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73화 (173/230)

173화 배신의 끝(3)

오성회 회원들이 도착했다.

1개조 7명이었다.

오성회가 7층 홀에 진입하기 전,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경고한다.

“진입을 불허한다! 돌아가라!”

오성회 회원들은 총을 겨누었다.

“이 새끼들은 뭐야?”

그중에 눈썰미가 좋은 놈들도 있었다.

“이놈들 김광록 중령 밑에 있던 놈들입니다. 군복 벗은 놈들.”

“그 북한군 때려잡는 특수부대?”

“맞습니다. 저기 있는 녀석이랑 육사 동기입니다.”

“이 새끼들이 여기에 왜 있어?”

북한 간첩이라도 출몰했나.

“재수가 없으려니까.”

김광록이 데리고 있는 휘하 부대원들 실력이야 군에서도 알아준다.

그런 놈들이 완전무장을 하고서 방어선까지 제대로 구축하고 있으니 문제다.

‘뚫기 힘들겠는데.’

태양 그룹 경호원들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총 내려! 돌아가지 않으면 죽는다!”

그때 오성회 중 한 명이 VIP룸의 전두호를 발견했다.

“저기 보안사령관께서 계시다!”

“다치신 것 같다!”

“구출한다!”

오성회가 무리하게 안으로 진입하려 한다.

김광록이 크게 외쳤다.

“봐주지 마. 소속 확실히 해.”

너희들은 이제 태양 그룹 소속이야.

군에서 나눴던 전우애 따윈 버려.

“예, 알겠습니다!”

탕- 탕- 탕- 탕-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오성회 7명을 제압했다.

김광록이 직접 훈련시킨 정예 요원들이 아닌가.

북한 정예들을 때려잡던 솜씨가 빛을 발했다.

“무장 해제하고 치워.”

달려들어 오성회 놈들을 바닥에 때려눕히고 총을 빼앗는다.

순식간에 총탄을 분리하고, 몸에 숨긴 대검과 암기를 수색한다.

오성회 회원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군용 대검을 몰래 집으려 한다.

태양 그룹 경호원이 대검으로 바닥에 찍어 그 손을 고정해 버렸다.

“악!”

누구도 7층 홀에조차 발을 들이지 못했다.

김광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성회 회원 7명은 복도로 내쳐졌다.하지만 이 소란은 다른 오성회를 불러들였다.

“7층에서 일이 생겼다!”

“7층으로 간다!”

그 소리를 듣고, 박정환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올 때가 됐는데.”

수도 경비 사령부 전체가 움직이는 일이다.

전차를 앞세워 군용 수송 트럭이 총동원되어 청일 호텔에 들이닥칠 것이다.

그렇기만 하면 오성회 무장 세력 70명은 순식간에 제압될 터.

박정환이 태수를 보았다.

태수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태연자약하기만 하다.

“혼자 여유가 넘쳐.”

“저까지 나설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래, 수하 간수 잘못한 건 나지.”

태수의 수하들은 7층 홀을 점거하고서 제대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수도경비사령부 2개 사단과 1개 여단이 오고 있다. 그때까지 오성회를 틀어막을 수 있겠어?”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태수가 전두호를 가리켰다.

“저자는 이대로 살려 두실 겁니까? 사법부로 넘기시려고요?”

“이 총에 총알이 한 발 남았어. 넘길 때 넘기더라도 이것까진 마저 쏘고 넘기지.”

주둥이 아니면 머리통에.

밖이 소란스럽다.

오성회 회원이 속속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박정환이 김광록을 보았다.

“힘 좋아 보이는군. 이 새끼 멱살 좀 잡아서 들어 올려 봐. 애들 잘 볼 수 있게.”

김광록이 돌아보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럽시다.”

김광록이 전두호의 멱살을 들어 올렸다.

박정환은 전두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문 열어.”

김광록은 발로 VIP룸 문을 뻥 찼다.

문짝이 뜯어져 날아간다.

전두호가 몸부림쳤지만 김광록은 꿈쩍도 않는다.

“시팔.”

오성회 회원들과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모두 VIP룸 안쪽을 주목했다.

김광록이 멱살 잡고 들어 올린 전두호와 그 앞에서 웃고 있는 박정환.

박정환이 크게 외쳤다.

“나 박정환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10년이나 군부 독재를 하고 있는 절대 권력의 독재자이기도 했다.

“이 자식이 누군지 다들 알지?”

왜 모르겠나.

육군 보안사령관이자 오성회 수장인 전두호가 아니던가.

박정환이 전두호의 머리통에 총구를 들이댄다.

“이게 무슨 뜻인지도 알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너희들은 끝났다.”

반역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진즉 죽었어야 할 박정환은 멀쩡히 살아 있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어야 할 전두호는 잡혀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틀렸다.’

‘끝났다.’

반역자의 미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성회 회원들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때 전두호가 크게 외쳤다.

