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209화 (209/230)

209화 록펠러가 깔아 준 깽판(2)

청와대 집무실.

대통령 권한 대행 김종표는 연일 시달리고 있었다.

벌써 두 달째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박정환의 4대 부정부패를 밝힌다!>

<박정환의 지낭 김종표가 주도한 금융 사기!>

<그 많은 돈은 누구의 주머니로?>

<이제는 밝힐 수 있다! 김종표의 막장 행각!>

언론이 총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덕분에 광화문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진다.

야당의 거물 김영상 의원과 김대중 의원은 연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김종표를 비난했다.

-부정 축재자는 물러나라!

-나라 경제를 파탄 낸 파렴치한은 퇴진하라!

-이제 국민이 심판해야 할 때입니다!

-권력의 기생충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평소라면 여권의 방패가 되어 주었어야 할 신문과 방송도 앞다투어 김종표를 비난했다.

김종표가 아무리 박해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광고 탄압!

-세무 조사!

-압수 수색!

모두 소용없었다.

신문과 방송 광고를 끊으라고 압력을 쏟아도 한경련 기업들은 똘똘 뭉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재벌 소유의 언론사가 광고비 부족해서 기사 못 쓰겠나.

이제 대선이 코앞이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

재벌들은 총알이 든든한데, 김종표는 아니다.

그러니 이번 싸움의 패배자는 김종표가 될 것이다.

비서실장은 말했다.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

김종표는 거칠게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숨통이 막히는 것만 같다.

“진즉 언론을 완전히 통폐합해 버렸어야 하는 건데!”

재벌들에게서 언론사를 전부 빼앗아 왔어야 했다.

제 입김이 미치는 공영 방송만 남겨 두고 전부 죽여 버렸어야 했다.

금산 호텔에서 록펠러와 부딪치면서 재벌들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그놈들은 얄밉게도 언론전을 택해 왔다.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김종표에게는 치명적인 방법이었다.

“비상계엄 상황이야! 함부로 떠들지 못하도록 꼬투리를 잡아서 무조건 영업 정지 때려!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입 다물게 하란 말이야!”

비서실장은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그런 방법을 전부 다 동원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다.

김종표가 박정환만큼 절대 권력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박정환의 칼이었던 중앙 정보부는 등을 돌렸고, 육군 참모 총장 이세후는 본 척도 않는다.

거기에 김종표를 따랐던 국세청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까지도 미적지근한 태도로 모르쇠로 돌변했다.

재벌 총수들에게 포섭된 것이다.

“재벌 기업 본진에 타격을 줘! 세관에서도 잡아! 은행 대출도 막고! 돈줄이 막히면 지들이 어쩔 거야?”

“그 어떤 방법도 안 먹힙니다. 모두 명에 따르는 시늉만 할 뿐, 실제적으로는 뒤에선 재벌 기업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김종표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김종표가 이리 눈이 뒤집히는 게 아닌가.

쾅.

김종표는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쳤다.

“나를 아주 물렁이로 보고 있구나! 나 김종표, 이 나라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야! 지금 나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는 없어! 그런데도 이 개새끼들이……!”

박정환이 죽고 국무총리였던 김종표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잡게 되었다.

하지만 ‘임시’라는 딱지가 붙은 데다 김종표는 ‘허수아비 국무총리’란 소리를 오랫동안 들어온 탓에 다들 우습게 보고 있다.

박정환이 의도적으로 김종표에게 권한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에서 보내 주기로 했던 정치 자금은? 지원하겠다던 친일 세력들은? 어째서 소식이 없어?”

“몇 번이고 전보를 보내 지원을 재촉했지만 같은 답변만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내민 전보는 며칠째 비슷하다.

<지금 내가 죽게 생겼어! 자네가 날 좀 도와주지그래?>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 협조해!>

김종표는 전보를 구겨서 바닥에 내던졌다.

“이것들이 날 밀어준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내가 이놈들 뒤로 먹인 돈이 얼마며 그 노고가 몇 년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서 등을 돌려?

이제 와서 나 몰라라 도망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뒷배 없이 어떻게 버텨 내라는 거야!

