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3화 (13/237)

# 13

불지르는 소방차

내 말에 서지현이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빙 감아올리기 시작한다.

"글쎄요. 강제로 억류한 사람에게 자기 목숨을 맡기는 건 썩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걸 누가 가르쳐줘야 할 정도면...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장수는 못하겠네요."

그 말이야 틀린 말이 없다고 쳐도.

"굳이 나와 함께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저기에서도 잘 해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서지현이 떠난다고 해도 딱히 잡을 이유도 없고, 빌미도 없다. 길게 잡아봐야 나와 서지현은 꼴랑 이틀 함께 한 사이일 뿐이다. 오히려 최소한 15명이라는 생존자가 확인된 생존자 조직에 합류하는게 그녀에게 있어서는 더 좋은 선택일 수가 있다.

"그렇겠죠. 죽으면 안되는 귀중한 전문 의료인이니 생존 우선 순위도 꽤나 높을테고. 당연히 좋은 대우도 약속할 거에요."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나서 잠깐 천장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지금은... 여기에 머무를 생각이 없다 정도로만 이야기를 해둘게요. 저도 지금 여러가지로 생각 중이라서."

뭐, 그러던가. 나는 지도를 꺼내서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 소방학교가 있네."

내 말에 서지현이 내 옆으로 다가와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렇네요."

"교육용이건 뭐건, 소방용 펌프차도 있겠지?"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소방 학교니까요."

그럼, 교회에 머무르는 이웃들에게 차를 빌리는 대신에 말이지.

"물탱크 비우고, 주유소 가서..."

내 말에 서지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탱크에 휘발유 채우자는 소리는 아니겠죠."

"안될 거 없잖아? 어차피 망한 세상인데 소방차가 휘발유 뿌리는게 뭐가 어때서."

교도소에서 탈옥한 죄수도 있고, 오염된 주삿바늘으로 혈관을 찌르겠다는 간호사도 있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소방차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역할을 담당할 순간이 아닐까.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우린 소방용 펌프차 사용법을 모르지만... 이웃집 가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전직 소방관인 모양이었죠?"

그러게. 참 우연도 지독해라. 차를 빌릴 필요는 없으니까, 예방 주사와 교환하는 건 다른 걸로 해도 좋겠네.

"모텔에서 숙박하면 옆방 사람한테 떡을 돌릴 기세군."

고작 이틀 옆에서 사는 상황인데 써먹을 곳이 있으니 바로 이웃사촌이 되어버렸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야 못 돌릴 이유는 없죠."

매우 공감가는 한 마디다.

"그럼 결정이 났네요. 바로 그 소방관 아저씨를 설득해보죠."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결정이 났으니 움직여야지. 나와 서지현은 지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면에 보이는 교회 앞에는 사람 둘이 서 있다.

"친구들, 안녕?"

내 말에 두 사람이 눈에 띄게 경계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슬쩍 옆에 있는 서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죄수가 말을 하니 대뜸 경계부터 하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당신들 리더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

서지현의 말에 무기를 든 채로 우리를 경계하고 있던 남자 둘이 서로를 잠깐 쳐다봤다.

"미안하지만, 관련된 내용은 경계 나올 때 전파받지 못했어."

서지현이 그 남자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에이, 사실 만큼 사셨잖아요? 세상만사가 메뉴얼대로, 합의된대로 이루어지면 힘들 일이 하나도 없죠. 말이나 한 번 전해주세요."

서지현의 말에 경계를 서던 사람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채로 말했다.

"말씀은 드려보지."

그리고 경계를 서던 사람 중 한 명이 뒤편에 사람을 불러서 잠깐 그를 자기 대신 세워놓고 교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우리는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얼마 뒤에, 교회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소방관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거래 이야기야. 댁들에게 나쁠 거 없는 이야기지."

내 말에 소방관이 대답했다.

"그건, 들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할 문제 같은데."

서지현이 소방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들어보시면 되겠네요."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그를 바라봤다.

"손 좀 빌려 주셨으면 좋겠는데."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하, 하는 소리를 냈다.

"일손을 말하는 건가?"

서지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방관 한 명이면 충분해요."

서지현의 말에 그가 나와 서지현을 한 번 훑어봤다.

"소방관은 뭐하러."

"소방용 펌프차를 쓸 생각인데, 우리는 쓸 줄 몰라."

내 말에 소방관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와 서지현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만."

소방관의 대답에 서지현이 살짝 뾰족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전혀 모르는게 당연하죠."

말을 마친 서지현은 다소 건조한 표정으로 그의 뒤편에 서서 경계를 계속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저 사람들 부터 좀 다른 곳으로 보냈으면 하는데요."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대답했다.

"거래라고 했으면 줄 것도 있다는 거겠지. 뭔지 들어보고 결정하지."

"보건지소에 있는 백신으로, 교회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파상풍 예방접종을 해드리죠."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그녀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서지현이 한 발 먼저 입을 열었다.

"눈 앞에 있는 나라는 아가씨는 옆 동네 보건지소에서 일하던 간호사에요."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하려던 말을 멈췄다.

"...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지?"

서지현이 그 말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수액이라도 한 방 놔드리면 믿으시려나?"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대답했다.

"그래 준다면야 믿을 수 있지."

서지현이 소방관의 말에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놔드리죠. 보건지소에 가 있을테니 오세요. 20분 기다릴텐데, 사람이 안 오면 없던 일로 하겠어요."

말을 마친 서지현은 나와 함께 뒤돌아서 보건지소 쪽으로 곧바로 향했다.

"올까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대답했다.

"오겠지."

전문 의료인은 놓치기 아까운 인재다. 사실 여부의 확인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올 것이다.

"아마 편입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을거야."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이야, 그럼 뭐 먹거리라도 좀 챙겨오려나?"

