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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222화 (222/230)

222화 운명의 주주 총회(4)

그 상황에서 안정우가 태수에게 대놓고 물었다.

“무슨 논의를 하고 있었지?”

“청일 그룹 총수 해임에 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딱 맞춰 왔군. 그런데 그게 이리 오래 걸릴 사안이던가?”

안정우가 한일권을 본다.

안정우가 서류 봉투를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는다.

“청일 건설 사장으로부터 시작된 마약 밀수 의혹과 주가 폭락, 그리고 막대한 정부 채무와 부실 경영, 구조조정 실패까지.”

청일 임원진들이 물고 늘어지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심지어 1주짜리 발언권은 그들과 비교해 미미하기 그지없어야 하는데.

“책임져야지.”

하지만 김봉남이 말과는 무게와 압박감부터 달랐다.

주주 총회는 주식 많은 놈이 권력자라고 했지만 누가 감히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을 우습게 볼 수 있겠는가.

주주 총회 자체가 기업 때문에 열리는 것이고, 그 기업은 대통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거늘.

‘젠장!’

한일권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일권이 가진 청일 건설 주식은 무려 56%다.

경영권 방어에 충분한 지분이었다.

그래서 청일의 충신들이 등을 돌려도 코웃음 칠 수 있었다.

‘차기 대통령과 검찰 총장이 저렇게 나오면 반칙 아닌가?’

억울했다.

그렇지만 항의할 수도 없다.

한일권은 처음으로 숨통이 막혀 왔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간신히 삼키며 한일권은 마이크를 들었다.

“아무리 당선인이라고 해도 이곳은 주주 총회 자리란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제가 보유한 주식이 과반…….”

“검사들은 밖에서 뭐 하나!”

마이크나 확성기를 안 썼는데도 회의장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청.

김차열 검찰 청장이 이번에도 한일권의 말을 끊으며 회의장 밖을 향해 외쳤다.

“들어와서 대기해! 주총 끝나는 대로 피의자 끌고 가야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검사들.

검사들이 한일권을 향해 걸어가자 한일권은 이를 갈았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지금 주주 총회 회의 중입니다.”

“누가 자네더러 회의하지 말라고 했나? 자네는 자네 일을 해. 나는 내 일을 할 테니까.”

“하……! 당신 일? 검사들 불러와서 대뜸 날 끌고 가는 일?”

“그럼 내가 무슨 일로 왔겠나?”

속내를 숨기지도 않는다.

검찰 총장 김차열은 영장을 허공에서 몇 번 흔들었다.

“자네는 마약 밀수와 관련된 강한 의혹을 받고 있잖나. 수사 대상이야.”

“증거 있습니까?”

일반인들에게는 몰라도 검찰 총장에게 그런 말이 통할 리 있겠나.

“취조하면 다 나와.”

한일권은 정말로 일본 밀수 루트와 연관이 깊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일본 밀수 루트를 뚫었고, 박정환이 비호했으며 한일권이 공을 들여 교류해 오지 않았던가.

뒷배가 사라진 이상 캐면 캘수록 불리해진다.

‘빌어먹을! 망할!’

욕밖에 안 나온다.

압박감에 질식할 것 같다.

한일권은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내리며 씩씩댔다.

안정우가 말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검사들은 한일권 근처에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정우 당선인.”

한일권은 마침내 안정우에게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원하시는 게 정확히 뭡니까?”

“몰라서 묻나?”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다.

“지금 당선인께선 권력을 내세워서 청일 그룹 경영권에 간섭하고 계십니다.”

“난 법대로 하고 있어.”

아무리 차기 대통령이 될 안정우라고 하지만 과반의 주식을 보유한 한일권의 경영권까지 마음대로 빼앗을 수는 없다.

그건 엄연한 월권이고, 이후 대통령 이름에 흠집이 된다.

그렇기에 한일권 스스로 경영권을 내어놓아야만 했다.

그게 바로 법대로, 절차대로다.

“법대로? 지금 주주 총회에 검찰 총장과 검사들을 이끌고 와서 깽판을 놓으면서……!”

