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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2화 (2/237)

# 2

대탈주

교도소의 죄수는 하루에 딱 1시간, 하얀 담벼락이 세워져 있는 6평 남짓한 공간에서 죄수는 하늘을 보거나, 간단한 운동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교도소에 갇힌 범죄자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쓰레기들이다. 모두 독방을 쓴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있어봤자 좋을게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운동도 혼자 해야 한다. 나는 맨손체조를 하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은 먹구름이 많이 꼈군. 나는 고개를 돌려 문을 지키고 있는 교도관을 보며 웃었다.

"비 올 것 같은데요. 주임님, 혹시 빨래 하셨습니까?"

내 말에 교도관이 대답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8년 동안 항상 같은 절차였다. 나는 말을 걸고, 교도관은 무시한다. 상관없다. 대답이 듣고 싶은게 아니라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것 뿐이니까.

다시 운동을 하며 이런 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운동하시는 모양입니다. 몸이 많이 좋아지셨네. 비결 있으면 좀 알려주시죠."

교도관의 침묵 속에서 나는 계속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교도관이 입을 열었다.

"죄수번호 1082, 운동 시간 30분 남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제자리에서 몸을 폴짝 폴짝 뛰기 시작했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다. 이틀 동안은 하늘을 제대로 볼 일도 없이 독방에 있어야 한다.

주말이 제일 싫어.

나 같은 살인자 새끼가 국민의 혈세를 축내며 의식주를 제공받고 있다는 것만 해도 분에 넘치는 사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거다.

운동을 마친 나는 벽에 기대어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8년이라."

벌써 8년이 지났다. 교도소 안에 들어와서 독방 옥살이를 시작하고 8년이 지났고, 22년이 남았다. 나는 가만히 내 손을 바라보다가 꾹 쥐었다.

그렇다면 22년이 더 지난 다음, 최연우는 47살이 될 것이다. 설마하니 재벌집 도련님이 47살에 죽을리는 없겠지. 죽을 것 같으면 달려들 의료진이 어디 한둘이냐.

복수는 10년을 기다려도 빠르다고 했던가. 30년을 기다린 복수라면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 새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여기로 들어올 것이다. 내 발로 근처의 경찰서로 걸어가서 죄를 밝히고 잡힐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교도소의 좁은 독방에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지.

바닥에 엎드려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던 나를 향해 교도관이 다시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수번호 1082, 운동 시간 5분 남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어...?!"

그때,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교도소가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움찔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발을 타고 묵직한 진동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주임님, 이거 지금 무슨."

내 말에 교도관이 곧바로 외쳤다.

"동작 그만! 움직이지 말고 대기해!"

교도관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에게 지시를 내리고 나서 곧바로 무전기를 들고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대지는 계속해서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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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대탈주

목표 : 건물에서의 탈출.

보상 : 150pt, 상점 기능 및 능력치 기능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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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눈 앞에 떠오르는 글자들. 나는 멍하니 그걸 바라봤다. 지금 이게 다 뭐야. 그리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던 작은 마당 한 쪽에 칼 한 자루가 떨어졌다.

"대탈주라니."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교도관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교도관을 바라봤다. 한 손에 무전기를 든 채로 교도관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만 보이는게 아니다.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무전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무전기가 치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전기를 통해서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볼 요량으로 귀를 기울였다.

- 오지마, 오지... 으아아아악!

무전기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기괴한 울음소리 뿐이었다.

"이게, 젠장!"

교도관은 창백한 얼굴로 무전기를 다시 조작하기 시작한다.

"주임님, 진정하세요, 일단 진정하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관리해야 하는 네가 그렇게 패닉에 빠지면 어떡하냐. 넌 교육받은 교도관이잖아. 이런 사태에 대해 훈련 안 받았어?

내 말에 교도관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마당 한 쪽에 놓인 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발작하듯이 외쳤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야! 그 검에서 떨어져!"

아니, 어차피 이 쬐그만 여섯평짜리 마당에서 움직여봤자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자꾸 움직이지 말라는 말만 하는 거야. 그리고 저 검은 잡을 생각도 없어!

시킨대로 안 움직일테니까, 빨리 뭔가를 하란 말이야.

교도관이 아무리 무전을 돌려도 들리는 소리는 죄다 비슷했다.

기괴한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은 무전으로만 전해지는게 아니다. 교도소 전체가 고통과 공포에 질린 비명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흔들리는 대지. 나와 교도관 사이를 막고 있는 철창살이 그 진동에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천장에서 콘크리트 가루가 부스스 떨어진다.

- 그르륵.

사람의 성대가 낼 수 없는 소리가 쇠창살 너머, 교도관이 서 있는 공간 주변에서 들려왔다. 나는 침을 삼켰다. 교도관이 주변을 살펴보다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 발 뒤로 물러난다.

"히익..."

다시 한 번, 그 기괴한 그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를 떄리는 철벅거리는 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온다. 무슨 소리야 저건.

눈 깜박할 순간이었다. 뭔가 거대한 것이 교도관을 덮쳤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악!"

다리가 네 개 달린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교도관을 덮쳐, 깔고 앉았다. 교도관은 벗어나기 위해서 발악을 하기 시작한다. 흐리멍덩한 동태 눈깔 같은 눈동자가 교도관을 향한다.

물고기의 입이 벌어지자, 단검 같이 예리한 이빨이 드러난다.

