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64화 (164/230)

164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1)

“한일권이 찾았다면서?”

“그, 그게…….”

국빈관 두목이 눈치를 본다.

김광록이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서자 번개 같은 대답이 뒤따랐다.

“어제 한일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중앙 정보부에서 빼내 준 은혜를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태수가 종로까지 찾아온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애들을 모아 호텔 종업원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아니면 내일은 없을 거라 엄포를 놨습니다.”

“그래서.”

“먹고살 길이 없어서 이 바닥을 뜨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일을 잘 완수하면 국빈관을 돌려주겠다고…….”

마지막 말은 기어들어간다.

국빈관 두목은 나름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 머리로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여태 멀쩡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 뒷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국빈관을 고이 바쳤으니 저 남자가 국빈관을 갖고 있겠지.’

국빈관을 돌려받는 대가로 거사에 참여하라는 제안.

그걸 반대로 말하면 저 남자가 피해를 보는 제안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국빈관 두목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잘생긴 남자가 우두머리. 왜 한일권은 저자와 맞서는 바람에 저 무식한 괴물을 또 만나게 됐나 그래.’

2미터 거한의 솥뚜껑 같은 주먹 한 방이면 벽이라도 부술 것 같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숫제 괴물이다.

꿈에서 나올까 무서울 지경인 괴물.

“국빈관을 돌려받고 싶나?”

“네? 아, 아닙니다.”

지금 죽어 볼래? 라는 소리로 들렸다.

국빈관 두목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겠습니다.”

“왜?”

“죽기 싫습니다.”

태수가 피식 웃었다.

“국빈관을 돌려주지.”

“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제법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국빈관 두목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럼 전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합니까? 한일권 멱이라도 따와야 되는 겁니까?”

“한일권이 시킨 대로 잠입해.”

“네?”

오늘따라 국빈관 두목답지 않게 자꾸 되묻는다.

“애들을 모아 호텔 종업원으로 들어가. 물론 한일권이 청일 호텔에 연장을 잘 준비해 뒀겠지. 안 그런가?”

“그, 그렇겠죠.”

“거기 가서 신호 떨어지면 한일권이 불러온 놈들이랑 같이 합류해.”

“…….”

한일권이 불러온 놈들이라면 국빈관 깡패들과 비슷한 부류다.

대충 누구를 부를지도 안다.

국빈관 두목이 잔머리를 팽팽 굴렸다.

“그거 배신…….”

“배신할 만큼 한일권에게 의리 찾는 사이였나?”

“아닙니다. 우리는 비지니스 관계였죠.”

“아니면 한일권이 부른 놈들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인가?”

“죽여도 시원찮을 원수 놈들이죠.”

“그럼 뭐가 문제지?”

“…문제없네요.”

김광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아들었으면 그렇게 해. 만일 우리를 배신하면…….”

김광록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족친다. 참고로 난 의리 따지는 인간이다.”

“…….”

국빈관 두목에게 선택지란 없었다.

한일권과 따질 의리는 없어도, 김광록이 의리를 따져 오면 매우 곤란하기 때문이다.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 끝났으니까 같이 가 볼까?”

“어, 어디를요?”

“한일권이 모은 깡패들. 면담 좀 해야지.”

김광록은 씩 웃었다.

“어, 그거라면 맡겨 둬. 우리 면담 전문이다.”

면담 당사자인 국빈관 두목이 제일 잘 안다.

한일권이 모은 깡패들의 미래 역시 알 것만 같다.

국빈관 두목의 반응을 확인한 태수가 씩 웃었다.

‘이쪽 쪽수가 좀 모자라서 말이야.’

한청호가 대통령 경호실과 오성회 회원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중앙 정보부와 충원 경찰까지 합세할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안정우와 태양 그룹 경호원만으로는 밀린다.

‘한일권이 준비한 수를 좀 이용해야겠다.’

* * *

1975년 5월 18일 일요일 오전 11시.

청일 호텔은 활짝 열렸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결혼식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홀을 청소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하고, 곳곳을 꽃과 천으로 장식한다.

청일 호텔 종업원 복장을 한 사람 중에는 인상이 험악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숨겨.’

‘대기해.’

끄덕.

의미심장한 눈짓으로 가져온 칼을 숨기는 자들.

한일권이 불러들인 깡패들이다.

그중엔 국빈관 깡패들도 함께였다.

착착착.

어디선가 훈련된 요원들이 나타났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왔다.”

“중앙 정보부에서 나왔다.”

“경찰서에서 충원 나왔습니다.”

청와대 경호 차장은 현역 중장이다.

그가 진두지휘하여 명령을 내렸다.

