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배신의 끝(1)
“사, 사돈! 사돈, 저 좀 도와주십시오!”
밖으로 질질 끌려가던 한청호가 이번엔 전두호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전두호가 김재국을 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대통령 암살 미수 및 영부인 저격 시해 사건의 배후.”
“뭐?”
전두호가 한청호를 힐끔 봤다.
한청호가 전두호를 붙들고 매달렸다.
“서, 서둘러 주게! 내 딸을 봐서!”
전두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성큼성큼 걸어가 VIP룸 문을 닫았다.
쿵.
전두호가 안으로 들어가자 차기범이 전두호에게 다가왔다.
“뭡니까?”
“몸수색을 다시 해야겠어.”
차기범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방금 대통령 암살 미수 및 영부인 저격 시해 사건의 주모자가 끌려 나갔지 않나. 그리고 자네는 그자와 사돈이 되었지.”
“나 보안 사령관 전두호야!”
“그래서 무기 내놓으라는 소리야.”
“당신 무기부터 내놓지 그래? 서로 공평하게.”
둘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박정환이 신경질을 버럭 낸다.
“둘 다 내 앞에서 무기 내려놔! 장군이고 경호실장이고 나발이고, 내가 무장 해제하라면 무장 해제해야지!”
차기범과 전두호가 서로를 노려본다.
서로 몸을 더듬어 지닌 무기를 수색한다.
차기범에게서는 권총 두 자루와 단검 한 자루가, 전두호에게서는 권총 한 자루와 군용 대검 두 자루가 나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놔!”
철그럭.
무기가 테이블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정환이 인상을 쓰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박정환이 라이터를 차기범에게 던졌다.
청와대 마크가 찍힌 장인어른의 유품 말이다.
“그게 뭔지 알지?”
차기범이 모를 리가 있나.
몇 년이나 그것을 품에 넣고 수시로 담뱃불을 붙여 주던 물건인데.
“회수했다. 오늘부로 자네 거야.”
차기범이 흠칫하여 강태수를 본다.
강태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찰칵.
차기범이 담뱃불을 붙여 주자 박정환이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다.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훅 뿜어낸다.
“나한테 허심탄회하게 할 말 없어?”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들 마음은 정했나? 그게 최선이야?”
전두호와 차기범이 서로를 쳐다봤다.
차기범은 곁눈질로 손에 들린 라이터를 힐끔 보고, 전두호는 테이블 위에 올린 무기를 보았다.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탕- 탕- 탕-
총성이었다.
“장성을 향해 총을 쏘았어!”
“총을 들고 있어! 한두 놈이 아니야!”
“꺄아악!”
그와 동시에 전두호와 차기범이 몸을 날려 테이블을 덮쳤다.
우당탕탕.
두 남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테이블이 뒤로 넘어갔다.
전두호와 차기범은 총부터 집어 들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총을 막았다.
힘겨루기는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서로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닥에 떨어진 칼을 박정환이 발로 차 멀리 치웠다.
“이것들이 내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전두호!”
“차기범!”
주먹이 오가고, 팔꿈치와 무릎이 서로를 향해 쏟아진다.
적당히 맞고, 적당히 막으면서 둘은 총을 끌어당기느라 바빴다.
탕- 탕-
우당탕탕.
밖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총성이 본격적으로 들려온다.
챙- 찰캉-
쇠 부딪치는 소리도 함께였다.
사람들 비명과 어지러운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VIP룸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 있었다.
“각하, 반란입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각하, 위험합니다! 문을 여십시오!”
박정환은 담배를 빨면서 웃었다.
“누가 시작했어? 두호냐? 아니면 기범이냐?”
“전두호입니다!”
“차기범입니다!”
“아무도 아니란 거냐? 새끼들.”
박정환은 낄낄 웃었다.
“다들 그만 포기해라.”
박정환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쯤 수도 경비 사령부 전체가 이곳으로 출동하고 있을 거다.”
이번 법 개정으로 수도 경비 사령부 지휘권을 얻은 차기범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차기범이 전두호와 힘 싸움을 하면서 박정환을 놀란 눈으로 보았다.
“아까 일러뒀지. 장태원이는 신이 나서 전차를 끌고 오고 있을 거야.”
장태원은 수도 경비 사령부 참모장이다.
전생에서 전두호에게 육군 참모 총장 정승환이 잡혔을 때 끝까지 저항했던 군인이기도 하다.
