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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188화 (188/230)

188화 화려한 생일 파티(1)

태수는 정원의 푸른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라흐만 님께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째서 사우디에 왔는지.]

[석유 때문에 왔다지?]

[네.]

[라흐만이 입장을 잘 설명했다고 들었다.]

공무원으로서, 사우디 왕족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칼리드가 정원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5년만 기다리게. 지분 정리가 끝나면 원조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만큼은…….]

[OPEC.]

태수가 칼리드를 보았다.

[석유 수출국 기구에 대한민국의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태수의 청은 뜻밖이었다.

하지만 석유 수출국 기구의 영향력과 텃세를 생각해 볼 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산유국임에도 OPEC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는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은 석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국제 사회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뭉쳐 있는 이익 집단은 강하지. 특히 석유라는 절대적인 자원을 가지고 있을 땐 더욱더.’

태수가 칼리드를 만나는 이유다.

[OPEC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건가?]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를 생각해 보면 제가 왜 이러는지 알 겁니다.]

[일본, 중국, 북한, 소련. 그리고 미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특히 일본과는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일본은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건 물론이고 국제 사회에서 여러 방면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골치 아픕니다.]

[좋아.]

칼리드는 흔쾌히 대답했다.

[사우디 국왕으로서 약속하지.]

OPEC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우디다.

또한 석유에 대한 국제 사회의 자원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OPEC의 위상과 영향력 역시 높아진다.

‘좋았어.’

이제 하나만 남았다.

석유 채굴의 기술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곳.

‘정유 회사 관계자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태양 그룹은 석유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 * *

칼리드는 떠났다.

정원에 홀로 남겨진 태수는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5년이라…….’

사우디의 원조를 기다릴 수 있을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80년대만 되어도 국제 사회는 경제 수역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

그런 경우 일본과 다툼으로 사업 자체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코 늦출 수 없는 사안이다.

‘박정환과 사우디 재경부 장관의 금고를 턴 돈으로 인수한 세계 은행들. 그것들을 통해 어떻게 자금을 긁어모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태수는 턱을 쓸었다.

‘자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한다고 해도 기술은 안 돼. 어떻게든 기술 협조를 얻어 내야 해.’

아직 대한민국은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

태수가 전문가를 수소문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똑같다.

‘록펠러.’

30대의 젊은 나이에 미국 석유의 90%를 독점하고, 더 나아가 세계 석유의 95%를 지배했다는 석유왕.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소유했다고 일컬어지는 남자다.

‘록펠러 가문에서 라흐만의 초대에 응할까?’

록펠러는 1983년에 태어난 19세기 사람이다.

향년 만 97세를 살고 죽은 해가 1937년.

스탠더드 오일을 34개 회사로 쪼갠 후에 더욱 많은 부를 손에 쥐게 된, 세계 최고의 대재벌이다.

‘록펠러의 손자인 넬슨 록펠러는 뉴욕 주지사를 거쳐 현재 미국 부통령이지.’

한마디로 미국의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는 대부호 가문이다.

‘록펠러가 솔깃할 미래 정보는 뭐가 있을까.’

태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쓸 만한 정보를 떠올렸다.

* * *

사우디 리야드에 위치한 칼리드의 저택은 말 그대로 대저택이었다.

부지 7만7천 제곱미터, 연면적 3만1천 제곱미터.

침실 및 객실 775개, 직원 침실 188개, 사무실 92개, 욕실 178개.

수영장, 영화관, 수술실 및 보석 작업장, 의상 제작실 등.

사우디 국방부 장관이었던 만큼 커다란 연무장과 훈련 시설까지 전부 갖추고 있다.

이곳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감탄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사우디 국왕의 집이군.”

“사우디 궁전보다도 규모 면에서 더 큰 것 같죠?”

“안보와 보안을 중시하던 장군의 집이라 여태 개방되지 않았었는데, 오늘 눈 호강을 하는군요.”

외부에 거의 개방되지 않았던 대저택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바로 사우디 국왕의 후계자, 라흐만의 27번째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열기 때문이다.

오늘 파티의 주인공은 평소보다 훨씬 화려한 의상으로 몸을 단장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릴 정도다.

