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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166화 (166/230)

166화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결혼식(3)

차기범은 흠칫했다.

결혼식장을 디데이로 택한 것은 차기범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회를 노리고 달려들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박정환이 차기범을 물끄러미 본다.

“말 그대로야.”

차기범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렸다.

‘박정환이 뭔가 알고 있나?’

불안하다.

거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어떻게 알았지? 분명 정보를 전부 차단했는데.’

그런데 차기범을 빤히 주시하던 박정환이 피식 웃는다.

엄지로 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치들을 보게.”

차기범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인터뷰하는 정치인이다.

‘김영상, 김대준. 이곳까지 와서 노동 탄압과 인권 탄압에 대해 규탄하다니…….’

박정환의 탄압은 근래에 극심하다.

유신을 강행한 직후에는 더욱 그렇다.

‘김영상, 자택 구금에서 풀려난 지 얼마나 됐다고. 김대준은 납치 이후 활동이 조금 뜸해졌었지. 전국 생방송을 기회로 목소리를 내보내려고 하나 보군.’

야당의 두 기둥인 김영상과 김대준이 아닌가.

동방 일보 광고 탄압 사건 이후 언론들이 일제히 몸을 사리게 됐다.

덕분에 야당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기사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모두 박정환에 대해 찬양 일색이 아니던가.

‘난 또…….’

사정을 알고 나자 차기범은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저리 발악해 봐야 턱도 없습니다. 저들이 어찌 감히 각하께 맞설 수 있겠습니까.”

군부 독재 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그저 야당이란 구색만 갖춘 정치인들은 돈 쥐고 있는 재벌보다도 힘을 못 썼다.

“그래.”

박정환이 물끄러미 차기범을 보며 대답했다.

“내게 맞서 발악해 봐야 턱도 없지. 그걸 본인만 몰라.”

안타까운 일이다.

* * *

사회자가 확성기에 대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각하께서 신랑 신부를 위해 기념 축사를 낭독해 주신다고 합니다. 모두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기념 축사를?

한청호의 아내는 감격해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어머어머! 가문의 영광이에요! 세상에! 대통령께서 우리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축사까지 낭독해 주시다니요!”

앞으로 이 일은 오랫동안 재벌가 사모들 입에서 오르내릴 게 아닌가.

삼청 그룹 막내아들 장가보낼 때조차 대통령 기념 축사 시간은 없었다.

‘우리 남편이 그 정도였어?’

한청호의 아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청호를 본다.

그런데 한청호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

기뻐하거나 의기양양해하는 대신 잔뜩 긴장해 있는 게 아닌가.

‘대통령 기념 축사? 청하지 않은 일이야.’

혼주도 모르는 기념 축사라니.

‘이 양반이 왜 이래? 아주 사색이 됐네.’

한청호의 아내가 팔꿈치로 한청호를 툭 쳤다.

하지만 한청호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박정환과 사회자만 번갈아 보고 있었을 뿐이다.

뚜벅뚜벅.

박정환이 단상에 오른다.

그러자 전국으로 생방송 중계를 하던 방송국 카메라가 일제히 박정환을 주목했다.

“조명!”

“음향 올리고!”

“카메라 고!”

박정환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하객 여러분,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이 모습을 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

모두 대통령을 주목했다.

“대한민국의 국방과 안보를 책임지는 보안 사령관의 동생과 대한민국의 발전과 경제에 이바지하는 굴지의 대기업 청일의 딸이 오늘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촤촤촤촤촤촤촤.

“이 두 집안은 모두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나를 비롯해 수많은 내빈이 참석해 이 자리를 축하해 주고 있습니다.”

촤촤촤촤촤촤촤.

“결혼이란 인생에서 가장 기쁜 행사를 맞아, 나는 오늘 인생의 선배로서 한마디를 해 주려고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박정환이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찬찬히 돌아본다.

청일 호텔의 넓은 홀을 빽빽하게 채운 3,000여 명의 하객이 보인다.

