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거울의 미궁
나와 서지현은 거울 미로 안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꼐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몸을 한 번 떨었다. 또 거울에 몸을 들이 받았다. 아픈게 아니라 기분이 더럽다.
"하핫, 앞을 조심하... 켁."
약간 비웃음을 섞은 어투로 작게 말을 건네던 서지현이 나와 마찬가지로 뭔가에 머리를 콱 들이받는다.
나는 그런 서진현을 보고 비웃음을 담아 한 마디 했다.
"댁 앞가림이나 하시지."
"..."
문이 닫히고, 온 천지에 거울 말고는 없는 이 공간에서 10분 정도 보낸 것 같다.
격렬하게, 내 눈깔을 뽑아버리고 싶다. 벌써 세 번이나 몸을 거울에 들이 박았다.
"이러다 정신병 오겠는데, 조금만 쉬자."
어딜 봐도 나와 서지현의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미치려고 들었으면 진작에 미치고도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여도 소용이 없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출구는 아마 숨겨져 있을 거에요."
"그래, 문 비슷한 거라도 이 공간에 있었다면 안 보였을리가 없어."
사방이 거울이다. 출구가 드러난 형태라면, 그 형상이 반사되고 반사되어서 한 번 정도는 보였어야 한다.
어디를 봐도 어차피 서지현 아니면 내 모습이 보이니까, 굳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할 필요도 없...
나와 서지현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하던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울에 비치는 무수한 영상들이, 갑자기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와 서지현은 가만히 서 있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마다 거울에 비치는 나와 서지현의 형상 몇 개가 울렁거리며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린다.
"뭔가 있어."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등."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말 뜻을 알아차리고 자기 등을 내 등에 가져갔다. 이렇게 눈 앞이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뒤를 확인할 여유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계속 주변에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가 아니에요."
그래, 하나가 아니다. 발소리는 여러개다.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기괴하게 구겨진 우리의 모습만이 거울에 잡히고 있었다. 그때, 황급하게 서지현이 입을 열어 외쳤다.
"조심해요, 앞에!"
앞에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형상 중 하나가 내 쪽으로 확 달려든다.
"이러..."
[점프 스케어 발동]
뭔가가 내 쪽으로 달려든다는 걸 깨달은 순간, 시간이 느려졌다.
나에게 달려든 것은 거울에 비친 형상이 아니다. 느리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마침내 나에게 달려드는 녀석의 윤곽을 가까스로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피부가 거울로 되어 있어, 주변 모습을 반사하는 사람 모양의 형체다.
머리의 입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열리고 누런 이빨과 혓바닥,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더러운 침방울이 보인다.
나는 이미 느려진 시간 속에서 천천히,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젠장, 아슬아슬하게 내가 늦은 건 아닐까 걱정인데.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내가 휘두른 검이 녀석의 목을 먼저 후려쳤다.
- 오어어어어어!
목이 절반 정도 베인 녀석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다행인지 뭔지, 몸 안에 흐르는 피는 붉은색이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검을 한 번 휘둘러 엉겨붙은 피를 털어냈다.
"거울 피부?"
서지현이 바닥에서 절반 정도 베인 목을 붙잡고 발버둥치는 녀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굳이 표현하자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이 거울 미로 속의 괴물들은 피부가 거울이다. 그래서 녀석들이 나타나자 거울에 비친 우리의 형상이 뒤틀린 거다. 곡면 거울에 비친 상은 왜곡되니까. 온통 거울 천지라서 괴물이 등장하면 한 눈에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괴물까지 피부가 거울이라니.
"그나저나, 죽일 생각으로 공격하라고 했잖아요. 아직 살았는데, 마무리는 안하실 건가요?"
바닥에서 절반 정도 목이 잘려나간 채 죽어가는 괴물을 보며 서지현이 한 마디 하고,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 녀석에게 달려들면 등이 비니까. 지금은 예외야."
그런 건 상황 따라 달라지는 법이거든. 게다가 어차피 목이 절반이나 잘렸으니, 곧 죽을 녀석이다.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간호사 아가씨는 어떻게 안 거야?"
경고해주지 않았으면 모를 뻔했다. 우리가 지금 서로 등을 맞대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뭐 때문인데. 눈에 의존해서 적을 찾을 수가 없는 환경이다. 심지어 그 적의 피부가 거울처럼 주변을 반사한다면 더더욱.
잠깐 인상을 쓰고 있던 서지현이 입을 열었다.
"녀석들은 우리를 마력으로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마력? 뭔 마력.
"덕분에 받은 400pt랑, 제가 따로 벌어들인 포인트로 상점에서 스킬을 구매했어요. 마력 운용이라고."
나는 그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나도 처음에 상점 기능을 개방하고 나서 본 적이 있는 스킬이다.
"가만보니까... 주기적으로, 어딘가에서 마력이 발산되어서 우리에게 닿고 있어요. 아무래도 그걸로 찾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원리를 알아낸 건 좋은데, 방해 할 수도 있어?"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젠장, 어떻게 우리 위치를 특정하는지 알아도 방해할 방법이 없으면 의미가 없잖아.
보건지소에서 만난 녀석들이 냄새에 민감하다는 걸 안게 도움이 된 이유는, 향수라는 대항 수단을 마련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뾰족한 대항 수단이라고 할 만한게 없다.
"위치를 특정 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가까워지면 방향 정도는 어슬프게나마 알 수 있어요. 아까처럼."
나는 서지현의 말에 잠깐 머리를 굴리다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확신해요?"
"그래."
