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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221화 (221/230)

221화 운명의 주주 총회(3)

김봉남이 말했다.

“이문복은 청일 계열사를 돌면서 막대한 양의 차명 주식과 부동산 및 동산을 긁어 갔습니다. 아주 탈탈 털어 갔더군요.”

태수가 김봉남에게, 김봉남이 청일 계열사 사장들에게 건넸던 자료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막대한 자산을 헐값에 처분한 상황에 임원진들과 주주들은 표정을 굳혔다.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법대로 해야지.”

한일권 입에서 법대로 하잔 말이 나올 줄이야.

지독하게 안 어울리는 말이었다.

“청일 법무팀 불러서 이문복을 배임, 횡령 혐의로 고소 고발했다.”

“검찰 체포 조사에선 그 돈 아직 못 찾았다던데요?”

“압류 신청도 했다.”

한일권은 코너에 몰린 사람 같지 않게 태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태연한 표정과 달리 눈은 분노로 이글댔다.

“결론만 말합시다! 그래서 돈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없어.”

임원들과 주주들은 속이 뒤집혔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분노를 불러온 대답이었다.

“지금 청일 그룹이 부도나게 생겼어! 네놈이 여태껏 총수 자리에 앉아 한 일은 말아먹은 것 말고 대체 뭐가 있어!”

김봉남의 말을 받아 계열사 사장단들이 합세했다.

감정이 격해진 탓에 어느새 존댓말 따윈 저 멀리 던져 버린 후였다.

청일의 충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까지 해대며 침을 튀겼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총수 자리에 앉았으면 자중이라도 할 것이지.”

“꼭 저 같은 놈을 데려와서 청일 건설 사장 자리에 앉혔으니. 아주 망조야, 망조.”

“대체 뭐가 아쉬워서 건설사 사장이 마약 밀수에 끼어들어?”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웅덩이를 흐린다더니, 청일이 이게 뭡니까?”

“어떻게 책임질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청일을 어떻게 키워 왔는데.”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한일권을 물고 늘어졌다.

“한 회장, 사퇴하세요!”

“책임지세요!”

“물러나세요!”

지주 회사 최대 주주인 한일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퇴? 내가 왜?”

“네놈 때문에 청일 그룹 상황이 망하게 생겼는데, 지금 책임을 못 지겠다는 소리냐?”

“증거 있어?”

한일권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소리가 나도록 내려쳤다.

“증거 있냐고. 내가 이문복을 사주한 증거, 내가 마약 유통에 중요한 역할을 한 증거, 내가 횡령이나 배임한 증거!”

증거가 있었다면 주주 총회에서 날뛸 필요가 있겠나.

경찰과 검찰이 먼저 들이닥쳐서 한일권을 잡아갔을 것이다.

지금 마약 사범 소탕한다고 검찰 총장과 대통령 당선인까지 나선 마당이 아닌가.

하지만 김봉남이 벌떡 일어나서 청일 계열사 사장들을 돌아본다.

“일단 청일 건설 사장 이문복 해임부터 해결합시다. 하나씩 처리하자고.”

한일권은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웃었다.

“좋아, 우리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간단하게 진행하지.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젠 서로 눈치 볼 필요도 없는 것 같으니까.”

이미 막장으로 치달은 상황이 아닌가.

청일의 충신이 이빨을 들이민 마당에 숨길 속내가 더 있지도 않았다.

“청일 건설 사장 이문복을 해임한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 거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만장일치였다.

주주 총회에서는 회사의 임원 선임과 해임 및 보수의 결정, 정관 변경, 주식 배당 및 전환 사채 발행, 회사의 인수 합병 및 해산 등을 결정한다.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이문복은 청일 건설 사장에서 해임되었다.

하지만 김봉남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문복이 직접 계열사를 돌면서 회장님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들 대답해 보세요. 맞습니까?”

“맞습니다.”

“이문복이 회장님 지시 사항을 공문서로 보여 줬지요. 다들 확인하셨습니까?”

“확인했습니다.”

김봉남 역시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면서 외쳤다.

“한 회장, 당신 명령으로 이문복이 돈 빼돌렸잖아! 그거 다 어디 갔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문복한테 물어!”

한일권이 태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중간에서 농간 부린 새끼는 잘 들어라. 내 이 빚은 어떻게 해서든 받아 내겠다.”

