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90화 (190/230)

190화 화려한 생일 파티(3)

엘리스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태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들뜬 기색을 읽어 냈다.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도 당신 작품이라던데요.]

[맞습니다.]

[사우디 동쪽 해안의 고속 도로와 서쪽 해안의 고속 도로도 전부 당신이 계약을 따냈다더군요. 병참 기지 건설과 함께.]

[그렇게 됐습니다.]

[보통 국가 안보 시설에 해당하는 병참 기지는 외국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중요 시설이죠. 거기에 주베일 산업항과 사우디 해군 기지 건설까지. 당신, 재주가 참 좋아요.]

태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하나는 운으로 어떻게 얻어걸릴지 몰라도 그 이후는 실력이죠.]

다른 것도 아니고 병참 기지와 해군 기지 건설이다.

사우디의 중요 군사 시설을 외국 기업에 맡겼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만큼 사우디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이죠. 사우디 왕자가 저리 적극적으로 나올 만큼.]

[라흐만 님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조금 있어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사우디 왕실에서 훈장을 주진 않아요. 외국에 배타적이고 사회 자체가 폐쇄적인 나라이니 외국인 훈장 수여는 더욱 드물죠.]

[록펠러가 사우디 훈장에까지 신경을 쓰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사실 태수의 사우디 훈장은 한국에서나 크게 떠들었지 외국 신문에는 귀퉁이에나 실릴까 말까 할 정도로 별것 아닌 기삿거리였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에요. 석유 재벌인 록펠러 가문 사람들은 사우디 소식에 신경을 많이 쓰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사우디 일에 촉각을 세우다가 강태수란 남자에 대해 듣게 되었다.

엘리스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정보로 넘겼었다.

하지만 가주 앞으로 날아온 극비 정보를 읽은 이후.

엘리스는 강태수란 남자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훈장을 받은 이유가 남다르던데요. 위조지폐.]

허리 벨트를 채우던 태수가 움직임을 멈췄다.

[사우디 재경부 장관을 위조지폐로 엮다니, 그런 생각은 어떻게 했나요?]

역시 속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과연 록펠러의 정보 수집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디 왕실의 비화를 함부로 말할 수 없는지라 태수는 시치미를 떼었다

[운이 나빴습니다.]

[운이 나빴는데 어떻게 훈장까지 받게 됐죠?]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려고 뇌물을 썼는데, 하필이면 위조지폐가 들어 있었지 뭡니까.]

사우디 국왕의 공식적인 변명을 끌어다 붙였다.

엘리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겠죠.]

뇌물 수수와 위조지폐를 유통하고도 훈장을 받을 리 없지 않은가.

더구나 록펠러 가주 앞으로 날아온 극비 정보를 우연히 읽은 엘리스다.

<사우디 재경부 장관이 위조지폐 유통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국외 추방당했다>

<사우디 재경부 장관의 비밀 금고는 강태수의 손에 넘어갔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엘리스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옥상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라흐만의 눈이 가늘어졌다.

[밑에서는 광란의 파티가 벌어졌는데, 둘은 여기서 뭐 하나? 혹시 내가 눈치 없게 데이트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

[헛소리하지 말아요. 그런 거 아니니까.]

엘리스는 오만하고 고고한 자세로 라흐만을 보았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죠?]

[일은 무슨 일. 도망간 친구 잡으러 왔습니다.]

라흐만이 태수에게 다가가며 씩 웃었다.

[약속했지. 내 지인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그러고 보니 라흐만이 그런 말을 했었다.

[젊은 사람들끼리 즐겁게 놀다 보면 중요한 얘기도 나오고, 도움되는 정보도 나오고.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정재계 인사들이 사모임을 갖는 이유였다.

그리고 전생에 태수가 1층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닌 이유였다.

[3층에서 모였어. 자네가 끼면 좋을 것 같아서. 록펠러 영애께서 사라져서 아쉬워하던 참인데, 마침 잘됐군.]

라흐만이 허겁지겁 옥상까지 찾아온 이유를 짐작했다.

태수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큰 맘 먹고 레드 와인 땄다. 자네가 어렵게 구한 최고급 와인을 남들 입에만 처넣고 있어. 지금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지고 있어.]

입맛을 다시며 라흐만이 태수를 재촉한다.

태수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슬쩍 작게 말한다.

[로스차일드에서도 사람이 왔어. 그뿐만 아니라 베어링, 모건, 골드만 리먼의 친구들도 소개해 주지.]

