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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212화 (212/230)

212화 아버지는 안녕하신가(2)

한일권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분했다.

‘누구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감옥에 가 계시는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그렇게 따질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강태수를 대단하게 보는 놈들 앞이 아닌가.

천하의 한청호가 강태수 때문에 무너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새끼, 이걸 의도하고 대뜸 아버지 안부를 물은 건가?’

기분이 더러웠다.

그때 한경련 회장인 장준용이 중재한다.

“그만하게. 회의 시작해야 하니까.”

“장 회장님!”

“그러게 왜 먼저 시비를 거나? 여기 눈 안 달린 사람 없고, 귀 안 들리는 사람 없어.”

장준용이 엄하게 한일권을 본다.

“아버지 대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자중할 줄도 알아야지. 여기가 무슨 동네 반상회인 줄 알아?”

재벌들도 일제히 한일권을 쏘아본다.

그들을 싸잡아 미친 원숭이 취급했던 한일권의 말 때문에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말없이 쏘아보는 눈동자들이 한일권을 압박한다.

‘젠장!’

한일권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한일권에게는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 장준용이건만 태수에게는 살갑게 손짓한다.

목소리마저 부드럽고 따뜻하다.

“강 회장, 얼른 와서 앉게. 안 그래도 오늘따라 할 말이 많다고 들었네.”

태수는 이병춘이 빼 준 의자에 앉았다.

다들 착석했다.

* * *

회의가 시작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회의였다.

중요한 안건이 모두 마무리될 때 태수가 말했다.

“여러분들과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의논할 일?”

“태양 그룹에서 해상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해상 유전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 태수에게 집중한다.

“제주도 남해상에서 석유가 나왔으니 송유관부터 석유 전진 기지인 제주도 개발, 또한 서울과 주요 도시 전역을 아우르는 운송로 확충에 관해서입니다.”

“그 말은…….”

“큰 공사가 될 겁니다. 모두 힘을 모으면 시일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콩고물을 나눠 주겠다는 뜻이 아닌가.

재벌들은 환호성이 나오려는 입을 애써 틀어막았다.

저마다 주먹을 꽉 쥐고 기뻐한다.

‘드디어!’

‘그거지!’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어떤 계획이 있기에 우리와 의논한다는 건가?”

“구상하고 있는 계획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좋지! 그게 뭔가?”

“대규모 국토 개발 계획입니다.”

“오-!”

모두 몸이 달아서 태수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린다.

태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에 관해 브리핑할 분을 따로 모셔 와도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

“좋습니다.”

태수가 손을 들자 7층 홀 입구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재벌들은 깜짝 놀랐다.

“김정림 전 비서실장께서 여긴 어쩐 일로?”

“재무부, 건설부, 상공부 장관님까지?”

“다른 부서 장관님들도 오시는군.”

태수의 곁으로 걸어온 사람들이 일렬로 선다.

‘이럴 수가! 순순히 이곳까지 와서 줄을 선다고?’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정림과 각 부의 장관들이 함께 한경련 회의에 출두해 브리핑을 한다는 건…….’

한경련에 모인 재벌들이 어디 보통 재벌이던가.

그들이 일제히 입을 떡 벌릴 만한 일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태수가 불러온 인물들이 쟁쟁하다.

태수가 말했다.

“이분들은 차기 대통령을 보좌할 내각의 장관님들이십니다.”

“차기 내각? 벌써?”

이틀 전 장충동 체육관에서 통일 주체 국민 회의가 열렸다.

대의원 2,549명이 투표하여 찬성 2,465표, 무효 84표로 집계되었다.

‘안정우 당선인은 이들을 그대로 끌어안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할 생각이로군.’

박정환 대통령을 보좌했던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재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슈퍼스타로 떠오른 안정우 당선인에게는 파벌이 없다.’

‘또한 오랫동안 긴밀하게 상부상조하던 고위 공직자도 없어.’

‘그러니 이들을 계속 쓰기로 했다는 것이로군.’

재벌들의 추측은 틀렸다.

이들은 모두 록히드 게이트로 꽁꽁 묶여 있는 자들이었다.