저쪽엔 군인들이, 저쪽엔 재계 사람들이, 그리고 저쪽엔 정치인들이.

한 개 층을 모두 채우고도 부족해 그 위층에도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박정환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시작은 강제였을지 몰라도 끝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보았다.

‘시작이 강제라고? 중매결혼이란 뜻인가?’

‘설마 결혼식 날에 이혼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

박정환의 첫 번째 결혼은 중매였고, 그 끝은 이혼으로 끝났다.

박정환의 두 번째 결혼은 연애로 시작하여 그 끝은 사별로 끝났다.

그 사실을 아는 하객들은 설마 그 이야기인가 했다.

“이 자리에 온 이상 스스로 뜻을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에 책임져라. 행동하고 나서 생각하면 늦는다.”

하객 대부분이 어리둥절했다.

의미심장한 말이긴 한데, 결혼식 축사로서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하이 리스크라 하는 거다.”

박정환이 종이를 반으로 접는다.

‘이게 결혼식 축사인가?’

‘결혼해서 잘 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네.’

대부분의 하객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도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잔뜩 긴장해서 눈치를 본다.

‘각하께서 뭔가를 눈치채셨나?’

‘경고인가?’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다들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음속 동요를 숨기기 위해 그들은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만일 각하께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실패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보이지 않는 동요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차기범과 전두호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암살할 타이밍인가?’

‘암살을 노리나?’

목표한 타이밍이 아니었다.

차기범의 목표는 피로연이 이 끝나고 청와대로 돌아가는 길에.

전두호의 목표는 피로연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에.

박정환을 잡고 장성들을 잡으려면 기회를 제대로 노려서 한 번에 급습해야 한다.

‘아직 오성회는 무장을 갖추지 못했다.’

‘경호실 인원만으로는 이곳에 있는 장성들을 감당 못해.’

가만히 둘을 살펴보던 박정환.

그가 마이크에 대고 씩 웃었다.

“남은 얘기는 피로연에서 마저 하지. 멀리서 온 놈들, 어디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모두 남아라. 오랜만에 나랑 같이 술 한잔해야지.”

박정환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 * *

결혼식이 끝나고, 박정환은 청일 호텔 7층에 마련된 VIP 룸으로 향했다.

“각하, 어떠십니까?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동양 최고급 호텔을 표방해 우리 청일이 만든 호텔입니다. 금산 호텔보다 훨씬 낫지요?”

“그런대로 썩 괜찮군.”

박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슥 살핀다.

“확실히 금산보다 홀의 규모도 크고, 내부 마감도 더 세련됐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시아에서 유일한 5성급 호텔을 노리고 있습니다.”

한청호는 자랑스레 말했다.

“어떠십니까? 하루 묵어가시겠습니까? 청일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을 각하께 내어 드리지요.”

“됐어, 청와대가 코앞인데. 스위트룸은 신혼부부에게 양보하지.”

“하하하, 이를 어쩝니까? 일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 아닙니까? 외국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야지요.”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였다.

한청호의 딸은 외국 여행에 목이 말랐고, 신혼여행은 꼭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떼를 썼다.

한청호 역시 딸을 빼돌리기 위해 흔쾌히 승낙하지 않았던가.

“출국 비행기 시간이 빠듯하여 피로연 인사도 생략하고 벌써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뭐 그리 급하다고. 결혼식을 빛내 준 하객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하루 아버지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출국해도 충분한 것을.”

“신혼 아닙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한청호가 넉살을 떨며 웃었다.

박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VIP룸 소파에 앉았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한청호가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여 주려고 하자 박정환이 손을 들었다.

“됐어.”

명백한 거절이었다.

한청호가 라이터를 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혼주가 피로연을 돌며 참석해 준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고 여기서 담뱃불이나 붙여서야 쓰나. 나가 봐.”

박정환이 손사래를 치자 어쩔 수 없이 한청호가 라이터를 도로 품에 넣었다.

깍듯하게 인사하는 한청호.

“그럼 한 바퀴 돌며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천천히 해. 일 있으면 따로 부를 테니까.”