괴물은 교도관의 머리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비명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입을 막고, 하얀 벽 쪽에 달라붙었다.

저게 뭐야.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과 대지가 덩달아 한 번 크게 들썩인다.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짛었다.

부스스 가루가 떨어지던 천장에서 마침내 주먹만한 콘크리트 조각들이 떨어져 교도관의 시체를 뜯어먹던 물고기의 머리를 몇 대 때린다.

- 크야악!

척추 마디에 얼음이 박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괴성. 신경질적으로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진 자리를 노려보던 물고기는 그대로 교도관의 시체를 입에 물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공간에, 혼자 남았다. 교도관이 없다. 나는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다가 침을 삼켰다.

다시 한 번 내 시야에 그 알 수 없는 문자가 떠올랐다.

대탈주. 건물을 벗어나라.

"교도소에서, 나가라고?"

스스로 중얼거리고도 믿을 수 없어서 나는 몸을 떨었다.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와, 8년간 썩어 문드러질때까지 뒤틀린 증오가 서로 부딪쳤다.

"흐흫, 나가란 거지?"

증오가 공포를 이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여기에서 나갈 수 있다. 머리가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이 6평짜리 마당의 하얀 벽은 그렇게 높지 않다. 2.5m 정도. 어차피 나가도 금방 잡힐게 뻔하니. 바로 50m도 안 되는 거리에 감시탑이 세워져 있고, 10m가 넘어가는 두터운 장벽과,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는 곳이다.

원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탕. 교도소 안쪽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나는 하얀 벽으로 손을 뻗다가 순간적으로 손을 멈췄다. 총성이 나로 하여금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교도소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멀지 않은 거리에 군부대의 주둔지도 있다.

이 일이 벌어진 곳이 교도소 뿐이라면?

머지않아 무장한 군인들이 상황 통제를 위해 도착할 것이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분. 경찰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교도소만 이 난리가 났다고 하면 기회를 틈타 벗어난다고 해도 목적을 이루기 전에 다시 잡힐 것이다. 그때는 탈옥까지 가중처벌된다. 그러면 내려질 형벌이 뭐려나, 무기징역이려나? 내가 법을 잘 몰라서.

어쨌든, 조금만 더 상황을 더 지켜보자.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괴물들의 소름끼치는 울음소리, 대지를 타고 전해지는 진동 속에서 나는 숨을 죽이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비명소리가 잦아들고, 으르렁 거리는 소리만이 이따끔 교도소 건물 안쪽에서 들린다. 대지를 후려치던 진동도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한다.

"군대가 오려면 벌써 왔어."

이 교도소에 수용된 범죄자들은 소매치기나 좀도둑 같은 것들이 아니다. 흉악범 중에서도 흉악범만 가두는 곳이다. 이런 교도소에 문제가 생겼는데 지금까지 군대나 경찰이 출동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지금 교도소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거다.

이건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여기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손에 쥐었다.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검을 손에 쥔 채로 낮게 중얼거렸다.

"최현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뼈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 새끼가 어디에 있을까?

"서울에 있겠지."

그 재벌 그룹의 사옥이 서울에 있으니까. 그 정도 나이라면 일 배운답시고 회사를 다니는 중일거다. 재벌집 아들놈이 군대를 갔을리는 없고.

목적지는 서울이다. 내가 그렇게 정하는 와중에 뒤편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쇠창살 너머를 바라봤다.

아까 교도관의 머리통을 뜯어먹은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놈이 그 동태 눈깔로 나를 바라보며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몇 번 몸을 들이 받은 물고기가 쇠창살을 부수는데 성공했다.

"저기, 나 서울 가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검을 들어올렸다. 8년을 참아왔고, 앞으로 22년을 더 꼼짝없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 이루어 질 것 같은데. 방해를 하려고 들어?

장난하냐 나랑 지금? 나는 그 물고기의 동태 눈깔을 노려봤다.

"안 꺼져?"

증오가 몸을 타고 돈다. 내 앞에 있는 녀석이 더는 괴물로 보이지 않는다. 이건 그저 방해꾼이다.

공포를 벗어난 정신이 맑아진다.

어차피 저질렀던, 용서 받을 수 없을 여덟 번의 살인은 모두 증오 속에서 이루어졌다.

공포에는 휘둘려도, 이런 거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는게 목적의식이라면,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목적의식이 확고하다.

나갈거다.

물고기의 다리 근육이 꿈틀거리는게 보인다. 덮쳐 들 생각이다. 나는 곧바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달려드는 속도는 빨랐지만, 그 전에 준비가 너무 길었다. 대응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녀석이 몸으로 하얀 담벼락을 한 번 크게 들이 받는다. 담장이 무너지고, 물고기가 휘청거린다.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푸욱, 하는 감촉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검이 물고기의 눈알을 쑤시고, 뇌까지 빅혀들어간다. 곧바로 나는 손에 잡힌 검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서울 가야 한다고, 서울. 이 빌어처먹을 생선새끼야, 방해하지마!"

움찔거리던 움직임이 멎어든다. 나는 발로 녀석의 얼굴을 짚고, 그대로 힘을 주어 검을 뽑아내었다. 주륵, 하고 피와 점액질이 엉겨붙은 검이 물고기의 눈알과 함께 뽑혀 나온다.

"허억, 흐억..."

검을 쥐고 숨을 몰아쉬던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무너진 하얀 담장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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