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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4화 (14/237)

# 14

불지르는 소방차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아직 바깥은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아 어슴푸레하다.

우리는 외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전 3일 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이다.

최현우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물과 식량을 산다.

최연우는 살아있고, 물과 식량은 하루에 구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구매한다. 그리고 남은 포인트를 사용해야 한다.

상점의 목록을 뒤지던 나는 이번에도 결국 스킬을 배우기로 했다.

[후발선타 : 상대와의 크로스 카운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신의 공격은 무조건 상대에게 먼저 적중합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게 뭔가요? 350pt]

먼저 때리는 건 언제나 좋다.

괴물과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아직 이렇다할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을 터인 사람과의 싸움에서는 선빵 필승이다. 심지어, 그 선빵이 날붙이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더욱 더.

[반사신경 카테고리의 스킬이 추가 습득되었습니다. 반사신경 2단계가 적용됩니다. 포인트를 통해, 1단계에서 습득한 스킬을 강화하거나, 2단계 반사신경 카테고리의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3단계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반사신경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스킬을 추가로 2개 습득해야 합니다.]

강화도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그 말에 곧바로 스킬을 확인해보았다.

이미 배워두었던 점프 스케어가 강화 되면 어떤 성능이 되는 건지 설명이 떠오른다.

[점프 스케어 : 갑자기 튀어나오면 귀여운 곰돌이도 무섭습니다. 당신이 육안으로 상대를 최초 인식(하거나 상대가 당신을 육안으로 최초 인식한) 1초 간, 시간이 다섯 배 느리게 흐릅니다. 물론 당신의 움직임도 느려집니다. 발동 조건은 별개로 적용됩니다. 250pt]

"발동 조건 추가군."

게다가 두 개의 발동 조건은 별개로 쳐준다고 한다.

한 상대에게 점프 스케어가 두 번 발동 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상대를 인식했을 때 한 번, 상대가 나를 인식했을 때 한 번.

강화에 필요한 포인트는 최초 구매에 필요했던 포인트인 250pt. 당연히 기존에 습득한 스킬의 강화는 새로운 스킬의 습득으로 쳐주지 않는다.

스킬 강화는 강화대로 해야 하고, 습득은 습득대로 해야 한다.

능력치 창에 카테고리가 여러개 달리면 포인트가 녹아 내리겠군 그래. 카테고리는 무조건 많다고 좋은게 아니라는 건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거 봐요."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 손 위에 사과만한 크기의 불덩이 하나를 띄워올렸다. 나는 그걸 보고 말했다.

"휘발유 뿌린 다음에 라이터 던질 필요는 없겠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배운 거죠. 원래는 장비를 살 생각이었지만."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 검지에 끼워져 있는 거울 가락지를 살짝 보여주었다.

"장비는 그 망할 거울천지에서 하나 얻었잖아요."

이걸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우리는 짐을 챙겨서 배낭을 짊어지고 지하실 문을 나서 교회 쪽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서 경계를 서던 남자가 우리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간호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정중, 또 정중. 서지현이 간호사라는 게 밝혀진 효과는 굉장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곧바로 교회 쪽으로 달려갔다.

"좋아, 뭐 부터 해야 하지?"

교회에서 나온 소방수 아저씨가 우리와 간단하게 악수를 한 다음에 입을 열었다.

"소방학교에서 소방용 펌프차와, 거기에 맞는 키를 찾아낼거야. 소방관 아저씨."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했군. 최태훈이다."

이름 한 번 늦게 알려주네.

"오현석."

내 말에 소방관이 작게 내 이름을 한 번 중얼거리고는 질린 안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서지현도 이름을 듣자마자 알아봤으니까 소방관 아저씨라고 모를리는 없겠지.

"그, 연쇄..."

최태훈은 하려던 말을 멈췄고,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쇄 살인범 오현석."

내 말에 옆에서 서지현이 작은 한숨 소리를 낸 다음 말했다.

"서지현이에요."