총알마저 다 떨어진 김종표는 막다른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강태수!”

김종표는 으르렁댔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사내의 이름이었다.

마침내 김종표는 결단을 내렸다.

“태양 그룹 본사로 간다.”

강태수와 꼬인 인연 때문에 정치 인생까지 꼬이게 생긴 일이 아닌가.

이 난관을 벗어나려면 꼬인 첫 단추를 찾아 다시 꿰어야겠다.

* * *

태양 그룹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태양 그룹 본사 빌딩은 무려 27층을 자랑했다.

태수는 그곳 꼭대기 층에 위치한 회장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십시오.”

회장실 문이 열리며 비서 송창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종표 대통령 권한 대행께서 오셨습니다.”

태수는 결재 서류를 들여다보며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사각사각 만년필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회장님.”

“일 다 안 끝났습니다. 기다리라고 하세요.”

“당장 회장님을 만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한가하신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 바쁘면 그냥 돌아가라고 하십시오.”

비서 송창준은 조용히 물러났다.

이윽고 회장실 밖에서 욕설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김종표가 억지로 문을 열었다.

“강 회장!”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수는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시간 길게 안 빼앗겠네. 10분이면 돼. 그 정도도 안 되겠나?”

회장실 앞에서 대통령 경호원들과 태양 그룹 비서들이 실랑이를 벌였다는 소식은 바로 경호실에 전해졌다.

김광록이 쿵쿵대며 달려왔다.

“어떤 새끼가 감히 행패를 부려? 너야?”

2미터짜리 거한이 김종표를 내려다보며 눈을 부라렸다.

김종표는 재빨리 외쳤다.

“10분! 10분만 내어 주게! 그러면 다시는 귀찮은 일이 없을 거야! 내가 약속하지!”

“이미 귀찮게 진상 짓을 하고 있구먼. 뭐해? 이 새끼 끌어내.”

김광록이 태양 그룹 경호원들에게 손짓을 할 때였다.

태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건 10분 후에.”

태수가 만년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10분 면담을 허락하겠다는 뜻이었다.

김광록은 묘한 표정으로 태양 그룹 경호원들을 뒤로 물리고는 태수 뒤에 섰다.

김종표는 재빨리 태수에게 다가간다.

“강 회장, 귀한 시간을 내주어서 정말 고맙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해득실로 원한이 얽힌 일은 없으니…….”

원한 얽힌 게 없어?

태수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 회장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 앞에 섰다.

“태양 아파트 말입니다.”

12차선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태양 아파트.

58개 동 중에 12개 동이 완공됐고, 이제 남은 46개 동이 일제히 올라가고 있는 건설 현장이 내려다보인다.

커다란 크레인과 중장비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현장이다.

“덕분에 예정대로 한꺼번에 58개 동 일제히 분양하게 됐습니다.”

김종표가 말을 바꿔서 태양 아파트 1차 분양을 막았기 때문이다.

모델 하우스를 트집 잡아서, 주거민의 소음과 분진 공해 등을 내세워서.

덕분에 쏟아부은 광고료, 분양을 위해 준비했던 모델 하우스, 최대 규모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란 명성도 아직 얻지 못했다.

공사비와 이자 지출은 덤이다.

그러니 이해득실로 얽힌 원한 관계는 없다던 김종표의 말은 틀렸다.

“그건 내가 잘못했네. 내가 어리석어서 자네를 건드렸군.”

김종표는 황급히 인정했다.

구구절절한 변명이 뒤따랐다.

무려 3분이나 변명으로 낭비하는 김종표였다.

“지금이라도 태양 아파트 분양을 막아 놓은 규제를 풀겠네. 그러니 우리 더는 얼굴 붉히지 말고…….”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태수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6분 남았습니다.”

김종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치욕스러웠다.

약자이기에 언제나 머리를 숙여야 하는 상황은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김종표는 늘 강자를 꿈꿨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좋아, 입에 발린 말로 사과한다고 마음이 풀리지 않을 테니 대신 태양 그룹을 위해 미래를 약속하는 게 훨씬 건설적이 사과가 되겠지.”

김종표는 눈알을 굴리며 태수의 눈치를 보았다.

