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201화 (201/230)

201화 호가호위 (3)

금산 호텔 로비에 들어선 정재계 유명 인사들은 깜짝 놀랐다.

금산 호텔 주인인 장준용도 마찬가지로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소란이야?”

순간 피서지에 온 줄 알았다.

금산 호텔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수군댄다.

정신없이 일하던 장서연이 고개를 들어 장준용을 확인했다.

“오셨어요? 보다시피 지금은 좀 바빠요. 위층 홀도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어쩌죠?”

“위층 홀?”

“태양 그룹 강 회장님께서 기다리기 지루하실 거라며 위층 홀을 준비하도록 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기서 태양 그룹 강 회장이 대체 왜 나온단 말인가.

“태양 그룹 강태수 회장님께서 며칠 동안 금산 호텔을 통째로 빌리셨어요.”

“강태수가 호텔을 통째로? 그것도 며칠이나?”

“록펠러 가문 사람들이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 금산 호텔을 이용할 거라고 하셨죠. 그래서 호텔을 비워 주느라…….”

“일이 그렇게 된 거로구나. 경호원들도 그렇고, 투숙객과 호텔 이용 손님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래서 예정에도 없는 환불 전쟁이 벌어진 거였다.

“어려운 결정을 했구나.”

장서연은 태수의 제안을 떠올렸다.

-록펠러의 명성을 등에 업고 금산 호텔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게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최고 호텔이라는 명성을 얻을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장서연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고 록펠러를 위해 호텔을 비우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금산 호텔의 신용이냐, 록펠러 가문이 이용하는 한국 최고의 국빈 호텔이냐. 저는 명성을 택했어요.”

이번 일로써 금산 호텔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급 호텔이란 명성을 갖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재벌 가문 록펠러가 선택한 호텔이 아닌가.

“저는 금산 호텔의 브랜드를 지금보다 더욱 고급스럽게 바꿀 거예요. 대한민국 최고 호텔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어요.”

장서연은 야무지게 대답했다.

“대신 오늘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서는 손님들께 확실하게 사과하고, 손해 이상으로 보상했어요.”

“쌓기 어려운 게 신용이야. 또한 신용보다 더 어려운 게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지.”

장준용은 탄식했다.

“이미 상한 기분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태양 그룹 강태수 회장님이 확실하게 처리하셨어요.”

“강 회장이?”

“강 회장님께서 나서서 직접 손님들께 사과하고, 손님들의 피해를 확실하게 보상하셨죠.”

장서연은 당황해서 허둥지둥할 때, 태수가 나서서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해 주었다.

신속하고 정중한 대응에 손님들도 만족했다.

“우리 호텔에서 일어난 일에 왜 태양 그룹이 발 벗고 나선단 말이냐.”

“저도 같은 것을 물었죠. 그랬더니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태수를 떠올리며 장서연은 웃었다.

“동맹이니까.”

동맹이란 이름으로 태수는 록펠러를 금산 호텔로 데려왔다.

록펠러 사람들의 철저한 경호를 위해 태양 그룹은 저리 많은 경호 인력을 투입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금산 호텔을 비우면서 생기는 문제 수습까지 전부 떠맡았다니.

‘동맹이란 이름이 참으로 무겁고도 뜨겁구나.’

가슴이 끓어올랐다.

장준용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강 회장, 그 친구답군.”

옛날 라흐만 앞에서 무려 10억 달러짜리 입찰을 두고도 태수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 회장님 덕분에 확실히 어필한 것 같아요.”

“무었을?”

“금산 호텔과 태양 그룹의 대응 수준. 그리고 문제가 생겨도 절대로 손님들에게 손해를 주진 않는다는 인식. 명성과 브랜드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고요.”

“많은 것을 얻었군.”

내 이 고마움을 어찌 보답해야 할까.

강태수 그 친구에게는 여러 번 빚을 지는군.

“금산 호텔의 일로 태양 그룹에 폐를 끼칠 순 없지. 강 회장이 내놨던 모든 보상은 우리 금산이 맡는다. 그리 알아라.”

“안 그래도 저 역시 그렇게 대답했어요.”

“잘했다.”

때마침 로비 문을 열고 기다리던 사람이 등장했다.

“전세 버스 도착했습니다!”

“모두 주차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가깝습니다.”

그러자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투숙객들이 주섬주섬 짐을 추슬렀다.

장준용은 어리둥절했다.