"좋았어. 자기 소개 끝났으면 이제 일 해야지."

시간은 부족하고 해야 하는 일은 많다. 소방학교가 무슨 동네 보습 학원처럼 건물 한 층 빌려서 장사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오늘 오전 중에 펌프차를 확보해서 물을 비우고 기름을 채우는 것까지 끝내야 오후에 일광욕하는 악어들 몸을 좀 덥혀주지.

어제 우리가 상대해야 했던 거미 인간 비슷한 것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주변 야산에 머무르다가 마을로 내려오는 모양이다. 따라서, 습격을 오지 않는 이상 마을 안은 안전하기에, 시간을 끌 필요 없이 우리는 바로 소방학교 쪽으로 향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 뿐입니다."

그 와중에 최태훈은 부지런히 자신이 임동면 교회에 만들어 놓은 생존자 조직이 얼마나 좋은지를 서지현에게 꾸준히 어필 중이었다.

"그런가요? 당신을 비롯한 생존자들에게는 다행인 이야기네요. 그것보다는,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요 우리."

서지현은 정작 심드렁하다. 외모도 그렇고 철벽을 치는 솜씨도 그렇고. 대한민국이 멀쩡할 때는 남자 몇 명 열 좀 받게 했을 것 같은데.

"서지현 씨 같은 사람이라면 교회에 있는 사람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할 겁니다. 좋은 대우도 약속해드리죠."

"물자가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한동안 문제 없이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다만, 나중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아끼는 중일 뿐이지요."

서지현과 최태훈의 대화는 듣고 있는 것 만으로도 걸어가는 동안 좋은 심심풀이가 된다. 최태훈이 말을 던지면, 서지현이 강철 같은 방패로 하나하나 다 튕겨낸다. 설왕설래라는 단어는 꼭 키스 뿐 아니라 이럴 때도 쓰는 거겠지.

말하던 중에 최태훈이 슬쩍 나를 본 다음에 서지현을 향해 말했다.

"한국이 이런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함께 할 거라면 이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상식과 교양의 테두리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하는 편이..."

"워우, 그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딱히 상처 받지는 않았고, 화가 날 일도 아니다. 내가 뭐 억울하게 누명 쓴 것도 아니고 사람 죽인 범죄자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최태훈은 서지현을 설득하려는 와중이다. 당연히 최태훈이 부각해야 할 점은 내가 범죄자라는 점이지, 내 개인 사연이 아니다.

최태훈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서지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간호사로 있던 마을도 상식과 교양의 태두리 안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었죠. 그리고, 소위 친절한 이웃사람들이었던 아저씨들이 저를 강간하려 들었답니다. 그 와중에 정작 저에게 도움을 준 건 상식과 교양의 테두리 밖에 있던 범죄자였죠."

서지현의 다소 싸늘한 한 마디에 최태훈이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지현이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말해요. 그 사람들도 접근하면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 아니라는거 알잖아? 라고 말했거든요."

"우린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야, 또 나를 때리려는 거야? 아주 그냥 사람을 동네 북으로 보는 군 그래. 서지현은 그 말에도 간단하게 대꾸했다.

"임동면의 주인 없는 가게와 집을 털어서 물자를 확보한 건 누굴까요."

"그건...!"

서지현은 최태훈을 슬쩍 바라본 다음에 말했다.

"이전 세상의 상식대로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는 모두 범죄자에요 최태훈씨. 잡아갈 경찰이 없을 뿐이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걸어가던 중, 눈 앞에 소방학교의 정문이 보인다. 그리고 정문 한 구석에 이쁘게 돌돌 말린 거미줄 고치가 몇 개 눈에 띈다.

우리는 그 아기자기하고 동글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소방학교에는 별 다른게 없기를 빌었는데."

정문 인테리어를 보아하니 편하게 가기는 또 글러먹은 모양이다. 뭐, 생각해보면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갈 리가 없지.

서지현도 다소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소방학교에서부터 막히네요."

