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93화 (193/230)

193화 내기합시다(1)

내기란 소리에 솔깃한 안정우.

태수는 말했다.

“그들이 사익과 대의 중에 대의를 택한다면 저 역시 더는 어르신을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밀어주지요.”

야당의 거물들이 오랫동안 민주화를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며 불의에 맞선 것도 사실이다.

“반면 그들이 대의 대신 사익을 택한다면 다시는 이런 일로 뜻을 꺾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가겠다고 약속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전생과 비교해 때와 상황이 다르니 한 번 시험해 보려고 한다.

“약속하지.”

“좋습니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상 의원과 김대준 의원을 찾아가 만나 보십시오. 그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는 겁니다.”

“무슨 제안?”

“야당 통합 단일 대선 후보 제안.”

안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르신이 공화당 의원을 데리고 야당에 들어가겠다고 슬쩍 내심을 비추는 겁니다.”

여야가 힘을 합쳐 김종표를 몰아내고 독재 정권을 청산하자는 거다.

안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은 공화당이 과반이 넘은 여대야소 형국입니다. 하지만 어르신 때문에 공화당이 쪼개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소야대가 될 것이다.

노태오가 선거에 나섰을 때와 비슷한 형국이 된다.

공화당이 쪼개지면 야당이 살아나게 될 거다.

“대신 그들에게 민주화를 함께 하자고 요구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어르신이 뜻을 그대로 보여 주십시오. 군부 독재 세력을 청산하고, 친일파를 숙청하고, 군대 내 사조직을 몰아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하자고 말하십시오.”

안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보험을 확대하고, 의무 교육을 시행하고, 문화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 탄압을 철폐하자고 하십시오.”

모두 안정우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어르신과 뜻을 함께하여 야당 단일 후보를 내세우겠다면 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 같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야.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걸세.”

안정우는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었다.

다만 태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대통령 자리에 욕심을 부려 서로 대권을 양보하지 않는다면…….”

전생의 노태오는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두 야당의 거물이 서로 대통령에 대한 욕심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어르신이 이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딱.

안정우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지친 기색이 완연했던 눈이 다시 타올랐다.

“좋아, 그들이 대의를 외면한다면 나라도 이 악물고 가시밭길을 걸어가지.”

태수와 안정우는 동시에 씩 웃었다.

“어차피 김종표가 공화당 의원들을 포섭하고 다니고 있으니 대통령이 되려면 야당에도 물론 손을 뻗어야 합니다.”

둘로 쪼개진 마당에 공화당 의원만으로 선거를 치르긴 힘들다.

‘어차피 김영상과 김대준을 한번 만나야 할 일이었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정치는 정치인에게.

이쪽으로 포섭도 할 겸, 시험도 할 겸.

‘이왕이면 야당의 의원들이 발 벗고 뜻을 함께하면 훨씬 수월하겠지.’

고민은 짧았고, 결심은 빨랐다.

“말 나온 김에 지금 연락하겠습니다.”

“지금?”

안정우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거침없는 추진력을 자랑하는 태수가 아닌가.

행동력은 더욱더 화끈하게 빠르다.

“대선이 코앞입니다. 그들도 어르신을 제대로 만나 보고 싶을 겁니다.”

태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전화를 찾자 의아한 얼굴로 안소정이 돌아본다.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찾으세요?”

“김영상 의원과 김대준 의원과 만나야겠습니다.”

“그거라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안소정이 태수에게 작게 윙크했다.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좋은 소식을 가지고 갈 테니까요.”

김영상과 김대준이 지금 이 시각 이곳 대운각에 있다는 소리였다.

* * *

안정우가 떠났다.

김영상과 김대준을 만나러.

홀로 룸에 남은 태수는 술잔을 기울였다.

‘박정환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던 공화당이 쪼개질 테니 야당의 두 거물은 신이 났겠군.’

박정환은 공화당을 거수기 역할로 쓰고 싶었지 걸출한 인물들이 포진한 연합 세력으로 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공화당에는 걸출한 우두머리가 없다.

자칫 자신에게 반기를 들 세력을 결집하지 못하도록 박정환이 유도한 결과였다.

하지만 박정환이 죽은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공화당의 걸출한 우두머리가 없기에 우왕좌왕 세력은 뿔뿔이 흩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김종표가 대통령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공화당을 단속하려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가 석유 사업을 하겠다는데 화끈하게 밀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안정우뿐이다.

그래서 태수는 안정우를 택했다.

‘이번 기회에 안정우는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정치판에서 낭만을 찾아선 안 된다는 것을.

