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205화 (205/230)

205화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다 (2)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안정우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오늘의 약속을 선언할 겁니다. 석유에 관해서.]

금산의 장준용이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차라리 그냥 자네가 대선에 나가. 그게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이구만.”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그런 생각을 했다.

국민들이 태수에게 마음을 빼앗길 이유는 아주 많다.

잘생기고 젊은 자수성가 재벌 총수에다, 박정환의 치부를 가지고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이 아주 탄탄하다.

만일 눈앞의 이 젊은 남자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꿀꺽.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째서 대선에 안 나가는 거지? 다른 사람을 미는 것보다 자네 스스로가 더 확실할 텐데.”

“누가 저처럼 새파란 애송이를 대통령으로 뽑겠습니까?”

그도 그렇다.

대통령이 되기에 이십 대 후반 청년은 너무 어리다.

아무리 대단한 명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나이가 주는 연륜과 무게감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태수의 진짜 속마음은 달랐다.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짧지. 나는 젊은 나이에 권좌에서 내려와 차기 대통령의 정치적 숙청을 기다릴 생각은 없다. 차라리 드러나지 않은 진정한 권력자가 되겠다.’

미국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들을 손안에서 주무른다는 록펠러를 보고 꾸게 된 꿈이었다.

장준용이 헛기침을 하더니 은근슬쩍 말한다.

“헛, 큼, 험. 자네가 안 나가겠다면 내가 대선에…….”

이 양반은 전생에서도 기업 총수 때려치우고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더니.

이번 생에서도 그 욕망은 못 버리셨군.

태수는 칼같이 장준용의 말을 잘랐다.

“안정우는 한일 대륙붕 조약을 파기하고, 대한민국의 석유 개발 사업을 전심전력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재벌 총수들은 어째서 태수가 안정우를 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거 석유 개발로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면 우리도 같이 안정우를 밀어야 한다는 소린데.’

‘거부하기엔 제안이 너무 달콤해. 국제 시세 대비 15%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얻을 수 있다니.’

‘그 밖의 유조선과 관련된 비용, 세관 관련 비용, 로비 비용 등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될 거야.’

아무리 계산기를 쳐봐도 결론은 같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

더구나 대선 공약 발표로 약속을 보증한다니.

이보다 더 확실한 보증이 어디 있겠나.

[국민 모두가 약속의 증인이 될 겁니다. 이래도 못 믿으시겠습니까?]

대선 공약으로 이런 중요한 사안을 내걸었다면, 반드시 일은 그리 추진될 것이다.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약속을 받아 낼 상대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무려 재벌 총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믿지.]

[만일 훗날 자네가 약속을 어긴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약속을 받아 낼 거야.]

[그 정도 힘은 우리도 있어.]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김종표조차 끌어내릴 수 있는 자들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태수의 얼굴에도 웃음이 비쳤다.

‘이렇게 차기 대선 문제도 한꺼번에 끝냈다.’

이들이 뒤에서 움직인다면 차기 대통령은 그렇게 정해질 것이다.

고작 2,500여 명의 대의원이 결정하는 간접 선거였으니까.

‘내 입으로 한 약속은 지킨다. 지금 이 결정으로 훗날 태양 그룹의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테니까.’

석유 공급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가격 경쟁을 하지 않아도, 싼 가격에 석유를 공급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태양 그룹이 석유를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남의 힘에 의지할 수는 없지.’

호랑이 위세를 등에 업은 여우가 된 태수지만, 언제까지 여우인 채로 만족할 생각 따윈 없었다.

뒷배가 없어지면 위세를 빌어 목소리를 높인 만큼 보복을 몇 배로 받게 되는 법.

‘그 전에 호랑이가 되면 그만이다. 석유를 발판으로. 이제는 시간문제다.’

여우가 호랑이가 되려면 힘을 키울 시간이 필요하다.

태수는 록펠러란 그늘 아래서 그 시간을 벌 생각이다.

‘내 뒷배가 되어 줄 록펠러를 붙잡으려면 석유 공동 개발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지.’

처음엔 록펠러의 탐욕을 피하기 위해 기술 개발비만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바꿔 그녀에게 석유 개발을 같이하자고 제안한 진짜 이유였다.

