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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7화 (17/237)

# 17

불지르는 소방차

이 새끼는 괴물을 죽여서 레벨을 올린게 아니라 사람을 죽여서 레벨을 올린 놈이다.

하지만, 괴물을 죽여서 레벨을 올린게 아니라면 미션을 한게 아니라는 뜻 아닌가? pt는 어떻게 주워 모아서 쉴드 스킬을 얻은 거야. 사람 죽이는 미션 같은 것도 따로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횡으로 휘둘러진 오함마가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반지?"

휘둘러지는 순간에 살짝 보였다. 이상한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였다. 스킬을 배운게 아니라, 아이템을 얻었던 모양이다. 아마 원래 소유주를 죽이고 뺴앗은 거겠지.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달려들어서 검을 역수로 잡고 녀석에게 달려들어 힘껏 내려 찍었다. 울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녀석 주변에 드리워져 있던 투명한 막이 출렁인다.

손을 타고 강한 반발력이 전해진다. 엄지로 힘껏 풍선을 누르는 것처럼 투명한 막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녀석의 이마 바로 앞에서 내 검이 멈췄다. 녀석의 눈이 자기 이마 앞에 멈춰 있는 칼 쪽으로 향한다.

"아, 힘이 많이 부족하네."

설사 내려 찍은 검이 녀석의 이마에 닿았다고 해도 생채기 정도가 전부였을거다.

"이 새끼가...!"

다시 한 번 나를 향해서 휘둘러지는 망치. 나는 곧바로 투명한 막을 발로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망치질에 깨진 바닥의 돌조각을 집어들고 힘껏 집어던졌다. 다시 투명한 막이 출렁거리며 돌조각을 막아낸다. 생각보다 더 튼튼하다. 칼로 뚫으려면, 더 위에서 떨어지면서 찍어야 한다. 그럼 충분히 쑤시고 들어갈 거다.

높게 뜨려면... 높게 뜨려면.

훙, 하는 공기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망치. 나는 곧바로 녀석을 감싼 투명한 막에 노크를 하며 웃었다.

"얌마. 사람이 물어봤는데 왜 아직까지 대답이 없어. 몇 명이나 죽였냐고. 그 사이에 질문도 까먹은 거냐?"

내 말에 녀석이 이를 꽉 문다.

"쥐새끼 같은 게."

망치가 위로 들어올려진다. 나는 그걸 보고 히죽 웃었다. 망치가 내 머리 위로 내려 찍히는게 보인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이전처럼 많이 물러나는게 아니라, 딱 망치만 피할 수 있을 정도. 휘둘러진 망치가 코 앞을 스치고 땅바닥을 내려 찍는다. 포장된 땅이 갈라진다. 곧이어, 온 몸이 찌릿거리는 진동이 몸을 흔든다.

코 앞에 서 있던 내 다리에 부서진 돌조각 몇 개가 부딪쳐 다리가 욱신거린다. 나는 이를 악물고 땅을 내려찍은 망치를 한 발로 콱 밟은채, 검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기분 더럽게 출렁거리는 보호막의 감촉이 검 위로 전해진다.

"으아아아아! 이 씨팔 새끼가아아아!"

코 앞에서, 녀석이 그렇게 외치고는 내 밟에 밟힌 망치를 번쩍 들어올리려 든다. 근육이 꿈틀거리는게 보인다.

"고맙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녀석이 들어올리는 힘과 함께 위로 훌쩍 뛰어 올랐다. 용머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내가 고맙지, 잘 가라!"

녀석은 공중에 붕 떠있는 나를 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떨어지는 나를 향해 망치를 휘두를 준비를 한다.

공중에 떠올랐던 몸은,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양 손으로 검을 꽉 쥔 채로 녀석에게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망치는 정확한 박자로 휘둘러졌다. 내 관자놀이를 향해서 다가오는 게 똑똑히 보인다.

