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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155화 (155/230)

155화 눈도장(4)

종로의 국빈관.

밤을 수놓는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바로 국빈관이다.

춤과 노래, 술과 향락이 넘치는 화려한 그곳.

하지만 국빈관의 낮은 썰렁하리만치 조용하다.

대신 국빈관 지하는 오늘도 음산했다.

“이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꺅!”

몸 파는 걸 거부했다는 이유로 맞고 있던 여자는 덜덜 떨었다.

“가진 게 몸뚱이뿐인 년이 어디서 튕겨? 몸뚱이로 빚 갚으란 말이 이해가 안 돼? 앙?”

“이, 일해서 갚을게요. 주방에서라도 열심히 일할 테니까…….”

“어느 세월에? 내가 호구로 보여?”

국빈관 두목이 여자의 머리채를 붙들었다.

그때였다.

“형님, 어젯밤에 나갔던 애들이 안 돌아옵니다.”

국빈관 두목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애들 누구?”

“어젯밤 차 망가뜨리러 갔던 애들이요.”

“뭐?”

국빈관 두목이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일곱 명이 몰려가서 고작 차 한 대 망가뜨리는데, 여태 안 돌아와?”

“그것이…….”

“그것이고 나발이고. 말이 되는 소릴 해. 어디 술 먹고 자 빠진 거겠지.”

“일 끝내면 여자 붙여 주겠다고 해 놨습니다. 그놈들 여자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여자도 마다하고 술 마시러 다닐 놈들이 아니다.

“애들 풀어서 알아봤어?”

“아침에 나갔던 애들도 소식이 끊겼습니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국빈관 두목이 여자를 내팽개치고 온다.

대뜸 구둣발로 부하의 조인트부터 깐다.

부하는 찍소리도 못 내고 끙끙댔다.

눈물이 나올 만큼 아픈데도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도 없었다.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죄, 죄송합니다.”

“애들이 안 돌아오면 너라도 따라가 봐야 할 것 아냐?”

“그래서 현재 상황을 보고하려고…….”

“뭔 말이 이렇게 길어? 당장 안 튀어 가?”

다시 한번 조인트가 작렬했다.

인정사정 봐주지도 않는다.

깐 데 또 까인 조인트만큼 아픈 게 없다.

그때였다.

부하 한 명이 헐레벌떡 지하실 문을 열고 달려왔다.

“크, 큰형님!”

“왜?”

“밖에 이상한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이상한 놈들?”

국빈관 두목이 벌떡 일어났다.

종로 일대를 접수한 국빈관이다.

누가 감히 국빈관에 쳐들어온단 말인가.

“오늘따라 왜 이 지랄이야? 내 나와바리에서 누가 까분다고?”

“모, 모르겠습니다. 복면강도 같은 놈들 실력이 대단합니다!”

“가자.”

국빈관 두목이 회칼을 몇 자루나 챙겼다.

조인트 까이던 부하 역시 망치와 장도리를 야무지게 챙겼다.

* * *

국빈관 홀.

그곳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진 이후였다.

고작 10분 만에 이곳은 점령당하고 말았다.

사실 10분 전만 해도 국빈관 깡패들의 기세가 사뭇 대단했었다.

-10분 전.

입구를 지키던 똘마니들이 국빈관 홀에 쓰레기 던져지듯 던져졌다.

홀에서 낄낄대던 국빈관 깡패들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하나둘씩 일어났다.

“이 시팔 새끼들은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냐, 이 개새끼들아!”

검은색으로 복장을 통일한 20명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그 맨 앞에 선 2미터의 근육질 거한이 유독 눈에 띈다.

김광록이었다.

김광록이 우렁차게 외쳤다.

“여기 대가리가 누구냐?”

대뜸 대가리 찾는 소리에 국빈관 깡패들은 헛웃음을 날렸다.

“이 십새끼들이 지금 뭐래냐?”

“대가리? 너희 대가리나 한번 제대로 깨져 볼래?”

국빈관 깡패들이 건들대며 태양 그룹 소속 경호원들을 향해 다가온다.

손에는 연장을 하나씩 꼬나 쥐고 건들대는 폼이 역겹다.

김광록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원 제압한다.”

“중령, 아니 실장님. 이놈들 겉가죽에 흠집 나도 됩니까?”

“상관없다.”

그럼 쉽지.

그런데 김광록이 경호원 다섯 명을 콕 짚는다.

“오랜만에 우리 막내들 솜씨나 확인해 볼까? 10분 준다.”

10분 안에 40명을 상대하라는 소리였다.

“왜? 못하겠어? 1인당 여덟 명만 상대하면 돼.”

실제로 김광록은 가뿐하게 상대했던 놈들이다.

5분은커녕 1분도 안 걸렸다.

하지만 그건 김광록이지 경호실 막내들은 아니었다.

“저놈들 연장 든 거 안 보이십니까?”

이쪽은 맨손이다.

물론 품속에 각종 무기를 제대로 구비하고 있지만 상대는 민간인이다.

김광록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무기 사용 금지다.

“그래, 봐줬다. 그럼 다섯 추가.”

도합 10명이 됐다.

그제야 막내들이 어깨를 폈다.

이 정도면 무기 없이도 해 볼 만하다.

그 모습을 보자 국빈관 깡패들은 더욱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감히 연장도 없이 쳐들어와?”

“얘들아, 이 새끼들 조져라!”

김광록도 지시를 내렸다.

“시작.”

말 떨어지기 무섭게 태양 그룹 소속 경호원들이 조용히 달려든다.