생일 파티에 참석한 가문이 참으로 화려하지 않은가.

그런 이들은 전생에서 태수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안면을 익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좋습니다.]

[내 자네 자리는 내가 미리 따로 빼 두었지.]

라흐만이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엘리스를 돌아봤다.

[록펠러 영애도 함께 가면 좋을 텐데. 그것까지는 강권할 수가 없군.]

라흐만은 더 권하지 않았다.

엘리스가 사교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엘리스가 태수를 힐끔 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태수와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다.

태수가 어떤 사람인지 옆에서 지켜볼 기회였다.

[어? 영애가 참석한다면 나야 아주 영광이지.]

라흐만은 얼떨떨한 얼굴이 됐다.

아까도 라흐만의 생일이라고 인사만 하고 도망치듯 사라진 엘리스가 아닌가.

솔직히 록펠러 가문에 초대장을 보낼 때도 그녀가 오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라흐만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씩 웃었다.

[어, 음……. 이거 굉장히 좋은 소식이로군. 다들 기뻐하겠는데?]

뛰어난 미인이자 콧대 높은 록펠러 가문의 직계인 엘리스 록펠러.

많은 남자가 그녀와 친교를 다지고 싶어 했다.

그녀가 드물게 파티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놀겠다는 뜻까지 비쳐 왔으니 초대자로서는 당연히 기뻤다.

[친구, 어서 가자고. 영애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라흐만이 막무가내로 태수의 손을 잡고 끌었다.

옥상에서 3층 홀까지 내려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 * *

‘정말 흥청망청 잘 노네. 라흐만이 왜 광란의 파티라고 했는지 알 것 같군.’

1층 무대에서 눈부신 조명 아래 록 밴드가 축하 공연을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쪽이 전체 연령가라면 이쪽은 15금이다.

아니, 어쩌면 19금.

일단 조명부터가 성인용 클럽이었다.

[휘이익-!]

[더 과감하게 흔들어 봐!]

3층에 따로 마련된 무대에서는 몸매가 끝내주는 스트리퍼의 차지였다.

무려 세 명의 스트리퍼가 봉을 붙들고 몸을 흔들어 댔다.

1층 무대에서는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지고, 꽃종이가 날아다녔다면 3층 무대에서는 음흉한 휘파람과 돈다발이 날아다녔다.

1층에선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는데, 3층에선 술을 마시고 있다.

[저치들은 왜 저기서 지랄이야?]

한쪽 구석에서는 술에 취한 젊은 남녀들이 붙어 있다.

라흐만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내가 객실 배정해 줬으면 적당히 예의를 지켜 줘야지. 내가 생일 파티 열었지 난교 파티 열었어?]

라흐만이 손짓하자 베두인족 경호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경호원들은 술에 취한 남녀들을 끌고 조용히 사라졌다.

배정된 객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될 것이다.

[어머.]

비틀대며 다가오던 여자가 일부러 태수의 품에 폭 안겼다.

그녀가 들고 있던 칵테일이 태수의 소매를 적셨다.

[미안해요. 어떡하죠? 이거 세탁해야 할 것 같은데.]

여자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옷을 닦아 주는 척 문지른다.

섹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태수의 팔을 쓰다듬는 여자.

독한 향수 냄새가 푹 끼쳐 올랐다.

불쾌했다.

[어때요? 나랑 같이 잠깐 밖에 나가서…….]

[됐습니다.]

태수는 말없이 그녀를 밀어냈다.

여자는 당황해서 태수의 팔을 잡았다.

[세탁비 제가 낼게요. 그리고 미안하다는 사과의 의미로…….]

[됐습니다. 사과받은 셈 치죠.]

[아니, 옷이 이렇게 얼룩이 졌는데……. 아니, 이봐요.]

태수가 성큼성큼 걸어가 버린다.

여자가 다시 태수를 잡으려고 하자 2미터의 거한 김광록이 슬쩍 그녀의 팔을 막는다.

“꺼져.”

말은 통하지 않아도 뜻은 통하는 법.

겁에 질린 여자가 얌전히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라흐만이 태수에게 슬쩍 웃었다.

[왜? 제법 아름다운 미인이던데.]

[제 스타일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태수에게 부딪쳐 오는 여자가 계속되는 거다.

아무리 사람들이 붐비는 3층 홀이라지만 벌써 네 명이나 여자가 태수를 붙잡았다.

라흐만이 키득키득 웃었다.

[좋겠어, 인기가 많아서. 아까 그 여자는 꽤 유명한 모델이던데.]