“아직 안 끝났다! 쏴! 죽여 버려!”

그래, 아직 안 끝났다.

박정환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죽이면 된다.

오성회 회원이 박정환에게 총을 겨누었다.

태양 그룹 경호원들도 오성회 회원들에게 총을 겨눴다.

박정환은 크게 외쳤다.

“총 내려놔!”

박정환이 오성회를 돌아보며 웃는다.

“안 그럼 너희들 처자식은 물론, 부모와 사돈에 팔촌까지 전부 죽여 버린다.”

박정환은 이 협박을 사실로 만들 힘이 있다.

오성회의 동요가 커졌다.

“쏴! 이 새끼를 쏴! 내가 죽어도 좋으니까 쏴!”

“살길도 터 주지. 전두호의 머리통에 오줌을 갈기면 살려 주마. 총 내려놔.”

마지막 배팅 시간이다.

오성회 회원들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전두호를 배신할 것이냐, 마지막까지 지를 것이냐.

“박정환이 살아 있으면 너희들 전부 반역죄로 죽어! 가족들도 죽인다잖아! 그러니까 쏴!”

오성회 회원들이 이를 악물었다.

“죽은 놈은 보복 못 한다! 같이 죽자!”

그때 선수를 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새끼야.”

빠악.

김광록이었다.

순식간에 전두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전두호의 이빨이 허공을 날았다.

코가 돌아간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다.

“이 새끼는 끝까지 남의 인생에 똥물만 퍼붓네?”

오성회를 부추겨 박정환 사살을 꾀한다.

그 가운데 껴 있는 김광록까지 벌집이 될 판이 아닌가.

“제압해.”

태양 그룹 경호원들이 일제히 오성회를 향해 발포했다.

사분오열된 오성회는 대응 사격도 제대로 못 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전두호는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이대로 정말 끝이란 말인가.’

황금 같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전두호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큭큭. 큭. 큭큭큭.”

다른 층에서 찾아온 오성회 회원들이 7층 홀 복도에서 망연자실하게 섰다.

복도 바닥에 오성회 회원들이 여럿 죽어 나자빠졌다.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정환도 웃었다.

승리자의 웃음이었다.

“두호야, 네 입으로 말해라. 모든 것이 끝났다고.”

“죽일 테면 죽여.”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줘야지.”

“나는 사냥개 따위로 끝나는 것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그러니 전두호의 마음이 편해졌다.

박정환이 전두호의 머리통에 총구를 갖다 대었다.

“쏴! 나는 상관하지 말고, 이 새끼를 죽여! 마지막 명령이다!”

“또 부하들을 개죽음 시킬 작정이냐?”

“토사구팽. 난 그 운명을 거부했을 뿐이다. 그게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 나를 사냥개 취급한 네가 잘못이지.”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삶아져 죽는다.

끝이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스스로가 쟁취하는 것.

전두호는 그렇게 살아왔다.

“내 덕에 그간 호의호식 호가호위해 오지 않았나? 네깟 놈을 대신할 사냥개 따윈 얼마든지 있었어. 영광인 줄 알아야지.”

“남이 손에 쥐여 준 영광보다 내 스스로 얻어낸 성취감이 더 값지다.”

“성취감 같은 소리하네. 내가 쥐여 주지 않았으면 네게 보안사령관 자리가 가당키나 했을까.”

“보안사령관? 부족하지. 그래서 난 왕좌에 도전했고, 그게 실패했을 뿐이야.”

어차피 이미 틀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총을 맞아서 출혈도 상당하다.

뿐만 아니라 목숨 걸고 박정환과 드잡이하느라 남은 힘을 전부 써 버렸다.

악으로 버텨 오던 희망이 꺼지자, 깡으로 버티던 기력마저 꺼지기 시작했다.

“넌 졌어, 전두호.”

“으하하하하! 그러는 넌 이겨서 기쁜 얼굴이 아니구나.”

박정환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기력이 쇠한 전두호가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후련해 보이는 웃음을 크게 터뜨린다.

“웃어? 웃음은 승자에게만 허락된 권리다. 패자에게 허락된 건 웃음이 아니야. 피눈물과 뼈저린 아픔이지.”

“난 웃는다. 그럼 어쩔래? 으하하하.”

박정환은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뉘었는데도, 저놈이 더 후련해 보인다.

지금 박정환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그래서였다.

“오성회 회원들이 너를 두고 항복할까, 아니면 끝내 결사항전으로 너를 따라 충성을 다할까?”

전두호의 속도 그리 썩어 문드러지게 해 주고 싶었다.

진 놈이 분해서 날뛰어야지, 저리 편안한 표정을 짓는 건 반칙이다.

“네가 날 배신했으면, 너도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봐야지. 그게 공평하지. 안 그러냐?”

박정환이 한쪽 입꼬리만 올린다.