권력과 이권의 각축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가 쥐여 준 무기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본인이 들고 있을 때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

태수가 먹여 준 한일 조약이 아닌가.

그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휘두르느냐는 본인에게 달렸다.

정치판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

태수는 눈을 감았다.

‘육군 참모 총장이자 합동 수사 본부장 이세후를 만나러 가야겠군.’

일단은 노태오부터.

* * *

금산 호텔 커피숍.

태수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햇살이 뜨겁다.

벌써 7월 여름이다.

“오래 기다렸나?”

이세후가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젊은 사람이 이열치열인가? 이 더운 날에 뜨거운 커피라니. 나는 냉커피로.”

이세후가 모자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냉커피가 나왔다.

이세후는 목이 타는지 단숨에 들이마셨다.

“같은 거로 한 잔 더!”

동동 띄운 얼음까지 와그작대며 먹는 이세후.

종업원이 채 떠나기도 전에 한 잔을 뚝딱 마셨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면서 이세후가 변명처럼 웃었다.

“자네는 덥지도 않나? 밖은 아주 찜통이 따로 없어.”

아직 자동차에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다.

“그래, 나는 왜 보자고 했지?”

“어제 노태오 사령관을 만났습니다.”

“노태오를?”

이세후의 표정이 잔뜩 구겨진다.

“그 친구, 지금 한가하게 자네나 만나러 다닐 때가 아닌데.”

“절 만나러 온 게 아닙니다. 김종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만나더군요.”

“김종표를? 왜?”

“이유가 뭘 것 같습니까?”

태수는 빙그레 웃었다.

이세후는 타는 속에 종업원이 내온 냉커피를 낚아챘다.

탁.

“설마 노태오가 김종표와…….”

“김종표는 대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2의 박정환을 꿈꾸고 있죠.”

“으음, 김종표가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러 다니며 들쑤신다는 건 알고 있네만…….”

“공화당 의원들뿐만이 아닙니다.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들을 물밑에서 접촉하고 선별하고 있습니다.”

“김종표가 왜 노태오를 만났는지 알 것 같군.”

이세후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오성회를 들쑤셔서 또 무슨 작당 모의를 하려고. 군인들 일으켜서 군사 정변이라도 다시 일으키겠다는 거야, 뭐야?”

박정환이 막대한 지원으로 무럭무럭 키워 놓은 오성회를 김종표가 꿀꺽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뭔가.

이세후의 목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전두호의 말로를 보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건가? 노태오 이 새끼는 자중하지는 않고!”

전두호가 무슨 짓을 벌였었나.

무려 국군 장성들을 호텔에 납치, 구금하고 반란을 모의했다.

오성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반란이 아니던가.

“내가 몰라서 군복 안 벗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눈치껏 알아서 처신하란 뜻도 못 알아먹는 얼간이었다니!”

오성회는 이세후에게 치부와도 같았다.

박정환의 눈치를 보며 암묵적으로 눈을 감았던 군대 내 사조직이 아니던가.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군대를 외면했었다.

그런 오성회가 결국 반란을 일으켰으니 군대를 통솔하는 이세후 역시 책임을 통감했다.

남은 임기를 걸고 군대 내 오성회 세력 숙청을 약속했던 이유기도 하다.

“노태오와 오성회는 신경 쓸 것 없어. 내가 그건 알아서 막지.”

아주 시원시원한 대답이었다.

태수의 예상처럼 쌍수를 들고 나서 줄 사람은 이세후였다.

“김종표가 이렇게 안하무인처럼 굴 줄은 몰랐어. 나더러 대통령 암살과 관련한 증거가 명확하니 합동 수사를 이만 종결하라고 하더군.”

왜 안 그렇겠나.

김종표는 얼른 이세후가 주축이 된 합동 수사 본부를 치워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군 세력을 신경 쓰지 않고 멋대로 전횡을 일삼을 수 있을 테니까.

“김종표의 뜻대로 수사 종결하실 생각입니까?”

“어림없는 소리!”

이세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다 있다. 작고한 대통령 각하와 끈을 잘라 버리고 이대로 얼렁뚱땅 빠져나갈 생각인가 본데, 날 아주 수수깡으로 봤어!”

이세후는 얼음을 와그작 깨물었다.

이세후는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군대를 잠식한 좀벌레 같은 오성회. 그것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아 나?”

짐작한다.

“김종표 그놈 머리에서 나왔어. 박정환의 눈에 들고 싶어서 간사하게 잔머리를 굴리는 놈이지.”

괜히 박정환의 지낭이라고 했겠나.

5.16 군사 정변을 설계한 주축 책략가가 아닌가.