그래서 태수는 문제의 소지가 될 지분만큼은 끝까지 사수했다.

‘한국의 록펠러가 되어야겠다.’

석유만 온전히 손에 넣게 된다면!

이 나라 최고 권력자들의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힘이 없을 때야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태수의 손으로 이 나라 최고 권력자를 만드는 게 더 빠르다.

태수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골라서.

안정우를 차기 대선 주자로 선택한 이유였다.

* * *

청와대 집무실.

쾅.

김종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씩씩대는 숨소리마저도 심상치 않다.

“강태수! 기어이 네놈이 나랑 맞서겠다고 하는구나!”

금산 호텔 로비에서 겪은 굴욕감에 치를 떠는 김종표.

재벌 총수들을 움직여 자신을 압박했다.

모든 것을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 시건방진 새끼!

“록펠러를 등에 업고 날 짓밟아? 그 자식 때문에 내 정치 생명이 끝날 뻔했어!”

어쩔 수 없이 순순히 석유 개발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 개발 사업권도 승인해야 했다.

또한 송유관 건설 및 굴착기기 지원까지 약속했다.

“나더러 한일 대륙붕 조약을 파기하라니! 기어이 나를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고 뭐야!”

박정환의 밀약 깨는 일을 맡을 수는 없지 않나.

그건 일본 수상과 박정환 사이에 은밀하게 오고 간 거래였다.

그 약속을 자신이 깨면?

일본의 화살은 김종표를 향할 것이다.

“안 돼! 절대로 그럴 순 없다! 지금껏 내가 들인 공이 얼만데!”

일본은 명실상부한 김종표의 지지 세력이었다.

박정환이 김종표에게 실권을 전부 빼앗고, 정치적 입지를 완전히 뭉개 놓아도 버틸 수 있던 이유다.

“두고 봐라, 강태수! 내가 네놈이 원하는 뜻을 이뤄 줄 것 같나?”

석유 개발권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내놓지 않았다면 재벌 총수들 말대로 자신이 자리를 당장 내놔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난 절대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 이 일은 몇 배로 되돌려 주마!”

쾅.

김종표는 주먹을 내려친 그 자세로 멈췄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가 콧김이 되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씩씩댔을까.

김종표는 고개를 들었다.

이글대던 눈빛은 갈무리되었다.

“좋아. 네놈이 원하는 대로 한일 대륙붕에 관한 제2차 회담을 열겠다. 네놈에게 아주 불리하도록 만들어 주지.”

대신 비열한 웃음이 얼굴 가득 맺혔다.

“네가 그리 바라는 석유 개발, 어디 일본의 압력 속에서도 할 수 있는가 보자.”

내가 막지 못했다고 일본도 막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나?

그렇다면 그건 착각이야, 강태수.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이 막강한 강대국이야.

그러니 얼마든지 네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거다.

“반드시 이번 2차 회담을 성사시켜 한일 조약의 발효 시일을 앞당겨 버릴 거야. 제7광구는 한일 공동 조사와 공동 연구가 아니면 누구도 건들 수 없게 될 거야.”

일이 그렇게 되어 버리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설사 록펠러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국가 간의 협약까지 어찌 건들겠나.

“네가 잔머리를 쓸 수 있다면, 나 역시 모략을 짤 수 있어. 게다가 너와 달리 내겐 권력이 있지.”

김종표의 눈이 악독하게 빛났다.

* * *

금산 호텔 로열 스위트 룸.

라흐만이 머문 이후 더욱 화려하게 바뀐 귀빈용 숙소다.

엘리스는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어째서인지 태수는 호텔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

[당신도 와서 앉아요. 아까 멈췄던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 볼까요?]

[바(Bar)에서 대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엘리스는 응접실 테이블 위에 올린 물을 따라 마셨다.

재벌 총수들과의 대화가 이어지자 긴장했던 모양이다.

차가운 물 한 잔에 타던 갈증이 사라졌다.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

[들어와서 말해요. 술은 그만하겠어요.]

[영애, 술은 마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데 왜 바(Bar)를 고집하죠?]

[록펠러 영애의 명예를 위해서.]