달칵.

한청호가 VIP룸 밖으로 나왔다.

‘박정환이 뭘 알고 경고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이 기분 나쁜 느낌은 대체 뭘까.’

그럼 왜 그렇게 의미심장한 소리를 꺼냈단 말인가.

한청호가 나오자 차기범이 그를 힐끔 본다.

“각하께서 하객들 인사하고 오라셨습니다. 전 이만 홀을 한 바퀴 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차기범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두호는?”

“글쎄요. 아마 홀을 돌면서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차 실장님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찾아올까요?”

“됐다.”

차기범이 원치 않는 일이다.

전두호와 박정환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전두호가 이번 기회를 틈타 박정환에게 얼굴을 비치려고 할 것이기에 견제하던 차다.

“전두호에게 전해. 괜히 여기 기웃댈 생각 말고 손님접대나 잘하라고.”

차기범의 경고였다.

한청호가 작게 물었다.

“박정환의 경고에 흔들리셨습니까?”

“전혀.”

차기범이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박정환은 무서워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약한 말을 내뱉을 리 있겠나.

오히려 거사의 성공에 확신을 갖게 된 차기범이었다.

한청호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경호원들이 안 보이는군요.”

“7층 홀에 허락된 인사들이 아니지 않나.”

7층 홀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정재계 유명 인사들뿐이다.

경호원들은 전부 다른 층에서 대기한다.

“신호를 보내면 일제히 시작할 것이다.”

“예감이 썩 좋지 않습니다. 거사를 조금 앞당기는 게 어떻습니까?”

차기범은 피식 웃었다.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됐다. 마지막 작별 인사는 기다려 줘야지.”

차기범은 자신 있었다.

한청호는 눈을 돌려 전두호를 찾았다.

‘전두호는 어찌할 생각인지 알아봐야겠군.’

불안했다.

박정환을 만나고 나니 더욱.

* * *

그 시각 전두호는 홀이 아니라 테라스에 있었다.

“강태수.”

태수가 몸을 돌렸다.

“오랜만입니다.”

“우리가 한가하게 인사나 나눌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전두호가 먼저 선전 포고를 날린 마당이 아닌가.

전두호가 넥타이를 고쳐 맨다.

“넌 자존심도 없냐?”

태수는 태연자약하게 손에 든 샴페인을 빙글 돌렸다.

전두호가 삐딱하게 섰다.

“나를 찾은 용건이 뭘까?”

그가 대뜸 도발한다.

“박쥐처럼 내게 붙어서 아양을 떨고 싶나? 태양 그룹 간판을 지키고 싶어?”

그럴 리가.

“강태수, 센 척하지 말고 차라리 무릎 꿇고 빌어.”

전두호는 씩 웃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혹시 아나? 내가 자네의 구질구질한 구걸이 불쌍해서 목숨만은 살려 줄지.”

“목숨 구걸?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해야 할 텐데.”

허공에서 두 남자의 기세가 맞부딪쳤다.

태수는 좋은 말을 꺼낼 생각을 아예 버렸다.

‘그래, 한결같아서 좋군.’

태수는 웃고 있었다.

“한청호는 딴생각을 하고 있던데. 그를 얼마나 믿습니까? 당신을 여태 키워주고 끌어준 상관보다 더 믿습니까?”

전두호의 눈썹이 꿈틀댄다.

“이간질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

“한청호와 차기범이 은밀한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알 텐데요?”

“그게 뭐 대수라고.”

한청호가 위아래로 뇌물 뿌리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경호실장의 권력을 생각할 때 한청호가 돈 가방 건네는 건 당연하기도 했다.

“차기범과 전두호 보안 사령관, 둘이 서로 한 자리를 두고 달려든다죠?”

박정환의 최측근 자리 말인가.

그 자리라면 이젠 안중에도 없다.

전두호의 웃음이 더욱 짙어진다.

“이 나라 최고 통수권자의 자리.”

태수의 다음 말에 전두호의 웃음이 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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