“전세 버스까지 대절해서 사람들을 옮긴다고? 어디로?”

“삼청 호텔로. 강 회장님께서 이미 삼청에 얘기해 두셨다고 하던데요?”

장준용이 삼청 그룹 총수 이병춘을, 이병춘은 아들을 돌아봤다.

삼청 그룹 부회장 이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받았습니다. 이제 보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이미 단체 투숙객을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처리해 두었습니다.”

“강태수 그 친구 일 처리가 아주 제법이야. 역시 노련해.”

이건후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아버지가 칭찬을? 정말 드문 일이군.’

삼청 그룹 총수 이병춘은 칭찬에 매우 인색한 사람이다.

더구나 제 밑으로 인재를 거느리려고 하지,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남자라면 아버지도 인정하지 않으실 수 없었을 거야.’

재벌 2세 중에 단연 독보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이건후였다.

하지만 이건후는 강태수만 떠올리면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곤 했다.

강태수는 자신보다 나이도 7살이나 어리고, 가진 것 없이 자수성가로 재벌 기업을 만들어 낸 남자가 아닌가.

‘저 나이에 벌써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그에 비하면 난 아직 멀었지.’

이건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준용이 웃으면서 이병춘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삼청에 신세 좀 지게 됐습니다.”

“별말씀을요. 덕분에 호텔이 꽉 찼으니, 서로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제가 언제고 이 빚은 꼭 갚겠습니다.”

장서연이 다가왔다.

전세 버스로 투숙객들이 대거 이동하면서 한가해진 덕분이었다.

그녀가 위층 홀을 가리켰다.

“위층 홀로 가실까요? 준비가 끝났다고 하네요.”

“홀? 참, 강 회장이 지시했다고 했지.”

“홀에 음식과 음료, 술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급히 마련하느라 부족함은 있겠지만 로비보다는 나으실 거예요.”

태수의 철저한 준비성에 다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준용이 슬쩍 물었다.

“서연아, 그런데 록펠러 가문에서 나온 분은 어디에 계시냐?”

“호텔 바에 올라가셨어요.”

“그럼 나는 잠깐 거기부터 다녀오마. 인사는 해야지.”

눈도장을 단단히 찍을 것이다.

흔치 않은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장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 명령을 내리셨어요. 낭패 당하실 거예요.”

“끄응. 호감을 사려고 인사하는 거다. 괜히 첫인상부터 비호감이 될 수는 없지. 좋다. 홀에서 기다리마.”

그럼 우리 태수가 알아서 록펠러를 소개해 주겠지.

아무렴 나한테 인사 한번 안 시켜 주려고.

그때 김종표가 앞으로 나왔다.

“록펠러 가문 사람이 지금 금산 호텔 바에 있다는 말이지? 내가 먼저 올라가 봐야겠군.”

김종표의 왼쪽에는 주한 미국 대사가, 오른쪽에는 주한 일본 대사가 서 있었다.

김종표를 주차장에서 보자마자 말을 나누기 시작해 대화가 길어졌던 탓에 이제야 로비에 들어선 것이다.

김종표가 통보했다.

“두 나라 대사님들과 동행할 거야. 앞장서서 안내해.”

막무가내 요구에 장서연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준용이 슬쩍 딸 앞으로 나섰다.

웃음 짓는 낯이었다.

“김종표 대통령 권한 대행께서도 우리와 같이 홀에 올라가십시다.”

“바(Bar)로 가지. 난 록펠러부터 만나야겠어.”

“홀에도 술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음식과 함께 곁들이기 딱 좋을 시간이군요. 제가 먼저 한잔 올리겠습니다.”

불청객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록펠러가 책임을 묻는다면 곤란하다.

불쾌한 일을 겪게 되었다는 이유로 록펠러가 당장 호텔을 떠나 버린다면 끝장이다.

그래서 장준용은 김종표의 앞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자네랑 낭비할 시간 없어. 난 바쁜 사람이야.”

“알지요. 지금 이 시국에 대통령 권한 대행께서 얼마나 바쁜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제가 위에 대통령 권한 대행께서 오셨다고 말을 넣어 놓겠습니다.”

“끝까지 날 막겠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김종표가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내 앞에서 집주인 행세라도 하겠다는 건가?”

“집주인 행세요? 지금 다른 이가 통째로 호텔을 전세 냈는데, 제가 어찌 집주인 행세를 하겠습니까?”

“아니라면 비켜.”