지금 모든 신경이 록펠러에게 쏠린 상태다.

재벌 총수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록펠러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오늘의 면담을 전부 거절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이 돌아갔지만, 금산 호텔에 악착같이 남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취재진들이었다.

[…야망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신은 쾌재를 불러야 했어요.]

태수가 그걸 왜 모르겠는가.

[취재진들은 확실하게 막고 있습니다. 기사는 나가지 않을 겁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엘리스는 묘한 눈으로 태수를 보았다.

[록펠러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나와 끈끈해 보이면 보일수록 당신에게 유리해요.]

[알고 있습니다.]

록펠러와 태수가 깊은 사이라고 오해하면 할수록 좋다.

태수가 빌려 쓸 수 있는 힘은 더 커질 테니까.

[록펠러의 여자가 당신과 호텔 방에서 독대한다는 말. 그건 당신에게 흠이 아니라 힘이 될 텐데요. 어차피 다 보여 주기 위한 쇼잖아요.]

[그런 쇼 없어도 권력을 휘두르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아까 보셨잖습니까?]

태수는 가진 권력이 부족하면 남에게 빌려서라도 휘둘러 일을 성사시켰다.

그것도 매우 노련하고 대담하게.

엘리스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확실히 달라.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나와 얽혀 보려고 추문부터 뿌려 대는데.’

이 남자, 정말 마음에 든다.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따르겠어요.]

태수와 엘리스를 금산 호텔 바(Bar)로 올라갔다.

* * *

엘리스가 소파에 앉자마자 말했다.

[당신이 아까 말하려고 했던 두 번째 제안을 들어 보고 싶어요.]

[해상 유전은 제7광구. 즉 제주도 남쪽 해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유전을 개발한 후 산업항까지 송유관을 통해 운반할 겁니다.]

태수가 품에서 서류를 꺼냈다.

<제주도 개발 계획>

[해상 유전과 육지를 이을 파이프라인의 길목이자, 제2의 주베일 산업항이 될 석유 전진 기지, 그리고 휴양지이자 관광과 쇼핑의 메카가 될 도시 개발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해상 유전과 연결하는 송유관을 건설하는 김에 근처 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당신에게 제주도 공동 개발 사업을 제안하겠습니다.]

제주도 공동 개발이라니.

엘리스가 눈 돌린 건설 사업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다른 것도 아닌 석유 전진 기지가 될 산업항 개발이란다.

또한 관광과 쇼핑의 메카이며 휴양과 관광을 대표하는 섬이 될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건설 사업과 석유 개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줄이고, 효율은 높이고, 실적은 돋보이도록. 아주 마음에 들어요.]

태수의 제안은 이번에도 엘리스의 마음을 흔들었다.

엘리스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이 일은 석유 채굴이 확실해지면 결정하도록 하죠. 그런 이유로 묻겠어요. 당신이 재벌 총수들에게 일부러 말하지 않은 말이 있다는 걸 알아요.]

일부러 말하지 않은 말이 어디 한둘이던가.

[석유 개발권을 따냈다고 해도 한일 대륙붕 조약이 얽혀 있어요. 공동 연구와 공동 개발을 골자로 한 조약이죠. 일본이 가만히 있을까요?]

역시 예리하다.

재벌 총수들이 거론하지 않은 문제이건만 엘리스는 허점을 정확히 짚었다.

[하지만 조약은 아직 발효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제7광구는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선포한 지역입니다.]

전생에서 78년 발효되었다.

물밑에서 이뤄지는 한일 조약은 75년 현재 아직 효력이 없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그 임시 대통령이란 사람은 일본과 협상을 아주 잘한다던데요. 그가 일본 정부를 등에 업고 당신의 일을 훼방하려 한다면 어떻게 막을 생각이에요?]

[이번에도 록펠러의 위세를 좀 빌려 보죠.]

태수가 김종표의 행보를 짐작하지 못할 리 있겠나.

김종표가 일본을 움직이리라는 건 예상한 바다.

그러니 그에 대해 미리 철저하게 대비해 놨다.

[일본 전역이 발칵 뒤집힐 초대형 게이트를 터뜨릴 생각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