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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225화 (225/230)

225화 한일권의 몰락(2)

김광록의 여유로운 웃음이 거슬린다.

한일권은 눈알을 부라렸다.

“내 성질 긁지 말고 꺼져.”

어느새 한일권의 손에는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사람을 표적으로 세워두고 다트놀이를 하던 바로 그 나이프였다.

보통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눈치를 보곤 했다.

하지만 김광록은 달랐다.

“내 앞에서 그런 거 꺼내는 놈치고 멀쩡하게 끝난 놈이 없는데.”

보이는 족족 주인 몸에 박아줬다.

슈욱.

빠른 속도로 김광록을 향해 날아가는 나이프.

스치기만 해도 살갗이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날을 간 물건이었다.

하지만 김광록은 가뿐하게 허공에서 낚아챘다.

“이건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쌔액.

한일권이 던진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되돌아왔다.

한일권은 피하지 못했다.

챙.

한일권이 들고 있던 나이프를 정확히 맞추고 벽에 꽂히는 김광록의 나이프.

전문가의 솜씨는 달랐다.

김광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군대 안 갔다 왔지? 어설프게 겉멋만 잔뜩 들었군.”

“재벌가 아들이 군대 가는 거 봤냐? 군대 가서 구르는 놈들이야 뻔하지. 없는 집 놈들.”

한일권의 발언은 김광록의 심기를 매우 거슬렸다.

모집할 땐 대한의 아들, 다치면 남의 아들.

최전선에 있는 김광록과 간첩 특수부대도 그럴진대 다른 부대야 말해 무엇하겠나.

말 섞기도 귀찮다.

“이 꽉 깨물어.”

빡.

주먹도 아니었는데 한일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눈깔도 같이.

* * *

10분 후.

청일 그룹 회장실 문이 열렸다.

태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김광록이 느긋하게 회장실 소파에 앉은 채 손을 흔들었다.

“어이, 회의는 벌써 끝났어?”

한일권은 금방 찾았다.

김광록 발치에 널브러져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폼이 참으로 볼 만했다.

“허약한 새끼던데.”

김광록 앞에서 뼈다귀 단단한 놈이 몇이나 되겠나.

한일권 역시 송 비서의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완료했을 터다.

모시는 사람을 위해 인간 방패가 되어야 할 태수와는 다른 훈련이었다.

그걸 믿고 으스대던 한일권 역시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광록에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 참교육 시간 좀 가졌다.”

김광록이 응접실 테이블 위에 한일권 품에서 꺼낸 나이프들을 올린다.

뒤따라 온 김차열 검찰청장이 태수에게 슬쩍 물었다.

“검사들더러 끌고 가라 할까요?”

“흐음.”

고민스럽다.

진짜로 감방 구경부터 시켜줘야 하나.

‘아직 갚아줘야 할 빚이 많은데.’

감방에서 소식으로 들어서야 충격이 덜할 거 아닌가.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애들 취조 실력은 보통이 아닙니다.”

김차열 검찰청장은 어떻게든 태수의 눈에 들고 싶었다.

김종표 때문에 한 번 눈 밖에 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이었다.

“이참에 다시는 건방 떨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조져놓겠습니다.”

구미가 당기니 문제다.

그런데 안정우가 끼어들었다.

“한청호가 이미 감옥살이 중이야. 부자를 함께 감방에 집어넣는 건 모양새가 좀 그렇지 않나?”

“그럼 어떻게 할까요?”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정우 역시 태수에게 결정을 맡겼다.

태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일단 검찰청 취조실 구경은 한 번 시켜줘야겠습니다.”

“아, 좋지요.”

“감옥까지 보낼 건 없습니다. 며칠 고생 좀 시키고 풀어주시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청일 건설 부도나는 꼴을 보여줘야겠다.

갖은 용을 써도 네놈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줄 생각이다.

부도일이 다가올수록 하루마다 피가 바싹 마르는 경험을 시켜줄 생각이다.

청일 그룹이 아니면 한일권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줘야겠다.

“감옥까지 보낼 필요가 없다면 더욱 좋지요.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부자를 한꺼번에 감옥에 넘기면 국민들의 동정표와 반발을 검찰에서 감당해야 한다.