승자는 뒤틀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난 네 머리통에 오줌을 싸는 놈들만 살려 준다고 이미 말했다.”

“그것 좋지. 아주 좋아. 최고다. 으하하하!”

“웃어?”

“시체가 되어서도 쓸모가 있다니, 어찌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나.”

“네 입에다 오줌을 처먹일 생각이야. 네 숨이 끊어지기 전에도, 그 후에도 오줌은 실컷 마실 수 있겠구나.”

“이미 반역죄로 죽음이 정해진 전우들이 그렇게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그럴수록 박정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래도 웃음이 나온다고? 더할 나위가 없다고? 제정신이냐?”

차기범이고 전두호고 간에 전부 미쳐 버린 게 틀림없다.

“으하하, 날 배신해도 상관없다. 생사가 걸린 거사를 함께하기로 결심한 그놈들의 마음을 기억할 테니까.”

문득 박정환은 전두호가 평소 자주 하던 말을 기억한다.

-난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습니다.

거기에 차기범이 했던 말이 오버랩되었다.

-15년이나 넌 늘 의심했지.

전두호가 아까 악을 쓰던 말도 떠올랐다.

-배은망덕? 충성을 바친 자의 말로가 어땠지? 저기 저 시체, 안 보이나?

-차기범을 죽인 건 결국 너야. 배신자는 차기범이 아니라 박정환이라고.

듣고 싶지 않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배신보다 더 나쁜 놈은 진심마저 농락하는 놈이다. 차기범과 내 충성을 시험에 들게 한 사람, 그건 한청호가 아니라 바로 너야, 박정환.”

저 입을 틀어막고 싶다.

“시끄러워! 시험을 이겨 내고 끝까지 충성하면 됐잖아. 배신한 놈이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전부 비겁한 변명이야.

전두호의 목구멍에 총구를 우악스럽게 쑤셔 넣었다.

탕-

“난 내 말을 지켰다.”

전두호의 세 끝을 친히 징벌했다.

죽여주겠다는 말도 지켰다.

마지막 한 발을 마저 쏘겠다는 말까지 전부.

이 나라 최고 통수권자의 말은 무겁고도 무거우니까.

“꺼져, 이 빌어먹을 새끼야.”

전두호는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눈은 끝까지 박정환을 비웃고 있었다.

-전두호 사망 시각. 1975년 5월 18일 오후 11시 41분.

박정환은 전두호의 눈을 감겨 주지 않았다.

대신 크게 외쳤을 뿐이다.

“이 새끼를 끌어내! 총 버린 놈들 중에 이 자식 머리통에 오줌 싸는 놈들만 살려 줄 것이다!”

최고 통수권자의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상대의 속을 뒤집기 위해 했던 도발일지언정.

“끝까지 총 든 놈들은 처자식은 물론이고 부모와 처가, 사돈에 팔촌까지 전부 죽여!”

몇 놈이 죽어 나가더라도 무조건 그리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박정환의 자존심이자 체면이니까.

박정환은 고개를 들었다.

붉은색 화려한 왕좌에 앉은 태수가 턱을 괸 채 이 모든 것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박정환은 이를 악물었다.

“강태수, 넌 어디까지 지켜볼 참이냐?”

“당신의 밑바닥 끝까지.”

태수는 손을 뻗었다.

태수의 맞은편 의자를 권하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박정환이 아니라 태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유가 뚝뚝 흘러내린다.

박정환은 구겨진 얼굴로 태수를 노려봤다.

“그래, 우리 사이에는 아직 남은 대화가 있지.”

성큼성큼 걸어서 의자에 앉는 박정환.

김광록은 넘어간 테이블을 제자리로 일으켰다.

박정환 앞으로 청와대 마크가 크게 찍혀 있는 한 쌍의 담배 케이스와 라이터를 내려놓는 김광록.

피범벅이 된 라이터를 본 박정환이 눈을 돌렸다.

“기범이의 품에서 꺼내 왔나?”

차기범이 챙겼던 라이터다.

“싫으면 마십시오. 이곳엔 따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어서.”

박정환이 신경질적으로 담배 케이스를 연다.

그 안에는 담배 대신 누렇게 변색된 종이가 들어 있었다.

박정환이 장인어른에게 썼다던 서약서였다.

달칵.

김광록이 박정환의 담배 케이스를 찾아 다시 올려놓는다.

박정환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누구도 박정환의 담뱃불을 붙여 주지 않는다.

“강태수, 너까지 내가 우습게 보이냐? 밑바닥을 봤다, 이거야?”

태수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박정환이 직접 작성한 면죄부였다.

태수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지금 시각 1975년 5월 18일 오후 11시 43분.

면죄부 효력이 만료되기까지 17분이나 남았다.

박정환이 직접 담뱃불을 붙이며 물었다.

“내 금고 턴 거, 어디에 썼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