태수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해도 그대로 추진할 사람들이다.

‘실제로 박정환이 일을 맡겼을 정도로 유능한 자들이기도 하고.’

태수는 한경련 재벌 총수들을 보았다.

“이분들과 대략적인 개발 계획을 구상해 봤습니다. 이제 구체적인 부분을 의논해야겠죠.”

재벌 총수들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이들과 국토 개발에 관해 계획을 미리 짜 왔다고?’

현직 장관들과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이 불려 오는 국토 개발 계획이라니.

이쯤 되자 구체적인 부분을 의논하겠다던 태수의 말이 다르게 들렸다.

‘이권 사업을 분배하는 일이다.’

‘청와대 응접실에서나 행해질 일이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만일 안정우 당선인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태수를 보게 되는 재벌 총수들.

그런데 어째서인지 태수는 7층 홀 입구를 보고 있다.

“왜 그러나? 무슨 문제 있나?”

“아직 한 분이 안 오셔서 그렇습니다.”

“누구? 또 와야 할 사람이 더 있나?”

사람들이 모두 7층 홀 입구를 바라볼 때였다.

드디어 태수가 기다리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좀 늦었군.”

웃으면서 손을 들어 인사하는 남자.

“안정우 당선인까지?”

재벌들이 안정우와 태수를 번갈아 보았다.

태수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던 안정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눈도장 찍으러 왔습니다.”

눈도장이라니?

누구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대통령이 부르면 손짓만으로도 달려가야 하는 게 재벌 총수들이거늘.

행여 안정우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다들 옷차림부터 매만졌다.

안정우가 태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시작하지.”

“좋습니다.”

태수가 주변을 돌아봤다.

“이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차기 대통령으로 예정된 안정우 당선인과 함께 듣는 국토 개발 계획이란다.

그것도 각 부의 장관과 함께 참여한 구상안이다.

한경련 회원인 재벌 총수들은 깨달았다.

‘안정우 당선인과 강태수가 이리도 긴밀한 관계였을 줄이야.’

‘차기 내각과 함께 논의해 왔다니.’

장준용은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태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은 더 컸다.

‘강 회장은 여태 안정우를 차기 대통령으로 밀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각 부의 장관과 김정림 전 비서실장까지 데려와? 언제 이들을 포섭한 거야? 아니, 어떻게?’

짐작도 못했다.

‘나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장관들을 한꺼번에…….’

당황스러운 나머지 장준용은 마른세수를 했다.

태수가 장준용을 돌아보았다.

“장 회장님.”

“응? 어? 예.”

“VIP룸을 좀 써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가리키는 곳은 7층 홀 안쪽에 만든 VIP룸이었다.

과거 박정환 대통령이 주로 쓰던 바로 그곳 말이다.

장준용이 VIP룸과 태수, 그리고 안정우를 번갈아 보았다.

“아, 그러셔야죠. 어서 VIP룸으로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태수가 앞장서자 그 뒤를 안정우, 김정림, 각 부의 장관들이 따랐다.

태양 건설 사장인 박철완이 돌돌 말린 커다란 지도와 개발 계획을 적은 서류 상자를 들고 있었다.

쿵.

박정환이 애용하곤 했던 VIP룸 문이 닫혔다.

잠시 후 문이 살짝 열리고 박철완이 얼굴을 드러냈다.

“장준용 금산 그룹 회장님, 이병춘 삼청 그룹 회장님, 럭키 세븐 그룹 구자겸 회장님, 대한 정유 김동조 회장님은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박정환이 살아생전에 운영되던 그대로였다.

* * *

태수가 차지하고 있는 VIP룸.

호명되어 안으로 불려 갔던 재벌 총수들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나오곤 한다.

‘벌써 3시간째로군.’

‘나도 불러 줬으면 싶은데.’

한경련 회의가 끝난 지는 오래다.

하지만 재벌 총수들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혹여나 제 몫까지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목이 탄다.’

‘속이 탄다.’

어느새 7층 홀에선 식사가 치워지고,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음악도 틀어 주었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은 오로지 VIP룸에 쏠렸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하게 책임지고 공사하겠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또 한 무리의 재벌 총수들이 VIP룸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걸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군침을 흘렸다.