“말조심하게.”

안정우는 코웃음 쳤다.

“깽판이라니?”

안정우가 청일 건설 주식이 달랑 한 주 들어 있는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주주로서 회사 경영상 발생한 문제에 책임지란 소리도 못하나?”

“당선인!”

한 주를 가져도 주주다.

발언권이 미미해도 발언 자체는 가능하다.

안정우는 이것도 법대로 하고 있었다.

“이 꼴 보기 싫었으면 회사 똑바로 운영했어야지.”

안정우는 이미 한일권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짚어 준 바가 있다.

청일의 충신들이 목청껏 외치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결단을 내리게.”

그 말이 떨어지자 한일권 속에 돌덩이가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말에 힘입어 청일의 충신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었다.

“한 회장, 사퇴하십시오!”

“책임지십시오!”

“물러나십시오!”

안정우가 회의장 안에 들어서기 전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코웃음 칠 수 있었던 한일권이 지금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다시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끌어내렸지만 콱 막힌 숨통은 조금도 트이지 않았다.

‘젠장!’

한일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안정우는 쐐기를 박았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거, 아직도 모르겠나.”

“제가 가진 지분이 56%입니다. 경영권을 억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누가 억지로 빼앗는다고 했나?”

안정우의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금 순순히 내놓던, 검찰에 끌려가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난 후에 내놓던, 아니면 실형 받고 자격 박탈 요건에 해당되어야 어쩔 수 없이 내놓던.”

방법이야 강권할 수 있겠나.

“그건 자네 좋을 대로 선택해.”

하지만 방법이 달라진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한일권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일 제가 물러난다면 청일은…….”

“내 손으로 간판 떼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뜻이겠나.

한일권이 안 물러난다면 안정우 손으로 청일 간판을 직접 떼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청일 그룹 총수 자리를 이렇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정녕 다른 방법으로 청일을 지킬 수는… 없겠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청일의 총수 자리만 지킬 수 있다면.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 것이고, 충성을 맹세하라면 기꺼이 맹세할 것이다.

“당선인께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 주신다면… 청일은 끝까지 당선인의 충견이 될 겁니다.”

“난 개새끼 따윈 키우지 않아.”

안정우는 대신 청일의 임원진들 눈앞에 당근을 꺼냈다.

“만일 자네가 순순히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정부 채무 상환 기일을 연장해 줄 용의가 있네.”

한일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시중 모든 은행이 청일에 대출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당장 돈이 될 만한 건 전부 이문복이 들고튀었다.

막대한 정부 채무를 연장시켜 준다는 미끼에 청일의 임원진들이 덥석 물었다.

“회장님,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청일은 이대로 무너져선 안 됩니다!”

“청일을 위해서! 청일의 미래를 위해서!”

회의장에 모인 모두가 같은 눈으로 한일권을 압박했다.

‘젠자아아아앙-!’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마침내 한일권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청일 그룹 총수직을… 사임… 하겠습니다.”

마침내 한일권 스스로 경영권을 내어놓았다.

이 모든 순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남자.

태수의 입가에 미소가 진하게 걸리는 순간이었다.

* * *

안정우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당분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자네의 뜻을 받아들이지.”

김차열 검찰 총장은 슬쩍 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눈짓으로 물었다.

‘한일권이 총수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대로 끌고 갈까요?’

‘아닙니다.’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김차열은 의아했다.

‘아니, 왜요?’

‘잠시 물러나세요.’

태수가 손을 휘저어 뜻을 전했다.

그러자 김차열 검찰 총장 역시 눈짓으로 부하 검사들에게 뜻을 전했다.

한일권 근처에서 대기하던 감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한일권은 똥 씹은 표정으로 태수를 노려봤다.

태수는 말없이 한일권을 보았다.

‘그야 앞으로 벌어질 모든 상황을 한일권이 지켜봐야 하니까.’

태수는 한일권 앞에서 직접 보여 줄 생각이었다.

‘총수직을 빼앗겼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눈앞에서 청일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오는지 똑똑히 보아라.’