“내 김종표에겐 갚아 줄 빚이 꽤 많아. 어디 한번 해 보라고 해!”

이세후가 큰소리쳤다.

아주 든든한 큰소리였다.

* * *

이세후가 떠나고도 태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커피가 전부 식어 버리고, 태수는 한 잔을 더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손님이 금산 호텔 커피숍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이세후를 통해 노태오를 틀어막는 건 됐고. 이번엔 검찰 총장 김차열 차례다.’

대한민국 검찰 총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

김종표와 함께 박정환 4대 의혹에 깊이 관련이 된 남자.

김차열 검찰 총장을 틀어막을 적임자는 따로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내가 먼저 온 줄 알았는데.”

신지수 중앙 정보부 부장이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세후 육군 참모 총장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그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일단 냉수부터. 얼음 동동 띄워서. 여기 생과일 주스도 되지? 난 그걸로.”

7월 초여름인데도 더운 모양이다.

태수는 그가 냉수를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뿐인가. 검찰 총장께서 직접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쌍욕을 퍼붓더군.”

귀를 씻으며 지긋지긋하단 표정을 해 보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겁 따윈 먹지 않았다.

“뭐라고 하던가요?”

“뭐라고 하긴. 죽은 대통령 각하를 모욕할 생각하지 말고 당장 손 떼라고 하지.”

신지수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웃었다.

“김종표와 함께 발을 깊이 담근 게 드러날까 봐 겁을 잔뜩 집어먹었나 보지?”

신지수는 귀를 후볐다.

“짖는 개는 무섭지 않아. 시끄럽기만 할 뿐이지.”

새끼손가락을 튕기며 신지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김종표의 반격이 거세던데. 태양 아파트 분양도 틀어막았다지?”

“그래 봐야 별것 아닙니다. 어차피 58개동 지을 거, 이참에 느긋하게 완성하면 더 쉽고, 빠르고, 돈도 절약할 수 있죠.”

“모든 은행에 전화를 싹 돌렸다던데. 태양 그룹에 대출하지 말라고.”

“처음 겪는 일도 아니잖습니까?”

박정환과 한청호가 써먹은 수법이다.

김종표가 다시 은행을 틀어막는다고 해도 끄떡할 것 없다.

“같은 수로 두 번 당할 수야 없죠. 외국에 나간 김에 그것도 처리하고 왔습니다.”

태수가 인수한 은행에서 충분히 자금 조달할 수 있다.

더구나 한 수가 미국 투자 회사를 통해 자금 세탁도 확실하게 했다.

“듣자 하니 김종표가 국세청을 움직인다던데.”

“태양 그룹 세무 조사를 하겠다는 거죠.”

“괜찮겠나?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기업은 없잖나. 타격이 클 텐데.”

“상관없습니다. 턴다고 먼지 나올 만큼 어설프게 운영하지 않아서.”

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래 봬도 국세청 최우수 등급 기업으로 모범 납세자이죠.”

말 그대로 먼지만 나올 것이다.

“저는 그렇다 치고, 신 부장님께서는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나? 이미 자네 손을 잡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놓고 싶은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왜 그런 당연한 소리를 묻는 거지? 끝까지 같이 가자고.”

검찰의 공세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신지수가 씩 웃었다.

“난 이대로 중앙 정보부가 공중분해 되는 꼴을 손 놓고 두고 볼 순 없으니까.”

태수의 손을 계속 잡겠다는 뜻이다.

“무결한 대통령을 꿈꾸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나. 김종표는 제 비리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우리 중앙 정보부에 뒤집어씌울 생각이야. 어차피 막장이지.”

그럴 것이다.

박정환 4대 의혹 중 하나인 워커힐 사건만 보더라도 중앙 정보부가 손발이 되었으니까.

신지수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하나 꺼냈다.

“이건 자네가 부탁한 거야. 찾느라 조금 애먹었네. 아주 꼭꼭 숨었더라고.”

테이블 위로 쭉 미는 쪽지가 태수 앞에 배달되었다.

“요즘 낚시에 빠져 산다니 거기로 가면 만날 수 있겠지.”

“감사합니다.”

중앙 정보부가 확실히 사람을 잘 찾는다.

태수는 쪽지에 적힌 주소를 똑똑히 확인했다.

<강원도 원주 문막 취병 저수지>

‘팔자에도 없는 삼고초려를 하게 생겼군.’

태수는 웃었다.

‘김정림.’

한청호가 직접 옷 벗긴 청와대 전 비서실장이자 박정환 정권의 실세였던 자를 찾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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