“인원을 둘로 나눠 청일 호텔을 돌며 경호 위치를 확인한다. 또한 나머지 반은 청일 호텔 종업원들의 몸수색을 시작해.”

“알겠습니다.”

“경호 장보.”

“예.”

청와대 경호 장보는 현역 육군 준장이었다.

그가 각 잡힌 경례를 올렸다.

“각하의 안전이 달린 일이다. 확실하게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경호 장보를 필두로 경호실 사람들이 흩어졌다.

이번엔 중앙 정보부 차장 김재국이 부하들을 돌아봤다.

“중앙 정보부 요원들은 수색을 시작한다.”

도청기 설치 여부 및 폭탄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건물 인원 배치도 받아. 배정받은 관할 구역을 책임지고 확인해.”

“예!”

“흩어져. 보고는 임시 상황실에서 받겠다.”

“예!”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짝을 지어 흩어졌다.

중앙 정보부 차장 김재국은 청일 호텔 룸에 마련된 작전 상황실로 향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화 및 통신 장치, 저장 기록 시설 등을 연결한 임시 상황실이었다.

“우리도 준비한다.”

을지로 청일 호텔을 커버하는 건 서울 중부 경찰이다.

서울 중부 경찰서장이 호텔 공터에 모여 있는 충원 경찰들을 돌아봤다.

“각하께서 오신다. 안전에 만전을 기하도록.”

“예!”

“우리는 호텔 외곽을 순찰하고, 민간인 출입을 통제한다.”

“예!”

“어중이떠중이가 들어왔다가는 경을 칠 줄 알아.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각자 위치로.”

“위치로!”

충원 경찰들도 바리케이드를 준비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국빈관 두목이 혀를 내 둘렀다.

“이야, 이거 장난 아닌데?”

“분위기 겁나 살벌합니다, 형님.”

“이거 괜찮겠습니까?”

청일 호텔 종업원 복장을 하고 있는 국빈관 깡패들이 불안한 눈동자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불안하기는 국빈관 두목도 마찬가지였다.

“죽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

“…예.”

말라비틀어진 시래기 같은 목소리였다.

국빈관 두목은 혀를 찼다.

“새끼들이 왜 이리 기가 죽었냐? 우리가 깡이 없지 가오가 없냐?”

“…….”

깡다구는 김광록에게 처맞을 때 버렸다.

하지만 아직 가오는 버릴 수 없었다.

“야, 이 바닥에서는 기세에서 밀리는 순간 아웃이야. 어깨 똑바로 펴. 알았어?”

“…예.”

이건 우거지가 따로 없다.

“아직도 목소리에 힘이 없어? 눈깔에 독기 안 실어?”

그래서 국빈관 두목은 눈에 힘을 빡 주며 말했다.

“이번 일 망치면 거인 새끼가 직접 참교육시켜 준다고 엄포 놨다. 그 독한 새끼 실력 알지?”

눈 깜짝 않고 뼈마다 동강 내기!

아픈 데 골라 때리기!

맞은 데 또 때리기!

“정신 차렸습니다!”

“어깨 똑바로 폈습니다!”

“눈깔에 힘줬습니다!”

“…….”

이것들이 진짜!

야, 너희 형님이 나야, 그 거인 새끼야!

* * *

몇 시간에 걸친 수색이 끝났다.

“없습니다.”

“이쪽도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청와대 경호실 역시 준비는 끝났다.

중앙 정보부 차장 김재국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곧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

“청와대 경호실에서 하객들의 몸수색을 전담한다고 한다. 그러니 중앙 정보부는 상황실에서 상황을 컨트롤한다.”

“예.”

“작전 상황실로 올라간다.”

“예.”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은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헤드폰을 끼고 기계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에서 팔짱 낀 김재국이 지켜본다.

‘강태수, 네가 준비한 대로 중계기를 달고, 도청 장치를 제대로 장착해 뒀다.’

태양 전자에서 이번에 개발한 도청 장치가 아주 기가 막히다.

기존의 도청 장치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력을 뽐낸다.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이야, 이런 물건은 대체 어느 나라에서 나온 겁니까? 음질이 깨끗한데요?”

“청일 호텔 홀뿐만 아니라 입구에서 검문하는 말소리까지 놓치질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도청 거리가 늘어나다니. 이거 걸작입니다.”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눈을 빛냈다.

“이거 미제예요? 일제입니까?”

“아니면 독일산? 소련산?”

메이드 인 한국!

국산을 사랑하자 모르냐?

태양 전자 단독 개발!

‘강태수, 각하를 위해 이런 귀한 시설을 제공하다니. 그 충정이 갸륵하군.’