김종표가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장준용이 자연스럽게 한 발 따라와 그 앞을 막았다.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록펠러 가문 사람의 심기를 거슬러서 무엇 하려고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말이 내려왔잖습니까. 막무가내로 들어갔다간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장준용이 저리 에둘러 말하는 이유를 김종표가 모르겠는가.

예전이라면 알고도 웃으며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권력의 맛을 들인 김종표가 아니던가.

굳이 참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나 김종표야. 현재 이 나라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지.”

김종표가 싸늘하게 웃는다.

“박정환 대통령이 죽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람이 바로 나야. 또한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이 나라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지.”

박정환이 죽고 국무총리였던 김종표가 전권을 받았다.

박정환이 실무는 맡기되, 실권은 전부 회수했던 예전과는 다르다.

지금 김종표는 이 나라의 권력자가 되었다.

“나는 이 나라 과반 이상의 정당인 공화당 소속이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를 통일 주체 국무 회의 대의원을 ‘선별’할 권한도 가지고 있어.”

박정환은 확실하게 대통령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헌법을 뜯어 고쳤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선거는 고작 2,500명 남짓한 통일 주체 국무 회의를 통해 선출되는 간접 선거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그 대의원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김종표가 가지고 있다.

“난 차기 대통령이 되고자 하네. 무슨 뜻인지 알지?”

아주 높은 확률로 차기 대통령이 되리라는 뜻을 대놓고 비친다.

김종표가 말을 할 때마다 장준용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장준용 옆에 섰던 삼청 그룹 총수 이병춘과 다른 재벌 총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준용, 그런 내가 우스워 보이나? 건방지게 내 앞을 번번이 막아서다니. 내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장준용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금산 그룹도 이제 세무 조사 한번 할 때가 되었던가?”

세무 조사는 기업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자, 권력자들의 압박 수단이기도 했다.

국세청을 움직여 세무 조사를 하면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터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기업은 없다.

“압수 수색 영장 구경한 지 오래됐지? 이중장부 및 회계 장부 조작에 대한 의혹 정도라면 적당한 명분이겠어.”

김종표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장준용도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김종표가 장준용을 스쳐 지나가며 웃음을 흘렸다.

“난 박정환과 달라. 잔인하게 보복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 한 번 찍으면 두 번의 기회는 없어. 알아 두라고.”

김종표는 장준용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장준용은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재계 서열 6위이자 이곳 금산 호텔의 주인인 장준용조차 입을 열지 못하니, 누구도 김종표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자, 그럼 록펠러 가문 사람을 만나 볼까?”

“안 됩니다.”

그런데 김종표의 앞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무려 2미터에 달하는 근육질 거한 김광록이었다.

“위층 홀로 가시죠. 바(Bar)엔 못 갑니다.”

“감히 네까짓 게 네 앞을 막아? 죽고 싶나?”

“우리 회장님 명령입니다.”

“나 대통령 권한 대행이야!”

“난 회장님 명령만 따라서.”

김광록은 꿈쩍도 않는다.

김종표는 볼을 씰룩였다.

“내 앞길을 막은 대가는 무겁다. 자네 목숨값 정도로 끝나지 않아.”

“목숨에 가격 매기는 놈은 쓰레기지.”

“뭐야?”

“아, 실례. 생각이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네.”

참지 않고 김종표가 크게 외쳤다.

“경호실장!”

“예.”

“뚫어!”

“예.”

차기범이 만든 법에 따라 군대에서 차출되어 경호장보를 맡았었다.

헌데 이번에 차기범이 죽으면서 경호실 소속 인원들이 대거 물갈이 되었다.

김종표가 지목한 덕분에 다행히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김광록을 사납게 노려봤다.

“어이, 김 중령. 비켜.”

그는 김광록의 육사 선배이기도 했고, 군대 선임이기도 했다.

오성회 출신이었던 그는 오성회 충성 맹세를 거부한 김광록을 죽도록 괴롭히던 놈이었다.

“그놈의 계급장이 뭔지.”

위계질서가 철저한 군대에서 감히 반기 한번 못 들었다.

몇 년 치 울분만 가슴에 쌓게 만든 바로 그 낯짝을 여기서 만나다니.

김광록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원수는 금산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다더니.”

우두둑.

김광록이 뼈마디를 풀었다.

“우리가 계급장 떼고 붙는 날이 다 오네?”

군대에서 김광록과 일대일로 붙어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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