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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7화 (7/237)

# 7

간호사

안 죽일 거라면 몰라도, 죽일 거라면 확실해야 한다. 나는 달려들어서 곧바로 검의 손잡이 아래 쪽을 왼손바닥으로 받친 다음 제일 앞에 있는 짐승의 머리통에 칼을 쑤셔 넣었다. 깨갱, 하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으지직, 하는 감촉과 함께 칼날이 두개골을 쑤시고 들어간다. 그 상태에서 검 손잡이를 좌우로 한 번 흔들고, 발로 밀어서 검을 뽑아낸다.

"모르는군."

저 녀석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른다. 그저, 갑작스럽게 코를 쑤시고 들어온 독한 향기에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다.

"으아아아!"

뒤편에서 그런 외침이 들려오고, 서지현이 칼을 양 손으로 꽉 쥐고 늑대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른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검날이 짐승의 몸에 박혀든다. 날카로운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가 몸을 뒤흔든다.

그 짐승의 몸부림에 서지현이 쥐고 있던 검을 놓친다.

"에라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곧바로 서지현의 검이 박혀든 녀석에게 달려들어 목줄기에 칼을 박아넣었다. 쑤시고 들어간 칼이 목뼈를 부순다. 나는 곧바로 날이 몸통에 절반 정도 박혀 든 검을 뽑아서, 서지현 쪽으로 밀어주며 외쳤다.

"그냥 무턱대고 휘두르지 마."

죽일 생각을 하란 말이야. 죽일 생각을. 어떻게 해야 눈 앞의 녀석이 죽을지 생각하지 않고 공격하면, 검을 휘두른 다음에는 운에 모든 걸 기대야 한다. 방금 공격이 치명상이기를 빌면서.

서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몸을 떤 다음에 자기 쪽으로 밀어준 검을 손에 꽉 쥐었다.

여덟 마리 중에 둘이 죽었다. 남은 건 여섯 마리. 지독한 향수 냄새에 피비린내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나는 콧잔등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씨팔, 냄새 죽이네."

이제 저 녀석들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눈치를 챈 모양이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경계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침을 삼키고 나서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한 녀석이 내 앞에 머리를 들이밀고는 확 허공을 물어 뜯는다.

입질이 가깝다. 향수로 마비되었던 후각이 다시 서서히 돌아오는 모양이다. 나는 녀석의 텅 빈 눈 쪽을 칼로 쑤시며 외쳤다.

"서둘러!"

내 말에 서지현이 늑대의 아래턱을 검으로 찔러 올리며 외쳤다.

"문 쪽으로 가서, 준비 할까요?"

"아직."

그 와중에 짐승이 나를 덮쳐오는게 보인다. 내 검은 아직 방금 전에 헛입질을 한 늑대의 눈깔에 박혀 있다.

억지로 버티면 안된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우면서 양 다리를 들고 힘을 빡 주었다.

"흐읍..."

양 다리에 굉장한 무게가 실린다. 달려든 늑대가 균형을 잃고, 뒤편의 벽에 머리를 박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내가 힘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가 지 힘을 주체를 못한거다.

마무리 해야 한다. 양 다리가 갑작스러운 무리로 인해 시큰거린다.

통증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와중에, 벽에 머리를 박고 헤롱거리는 짐승을 향해 서지현이 달려들었다.

그대로 배를 향해 검을 쑤셔 넣고, 그대로 아래로 쭉 내리 긋는다. 열린 배를 통해서 내장이 쏟아진다. 충분하다, 저 한 방으로 확실히 죽었을거다.

배에서 튀는 피와 흘러내린 내장을 뒤집어 쓴 서지현이 잠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자기 뺨을 한 대 팍 치고는 길게 심호흡을 한다.