이 정도 감시망이면 각하와 하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 * *

1975년 5월 18일 일요일 오전 10시 12분.

취재진이 속속 청일 호텔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KBC, MBS, TBS TV 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될 예정이었다.

더구나 동영 방송, 동화 방송, 기독 방송 등 라디오 채널에서도 음성 생중계를 진행하기로 약속되었다.

“와, 취재 규모가 대단합니다.”

“오늘 세기의 결혼식이 열리잖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3위인 청일 그룹과 육군 보안 사령관 전두호 집안이 맺어지는 날이 아닌가.

전국에서 국군 장성들이 모여들고, 정재계 유명 인사들은 빠짐없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이걸 전국에 생중계하다니. 무슨 대통령 딸 결혼식도 아니고.”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청일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린다니까 좋다고 냉큼 달려왔지.”

“확실히 기삿거리가 많긴 합니다. 하객들 명단부터 봐요. 화려하잖아요.”

한청호는 거창한 결혼식을 원했다.

전국 방송으로 생중계할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청일의 영향력을 널리 알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홍보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이걸 보고 나면 청일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격상하겠어.”

“재벌 그룹의 이미지까지 달라지겠어요. 청일은 재계 순위에 비해 싸구려 이미지가 많았잖아요.”

“한청호는 이번 기회에 청일을 제대로 알릴 작정인가 보지.”

“사람들은 청일이 불러 모은 하객들을 보고 청일에 대해 재평가를 내리겠군요.”

“딸자식 결혼식까지 이용하는 비정한 아버지야.”

“그게 한청호 회장이죠. 역시 사업보다는 정치에 일가견이 있어요. 이런 쇼맨십을 대중들이 좋아하죠.”

취재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청일 호텔 입구에서는 네 명의 청와대 경호원과 여덟 명의 충원 경찰이 비표 검사에 나섰다.

“비표를 확인하겠습니다.”

신분증 및 출입증을 확인하는 것이다.

“들어가십시오.”

검사를 끝낸 취재진이 사진기와 수첩을 챙겨 들고 안으로 들어선다.

청일 호텔 홀에 들어선 취재진은 방송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전국 생방송으로 나오는 방송이야. 서둘러.”

“음향, 마이크 확인하고, 카메라 각도 잡고, 조명 확인하고.”

취재진 중에는 동방 일보를 인수한 안정우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자리 잡고.’

‘목표 확인하고.’

‘설치해.’

그들은 방송 장비를 설치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 * *

1975년 5월 18일 일요일 오전 11시 37분.

사회 유명 인사들이 청일 호텔로 속속 모여들었다.

군 장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육군 참모 총장 이세후다!”

“제1 야전 사령관 정승환이다!”

“수도 경비 사령관 차규현과 수도 경비 사령부 참모장 장태원이다!”

제복을 차려입은 장군 및 군인이 전국에서 찾아온 것이다.

이쪽에는 한청호와 그의 부인, 한일권이, 반대편에는 전두호와 그의 부인이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그들은 청일 호텔 정문에서 하객들에게 인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만큼 하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왔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촤촤촤촤촤촤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하객들을 찍는 취재진.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속속 입장할 때마다 주차하기 위해 나서는 발렛 파킹 주차 요원들.

그들을 안으로 안내하기 위해 배치된 접객원들.

하객들의 부조금과 방명록을 받기 위해 배치된 직원들.

그도 밀려드는 하객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바빴다.

부르릉.

부르르릉.

검은색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태양 그룹 사장단과 임원진들이 속속 차에서 내렸다.

제일 가운데 차량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 준다.

취재진이 단숨에 알아봤다.

“태양 그룹 총수가 도착했다!”

“찍어!”

촤촤촤촤촤촤촤.

차량 뒷좌석에서 태수가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빼입은 태수는 유독 빛났다.

먼저 하객으로 입장한 배우들보다 더 훤칠하고 멋졌다.

‘외모로 재벌 회장을 순위 매기면 세계 1등은 따놓았다더니.’

일단 재벌 회장 중에서 이 정도로 젊은 남자가 없다.

‘이 정도면 신랑이 오징어가 될 민폐 하객이로군.’

‘한청호 회장 표정 구겨진 것 좀 봐.’

태양 그룹과 청일 그룹은 재계에서도 유명한 앙숙이다.

한청호가 말없이 태수를 보고 있다.

저벅저벅.

태수는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걸어와 한청호 앞에 섰다.

태수의 뒤로 태양 그룹 사장단 및 임원진, 그리고 경호원들이 섰다.

무려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것이다.

‘강태수!’

한청호의 눈썹이 꿈틀댄다.

반면 태수는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다.

허공을 두고 차가운 눈빛이 맞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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