최초로 상대를 인식하면, 그때부터 지나가는 1초는 나에게 5초로 변한다. 5초면, 상대를 어떻게 요리할 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건 일도 아니다.
"네가 방향을 말해줘, 그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서지현의 등에 닿아있던 내 등을 떼고 그녀와 마주섰다.
"잘 부탁해, 탐지기."
서지현은 꽤 긴장한 모양인지. 내 농담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농담에 대답해 줄 여유가 있기는 힘들겠지. 이마에는 땀도 맺혀 있다.
우리는 천천히 일그러진 형상이 거울 가득히 자리잡은 거울 미로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두 마리에요."
나는 그 말에 곧바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보면 찾아내기 힘들지만. 있다고 확신하는 상황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는 법이다.
가까스로 윤곽선을 구분하고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자, 시간이 다시 느려지기 시작한다. 칼은 한 자루지만.
나는 한 녀석의 목줄기에 검을 박아넣고, 다른 녀석의 머리통을 꽉 붙잡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려 찍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뒤통수가 바닥을 들이 받는다.
아까 검을 찌르고 들어가는 감각은 사람의 살과 비슷했다. 피부가 거울이라고 해서 표면이 금속질은 아닌 모양이다.
"여기, 검!"
뒤에서 서지현의 목소리가 들리고, 검이 주르르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타고 내 쪽으로 밀려오는게 보인다.
나는 곧바로 바닥을 타고 오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녀석의 턱 아래에서 정수리 쪽으로 칼을 쑤셔넣었다.
"후우... 후우..."
잠깐 심호흡을 하던 나는 두 자루의 검을 시체에서 뽑아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눈 앞에 떠오른 문자. 나는 곧바로 능력치 창을 열고 스탯을 분배했다.
///
LV 3.
육체 : 11 체력 : 11
정신 : 18 마력 : 3
감각 : 10+2 기교 : 5
카테고리 : 반사신경 1단계
스킬 : -
수행 가능한 미션 : -
///
반사신경이 관련된 주 스탯은 감각인 모양이니까. 포인트를 투자할 가치가 있다.
3을 줘서 일단 10으로 만들자, 반사신경 1단계로 주어지는 감각 능력치 보너스가 1에서 2로 변했다. 5포인트 당 추가 포인트 하나를 주는 건가.
그리고, 아무리 공격이 날아오는게 보이더라도 그걸 처리하는 건 육체의 몫이니까. 그것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뻔히 날아오는게 보이는데 맞아서 죽으면 억울하잖아.
고로 육체와 체력에도 추가 능력치를 하나씩 집어넣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침은 계속 같았다. 서지현이 찾아내면, 내가 죽인다.
그렇게 다섯 마리 쨰의 거울 인간을 죽이고 난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 나서 중얼거렸다.
"젠장, 도대체 몇 마리가 더 있는 거야."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그냥, 모습을 감추는 방법 자체가 사람을 토 쏠리게 만들 뿐이다. 합부로 집중을 풀 수가 없게 한다.
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갑자기 거울 미로 안에서 은근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잘 되간다, 아주."
눈 앞이 핑핑 도는 광경에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 거울 뿐인 공간에 세워져 있던 거울들이, 느린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세워져 있는 거울의 각도가 실시간으로 변동하면서 눈 앞의 형상들이 마구 모습을 바꾸고, 위치가 변하기 시작한다.
"우욱."
서지현이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창백한 표정으로 살짝 구역질을 한다. 그럴 만한 광경이다.
"여기에서 더 지독하게 사람 눈을 괴롭힐 수도 있을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에 달려있던 조명이 여러가지 색깔로 변하면서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뭐야, 벽에 인공지능이라도 있는건가.
덩달아 안 그래도 토가 쏠리던 거울 미로는 조명이 깜박거리며 한층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서지현은 자기 뺨을 한 대 치고, 물을 자기 얼굴에 확 뿌린 다음 입에 사탕을 하나 까서 집어넣고 심호흡을 한다.
"저기, 뒤에..."
클럽처럼 깜박이는 불빛과 회전하는 거울이라니.
이 상황에서 피부가 거울인 사람을 찾아내는게 가능하겠냐?! 아무리 방향을 알려줘도 그건 너무 가혹한 요구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런 씨, 뭐가 저렇게 커."
찾아내는 건 의외로 쉬웠다. 사이즈가 이전까지 상대하던 녀석들이랑 달랐으니까.
대충 봐도 5m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거울 인간이었다. 이 거울로 만들어진 교도소의 방장 정도는 되는 모양이지.
첫 발견으로 인해 시간이 느려진 상황에서 녀석을 살피던 내 눈에 녀석의 손에 들려 있는 철퇴가 보인다. 마찬가지로 거울코팅이라도 해놓은 모양이다.
덩치도 크고, 무기도 들었고...
목에는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지만 알 것 같은 열쇠가 걸려 있네? 저 녀석이 몸에 지닌 것 중에서 유일하게 저거만 거울 코팅이 되어있지 않다. 마치 여 보란 듯이.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자, 다시 시간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간호사 아가씨, 열쇠는 찾았어. 저 친구가 목에 걸고 있네."
내 말에 서지현이 토할 것 같은 얼굴로 저 멀리에 서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거인의 목걸이를 확인하고는 억지로 꾸며낸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저건. 덩치는 산만한게 애처럼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네요. 그러니까... 그렇군요."
혀가 아직 굴러가는 걸 보니 멀미가 그렇게 심각하진 않은 모양이다. 싸움에서 적절한 도움을 기대해 봐도 괜찮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