[라흐만 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라흐만 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귀빈들이 라흐만의 생일을 축하했다.

군용 수송 트럭이 오고 가던 너른 주차장엔 명품 차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헬기 선착장에도, 경비행기 활주로에도 몇 대가 착륙하였다.

‘두바이에서 열었던 파티보다도 훨씬 성대하군.’

오죽하면 태수까지도 혀를 내둘렀을까.

청일이 세계 200대 기업으로 도약한 이후로 무수한 초대를 받았던 태수였다.

하지만 70년대에 이 정도로 호화롭게 파티를 여는 곳엔 다녀 본 적이 없었다.

‘사우디 국왕의 아들이며 후계자로 지목되기 때문이겠지. 돈과 권력의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똥파리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사방에서 돈 냄새가 진동한다.

태수에게 돈 냄새를 풍길 정도의 거물들이 많다는 뜻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라흐만 님.]

태수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생일 선물이 변변치 않습니다.]

[자네는 빈손으로 와도 좋아.]

태수가 손짓하자 김광록과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트럭에서 물건을 내린다.

라흐만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게 뭐지?]

[와인 냉장고입니다. 라흐만 님 집과 공관, 그리고 칼리드 님 저택에 들여놓을 수 있도록 넉넉히 가져왔습니다.]

[와인 냉장고? 그런 물건도 있었나?]

[먹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는 와인 전용 냉장고입니다. 이번에 태양 전자가 만든 신제품이죠.]

[별걸 다 만드는군. 냉장고도 흔치 않은 세상에 와인 냉장고라니.]

[아마 써 보면 만족도가 달라질 겁니다. 사우디 기후상 지하에 와인 셀러를 마련해도 온도를 맞추기 쉽지 않잖습니까.]

와인은 온도에 민감한 주류다.

라흐만이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바로 레드 와인이었다.

[이왕 아껴 마시는 와인,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좋아, 마음에 들어.]

태수는 이번에 다른 쪽을 보았다.

하인들이 조심스럽게 들고나오는 것들은 태수가 종류별로 사 온 레드 와인이었다.

[로마네꽁띠, 도멘 조르쥬 루미에 뮈지니 그랑크뤼, 도멘 조르쥬 자이에 에쎄조, 로멘 르로아 샹베르탱, 도맨 뒤 꽁트 리저 벨에어라 로마네, 스크리밍 이글, 라타슈, 페트뤼스, 도멘 르로아 리쉬브르.]

태수의 입에서 최고가 와인 브랜드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럴수록 라흐만의 입이 귀에 걸렸다.

[와인 냉장고에 넣어 놨다 ‘몰래’ 드십시오. 가뜩이나 사우디에서 구하기 어려우실 텐데요.]

기본적으로 사우디는 금주국(禁酒國)이다.

술 들여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제 보니 아주 세트로 준비해 왔군그래. 강태수, 네가 최고다. 하하하.]

빨리 마셔 보고 싶은지 군침을 삼키는 라흐만.

와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펑- 퍼퍼펑- 펑-

꽃 종이가 사방에 날아다니고, 하늘에선 불꽃놀이가 터졌다.

라흐만의 생일 파티는 정말로 화려했다.

세계적인 가수들이 축하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무대를 두고 모여든 사람들은 열띠게 호응했다.

전부 라흐만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많이도 모였어. 강남에서 제일 큰 클럽 피크 타임 때를 보는 것 같군.’

적어도 3천 혹은 4천 명은 모인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음료를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다.

반면 태수는 한적한 옥상에서 레드 와인을 마시며 1층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신 건 손에 꼽는군.’

회귀한 이후로 언제나 바빴다.

태수가 술을 마신 이유는 대부분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상대의 의중을 살펴야 했고, 내 뜻을 피력해야 했고, 뜻을 함께하길 독려해야 했다.

‘지난 생에서도 늘 바쁘게 일만 했는데, 이번 생에서까지 그렇게 살았다니 나도 참.’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전생에선 청일을 키우기 위해, 이번 생에선 태양 그룹을 키우기 위해.

청일에 복수하기 위해서 달렸고, 성공하기 위해서 달렸다.

‘이번엔 석유를 위해. 천천히 가면서 즐기며 살겠다고 한 다짐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군.’