"그러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털래털래 걸어가서 키 챙겨서 펌프차 타고 나오는 건 조금 힘들어 질 것 같다. 편안하게 만담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우리는 무기를 챙겨 들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멈춰봐. 거미줄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걸음을 멈췄고, 뒤늦게 최태훈이 걸음을 멈췄다.

"무슨 거미줄?"

최태훈의 말에 나는 정면을 가리켰다. 희미하게 눈에 잡히는 가느다란 거미줄 몇 가닥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로 정문을 가로지르고 있다. 서지현이 눈에 힘을 주고 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잘 안 보이는데... 뭐가 있는 것 같긴 해요."

나는 능력치를 감각에 많이 투자했고, 반사신경 2단계 보너스까지 받아서 제대로 눈에 보이지만 두 사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우린 여기에 싸우러 온 게 아니야."

거미줄 함부로 건드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내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너를 뒤따라 가마."

"그래. 괜히 쉬고 있는 녀석들한테 식사 소집 걸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서 물건 챙기고 빠지자고."

나는 거미줄을 피하며 소방학교로 들어가는 정문을 넘었다. 작은 곳이 아니다. 건물도 한 두개가 아니고.

"이 건물들 중에서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거야."

내 말에 최태훈이 굉장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서지현이 그 건물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했다.

"아, 장난하지 마세요."

최태훈은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정말입니다.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차량의 키는 저 건물 3층에 보관 중일 겁니다."

나는 그 건물을 보다가 한 마디 했다.

"쥐덫 위에 올려진 치즈 빼먹는 생쥐가 된 기분인데."

최태훈이 가리킨 건물은 겉으로 봐도 '여기에 들어오면 호된 꼴을 당할 것이야.' 같은 분위기를 줄줄 뿌리고 있었다.

건물 주위를 듬성듬성 휘감겨 있는 거미줄을 보니 탄식부터 나오려고 한다. 나는 건물 근처로 다가가서 장갑의 버튼을 누른다음, 돌렸다. 어디, 내부는 어떤 상황인지 한 번 꼬라지나 구경해보자.

네모난 창이 두 개 나타나고, 나는 손등 위에 떠오른 작은 네모를 살피면서 다른 네모를 건물 안으로 밀어넣었다.

"... 망할."

알이 담겨 있는 것이 확실해보이는 고치 여러 개가 여기 저기 거미줄에 휩싸인 채로 꿈틀거리고 있다. 부화장 같은 건가. 손거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확인해본 결과, 몇 마리의 거미 인간들이 고치 주위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어때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말해주었다. 서지현이 그 말에 다소 안색이 어두워졌다.

"힘들겠는데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대답했다.

"몰래 들어가는게 힘든 것 뿐이야. 소방관 아저씨, 열쇠가 구체적으로 3층 어디 즈음에 있는 거야?"

내 말에 최태훈이 턱을 쓰사듬고 있다가 말했다.

"건물 뒤 편으로 돌아 가야 한다. 그쪽에서 보면 위치를 알려 줄 수 있어."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건물 뒤 편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 와중에도 도로에 이리 저리 걸려 있는 거미줄을 피하면서.

"보자... 아마 여기."

최태훈이 그렇게 말하면서 창문 하나를 가리켰다. 나는 곧바로 장갑을 이용해서 내부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이 건물에 주인 행세 하는 거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는 아닌 모양이다. 건물 겉은 거미줄이 이리 저리 휘감겨 있지만, 우리가 목적으로 두고 있는 장소 내부는 살펴봤던 1층처럼 거미줄과 알 천지가 아니었다.

나는 손거울을 활용해서 그 방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의 벽에 붙어있는 캐비닛 안에 열쇠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좋아."

열쇠고리에 붙어있는 이름표에 '펌프차' 라고 써져 있는 키가 몇 개 있다. 이거면 충분해. 나는 장갑의 버튼을 다시 원위치 시킨 다음에 두 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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