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간호사
도착한 장소는 마을의 보건지소였다. 보건지소의 건물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며 한 마디 했다.
"간호사가 은신처로 정한 곳이 보건지소라니. 너무 티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내 말에 여자가 대답했다.
"사실 그게 마음에 좀 걸려서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있어요."
그 둘이 보건지소로 찾아올까봐? 찾아오면 진통제 한 대 맞춰주고 일하러 가라고 하면 되지 뭘.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안심하라고. 당신은 말하고 걸어다니는 애완용 샷건을 하나 분양받은거나 다름 없으니까."
내 말에 여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그 샷건이 저를 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감수해야겠지만요."
여자는 말을 마치고 나서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찾아 보건지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커터칼로 문 틈에 발라져 있는 청테이프를 잘랐다.
"테이프는 뭐하러?"
내 말에 여자가 대답했다.
"밖으로 냄새가 흘러나가면 안되니까. 이 건물의 틈이란 틈은 죄다 청테이프를 발라버렸어요."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그런가? 머리가 잘 돌아가네."
여자는 내 말에 문을 열면서 말했다.
"빨리 들어와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간호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여자는 문 근처에 놓여있던 청테이프로 다시 문 틈을 막아버렸다.
"의사 선생은?"
내 말에 여자는 진료 대기용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서 자기 배 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아, 잠은 주사실에서 주무세요. 저는 진료실에서 잘 테니까."
"어디서 자는지 막 알려줘도 되는거야?"
내 말에 여자는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미 해는 지는 중이고... 여기까지 들인 이상에야 당신이 악의를 품고 있다면 저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는걸요. 여기에서 죽거나, 아니면 당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나갔다가 그 괴물들에게 죽겠죠. 엎치나 뒤치나. 의심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죠."
말이야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긴 하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 하나를 켜놓고, 창가에 커튼을 치기 시작했다.
"혹시 비누 같은 거 있나?"
내 말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대답했다.
"칫솔이랑 치약도 있는데. 필요하세요?"
"그럼 그것도 좀 부탁할게."
내 말에 여자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고, 잠시 뒤에 비누와 칫솔, 치약을 챙겨서 나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그리고 잠깐 어색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한다. 잠깐 앉아있던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에서 빵과 탄산음료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먹어요."
"뭘 이런 것까지."
대충 감사 인사를 하고 나서 나는 빵과 음료를 먹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몸에 칼을 찔러넣으시던데요."
나는 그 말에 씹고 있던 빵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빠르면 한 달."
나는 여자를 바라봤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 할 거야."
내 말에 여자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짐승으로 변한다고?"
나는 픽 웃고 나서 음료수 캔을 가볍게 흔들었다.
"사람들이 변하는게 아니야. 원래 상황만 된다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을 수 있는 녀석들만 살아남는거지."
적자 생존. 착한 사람이 나쁘게 변하는게 아니다. 착한 사람들이 다 죽어서 나쁜 사람들만 남는거다. 남의 물건 빼앗고, 모가지에 칼을 쑤셔박을 수 있는 말종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네요."
여자의 말에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건, 내 알 바는 아니니까. 서울 가서 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걸로 만족한다.
"어쨌든, 나도 덕분에 편한 잠자리를 건졌으니까. 잘 부탁한다."
내 말에 여자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혼자서도 잘 살아남으셨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간호사 아가씨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이 마을에 돌아다니는게 뭔지 몰랐잖아."
대처법도, 특징도 모르는 괴물과 만나면 답이 없다.
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녀석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적당히 숨어들어갈 만한 곳을 찾아내서 들어가, 눈을 감았겠지.
그랬으면 녀석들이 내 냄새를 맡고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밤 중에 도망쳐야 했을테고...
생각해보니 아는게 너무 적다.
"안동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 정도 주변에 머무르며 뭐가 돌아다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여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계속 간호사 아가씨라고 부를 생각이에요?"
나는 여자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줄까."
내 말에 여자가 대답했다.
"서지현이에요."
"좋아, 그럼 서 간호사."
내 말에 여자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그냥 간호사 아가씨로 부르세요."
자, 개인 신변잡기에 대한 대화로 들어가서 말인데.
"가족은?"
내 말에 서지현이 살짝 얼음이 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달 전인가. 아빠라는 작자가 세 번째 이혼을 하고 네 번째 마누라와 가정을 꾸렸다는 즐거운 소식을 들었죠. 죽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런, 콩가루 가족이구나. 그런 상황에서도 잘도 간호사가 되었네.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뭔가가 창가를 툭툭 건드는 소리와 함께 뭐가 낮게 그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와 서지현은 하던 말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에서 다시 소리가 사라졌다.
"흉가 체험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좋겠네요."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더 근처에서 뭐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 서지현이 말했던 것처럼 녀석들은 우리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주변을 가끔 맴돌 뿐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짐을 싸두고 자도록 하죠."
그래, 혹시 뭔 일이 터지게 되면 바로 짐 챙겨서 여기를 뜰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는게 좋을거다. 아침에 떠날 때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고.
그렇게 짐을 싸고 있던 와중에 희미하게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게 들렸던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서지현의 표정을 보니 들린 거 같은게 아니라 확실히 내가 들은게 맞는 모양이다.
"조명 잠깐 꺼봐."