“기범이 자네가 한밤의 전차 시위를 여러 번 해서 다들 알아서 길을 비켜 주고 있을 거야.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야.”
박정환이 차기범의 권력 유세를 보면서도 모른 척한 이유다.
“차규현이가 두 개 사단과 한 개의 여단 병력을 이끌고 진격하고 있다는 소리야.”
차규현 수도 경비 사령관이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두호와 차기범은 동시에 안색이 변했다.
“저 총성을 보게. 무기는 어디서 반입했을까? 대통령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장성을 쏘았다는데, 이것을 어찌해석해야 하나?”
특히 전두호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총성 역시 군 장성들을 제압해 억류하는 과정에서 터졌을 것이고, 그 소리가 들리면 전원 비상사태에 돌입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뒤는 없다.’
전두호는 차기범과 권총을 버렸다.
그리고 박정환에게 달려들었다.
박정환이 담배 케이스를 던져 전두호의 눈을 맞추려 했다.
전두호는 손으로 간단하게 공격을 막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박정환의 안면에 박치기를 날렸다.
“전두호!”
차기범이 총을 잡아 겨누었을 때 전두호는 박정환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쏴!”
차기범은 박정환 머리 옆으로 나온 전두호의 머리를 겨누었다.
전두호는 재빨리 박정환 뒤로 모습을 감췄다.
“쏘라고!”
차기범이 입술을 깨물었다.
“박정환이 네 속셈을 모를 것 같으냐? 너 몰래 수경사를 불렀다잖아!”
수경사의 지휘권은 차기범이 갖고 있다.
물론 박정환이 최고 통수권자인 이상 작전 명령을 내리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차기범에게 언질조차 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나.
“너도 이미 찍힌 거야, 병신아!”
이대로라면 뒤는 없어!
“박정환이 배신을 알았다! 그것으로 끝이야! 끝!”
전두호는 박정환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박정환 역시 손가락을 파고들며 저항했다.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웃었다.
“어쩔 테냐? 충성이냐, 큭, 배신이냐?”
박정환은 차기범에게 대답을 촉구했다.
총을 든 차기범의 손이 덜덜 떨렸다.
“라이터는 네 것이라고 했다! 크흑!”
박정환의 라이터를 차기범에게 주었다.
라이터 하나 때문에 그간 설움과 질투, 미움과 원망을 갖게 됐던 차기범이다.
하지만 문제의 라이터는 차기범에게 돌아왔다.
“뭐해! 쏴! 이 새끼부터 죽여야 우리가 산다!”
전두호는 이미 반란을 시작했다.
하지만 차기범은 아직 경호원실을 움직이지 않았다.
돌이키려면 돌이킬 수 있다.
박정환도 그리 말하지 않았나.
-충성이냐, 배신이냐.
-라이터는 네 것이다.
박정환의 마지막 시험이다.
차기범은 입술을 깨물었다.
“쏴! 박정환이 죽어야 그다음이 있어! 우리끼리의 싸움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배신을 결심한 이상 박정환의 제거가 1순위 목표다.
차기범이냐, 전두호냐.
승리자가 누가 되느냐는 그다음에 정해도 된다.
지금은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박정환 끌어내는 것이 먼저다.
“차기범!”
우당탕탕.
쿠당탕탕.
전두호가 문을 잠가 놓은 VIP룸 문을 두드리던 사람들마저 흩어진 후다.
밖에서 총성이 더욱 거세졌다.
사람들 비명과 싸우는 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탕- 탕-
VIP룸 문고리를 향해 밖에서 총이 발사됐다.
전두호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혹시나 하고 문을 잠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오성회 회원이 아니라면 누가 총을 들고 대담하게 VIP룸 탈환 작전을 시도하겠나.
전두호는 환희에 차서 웃었다.
“끝이다, 박정환! 내가 이겼다!”
박정환의 죽음은 예정된 결과가 아닌가.
하지만 차기범은 총을 든 팔을 내리지 않는다.
‘저 병신 같은 놈이 뭘 망설이고 있어? 잘됐어. 오성회가 쳐들어오기 전까지 내 한 몸만 건사하면 승리는 내 것이다!’
전두호는 박정환 뒤에 완벽하게 몸을 숨겼다.
그에 따라 차기범의 총 끝도 흔들렸다.
‘그렇군. 어차피 오성회가 들이닥치면 끝이다.’