태수가 악착같이 지켰던 것은 가족과 복수였다.

청일의 기둥인 한청호를 무너뜨렸으니 청일은 서서히 무너져 갈 것이다.

경영에 재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한일권이 차기 총수로 앉을 테니 더욱더 빠르게 붕괴될 것이다.

[우와아아-!]

[퀸이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퀸까지 불렀어? 퀸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용케도 데려왔군.”

태수는 와인을 마시며 눈을 감았다.

들려오는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회귀한 이후 처음 제대로 듣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로 여유 없이 살았구나.’

4인조 록 밴드인 퀸은 세계적으로 히트한 그룹이었다.

[레드 제플린!]

[우와아아-! ]

연이어 4인조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무대가 이어졌다.

딥 퍼플과 블랙 사바스와 함께 70년대 하드록, 헤비메탈을 이끌었던 3대 록 밴드였다.

‘확실히 젊은 사람들은 록 밴드를 좋아하지. 라흐만이 아주 콘서트장을 만들어 놨어.’

사람들은 모두 무대 근처로 몰려들어 환호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1층 홀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인맥을 넓히는 자들도 많다.

유능하고 똑똑한 친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라흐만은 생일 파티에서 유명 인사들과 친교를 잔뜩 맺어 두라고 했지.’

반면 태수는 홀로 옥상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나 역시 전생에는 저들처럼 바쁘게 돌아다녔어. 이렇게 마음 편히 술 한 잔할 여유가 없었지.’

그렇게 쌓은 인맥.

결국 태수에겐 아무 쓸모도 없었다.

청일 그룹 키우는 데만 좋았지 태수 개인에게는 별 도움도, 의미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국은 이득에 따라 맺어졌다 끊어지곤 하는 얄팍한 이해관계였다.

저런 사람들 한 트럭보다 라흐만 한 명이 더 낫다.

‘술자리에서 비즈니스가 성사되는 건 흔한 일이지. 하지만 오늘은 영 내키지 않는군.’

라흐만의 생일 파티는 3일에 걸쳐서 열린다.

생일 전야제, 당일, 다음 날까지.

‘좋군. 다음엔 우리 집에도 수영장을 만들어야겠어.’

태수는 특히 이 옥상 수영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풍덩.

시원했다.

태수는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펑- 퍼퍼펑- 펑-

수시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

수영을 마친 태수는 물 위에 떠서 한가롭게 불꽃놀이 구경을 했다.

사우디의 밤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음?”

태수는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것인지.

태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금발에 뚜렷한 이목구비, 늘씬한 몸매까지.

굉장한 미인이었다.

[안목이 좋군요. 명당자리를 선점하셨어요.]

태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엄청난 돈 냄새.’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돈 냄새를 풍기는 여자였다.

독한 향수를 뒤집어쓴 것처럼 황홀한 돈 냄새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녀의 꼿꼿한 자세에서 자신감과 위압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당신이 록펠러 가문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다고 들었어요.]

‘록펠러?’

태수가 여자를 다시 봤다.

그러니 이렇게 돈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건가.

[록펠러에서 나오셨습니까?]

[엘리스 록펠러예요. 석유왕의 4대 자손이죠.]

촤아.

태수가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베스 타월을 허리춤에 묶으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태수입니다.]

[알고 있어요. 사우디 국왕을 통해 록펠러 가문을 호출한 남자.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 당신과의 만남을 적극 추천하시더군요.]

라흐만이 올려보냈다는 뜻이다.

어째서 명당 중의 명당인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알게 됐다.

[불쾌하셨습니까?]

[전혀. 다만 당신과 나눌 이야기에 따라 내 불쾌 여부는 최종 결정될 거예요.]

불쾌하다는 감정까지도 이성적 판단 아래 결정하겠다는 여자라니.

상당히 특이한 여자였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사우디까지 왔는데 빈손이라면 불쾌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겠지.’

그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엘리스는 태수를 똑바로 보았다.

[사우디 왕자의 생일 따위에 록펠러가 응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이유는 뭘 것 같나요?]

엘리스가 방긋 웃었다.

[대한민국의 해상 유전. 아주 흥미로운 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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