태수에게 한 말인데 김봉남이 냅다 낚아챘다.

“너 말 잘했다. 사임하기 싫다면 사재라도 내놔!”

“사재? 내가 왜?”

“그럼 청일이 이대로 줄도산 나는 걸 두고 볼 거냐?”

“부도 싫어? 그럼 네놈들도 사재 털어. 너희도 청일 그룹 사람이잖아.”

“논점 흐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거냐? 이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김봉남을 시작으로 청일의 충신들이 일제히 일어나 한일권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개싸움 2차전이었다.

우당탕탕.

회의장 안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던지는 물건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휴지 물통, 펜, 종이 등은 기본이고 심하면 의자까지 날아다녔다.

주주들과 청일 그룹 경호원들 사이에서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 * *

태수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관이군.”

태수 뒷자리에 앉은 전(前) 청일 중장비 사장 이창원이 차갑게 읊조렸다.

노일국도 동의했다.

“개싸움이야. 제대로 개판이야.”

“청일의 충견들이 나서서 주인을 물어뜯는 모습을 볼 날이 올 줄이야.”

“아, 팝콘 챙겼어야 했는데.”

“난 콜라.”

그때 태수가 커다란 여행 가방을 열었다.

중요한 서류를 품에 넣고 다니는 태수가 웬일로 가방을 챙겨 왔나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하나씩 받으세요.”

태수의 가방에서 팝콘과 콜라가 나왔다.

이창원과 노일국은 존경심 어린 표정으로 팝콘과 콜라를 받았다.

‘회장님은 이것마저도 철저하시군.’

‘개싸움이 나리란 것을 예상하고 왔건만. 역시 회장님은 우리보다 한 수 멀리 내다보고 행동하시는군.’

김광록은 신이 나서 물었다.

“사이다는 없냐? 달달한 과자는?”

“여기 있습니다.”

“땡큐.”

태양 그룹 사람들이 느긋하게 관람객 모드로 주주 총회에 참석했다.

다른 때 같으면 조용한 회의실에서 무례하게 울리는 아그작 소리가 굉장히 거슬렸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 소리에 신경 쓰지 못했다.

주주 총회 회의장은 고성과 욕설로 매우 시끄러웠으니까.

한일권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외쳤다.

“증거 없잖아. 마약 수사에 눈 뒤집힌 검찰과 경찰도 날 어쩌지 못하는데 네놈들이 뭐라고!”

심적으로는 확신해도 물적으로는 증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차기 총수 자리 야망으로 불타는 김봉남은 물러서지 않았다.

“청일 계열사 주식이 일제히 폭락한 건 책임져야지!”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러니까 증거 있냐고.”

“증거 따윈 없이도 그룹은 망할 수 있어. 네놈의 무능한 경영이 초래한 결과는 책임져라!”

“어디 한번 해 봐!”

한일권이 서류 봉투 세 개를 들이밀었다.

“내 주식이 17%, 아버지 주식이 32%, 어머니 주식이 8%, 도합 56%!”

회의장이 순식간에 침묵했다.

주주 총회는 주주들이 가진 주식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리이니만큼 주식이 많은 놈이 최고다.

“경영권, 어디 빼앗을 수 있으면 빼앗아 봐!”

방법이 없다.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등을 돌리는 것뿐인데, 보이콧이랍시고 스스로 임원진 사퇴를 결정해 봤자 손해다.

청일의 충견들이 모두 김봉남에게 눈으로 물었다.

-쉽지 않은데요.

-이제 어쩝니까?

-상황이 이런데 지주 회사 변경은 가능할까요?

김봉남이라고 방법이 있겠나.

어쩔 수 없이 태수를 본다.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한일권은 총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겁니다.

태수가 했던 말을 믿고 있었다.

몰리브덴을 청일에 팔아 달라 청할 때 태수의 수완을 몸소 체감했던 김봉남이 아닌가.

김봉남이 태수만 보고 있자 청일의 임원진과 주주들이 일제히 태수를 향해 고개 돌렸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아무리 강태수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신통한 방법이 있을 리 없지.’

‘태양 그룹 총수가 청일 주주 총회에서 무슨 힘을 쓴다고.’

그때였다.

태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던 사람이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다.

“오셨습니까?”

“미안하네. 내가 좀 늦었어.”

취임식 준비로 한창 바쁠 안정우였다.

