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화 (1/237)

# 1

프롤로그 - 연쇄살인범의 독백

나는 사람을 여덟 명 죽였다. 그 중에 세 명은 고등학생, 다섯 명은 성인.

세상의 사람들이 나에게 욕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더 욕을 먹었다.

하지만...

이유가 없다? 나는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글쎄.

사람을 죽일 이유가 없다고, 진짜로?

나는 낡은 가족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는 심호흡을 했다. 나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가 찍힌 낡아빠진 사진이다.

이런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는게 어때.

편모 슬하의 집안. 집에 있는 남자는 한 명.

어머니와 누나를 남겨두고 남자는 나이가 되어 군대를 갔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어머니가 큰 기업 재벌집의 가사 도우미로 들어갔다. 남자는 군대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홉 명의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누나를 강간했다.

그건 성폭력이라는 단어로 일축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격을 짐승 이하로 밀어 내리는 지옥같은 나날이었을거다.

군대에서 나온 며칠의 휴가 사이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누나를 남자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남자의 어머니는 모른다.

가정부는 따로 조그만 방 하나를 받아서 그 안에서 살게 된다. 돈 많은 사람들 대신 해줘야 하는 잡일은 많았고, 출퇴근을 하면서 해줄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니까.

그 사이에 집에 혼자 남은 누나는 계속해서 지독한 일을 당한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누나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남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누나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알 도리가 없다. 휴가를 나온 그를 만나는 것도 어렵게 시간을 내야 하는 어머니도 알 길이 없다.

그 사이에 누나는 수 년 단위의 괴롭힘을 받는다.

비디오가 찍히고, 사진이 찍히고. 싫다고 애원하는 팔뚝에 마약이 담긴 주삿바늘이 박혀들고.

임신 8개월. 누나는 마약에 찌들어 태어나기 전 부터 기형이 되어버린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살인 같은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몸과 정신이 망가진 누나는 남자가 전역하기 전에 자살하고.

남자는 뒤늦게 죽은 누나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제서야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뒤늦게 누나가 당한 일을 알게 된 어머니가 충격으로 인해 쓰러지고, 앓다가 돌아가신다.

남자는 군대에 가 있던 시간을 저주한다.

가면 안되는 곳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당시에 자신이 국가의 의무니 지랄이니 하는 것에 묶여있어야 했던 것을 후회한다.

그런 이야기다.

글쎄, 사람을 죽일 어떤 이유도 없다니...

이 정도면 이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사람이 사람을 죽일 만한 이유는 절대 없다는건 너무 단호한거 아닌가?

물론, 세상에 또라이들은 많고 그냥 사람 피를 보고 싶어서 누군가의 배를 가르는 또라이도 존재하기는 한다. 그런 인간 이하의 짐승들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정신병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어쩌면... 진짜 어쩌면.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사진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징역 30년의 독방. 미성년자 세 명과 성인 다섯을 죽인 대가였다.

원래 나는 바깥에 미련이 없어야 했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평생을 썩을 각오로 저지른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을 죽인 죄인이니까.

전혀 억울하지 않다. 나는 저지르면 안되는 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가는 마땅히 받아야 한다.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자수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수를 할 수 없었다. 아홉 명이 내 누나를 그런 꼴로 만들었다.

나는, 여덟명을 죽였다.

9 빼기 8.

한 명.

한 명이 죽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을 죽이는 것 보다 경찰이 나를 찾는게 더 빨랐다.

17살의 재벌 3세 최현우. 8년이 지난 지금은 25살이 되었겠지. 우리 어머니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재벌가의 손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잔혹하게 내 누나를 망가뜨리고, 나아가 나와 내 어머니를 망가뜨린 녀석이다. 그 새끼가 아직 살아서 바깥을 돌아다닌다.

너무나도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다닌다. 내 누나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멀쩡히...

그 생각을 떠올리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8년 째 내가 품은 원한은 나갈 곳을 잃고 교도소에서, 나와 함께 방황하고 있다.

세월이 원한에 해줄 수 있는 일은 정 반대의 두 가지 중 하나다. 원한을 누그러뜨리거나, 더 강하게 만들거나. 나는 후자였다.

밤이 되었다. 나는 곰팡내 나는 매트리스에 몸을 눕히고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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