서지현은 태연하게 말하면서 함께 보건지소 안으로 들어갔다.

20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5분 뒤에 보건지소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세 명이었고, 한 명은 상태가 좀 이상해 보였다. 서지현은 그 상태가 안좋아보이는 사람을 보다가 함께 온 소방관을 바라봤다.

"며칠 전부터 계속 설사를 하더군. 상한 음식을 먹은 것 같다."

서지현이 그 말에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의사가 아니에요. 정확한 진단은 불가능하고, 원래는 해서도 안되죠."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그를 보다가 말했다.

"수액만 놓을 수도 있고... 또는 항생제도 함께 넣어 줄 수 있긴 해요. 물론 항생제는 의사가 넣으라고 진단한게 아니라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당연히, 제 책임은 아니고요."

나는 옆에서 태연하게 농담한 마디를 던졌다.

"일이 잘못되면 고소하라고 해."

내 말에 서지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잠깐 지은 다음에 환자를 바라봤다.

"어쩔까요?"

서지현의 말에 잠깐 고민하던 환자가 대답했다.

"항생제도."

서지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바늘이 박혀들어가고, 수액 주머니가 달리고, 수액이 똑똑 떨어지며 환자의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그걸 보고 있던 서지현이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말했지만, 지금 투여 할 예정인 항생제는 의사 진단이 없이 진행되는 야매 영역이에요."

잠시 뒤, 항생제가 수액줄을 통해서 환자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서지현은 일을 마친 다음에 소방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멀쩡한 사람을 데리고 온 것도 아니고 환자를 데려왔으면서 공짜로 떼울 생각은 아니었겠죠?"

서지현이 수액을 놔주겠다고 한 건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그런데 니들은 환자를 끌고 와서 치료를 받았으니, 테스트와는 별개로 치료비를 내놓는게 합당하지 않냐. 서지현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그럴리가요, 간호사 님."

와, 말 정중해지는 거 봐라. 하긴 딱 봐도 전문가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곧바로 말투가 정중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겠지. 지옥에서 예수 만나면 저런 표정일까.

반면, 그런 존대를 받는 서지현 쪽의 반응은 꽤 건조하다. 소방관이 슬쩍 눈짓을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밖에 나가서 뭔가를 챙겨서 서지현 앞에 내려놓았다.

"물자가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물 세 통과 커다란 통조림 5개.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대답했다.

"이 정도의 여유는 있습니다."

서지현은 소방관의 말에 그래요? 라고 말한 다음 그것들을 보다가 말했다.

"잘 쓸게요."

자, 소방관 아저씨가 서지현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슬슬 대화를 시작할 순간이 온 모양이다.

"이제, 거래 이야기를 하고 싶어. 가능하면 듣는 사람은 적었으면 하는데."

내 말에 소방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온 사람들을 슬쩍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간호사님."

가는 길에 환자가 한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공짜가 아니었어요. 당신이 고마워 할 이유는 없죠."

그리고 보건지소 건물 안에는 세 명이 남았다. 소방관이 우리를 바라봤다.

"구체적으로 필요한게?"

"소방용 펌프차가 필요해."

그 말에 소방관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어디에 쓰려고."

서지현이 그 말에 대답했다.

"소방용 펌프차의 물탱크를 비우고, 인근의 휴게소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채울 거에요."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무슨 소리긴. 대낮이 되면 강가에서 악어들이 아가리 벌리고 쉬고 있잖아. 혹시 마을 안에만 있어서 못 본 거야?"

먹이를 사냥하는 곳은 다른 곳인지, 이 마을로 찾아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내 말에 소방관이 나를 바라봤다.

"그거랑 물탱크를 비우고 그 안에 휘발유를 채우는게 무슨 관련이 있는 거냐."

"일광욕 하는 악어들에게 소방용 펌프차를 사용해서 휘발유를 듬뿍 쏟아내고, 불을 지를거다."

야외에서 즐기는 악어 바베큐지.

"지금 저게 제정신... 간호사 님?"

제정신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모양인지 소방관의 시선이 서지현에게 향했다. 서지현은 그 시선을 받으며 대답했다.

"저도 대찬성을 한 화끈한 아이디어에요."

슬프게도 서지현도 정상은 아니었다. 소방관이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다가 중얼거렸다.

"완전 미쳤군."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교도소에서 징역 살던 범죄자한테 뭘 바래?"

내 말을 서지현이 거든다.

"징역 살던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행하는 사람에게 뭘 바래요?"

내가 손을 옆으로 슥 내밀자 서지현이 자기 손을 내 손에 부딪쳐 짝, 하는 소리를 낸다.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소방관이 끄응, 하는 소리를 낸 다음 입을 열었다.

"예방 접종 먼저."

말도 안되는 소리.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아니, 우리 일을 돕는게 먼저다."

소방관과 내 시선이 서로 마주친다. 보면 어쩔거야. 우리 먼저 도와. 예방 접종은 그 다음이다. 옆에서 서지현이 나와 소방관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 사람의 의견과 이하 동문이에요."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보자고."

대화를 끝내고 나서 서지현은 소방관을 보며 말했다.

"오늘 데려온 환자에게 놓아드린 수액과 항생제는, 간호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보상을 받고 해드린 일이에요. 거래한 내용에 따르면 제가 교회에 머무시는 분들에게 해드릴 일은 예방접종 뿐이고."

서지현의 말에 소방관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서지현이 앞에 놓인 물과 통조림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환자 치료는 여기까지라는 거죠. 어차피 이 이상 물자를 받아봤자 챙겨 갈 수도 없으니."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머무는 곳으로 더 이상 환자 보내지 말라는 뜻이다.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나와 함께 보건소를 나와 교회 맞은 편에 있는 지하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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