서지현은 내 말에 곧바로 조명용으로 활용하던 랜턴을 꺼버렸다. 그리고 나는 곧장 빛을 가리고 있던 커튼 아래로 기어들어가, 창문에 귀를 붙이고 눈을 감았다.
달리는 소리와 사람의 비명소리.
어차피 해가 진 다음에는 괴물들이 돌아다닌다는 걸 서지현에게 들었던 차니까. 놀랄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
서지현처럼 나름의 대항책을 생각해내서 하루를 보낸게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아서 하루를 보내는데 성공했던 사람들도 있었을테니까. 여기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무너진 교도소에 가둬진 죄수 같은 상황이 아니잖아.
큰 운이 따라 주었다면 하룻밤 정도는 어떻게든 될 수도 있다.
둘째 밤까지 그걸 기대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 죽는거다. 로또 두 번 연속 당첨 같은 확률이니까.
사실 창 너머에서 들리는 음향효과 같은게 문제가 될 이유는 보통 없다. 밖에서 들리는 비명 같은 건 영화관에서 보는 공포영화 같은 거니까.
죽는 사람이 내가 아니잖아?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다.
"간호사 아가씨, 이 주변에 건물이 뭐가 있지?"
오면서 눈에 들어왔던 건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딱히..."
나는 그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망할."
그럼 여기로 향할 확률이 매우 높잖아. 일 참 잘 굴러간다. 그리고 서지현이 내 쪽으로 배낭을 휙 던져주었다.
양 손으로 그걸 받아, 곧장 배낭을 둘러매면서 말했다.
"이야, 눈치 빠른데."
말하려고 하는 순간 휙 하고 배낭이 날아오다니. 서지현은 자기 몫은 배낭을 짊어지면서 말했다.
"제 미덕 중 하나죠."
"그 눈치의 반 만큼이라도 잘 싸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남자 세 명에 둘러싸여서 큰 일 당하려는 와중에 한 녀석의 귀를 썰었으니 깡따구는 있을거다. 실력은 모르겠지만.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결과는 확신할 수 없지만, 노력은 해봐야죠. 어차피 오래 싸울 거 아니잖아요."
"당연하지, 상황 봐서 여기 버릴거야."
냄새로 추적하는 녀석들이라고 했으니까. 저 머저리가 여기에 도착해서 들어오려고 난리치다가 문이라도 뽀개먹는 날에는 다른 녀석들도 냄새를 맡고 몰려올 것이다.
"버티는데 성공하면 포인트는 많이 줄텐데. 미션 받았죠?"
미션이야 받았지. 그리고 포인트를 많이 주는 것도 알아.
"간호사 아가씨, 죽으면 끝이야."
욕심 부리다가 훅 가는 수가 있어. 내 말이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없어요1?"
남자의 절박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향수, 하나 줘봐."
내 말에 서지현이 곧장 나에게 향수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한 손에 검을 들고, 다른 손에는 향수를 들었다. 보고 있기 좀 이상한 풍경이기는 하지만.
"문 근처로 가자."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창문 쪽이 아니라고 확신하세요?"
"도망치는 사람이 문으로 향하는 건 무의식의 영역이야."
사람은 도망치는 와중에 건물을 발견하면 무조건 문으로 먼저 접근한다. 문이 열리지 않거나, 문에 접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나서야 창문이나 기타 다른 도망칠 구멍을 찾게 된다.
지금 도망치는 녀석은 문으로 올 거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문을 마구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후레쉬가 우리를 비춘다.
"열어줘, 열어 달라...?!"
열어 줄 필요는 없었다. 등 뒤에서 뭔가가 남자를 덮쳐들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보건지소의 문이 넘어진다.
도와달라고 소리치던 남자는 목덜미가 짐승에게 물린채, 움찔거리며 손을 우리 쪽으로 뻗었다. 짐승이 남자의 목을 물고 머리를 마구 흔든다. 그걸로 끝. 저건 죽었다.
- 후욱... 후욱...
후욱 후욱 같은 소리 하네. 눈알이 자리해야 할 장소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늑대를 닮은 짐승 머리를 이리 저리 돌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나는 내 앞에 떨어져 있는 후레쉬의 방향을 발 끝으로 살짝 돌려 무너진 보건지소의 문 쪽으로 향했다.
여덟 마리. 나는 숫자를 확인한 다음에 입을 열었다.
"간호사 아가씨, 이 건물에는 문이 여기 말고는 없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뒤쪽에 쪽문이 하나 있어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내가 신호 보내면, 바로 그쪽으로 달려가서, 칼로 테이프 썰어내고 문 열어."
"오케이."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며 코를 킁킁거리던 짐승들이 보건지소의 문 쪽을 바라보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마주 보며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따라하고는 바닥에 향수병을 집어 던졌다. 옆에서 서지현이 슬쩍 나를 본 다음에 다시 눈 앞의 짐승들에게 집중한다.
흔해 빠진 싸구려 향수다. 양은 많고 냄새는 지독한.
바닥에 깨진 향수병에서 독한 향기가 물씬 올라오기 시작한다. 곧바로 주변에서 문 쪽을 바라보던 짐승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렇겠지, 사람으로 치면 뜬금없이 눈 앞에서 섬광탄 터진 기분일텐데.
나는 곧바로 녀석 중 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