안정우의 등장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니, 청일 그룹 주주 총회에 대통령 당선인이 왜?’

‘다른 그룹 재벌 총수가 오질 않나, 당선인이 오질 않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회의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곧 차기 대통령이 될 당선인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물건을 던질 자는 없었으니까.

* * *

안정우가 성큼성큼 걸어가 태수 옆자리에 앉는다.

모두의 시선이 안정우에게 쏠렸다.

안정우는 서류 봉투를 들어 보였다.

“청일 건설 주주로서 회의에 참석하겠습니다.”

누군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주주 명단에는 이름이 없으시던데요.”

사람들이 더욱 술렁댔다.

한일권은 주주 명단을 확인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청일의 임원진들은 대부분 미리 주주 명단을 확인했다.

‘안정우란 이름이 있었던가?’

‘설마하니 주주 명단에 안정우란 이름이 있더라도 당선인이라고 누가 알았겠어? 동명이인인 줄 알지.’

안정우가 서류 봉투를 흔들며 웃었다.

“대주주 명단에야 당연히 없겠죠. 청일 건설 주식을 한 주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주 총회 참석은 가능하잖습니까?”

달랑 한 주를 사도 주주는 주주였다.

발언권이 미미할 뿐이지 주주 총회에 참석할 자격은 갖고 있었다.

안정우가 서류 봉투에 미리 적어 놓은 주주 번호까지 불렀다.

“안 그래도 취임식 준비로 바쁘실 당선인께서는 무슨 일로 이런 작은 회의에 참석하셨습니까?”

“한 주밖에 안 되는 주식을 빌미로 재벌 그룹 운영에 벌써부터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점잖은 목소리지만 뜻은 날카로웠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주 총회에서는 주식 많이 가진 자가 권력자인데요. 저는 법대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아니, 그럼 왜…….”

“청일 그룹 주주 총회 기념품이 제법 괜찮다지요?”

옛날엔 주주 총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기념품을 제공했다.

일본에서는 최소 거래 단위가 정해져 있지만 한국은 최소 거래 단위가 없었다.

그래서 기념품을 노리고 한 주만 산 후 주식 가격보다 훨씬 비싼 기념품을 받아 가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점차 기념품을 주지 않거나 저가의 기념품을 준비하게 되었다.

안정우는 지금 기념품 때문에 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누가 믿어?’

‘안정우 당선인이 벌써부터 청일을 눈여겨보고 있군.’

‘주주를 고작 신경 쓰인다는 이유로 끌어낼 수도 없고.’

김봉남이 이번엔 안정우 옆에 앉아 있는 김차열 검찰 총장에게 물었다.

“혹시 검찰 총장께서도 주주십니까? 명단에 없던데, 주주 번호는 어떻게 되십니까?”

“주주가 아니라서 주주 번호는 없고.”

주주가 아닌데 주주 총회에 왜 왔나.

이번에야말로 진행 요원에게 끌려가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차열의 말에 누구도 진행 요원을 부르지 못했다.

“영장은 있습니다.”

검찰 총장이 영장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다.

“청일 건설 사장에서부터 시작된 마약 밀거래 의혹에 대해 다들 알고 계시죠?”

“설마…….”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하느냐,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하느냐, 참고인으로 소환하느냐, 아니면 피의자 신분으로 끌고 가느냐. 그게 고민입니다.”

말을 할수록 청일 임원진들의 안색이 변한다.

그렇지만 김차열은 태연하게 말을 끝맺었다.

“개인적인 예상입니다만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총회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김차열은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태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총회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태수의 뜻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터였다.

‘아니, 그게 무슨 개인적인 예상이야. 공무로 온 거잖아.’

‘아예 대놓고 협박하는구나.’

안정우는 손을 내저었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회의 계속하지.”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나.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한일권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빌어먹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안정우와 김차열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뒤집혔다는 것을.

지금 이 자리는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한일권은 잽싸게 말을 돌렸다.

“그럼 오늘 임시 주총은 이것으로 끝…….”

한일권의 말을 김차열이 단칼에 잘랐다.

“정말 이렇게 끝내도 되겠나? 내가 분명히 주총 결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눈치 참 더럽게 없다는 소리는 종종 듣나?”

검찰 총장이 대놓고 말하자 회의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한일권도 섣불리 폐회를 선언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일권과 태수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강태수……!’

태수는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승자의 미소를 보고 한일권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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