‘최 회장은 작은 일로 저리 기뻐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 회장은 또 어떻고? 대체 무슨 이권을 할당받았기에 저리 좋아할까.’

‘내 몫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그들은 최대한 VIP룸 근처에서 대기했다.

음료를 마시면서도 눈은 자꾸만 VIP룸으로 향한다.

반면 한쪽 구석 자리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자가 있었다.

한일권이었다.

‘젠장!’

평소라면 진즉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안정우 때문이었다.

-자네가 바로 한청호의 아들 한일권이군. 자네에 대해 들어왔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일권을 꼼꼼하게 훑어보지 않았던가.

-자네 아버지와 관련해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이따 보세.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나.

‘아버지 성격상 안정우와 척지진 않았을 터다. 아버지와 인연이 없었다면 저런 말을 하진 않았을 거야.’

박정환이 죽고 한일 대륙붕 조약을 파헤치는 와중에 열광적인 인기를 얻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정치인.

한일권이 알고 있는 안정우는 그 정도였다.

‘정치인 중에 아버지 돈을 먹지 않은 자는 없다. 분명 안정우도 무명 정치인이던 시절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의미심장한 말을 하겠나.

그러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 사면을 약속받았다고 했다.’

확인해야겠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안정우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나.

그래서 한일권은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강태수 그놈이 걸리는군.’

눈엣가시 같은 놈이다.

사사건건 마주칠 때마다 신경에 거슬리는 놈이다.

‘안정우는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었어. 아버지만 감옥에서 나오면 네까짓 놈이 뭘 어쩔 수 있겠어?’

오늘 확실히 담판을 지어야 한다.

이미 감옥에 들어간 사람을 빼내 오려면 권력자를 통하는 게 가장 빠르다.

* * *

달칵.

VIP룸 문이 닫혔다.

마지막 남은 한 무리의 재벌 총수들까지도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나왔다.

금산 호텔 7층 홀엔 한일권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음? 자네 아직도 안 갔나?”

“우리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한일권을 보는 재벌들의 표정이 묘하다.

한일권은 쾅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는다.

“뭘 봐?”

살벌한 눈빛에 재벌들이 눈썹을 찌푸렸다.

뜻하는 바를 이뤘기에 미련도 없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7층 홀을 나가 버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VIP룸에서 각 부의 장관들과 김정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온다.

태수와 안정우만 VIP룸에 남았다.

한일권은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VIP룸을 벌컥 열어젖혔다.

태수와 안정우는 한가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당선인, 잠시 시간을 내주시길 바랍니다.”

한일권이 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강태수, 넌 나가 있어.”

“무례하군. 하나부터 열까지. 누가 자네더러 여기 들어오라고 했지?”

안정우는 매우 불쾌해했다.

“나가.”

“당선인, 아까 제게 이따 보자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확인만 하고 돌아갈 테니까요.”

“…좋아.”

한일권은 물었다.

“아까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그랬지.”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라고 했고요?”

“그래.”

이거지!

한일권의 안색이 환해졌다.

“역시,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언제 풀어 주실 겁니까?”

“풀어 줘?”

“특별 사면 말입니다.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 사면으로 제 아버지를 꺼내 주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안정우의 대답이 이상하다.

그럴수록 한일권의 안색이 창백해져 간다.

“당선인께서도 제 아버지를 모른척하겠다는 뜻입니까?”

“자네 아버지가 그러던가?”

“그게 아니라면 왜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마치 오래도록 제 얘기를 들어온 것처럼…….”

“아, 자네가 오해했군.”

안정우는 딱 잘라 말했다.

“한 회장이 아니라 여기 강 회장이야. 자네에 대해 말한 사람.”

강태수가?

한일권의 고개가 태수를 향해 홱 돌아갔다.

한일권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럼 제 아버지와 관련되어 해 줄 말이 있다는 건…….”

“청일 건설 말일세.”

안정우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자네 아버지가 정부 돈을 많이도 빌려 썼던데. 그거 전부 토해 놓으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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