결심을 끝낸 차기범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탕-
그보다 먼저 박정환의 손에 들린 총에서 불을 뿜었다.
차기범을 향해서.
박정환의 품속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다.
“기범아, 결국 네 선택은 배신이란 말이냐.”
탕- 탕-
박정환이 차기범을 연달아 쏘았다.
몸수색을 한 건 전두호와 차기범이었다.
감히 대통령의 몸수색을 하겠다고 나서는 자가 있을까.
탕- 탕-
차기범이 가슴과 목 부근에 총을 맞고 휘청거렸다.
경동맥을 스쳤는지 피가 솟구쳤다.
차기범은 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박정환은 몸을 돌려 전두호도 쐈다.
탕-
“크윽!”
허벅지에 총을 맞은 전두호가 박정환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고 주저앉았다.
철컥철컥.
총알이 다 떨어졌다.
박정환은 빈 총을 뒤로 집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총 한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집어 들었다.
“끄으윽! 젠장!”
허벅지를 다친 전두호가 두 팔과 한 다리로 서둘러 기어간다.
VIP룸 문을 향해서.
‘저 문만 열면!’
오성회 회원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아니면 사람들이라도 들이닥치겠지.
박정환이 당장 죽이려 들 텐데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어딜?”
탕-
“크악!”
박정환은 전두호의 나머지 허벅지에도 총알 한 발을 쏘았다.
그럼에도 전두호는 악착같이 문고리를 돌렸다.
‘됐다!’
체중을 실어 문을 밀었다.
“들어와라!”
“어, 좋지.”
문을 박차려고 발을 들었던 2미터의 거한이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는다.
태양 그룹 경호실장 김광록이었다.
“기, 김광록!”
“어딜 기어 나와? 거기서 짜져 있어, 새끼야.”
김광록이 다리를 들어 축구공 차듯이 전두호의 복부를 걷어찼다.
전두호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 도로 VIP룸으로 들어오게 된 전두호.
그 앞에는 코피를 대충 닦은 박정환이 총구를 들이밀며 웃고 있었다.
“도망은 다 갔나?”
“시팔!”
박정환이 전두호의 머리채를 콱 잡았다.
그런데 자꾸 손이 미끄러진다.
머리숱이 영 부실했기 때문이다.
“전두호.”
박정환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제 좀 낫다.
“뭐가 그리 욕심이 나던? 보안 사령관 자리가 우스웠어? 오성회까지 손에 들려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던?”
탕-
전두호의 가슴에 총을 쐈다.
방탄복이다.
탕-
박정환은 전두호의 사타구니를 쏘았다.
극렬한 고통에 전두호가 숨을 헐떡였다.
박정환이 게거품을 물고 있는 전두호 대신 차기범을 찾는다.
“헉… 헉…….”
차기범은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앉은 채 목을 틀어막고 있었다.
벽에 기댄 채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차기범.
박정환은 성큼성큼 걸어가 차기범의 상태를 확인한다.
“기범아, 아직 안 죽었냐?”
차기범은 바닥에 쓰러져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출혈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난 네게 기회를 여러 번 줬다.”
박정환은 차기범의 머리채를 쥐고 그와 눈을 맞추었다.
“고작 라이터 하나 때문에 돌아설 줄이야. 네 그 자리는 충성 하나만으로 얻었다는 걸 잊었나?”
그르륵.
차기범의 목에서 피거품 끓는 소리가 들린다.
차기범은 그르륵 거리면서 웃었다.
“라이터… 때문이라고? 천만에. 쿨럭.”
“15년이었다, 기범아.”
“15년이나… 쿨럭, 넌 늘… 의심했지.”
차기범의 눈이 꺼져 간다.
“일방적인… 충성과… 헌신에… 지쳤… 다.”
박정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방적인 충성과 헌신? 그동안 내가 호의호식, 호가호위할 수 있도록 봐줬더니 끝까지 욕심을 놓지 못하는구나.”
박정환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딴 이유로 배신했다면 죽어야지. 관 속에서 평생 쉬어라.”
탕-
머리에 구멍이 난 차기범은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차기범의 손에서 권총이 툭 떨어졌다.
총알이 하나도 없던 빈 권총이었다.
그게 보이지 않도록 차기범은 손바닥으로 막고 있던 것이다.
“이게… 뭐야……. 빈… 총이라고?”
그 모습을 보고 박정환이 뒤늦게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