아마, 내 검이 저 투명한 막에 닿는 순간 내 몸을 후려치겠지. 원래대로라면.

그 순간, 내 몸에 확 하고 가속이 붙는다. 후발선타.

망치가 내 관자놀이를 치는 것 보다, 내 칼이 녀석의 투명한 막에 닿는게 먼저였다. 검을 막아내는 투명한 막이 확 하고 휘어진다. 그리고 내 머리를 치기 위해서 다가오던 망치의 해머 부분은 나를 맞추지 못했다.

으지직, 하는 느낌이 손 끝을 타고 올라온다. 살갗을 찢고 두개골을 파고 드는 감촉이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힘과 속도 덕분에 보호막이 한계까지 휘어져, 결국 칼이 녀석의 이마빡을 쑤시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좋아, 이제 아플 일만 남았군.

나는 이를 꽉 물었다.

뒤늦게, 망치의 막대기 부분이 내 왼쪽 어깨를 퍽 하고 후려친다.

통증이 왼팔에서 퍼진다, 그 바람에 떨어지던 자세가 흔들렸다. 원래는 녀석의 몸 위에 올라 타는 그림이어야 하지만, 나는 녀석이 서 있는 곳 바로 옆으로 떨어져 바닥을 몇 번 굴렀다.

"하, 씨팔."

마빡에 칼이 박혔다. 저건 못 산다. 나는 왼팔을 늘어뜨리고, 오른팔로 왼팔을 감쌌다. 고통만 봐서는 부러져도 신기 할 게 없었는데.

왼팔에 힘이 잘 들어가지는 않지만 재수가 좋아선지 뭔지, 부러지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낙하 하는 와중에 속도가 확 붙어버리다니. 이미 반사신경의 영역이 아니잖아. 카테고리만 반사신경인건가.

나는 잠깐 비틀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용문신의 시체에서 반지를 빼낸 다음에 서지현 쪽을 바라봤다.

"세 명이라."

두 명이서 여섯 명이랑 싸워서 세 명을 이겨먹었다고 하면... 나는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훔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 사람이 한 명씩 맡으면 순식간에 끝나겠는데?

"팔, 괜찮아요?"

"아니. 아파."

내 말에 서지현이 빙글거리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자위는 작작 하셔야죠."

"난 오른손잡이야. 왼손이 아픈 거랑 상관 없는데."

"어색한 손으로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아 진짜,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저 여자는? 받아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

"이 상황에서 꼭 그런 말을 해야겠냐."

서지현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런가요? 어제 한창 싸우고 나서, 배 아프다는 사람한테 똥마렵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어서 이런 농담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하, 그 발언에 대한 복수인가.

"어제 한 번 놀린 걸 꼭 이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갚아줘야 하나."

"성격이 나뻐 처먹어서."

자랑이다. 대충 대화를 마친 우리는 앞에 서 있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자기 두목 마빡에 칼침이 놓인 걸 깨닫고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하고, 눈치를 보다가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지팡이 삼아 짚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죽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양 팔이 묶여 있는 사람들을 슬쩍 바라봤다. 도망치면서 두고 갔다.

"저 친구들은 어쩌는게 좋을까?"

내 말에 팔이 묶인 사람들이 움찔한다. 서지현이 슬쩍 그들을 보고 나서 말했다.

"굳이 어떻게 해야 할 필요 있나요. 그냥 줄이나 풀어주고 알아서 잘 살아가라고 빌어주죠. 우리가 저 사람들까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어요."

서지현의 말에 최태훈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의사를 물어보고, 저 사람들이 동의한다면 교회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야, 물자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나?"

내 말에 최태훈이 슬쩍 휴게소를 바라본 다음에 말했다.

"추가로 물자를 확보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물자에 여유가 생겼으면 머릿수는 많은 쪽이 좋습니다."

서지현은 손뼉을 한 번 쳤다.

"좋아요. 그럼 그건 최태훈 씨가 알아서 하시고..."