그런 부담감을 벗게 되었기에 김차열은 기쁜 마음으로 태수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김차열은 문밖에서 대기 중인 검사들에게 말했다.

“이 새끼 끌고 가.”

한일권의 사지에 검사 한 명씩 달라붙었다.

한일권은 질질 끌려서 청일 그룹 회장실에서 내쳐졌다.

* * *

태수는 응접실 회장님 소파에 앉았다.

그 오른쪽에는 안정우가, 왼쪽에는 김차열이 앉았다.

어느새 김광록은 태수의 뒤편에 서서 시립했다.

뜨끈한 차 한 모금 마시며 안정우가 말했다.

“뜻밖이야.”

“뭐가 말입니까?”

“청일의 충견을 자처하는 인간들을 왜 받아들였나?”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요.”

황당했다.

“주인을 배신하고 개싸움을 벌였던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다니. 쓰레기 재활용이라도 할 생각인가?”

“주인을 배신하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자들이라서 쓸모가 있는 겁니다.”

안정우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태수는 설명을 보탰다.

“반드시 그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청소.”

청일의 임원진들을 진짜 청소 용역처럼 부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청일 그룹의 비리와 관련된 문제를 그들 손으로 전부 치우도록 하겠다는 소리다.

“청일 건설에 적자를 넘기면서 시한폭탄까지 전부 떠넘길 생각입니다. 청일의 임원진들은 그런 일에 제격이지요. 구린 짓을 오죽 많이 했겠습니까?”

한청호부터가 뇌물과 로비의 스페셜리스트다.

윗물이 그러한데 아랫물이 맑을 리 있겠나.

경영상 능력 있는 인재들이기에 한청호 몰래 안팎으로 많이도 해먹었다.

‘전생에선 한청호가 죽고 내가 직접 그 모든 똥을 치워야 했지. 청소만 7년쯤 했나?’

끔찍한 기억이었다.

이번에 다시 청일을 그룹째 손에 넣었으니 청소를 하긴 해야 할 텐데.

그 고생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태수는 결심했다.

-쓰레기는 버린 사람이 치우게 하자!

굳이 청일의 배신자들을 말없이 거둬들인 이유였다.

“엄청난 액수의 빚더미가 만들어질 겁니다. 청일 건설의 적자는 몇십 년 치 계열사 비리까지 누적되어 불어날 테니까요.”

“허……. 청일 건설은 기어이 망하고 말겠어.”

“그러라고 하는 짓이니까요.”

청일 건설이 기사회생하는 것을 두고 볼 태수가 아니다.

안정우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 사내의 독심(毒心)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오히려 그런 면이 더 마음에 든다.

자꾸만 사위 욕심을 나게 만드는 놈이다.

“한 번 배신한 놈들은 기회만 생기면 또 배신한다. 자넨 그놈들을 계속 끌고 갈 생각인가?”

“그럴 리가요.”

청소한 뒤까지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유능한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임원 자리 노리는 사람들 역시 넘쳐난다.

“설마 또 주주 총회를 열 생각인가? 아무리 자네라도 이번 일은 부담이 꽤 클 텐데.”

청일 그룹을 강제로 태양 그룹에 합병시켰다.

그 와중에 의견을 전부 묵살하고 뜻대로 강행했다.

“한꺼번에 임원진 전원 해임시키는 일은 당분간 자중해야 할 거야.”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급니까? 주주 총회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쳐낼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청일 임원진들의 치부책.”

“…그런 게 있었나? 그런 건 또 언제 준비했나?”

“기억 안 나십니까?”

태수는 찻잔을 내려놨다.

“청일 정유 인수 협상을 마친 직후, 제가 댁으로 캐비넷째 보내드렸던 선물이 있었을 텐데요.”

태수가 다짜고짜 청일 중장비 사장실에 쳐들어가서 제일 먼저 내린 명령이 그것이었다.

-청일 중장비가 보관하는 서류들을 모조리 명동으로 옮길 것.

-청일 정유의 서류들 역시 마찬가지.