"아가씨가 배우는게 빠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짐승의 눈 깊숙히 박혀 있는 검을 뽑아내고, 시선을 정면 쪽으로 던졌다. 짐승들이 주춤거리고 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여덟 마리였던 녀석들이 세 마리로 줄었다. 천천히 뒤로 물러서는게 보인다. 나는 서지현을 보며 말했다.

"괜찮을 것 같아."

무섬증을 타는 건 이제 우리가 아니라 저 녀석들이다. 섬광탄 맞아서 눈이 먼 채로 허둥지둥 하고 있는데, 가까스로 시력이 돌아와서 주변을 보니 동료 중 다섯이 죽어있다. 안 쫄래야 안 쫄 수가 없는 상황이지.

내 말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던 서지현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 렇네요."

늑대 중 하나가 우리가 서 있는 쪽을 흘긋 거리며 바라보다가, 바닥에 죽어 있는 남자의 시체를 입에 물었다.

"그래, 그걸로 만족해라 장님 멍멍아."

욕심 부리다가 훅 가는 수가 있어.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지만. 남은 세 마리의 늑대가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한다.

"하악... 하악..."

그제서야 서지현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은 채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하긴, 몸으로 뜨끈한 내장과 피를 뒤집어 쓴 건 처음이었을테니.

긴장이 풀리니 충격이 오는 거다. 이럴 때 어떡하면 좋더라.

선반을 뒤져보니 사탕 봉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곧바로 몇 개를 챙겼다.

그 다음, 정수기 옆에 놓여 있던 커다란 물통을 챙겨든다. 무게가 제법 있어서 꽤 힘들게 들어올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무겁지는 않았다.

정수기 물통을 든 나는 서지현에게 다가가, 머리 위로 물을 쏟아 부었다. 물통의 물이 삼 분의 일 정도 쏟아졌을 때, 서지현이 온 몸이 젖은 채로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바닥에 정수기 물통을 내려놓고, 발로 그녀에게 밀어주며 말했다.

"남은 물로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씻어. 피냄새 남아있어서 좋을 거 없어. 옷도 갈아입고."

어차피 이렇게 큰 물통은 들고 갈 수도 없으니 이런 용도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얼굴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던 서지현이 대답했다.

"... 알았어요."

나는 대답을 듣고 나서 서지현의 입 안에 사탕 몇 개를 쑤셔 넣었다.

"씹어먹건 빨아먹건. 다 먹어."

사람 맛탱이가 가려고 할 때, 대처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입에 단거 쑤셔넣고 머리에 찬물 쏟아주면 당장의 충격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후유증인 트라우마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고.

서지현은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서 진료실 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씻는 동안 나는 박살난 문 근처에 서서 문 너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게 보인다. 하지만 이내 보건지소 주변을 돌아다니던 형체들은 다시 멀어졌다.

"그래, 냄새를 잘 맡는다면. 동료의 피냄새도 잘 맡겠지."

이 근처에서 다섯 마리가 죽었다. 그걸 녀석들이 냄새로 모를리가 없다. 이 마을에 남은 먹이가 아무것도 없다면야 여기를 공격 할 만도 하지만. 서지현의 말에 따르면 이 마을에 살던 사람의 숫자는 6000명이다.

우리가 아니어도 한 끼니를 때울 만한 먹이는 이 마을에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굳이 죽은 동료의 시체가 굴러다니는 곳에 사냥을 올 이유가 없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오늘 하루 정도는 어떻게든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물티슈를 꺼내서 몸의 핏자국을 문질러 닦으며 궁시렁거렸다.

"다리 아프네."

그 와중에 능력치 창을 확인해보니 LV 표시 옆에 퍼센트가 85퍼센트까지 차올라 있었다. 미션을 깨면 포인트를 받고, 괴물을 죽이면 경험치를 받는 모양이다.

잠깐 능력치를 살펴보던 나는 문득 뭔가에 생각이 닿았다.

"... 최현우 그 자식이 아직 살아있다면."