"후딱 휘발유 채워서 가자."

내 말에 최태훈이 대답했다.

"그럼, 바로 준비하지."

서지현이 최태훈의 말에 슬쩍 나를 보고는 말했다.

"앉아서 쉬고 있어요. 펌프차에 휘발유 채우는 건 우리가 할테니. 아."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불에 휘감긴 손을 땅바닥으로 가져갔다. 손에서 바닥으로 옮겨붙은 손바닥만한 불길이, 꺼지지 않고 유지된다.

"어차피 휘발유는 밥 다 먹고 나서야 전부 채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식사 준비 하라고?"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기왕에 불 피우는 능력을 얻었는데. 뜨신 식사도 즐겨야죠. 이 정도 크기와 온도를 유지하는 거면 지금 제 능력치로 3시간 정도는 괜찮아요."

좋은데. 나도 저거나 배울걸 그랬나. 날 추워지면 난방도 될 거 아니야.

"마력 능력치가 얼마인데?"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17이요. 보정 받으면 20."

20으로 3시간이면... 내가 마력 능력치가 3이니까. 30분도 유지 못하네. 집어 치우자. 나랑 마력은 별로 인연이 없는 것 같다. 피워진 불에 물을 끓이고, 나는 먹을 걸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서지현은 사람 하나 통째로 들어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커다란 고무 대야를 챙겨서 머리에 이고 주유소 쪽으로 걸어간다.

사실 식사 준비라고 해도 별로 대단한게 필요하지는 않다. 애초에 상온에 3일 보관한 두부 따위를 먹을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전기가 나간 상황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재료는 한계가 있다.

"밥을 준비하는게 아니라 밥 준비하는 흉내를 내는 수준이구만."

블럭 형태로 동결건조된 북어국 블럭이랑, 통조림 깻잎과 햇반, 햄 구이.

이 정도 말고는 준비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상온에 3일 방치된 두부를 먹을 용기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나마 식사 비슷한 물건이라도 나온게 다행이지.

"밥 먹고들 해라!"

내 외침에, 펌프차에 휘발유를 채우던 서지현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메뉴를 보고 서지현이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드디어, 밥이라고 부를 만한 물건이 나왔네요."

식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풍을 온 것도 아니고. 최태훈은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줄을 풀어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마 밥 먹으면서 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회 쪽으로 보내려는 모양이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내 질문에 서지현이 젓가락으로 깻잎을 집어들며 말했다.

"대충 절반 정도는 채운 모양이에요."

생각보다 빠르네.

"그나저나, 팔은 좀 어때요?"

서지현의 질문에 나는 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왼팔을 잠깐 움직여 보았다.

"욱신거리기는 하는데.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나를 보고 있다가 뭔가를 내 쪽으로 뭔가를 건네주었다. 스프레이 파스다.

"휴게소 편의점에 보이길래 챙겼어요."

뭘 이런 것까지. 나는 파스를 뿌리고 난 다음,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들었다.

"그건?"

서지현이 관심을 보인다.

"용문신이 가지고 있던 반지야."

[수호고리 : 반지의 보석이 손바닥 쪽으로 향하게 돌리면, 바깥의 위협에서 몸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만들어집니다.]

반지의 설명을 확인한 나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다음 양치질을 하고 있으려니, 최태훈이 줄을 풀어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일이 잘 풀린 모양인데. 최태훈과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나를 보고 잠깐 움찔 하더니,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네, 소방관 아저씨."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게소의 물자를 챙겨서 임동면의 교회로 가라고 했다. 내가 보냈다고 말하면 받아들여 주겠지."

양치질을 마친 나는 물로 입을 헹구고 나서 말했다.

"좋아. 일이 잘 풀렸다니 기쁘네. 이제 우리도 일 마치고 후딱 가자고."

내 말에 최태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주유소에서 소방차 물탱크에 휘발유를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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