“한청호가 청일 중장비를 빼앗기자마자 처리하러 온 서류였습니다. 한청호는 부인했지만 중요한 서류가 아니었다면 그리 달려오진 않았을 겁니다.”

태수가 먼저 확보했다.

한청호는 은행장들부터 만나 태양 그룹 대출을 틀어막느라 한발 늦었다.

그렇게 그 서류는 태수의 몫이 되었다.

“청일 그룹 임원진들의 비리가 줄줄이 딸려 나오더군요. 그걸 잘 정리해서 청일 임원진들의 치부책을 만들었습니다.”

“하하하! 이제 보니 그것이었군.”

안정우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만들어두고 쓰지 않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김차열은 눈도장 찍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호언장담했다.

“검찰이 필요한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 연락해주십시오. 무엇이든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어떻게든 검찰청장 자리를 보전해보겠다는 필사적인 의지가 느껴진다.

태수는 그 열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태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김차열은 그제야 가슴을 쫙 폈다.

*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울구치소.

1908년 건축된 경성감옥은 서대문형무소란 이름을 거쳐 현재 서울구치소라고 부른다.

한청호는 접견실에 미리 앉아 있던 아들을 발견했다.

“아니, 꼴이 왜 이 모양이야?”

굉장한 몰골이었다.

울긋불긋 피멍은 물론이고, 부은 얼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들의 면회’라는 말을 미리 듣지 못했다면 눈앞의 이 흉측한 몰골을 한 자가 아들이라는 것도 몰라볼 뻔했다.

“교통사고냐? 칠칠맞게 계단에서 구르기라도 했어?”

그게 아니라면 사람이 저 지경이 될 수는 없다.

김광록이 가볍게 올린 따귀가 만든 결과였다.

“행색은 또 왜 이 모양이야? 꼬질꼬질하게. 쯧쯧, 좀 씻고 다녀라.”

억울했다.

“누군 안 씻고 싶은 줄 알아요? 검찰청에서 나오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아버진 구박만 하시네.”

“아니, 네가 검찰청에는 왜 가? 설마 꼬리가 잡혔더냐?”

깔끔하게 뒤처리하던 송 비서 빈자리가 이렇게 크다.

한청호는 혀를 찼다.

“그러게 책임지지 못할 일은 벌이지 말라고 했지? 내 여태 누누이 경고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이 꼴이라 뒤를 봐주지도 못하는데,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고나 치고 다녀? 사람을 죽인 거냐? 몇 명이나? 있는 집 자식 건들었냐?”

“안 죽였어요.”

한시름 놓았다.

“그게 아니라면 여긴 왜 왔어?”

“며칠 전 임시 주총이 열렸고, 청일 그룹이 넘어갔어요.”

처음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

한청호는 새끼손가락으로 귀지를 팠다.

잘못 들었나?

“강태수가 청일 그룹을 홀랑 집어삼켰어요.”

저놈이 대낮부터 찾아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닌데.

아무리 날로 먹는 것 같아 보여도 은근히 업무량이 많은 자리가 그룹 총수 자리다.

“청일 그룹 총수가 되었으면 언행이 무거워야 하는 법이다. 그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는 게 아니야.”

“아버지, 농담이 아니에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태양 그룹 총수 강태수 그놈이 청일 그룹을 어떻게 집어삼켜? 그건 하늘이 두 쪽 나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어째서일까.

헛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영 불안하다.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지고 혈압이 치솟기 시작했다.

한청호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크게 외쳤다.

“네가 가진 청일의 지분이 56%나 돼! 아무도 네 자리를 위협하진 못해! 개기는 것들은 힘으로 찍어 눌러!”

한일권의 입에서 차분하게 그날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한청호의 입에서는 격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회장실 책상 정리를 하라면서 그 근육질 새끼가… 아버지?”

“끄, 끄끄읍, 끄흐윽……!”

한청호의 상태가 심히 이상했다.

눈알이 뒤집혀서 흰자위가 보인다.

입가에 보글보글 거품이 끓고 있다.

한일권은 크게 외쳤다.

“교도관! 여기 사람이 이상해요! 이봐요!”

“끄, 끄허허헉……!”

털썩.

한청호가 게거품을 문 채 뒤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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