그 놈도 지금 경험치를 모아서 레벨업을 하고, 미션을 클리어해서 포인트를 벌고 있을거다. 능력치를 올리고, 스킬을 배우겠지.

"그 새끼보다 내가 더 강해야 해."

서울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착해서 최현우에게 칼을 들이밀고 달려들었다가 역으로 내가 죽어버리면 억울에서 눈도 못 감을거다. 무턱대고 서울로 가는 건 위험하다.

미션이고 괴물이고 다 무시하고 서울로만 향하면. 여기에서 서울로 도착하는 시간 동안 최현우는 강해져 있을거다.

"천천히, 신중하게."

어차피 30년을 기다려 달성하려고 했던 목표다. 교도소에서 나오는데 성공했다고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지 말고, 녀석이 살아있는지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면서 차근차근 진행하자.

"다 씻었어요. 별 일 없었어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씻으면서 한 5년은 늙은 것 같은데."

얼굴은 창백하지만, 어떻게 정신줄은 부여 잡은 모양이다. 입 안에 내가 구겨넣은 사탕 때문에 뺨이 불룩하다.

"동료 시체냄새 맡고는 포기한 모양이야."

내 말에 서지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 정도 머리는 있는 녀석들이었네요."

"논밭에 참새 시체 본보기로 세워놓는 거랑 비슷한 거지."

내 말에 서지현이 힘없이 웃음을 흘린 다음에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잠자리 문에는 테이프를 발라 놓는게 좋겠죠?"

그러는게 좋겠지. 일단 이제는 잠을 좀 자야 하는 시간이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나는 주사실에서 자는 거였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 쪽으로 청테이프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 테이프를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이야,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다고 칭얼거릴 줄 알았는데."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사실 씻으면서 몇 번을 고민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서지현이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무섭다고 달달 떨면서 다른 사람에게 곁에 있어달라고 보채는 건, 장수만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고요."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인사를 했다.

"저는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내일 아침에 뵙죠."

말을 마치고 걸어가는 서지현의 팔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달달 떨리고 있었다.

"주사실에는 창문 없지?"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호사 아가씨가 주사실에서 자."

그런 일 당하고 창문 달려 있는 곳에서 자려고 하면 잠이 오다가도 무서워서 도망칠거다.

"... 고마워요."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걸어가는 방향을 바꾸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진료실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엷은 잠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꿈을 꾸지 않았다. 창 밖에서 어슴푸레하게 해가 밝아온다. 나는 멍하니 그걸 보고 있었다.

[미션 클리어.]

밤을 보내는데 성공했다. 나는 그 말에 곧바로 상점의 질문 기능을 활용하기 시작햇다.

"최현우, 서울에 있나?"

[500pt 소모됩니다.]

잠깐, 너무 비싸잖아.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는 그 가격을 지불 할 수가 없다.

"최현우 살아있나?"

[20pt 소모됩니다.]

이건 또 싸네. 저 가격은 지불 할 수 있다.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O]

나는 떠오른 문자를 보고는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380pt 남았군. 나는 상점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음식과 물은 매일 계속해서 사두는 편이 좋을테고."

나는 곧바로 영양바와 물을 구매했다. 먹지 않는다고 해도 유통기한이 기니까. 미리 챙겨놓는게 좋다. 40pt가 영양바와 물 가격으로 날아갔다. 남은 포인트는 340pt. 매일 60pt는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하겠군.

남은 포인트로 살 만한게 있을까. 목록을 뒤지던 나는 스킬 쪽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점프 스케어 : 갑자기 튀어나오면 귀여운 곰돌이도 무섭습니다. 당신이 육안으로 상대를 최초 인식한 1초 간, 시간이 다섯 배 느리게 흐릅니다. 물론 당신의 움직임도 느려집니다. 250pt]

"그런데로 쓸만해 보이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물론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나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놀란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다. 1초가 5초가 되는거니까. 5초면 놀란 사람이 다시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충분하다.

나는 포인트를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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