[놀리십니까?]

[놀리다니. 부러워서 하는 소리야.]

하나도 부럽지 않은 얼굴로 저런 소리를 하다니.

[내 눈치 볼 것 없어. 자네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바로 올라가도 좋아. 까짓거 일 얘기야 내일 날 밝고 해도 안 늦어.]

라흐만의 농담에 태수는 피식 웃었다.

[여자 때문에 라흐만 님을 귀찮게 할 수는 없죠.]

[왜? 내 생일 파티는 일주일이나 계속되는데. 사내 녀석들이야 내일도 만나고 모레도 보면 그만이지.]

태수는 문득 엘리스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태수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여자와 부딪쳤다면 엘리스는 여러 남자와 부딪쳤던 탓이다.

엘리스의 경호원이 험악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라흐만 님은 내키지 않는 자리를 억지로 권할 분이 아닙니다.]

[신경 쓸 것 없어요.]

엘리스는 다시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다.

작게 찌푸렸던 눈살도 편 이후다.

하지만 표정이 괜찮다고 기분까지 괜찮은 건 아니었다.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명문 가문 도련님들은 낮에는 극히 단정하고 예의 바르지만 밤이 되면 다르다.

힘 있고 돈 있는 젊은 남자들이 즐거움에 몰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술 취한 개새끼들이 달라붙는 건 딱 질색이야.’

그래서 엘리스는 좀처럼 밤에 열리는 파티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엘리스의 뒤를 따르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경호원은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가씨가 저 남자를 은근히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말이야. 괜한 생각인가?’

김광록이 슬쩍 태수를 향하는 시선을 몸으로 막았다.

“내가 다 이겨.”

미군 애들이랑 한두 번 붙어 본 줄 아냐?

김광록이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는다.

아주 든든했다.

마침내 인파를 헤치고 3층 가장 좋은 자리에 도착했다.

최고급 양복을 잘 차려입은 부티 나는 명문가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다.

[이게 누구야? 아까 나가기에 다신 못 볼 줄 알았더니.]

[엘리스, 여기에 앉아. 레드 와인이 아주 좋아.]

[사우디 왕자님이 제대로 한 건 물고 왔는데?]

낄낄대는 명문가 도련님들은 술기운이 거나해 보였다.

테이블 위에 빈 양주병과 레드 와인 병을 보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앉지.]

라흐만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제 옆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그러자 명문가 도련님들이 혀를 찼다.

[록펠러 영애를 따라 나가더니 데려온 이유가 있었군.]

[라흐만 록펠러 영애와는 언제 이리 친해졌어?]

당연히 라흐만의 옆자리에 엘리스 록펠러가 앉을 것이라 생각하는 투였다.

그런데 라흐만의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내가 자리 맡아 뒀다고 했지? 자네 자리야. 내 지인들을 소개해 주지.]

엘리스 록펠러가 아니라 태수에게 자리를 권하는 게 아닌가.

명문가 도련님들이 모두 엘리스와 태수, 그리고 라흐만을 번갈아 봤다.

[뭐해? 앉지 않고. 계속 멀뚱하게 서 있을 거야?]

[록펠러 영애께 자리를 양보하죠. 저야 저쪽 빈자리에 앉아도 그만입니다.]

[나 라흐만의 절친을 그런 구석 자리에 앉힐 수야 없지. 사양할 것 없어.]

엘리스가 합세했다.

[파티의 주인공을 무안하게 만들지 말고 앉아요. 내 자리는 내가 만들어요.]

태수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보고 엘리스가 말했다.

[그 자리, 양보해 줬으면 싶은데요.]

[아, 네.]

엘리스 록펠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나.

남자가 자리를 비켜서자 엘리스가 냉큼 그 자리에 앉았다.

라흐만과 엘리스가 동시에 제 옆자리, 그러니까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앉아.]

[앉아요.]

태수는 피식 웃더니 성큼성큼 걸어가 두 사람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왼쪽에는 라흐만 오른쪽에는 엘리스 록펠러를 끼게 된 태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태수를 보았다.

‘라흐만이 내내 비워 뒀던 자리의 주인공이라.’

‘파티를 질색하는 록펠러 공주님이 옆자리를 권하는 남자가 있다니.’

‘허우대가 멀끔하고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게 더 짜증 나네.’

‘대체 누구지? 뭐 하는 놈이야?’

많은 감정이 담긴 시선들이 쏟아졌다.

놀람, 흥미, 관심, 의문, 질투, 못마땅함에 의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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