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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178화 (178/230)

178화 새로운 시대의 주역(3)

태수는 피식 웃었다.

돈 냄새는 어떤 건지 알아도 권력 냄새는 모르겠다.

“고작 100위권 재벌 애송이에게 무슨 권력 냄새가 나겠습니까?”

“고작 100위권 재벌 애송이? 진짜로 그렇게 믿는 건 아니겠지? 자네는 너무 커 버렸어.”

태수가 아무리 겸손을 떨어도 변하지 않는 결과다.

안정우는 호언장담했다.

“잘 생각해 보게. 자네 손에 들린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직접 사용하여 전면에 나설지, 아니면 남의 손에 쥐여 주고 뒤에서 흔드는 흑막이 될지 결정하란 뜻입니까?”

“이왕이면 난 자네가 새 나라 새 시대를 이끄는 주역이 되었으면 좋겠어.”

안정우는 호탕하게 웃었다.

“기대되는군.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몹시 기다려져.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믿는다.”

태수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 이세후를 만나 보고 결정해야겠군. 전두호처럼 대통령 암살 사건을 핑계로 정권을 장악하면 곤란한데.’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늦은 밤 실례하겠네.”

육군 참모 총장이자 계엄 사령관 겸 박정환 암살 사건 합동 수사 본부장 이세후였다.

* * *

“감사 인사부터 해야겠네.”

이세후가 태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태수는 그 손을 잡고 악수했다.

“먼저 혼란한 와중에 내 목숨을 구해 주어 고맙네. 진심이야. 자네가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청일 호텔에서 이세후는 수면제에 당해 억류되어 있었다.

정신을 잃고 제압당한 그를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찾아 보호했다.

다른 국군 장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군. 어처구니없이 죽을 뻔했어.”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오성회를 몰아내고 방어선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장성들이 일시에 떼죽음을 당할 뻔했다.

그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이세후였다.

“별말씀을요. 자리에 앉으시죠.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지.”

이세후가 자리에 앉았다.

태수가 차를 내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김종표 대통령 권한 대행이 이곳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들었네. 마침 그자가 이곳에서 나가는 모습도 봤고.”

“예, 잠시 있다 가셨습니다.”

“그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아. 그래서 온 거야.”

이세후가 한숨을 쉰다.

“박정환 치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덮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자 역시 같은 정보를 얻었어. 정보 통제가 부족했던 내 불찰일세.”

대통령 암살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을 노련한 정치가인 김종표가 어찌 모를까.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물건이 탐나십니까?”

이세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정치에는 관심이 없네.”

뜻밖이었다.

이세후가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을 탕탕 두드린다.

-전두호 보안 사령관이 군대 내 사조직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키다!

-군에서 무기를 반출하다! 군대 내 사조직, 이대로 둘 것인가!

“군대는 나라를 지켜야지. 군인이 제 소임을 저버리고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정치판에 끼어들어? 안 될 일이지.”

이세후가 숙청의 칼을 뽑아 들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내게는 남은 소임이 있어. 육군 참모 총장 군복을 벗기 전에 이 나라 군대를 좀먹는 비밀 사조직 뿌리는 뽑고 가야지 않겠나.”

오성회 척결.

과거 전두호와 노태오로 이어졌던 군사 정권 시대가 지고, 김영상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었다.

‘그가 군대를 재편한다면 과거보다 역사 청산이 15년은 빨라지겠군.’

군이라는 세력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해서는 안 된다.

군대 최고 우두머리로서 이세후는 어깨가 무거웠다.

“군인은 나라를 지킨다. 정치인은 나라를 바로 세운다. 경제인은 나라를 발전시킨다. 각자 맡은 바 소임에 충실히 해야지.”

이세후가 웃으며 태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대통령 암살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건 나일세. 자네는 내가 지켜 주겠네. 내가 이 사건을 담당하는 한 그 누구도 자네를 물고 늘어질 순 없을 거야.”

그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권한 대행이라고 해도.

이세후의 손은 뜨거웠다.

“그러니 자네는 자네 길을 가. 이 나라를 함께 지탱해 보자고.”

태수는 말없이 이세후를 보았다.

“그 말을 해 주려고 왔네. 군부 독재로 얼룩진 이 나라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야.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에 휘둘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이세후는 안심했다.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네.”

이세후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군대는 장군만 믿겠습니다.”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

대통령 자리보다 육군 참모 총장으로서 군 정비를 택한 이세후.

“장군, 그렇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 무슨 부탁인가?”

“장군께서 맡고 계신 합동 수사 본부의 이름으로 기자 회견을 하고 싶습니다.”

“기자 회견을?”

이세후가 놀란 얼굴을 한다.

하지만 이내 태수의 뜻을 알았는지 씩 웃는다.

“말만 해. 그깟 기자 회견, 자네가 원할 때 언제든 열어 주지.”

“감사합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세후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 * *

성북동 대운각.

정재계 인사들이 이용하는 고급 요정이며 안소정이 운영하는 비밀 정보 집단이다.

태수와 안정우는 이곳에서 술을 마셨다.

안정우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것 보라지. 자네가 있는 곳은 문턱이 여럿 닳았을 거야.”

“놀리십니까? 피곤해 죽겠습니다.”

“이제 내 말을 믿겠지? 고작 100위권 재벌 애송이를 찾아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달려들고 있지 않나.”

거물급 정치인들은 원래 정보가 이렇게 빠른가.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너 나 할 것 없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야당의 거물이라는 김영상과 김대준까지 전부 찾아왔다.”