한일권이 자진 사퇴를 결정하자 김봉남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무려 56%나 되는 청일 건설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였다.

그 누구도 그의 지분 앞에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없었다.

그런 한일권이 스스로 그룹 회장 자리에서 내려올 줄이야.

‘강태수, 정말 대단한 놈이다. 진짜로 이걸 해내다니!’

김봉남은 고개를 돌려 태수를 보았다.

‘아무리 강태수라도 이건 못해 내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한일권을 밀어낼 줄이야.’

56%라는 지분으로 쌓아 올린 성 위에 올라 굳건하게 총수 자리를 지키던 한일권.

그가 내려왔으니 지금 청일 총수 자리는 공석이었다.

바로 자신이 앉을 자리였다.

“그렇다면 바로 차기 청일 그룹 총수를 선출…….”

“잠깐.”

태수가 손을 들어 김봉남의 말을 잘랐다.

김봉남은 개의치 않고 말을 끝맺으려 했지만 안정우가 끼어들었다.

“왜 그러나?”

“청일 건설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청일 그룹 총수가 책임에 통감하여 사퇴하였다고 하나, 아직 청일 건설에 쌓인 막대한 적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당선인께서 정부 채무 상환 기일을 연장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몇 년이나 연장해 주시는 겁니까?”

“1년이면 되지 않겠나?”

청일의 임원진들 안색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그 많은 돈을 고작 1년 안에 어찌 갚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당선인, 청일 그룹 총수가 모든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청일은 재계 서열 13위 재벌 그룹입니다. 청일이 부도난다면 한국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겁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기한을 더 연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정우는 김봉남을 보았다.

“내가 기한을 연장해 주지 않아도 지금 상황을 타개할 묘안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주주와 임원진들이 김봉남을 보았다.

김봉남과 대운각에서 뜻을 같이한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쏟아지는 시선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며 김봉남이 말했다.

“청일 건설에서 시작된 적자로 인해 각 계열사마저 휘청대고 있지 않습니까?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적자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큽니다.”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청일 건설은 청일 그룹의 지주 회사가 아닙니까? 청일 건설이 무너지면 청일 그룹 전체가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지주 회사를 바꿉시다.”

김봉남이 자신 있게 말했다.

“지주 회사를 바꾼다면 설사 청일 건설이 적자로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청일 그룹 전체가 무너질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청일 건설을 도산시키겠단 소립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한마디로 청일 건설을 버리고 청일 그룹을 살리자는 소리였다.

하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고작 1년의 기한을 더 얻었을 뿐이야.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새로운 지주 회사는 어디로 하자는 겁니까?”

“설마 당신이 사장으로 있는 청일 화학은 아니겠지요?”

“청일 자동차가 어떻겠습니까.”

대운각에서 김봉남이 임원들을 설득하던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그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청일 자동차라면…….’

‘이번처럼 오너 일가가 지분으로 청일 그룹을 휘두르진 못하겠군.’

청일 자동차 지분은 유달리 흩어져 있다.

그래서 그룹 총수가 방어하기도 어렵고, 임원진이 공격하기도 좋다.

이건 그만큼 임원진이 제 목소리를 내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일권이 소리를 질렀다.

“청일 자동차로 지주 회사를 바꾸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청일 자동차 주식이라고 해 봐야 오너 일가가 가지고 있는 건 고작 15%에 불과하다.

그럴수록 김봉남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청일 그룹 총수 자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청일 자동차로 지주 회사를 전환하는 데 동의하시는 분은 거수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지주 회사를 청일 자동차로 바꿉시다!”

한일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안정우와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 * *

“이렇게 해서 청일 그룹 지주 회사는 청일 자동차로 변경되었습니다.”

우렁찬 박수 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김봉남이 좌중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새로운 청일 그룹 총수를 선출해 볼까요?”

“그거 아십니까?”

태수가 자리에서 슬쩍 일어섰다.

“제가 청일 자동차 지분을 49% 확보했습니다.”

“그,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회의장에 모인 모든 사람이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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