“아까 말했듯이 당장 태양 아파트와 관련된 모든 부동산 규제를 풀겠네. 은행을 압박했던 대출 규제와 투자 제한도 전부 철회하지.”

당연한 소리를 참 개소리처럼 하는 재주가 있었다.

“강남 개발 공사권을 추가로 주겠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대치동보다 훨씬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짓는 거야. 이 정도면 태양 아파트로 얻은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지 않겠나?”

여전히 등을 돌린 채 태수는 아무 말이 없다.

“거기에 추가로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내주겠네. 그럼 자네 마음이 좀 풀리려나?”

현재 서울역을 시작으로 지하철 1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종표는 태양 그룹에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내주겠다고 말했다.

다들 눈독 들이고 있는 알짜배기 공사였다.

‘큰 건설사를 가지고 있는 놈이라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지.’

김종표는 태수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태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기에 김종표는 재빨리 덧붙였다.

“한강 다리 공사까지 맡기지. 한 다섯 개 정도 더 지어야 하니까.”

“…….”

“한국 대학교를 지어 보겠나? 산을 통째로 깎아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캠퍼스를 짓는 거지. 포항에 학교를 지어 봤으니 대학교 공사가 얼마나 짭짤한지는 잘 알겠군.”

“…….”

“고속도로 공사는 어떤가? 사우디에서 고속도로 공사로 이름을 날렸다지? 상하좌우로 두 개를 깔면 되겠나?”

“…….”

태수는 아무런 동요가 없다.

“죄다 쓸모없는 제안뿐이군.”

“좋아, 이 모든 제안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청일은 어떤가? 내가 확실히 청일을…….”

또 시작이다.

태수를 꼬여 내기 위해 이미 김종표는 약속을 했던 적이 있다.

청일의 한청호를 매장하겠다고.

하지만 김종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한청호를 찾아가 뇌물 장부를 건네받는 대가로 대통령 취임 특별 사면을 약속했다.

‘한일권은 내가 상대할 것이다. 김종표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태수는 시계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3분. 용건은 끝났습니까?”

김종표는 속이 탔다.

아니 화가 났다.

“기어이 내 정치 생명을 끊어 놔야 속이 시원하겠나?”

“난 당신의 정치 생명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

원한 관계가 확실한 청일을 들먹이는데도 소용이 없으니 대체 무엇으로 강태수를 설득해야 하는가.

‘당근이 싫다고 하니 채찍을 휘두를 수밖에.’

아쉬울 것 없고 가진 게 많은 자들에겐 당근보다 협박이 훨씬 잘 먹히기도 한다.

“내가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성싶나? 아니야.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내 성미는 잘 알 텐데?”

결국 김종표는 본심을 드러냈다.

은혜는 외면해도 보복은 반드시 한다는 김종표가 아니던가.

애초에 당장의 위기를 넘기려고 사탕발림으로 잠시 속여 넘길 생각이었다.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치욕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었던 터다.

태수가 쉽게 속지 않으니 가면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록히드 게이트 말이야. 자네가 벌인 일이지?

록히드 게이트.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그런 큰 사건이 뜬금없이 터졌을 때 모략가 김종표는 직감적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미국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록펠러와 연결 고리가 있는 남자.

유독 일본에 악의적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수완가.

바로 태수였다.

“서독,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자네 때문에 옷 벗은 권력가가 어디 한둘이겠나. 내가 그들에게 이 일의 주모자를 밝힌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까?”

증거도 없는 추측성 협박이 먹힐 리 있겠나.

게다가 록히드 게이트에 얽힌 각국의 권력자들은 전부 몰락했다.

그래도 이번 헛소리만큼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태수는 웃었다.

“이런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각국에서 일제히 터진 군수 업체의 뇌물 비리 사건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왜 안 터졌을까?”

서독,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모두 군수 업체 록히드 사를 통해 군용 수송기를 구매한 나라들이다.

한국은 휴전 국가로서 매해 국방부 지출 금액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 가 아닌가.

한국의 군용 수송기 매입 과정에선 과연 비리가 없었을까?

“설마 자네…….”

김종표는 그제야 안색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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