목적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 나라를 위해 그 물건을 내주었으면 좋겠네.

-내가 썩어 빠진 정치판을 바꾸어 놓을 것을 약속하겠네.

이세후의 우려처럼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이 쏟아졌다.

“심지어 금산의 장준용까지 찾아왔으니 말 다 한 거 아니겠나?”

전생에서도 재벌 총수직을 내려놓고 대선 주자로 뛰어들었다.

돈을 처먹으면서도 재벌을 주머니 혹은 개 취급밖에 안 해 주는 게 열 받는다나 뭐라 나.

들인 돈 대비 보상이란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양반이 아닌가.

태수를 보자마자 황당한 소리부터 했다.

-내 딸 줄 테니까 매국노 증거랑 바꾸자!

-내가 대통령 되면 금산만큼 태양 그룹도 밀어줄게, 사위!

얼굴을 붉힌 장서연이 술 취한 장준용을 질질 끌고 갔다.

김 비서가 한숨을 쉬면서 연신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나 같은 경영인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 경제가 발전할 거 아냐!

끌려 나가면서도 당당하게 외치던 장준용이다.

여지없이 가는 길마다 황금 명함이 뿌려졌다.

김 비서는 태수 한정 술주정이라며 부끄러워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네의 물건을 탐내는 자들이 적극적으로 달라붙을 거야.”

“압니다.”

“이대로 두고 볼 텐가? 똥파리들이 우글우글 꼬일 텐데. 자네는 그런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싫어합니다.”

쓸모도 없는 똥파리가 붙어 봤자 귀찮기만 하다.

“하지만 저는 그 귀찮음을 잠시 감수하려고 합니다.”

“무얼 위해서?”

“태양 그룹을 위해서.”

태양 그룹이 아니었다면 굳이 감수하지 않을 귀찮음이다.

전생에 청일 그룹 총수 노릇을 할 때와는 다르다.

태양 그룹은 아직 재벌 기업으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 이번 기회에 태양 그룹의 정치적 영향력을 드러낼 생각입니다.”

재벌이 어째서 재벌인가.

돈이 많으면 다 재벌이라고 인정해 주나?

아니다.

돈만 많으면 졸부 취급하지 재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재벌은 그만큼 대외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따로 명명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먼저 꼬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 주변에는 돈과 권력이 따라붙습니다. 그걸 다른 사람들은 어찌 볼까요?”

주변에 방패처럼 두르는 화려한 인맥은 그것만으로도 힘이다.

한청호가 청일 호텔의 이미지를 위해 딸의 결혼식을 화려하게 치른 이유다.

전국으로 방송되도록 힘을 쓰면서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겠나.

바로 유명 인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영향력 과시를 위해서다.

“태양 그룹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재벌 그룹으로 출범한 지 이제 1년.

100대 기업 말석에 발을 걸치고 있는 태양 그룹이다.

“사람들은 1등을 기억하지 100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기자 회견을 한다더니, 태양 그룹을 선보일 작정이군. 좋은 선택이다.”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안정우에게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어르신, 대선에 나가 보지 않으시렵니까?”

“내가? 자네가 아니라?”

안정우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태수는 진지했다.

“어르신에게는 숙원 사업이 있지 않습니까. 여태 음지에서 계속해 온 일.”

“으음.”

뼈대 있는 독립 운동가 집안의 안정우가 놓지 못했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친일 세력 척결과 민주화 투쟁이었다.

“어르신께 동방일보 인수를 권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국민들에게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은 친일 토대 위에 군부 독재가 정치를 휘저었다.

오랜 민주화 투쟁을 해야 했고, 과거 청산을 부르짖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나.

“친일파들이 결국 정재계에서 판을 치고 있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저버린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보실 참입니까?”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문제, 친일파 재산 회수, 독립 유공자 처우 문제 등.

청산하고 갔어야 할 문제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피해자들이 나이 먹고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은 총칼을 든 군인도, 정치 공작에 도가 튼 정치인도, 수지타산을 따지는 경제인도 아닙니다.”

태수는 안정우를 바로 봤다.

“이해득실을 따지기 이전에 대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후손을 위한 나라 청소를 결행할 수 있는 사람. 지금은 그런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전쟁과 군부 독재로 이 나라는 멍들었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야당 거물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결국 당이라는 이해관계에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태수는 안정우를 택했다.

‘안정우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 나라와 대의를 위해 몸 바칠 애국지사지.’

안정우가 웃는다.

“그래, 세상은 영웅을 원하지. 자네가 그 영웅이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따로 있습니다.”

태수에게 있는 재능은 돈 냄새 맡는 능력이다.

“전 정치질보다 기업 키우는 게 더 재밌습니다.”

한청호를 상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든 정치판이 아닌가.

이번 난리도 따지고 보면 한청호를 잡기 위해 짠 판이었다.

한청호에게 전두호가 붙었고, 전두호 잡는 김에 박정환까지 쓸어버린 것뿐이다.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졌다. 난 이 귀한 기회를 허투루 날려 버릴 생각 따윈 없다.’

태수가 안정우를 차기 대통령으로 천거하는 이유다.

‘이왕이면 나와 동맹으로서 끈끈한 안정우가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 로비한다고 힘 뺄 필요 없고, 견제 때문에 골치 아플 일도 없지.’

안정우가 대통령이 된다면 마음 놓고 태양 그룹에만 몰두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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