 않고 검은색 연기가 뭉텅뭉텅 솟구쳐 오른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미션 클리어]
그래, 했겠지. 저 짓으로 죽은 악어가 몇 마리인데. 안 하면 그게 말이 되냐. 그 와중에 옆에 있던 서지현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레벨이 소름 끼치게 많이 올랐어요."
나는 그 말에 내 능력치 창을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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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 14.
육체 : 14 체력 : 13
정신 : 18 마력 : 3
감각 : 15+4 기교 : 5
추가 능력치 : 50
카테고리 : 반사신경 2단계
스킬 : 점프 스케어, 후발선타
수행 가능한 미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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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은 성공했다. 불놀이 굉장해요.
한 방에 몇이 오른거야. 이 정도라면 꼭두새벽부터 준비해서 일을 벌인 보람이 충분하다.
"세상에... 한 번에 이렇게 많이?"
소방차에서 나온 최태훈이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 자기 능력치 창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놀라는 건 놀라는 거고. 언제까지고 놀란 채로 있을 수는 없다. 정신 차려야지.
"일이 잘 끝났으니, 우리도 약속한 일을 해줘야지."
서지현이 내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건소로 사람을 보내세요."
우리 말에 최태훈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오는 길에 나 입을 옷 좀 챙겨다 주면 좋겠는데."
죄수복이 더 이상 못 쓰게 되었다.
우리는 소방차를 타고 보건소에 도착했고, 최태훈은 사람들을 데리러 교회로 다시 향했다.
"좀 쉬자."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치 다 찍고 나니까 확 몸이 좋아진 기분인데."
심지어 다쳤던 왼팔의 통증까지 덜어졌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한 번에 확 올랐으니까요. 이번에는 형편이 좋았어요. 앞으로도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걸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우위에 섰을거야."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뭐어, 계속 유지하는게 중요하겠지만요."
그렇지. 나는 잠깐 내 손을 바라봤다. 최소한 서울에 도착해서 최현우를 찾아내서 죽이기 전까지는.
"저는 안에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나는 최태훈에게서 옷을 받아 갈아입은 다음에 보건소 안으로 들어갔다. 서지현은 빠르게 예방 주사를 놔 주는 중이다. 속도로 봐서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뒤로 보건서 밖에서 기다린지 1시간이 넘게 지났다.
"뭐 하는거야, 백신을 만들어서 놔주는 중인가."
기다리다 지친 내가 보건소 안에 들어가서 본 것은, 사람들이 서지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는 광경이었다.
애원하는 내용을 듣지는 않았지만, 무슨 애원을 하는 중인지는 안 봐도 뻔하다. 가지 말라는 거겠지.
"간호사님, 그러지 말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지금도 다친 사람들이 많아요. 남아서 봐주시면...!"
나는 가만히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이미 이야기는 끝났어요. 저는 여기에 남을 생각이 없고, 오늘 놔 드린 예방 주사는 최태훈씨가 고생해주신 대가로 해드리는 일일 뿐이에요."
원래, 애원에는 논리가 없는 법이다. 서지현이 알아듣게 말한다고 해도 어쨌든 전문 의료인이 여기에 남았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먹힐 리가 없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있다가 가볍게 잔기침을 했다.
"..."
애원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는데, 상당한 적의가 느껴진다. 내가 서지현을 강제로 못 남게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한 마디 했다.
"사람 보는 눈깔 하고는."
내 말에 사람들이 주춤한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간호사 아가씨, 일은 다 끝냈나?"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해 죽겠으니, 일 끝났으면 빨리 돌아가자고."
"그러죠."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누군가의 손이 서지현의 옷깃을 붙잡는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되겠군. 나는 서지현의 옷깃을 잡은 녀석을 보고 말했다.
"말로 할 때 놓는게 어떨까. 손모가지 날아가고 나면 사람 옷깃은 물론이고 다른 것도 못 잡게 될 텐데."
옷깃은 잡은 손에 서서히 힘이 빠진다. 하지만 보건소를 떠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불만이 한 가득이다.
이거 어쩌면, 내일 중으로 떠나는게 아니라 지금 당장 떠나는게 좋을 수도 있겠는걸.
"분위기 보니, 지금 이 길로 바로 안동으로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기는 한데. 나는 서지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간호사 아가씨는 여기에 남고 싶으면 남아. 안 말려"
내가 서울가서 최현우 멱을 따야 한다고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까지 함께 붙들고 서울로 끌고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저 싫다면 그냥 남아있어도 내가 같지도 않은 보복을 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누가 동행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계획에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