말 한마디,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김광록이 팔짱을 꼈다.

“5분 준다.”

인원이 늘었다고 시간을 줄이다니, 너무하잖아!

태양 그룹 소속 경호원들의 몸놀림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 * *

경호원들과 맞붙은 국빈관 깡패들은 비명을 지르며 족족 나가떨어졌다.

분명 저쪽은 맨손이고 이쪽은 날붙이를 들었는데, 어찌 이런 결과가 나올까.

무기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솜씨였다.

“아이고.”

“어이구구.”

40명이 넘는 국빈관 깡패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데 고작 5분이 채 안 걸렸다.

막내들이 손을 털었다.

“시간 제한 내에 임무 완수했습니다.”

“좋아. 막내들은 오늘 저녁 훈련 패스한다.”

지옥의 저녁 훈련을 생략한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자원하는 건데.

선임들은 입맛만 다셨다.

“이놈들이 여자 팔고, 약 팔고, 인신매매에 장기 밀매까지 하는 거 맞습니까?”

“이 실력으로 말입니까? 세상 쉽게 살지 말입니다.”

바닥에 나동그라져서 끙끙대는 국빈관 깡패 중에 뼈마디 성한 놈들은 없다.

북한 간첩 때려잡듯이 잡으래서 똑같이 때려잡았는데, 간첩 놈들에 비해 이쪽은 실력이 영 형편없었다.

부하 경호원 중 한 명이 슬쩍 말한다.

“실장님, 대가리 같은 놈들은 안 보입니다.”

“대가리 잡으면 우리도 저녁 훈련 넘어갑니까?”

어림도 없다.

“대충 아무나 족쳐 봐. 대가리 주제에 쪽팔리게 도망간 건 아니겠지?”

경호원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패 놈 멱살을 잡았다.

김광록이 다른 부하들 다섯을 콕 짚었다.

“너희는 이곳을 뒤진다. 범죄 증거 전부 찾아와.”

“예, 알겠습니다.”

“30분 준다. 시간 제한 내에 돌아오면 저녁 훈련 통과.”

지명 당한 부하들이 좋아할 때였다.

마침 지하실에서 올라온 국빈관 두목이 크게 외쳤다.

“야, 너희 어디서 왔어?”

경호원이 멱살 잡았던 깡패를 패대기친 후 몸을 돌렸다.

“실장님, 저기 대가리 나왔습니다.”

“오냐, 나도 봤다.”

김광록은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러고는 좌우로 목을 풀며 말한다.

“경고는 잘 받았다.”

“경고?”

국빈관 두목은 그제야 이놈들이 누군지 깨달았다.

‘어젯밤 우리 애들을 잡은 놈들이 이놈들이구나!’

국빈관 두목은 회칼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우리 애들은? 죽은 건 아니겠지?”

“아직까지는.”

‘아직’이라는 단어가 유달리 께름칙하다.

이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받았으면 돌려주는 게 예의지. 그래서 우리도 경고하러 왔다.”

김광록이 손가락까지 야무지게 우두둑 푼다.

“국빈관, 오늘부로 문 닫자.”

이것은 경고인가, 통보인가.

“남의 목숨 노릴 땐 자기 목숨 좆될 것도 각오해야지. 안 그래?”

김광록이 두 손가락으로 싹둑 가위질하는 시늉을 한다.

“이쪽은 브레이크가 잘렸다, 이거야.”

그러니까 못 멈춰.

“그러면 그쪽은 어디를 잘라야 공평할까?”

경호원 중 하나가 슬쩍 손으로 목을 긋는다.

어떤 놈은 아랫도리를 긋는다.

어떤 놈들은 팔목이나 다리를 긋는다.

김광록은 고개를 끄덕여서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럼 일단 패고 다시 생각할까?”

좋은 생각이라며 경호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태양 아파트 건설 현장.

검은색 승합차 문이 열리자 김광록이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렸다.

태수는 안전모를 벗고, 김광록에게 다가갔다.

“다녀왔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당연히 깔끔하게 끝났지. 좆도 아닌 애새끼들 때려잡는 게 뭐 어렵다고.”

김광록은 개운한 표정이었다.

“받은 것 이상으로 확실하게 돌려줬다.”

김광록이 두 손가락으로 허공에 가위질을 했다.

“제대로 잘라 줬지.”

뭘 잘랐다는 뜻일까?

“이번에도 캡틴에게 연락해서 경찰서에 집어넣었습니까?”

“아닌데. 간첩 처리하듯 하라며?”

뭘 어떻게 처리했다는 걸까?

“거기 지하 시설이 아주 죽이더라. 사람 잡기 딱 좋게 만들어져 있는 거야. 덕분에 잘 썼다.”

국빈관 지하 시설을 무슨 용도로 썼기에?

“이거 받아라. 도움될 만한 것들만 따로 추려 왔다.”

김광록이 손을 뻗는다.

경호실 직원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건넸다.

이불 보따리라고 해도 될 법한 여행 가방을 핸드백처럼 가뿐하게 든 김광록.

“그 새끼들이 자진 납세로 내놓은 것들이다.”

바닥에 내려놓는데, 쿵 소리가 날 만큼 묵직했다.

“지저분한 짓은 도맡아 하고 있던데.”

김광록이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낸다.

“약 유통 장부, 포주 장부, 뇌물 상납 장부, 빚 문서, 신체 포기 각서, 장기 매매 계약서, 수금 장부…….”

끝없이 나온다.

말없이 그걸 보는 태수.

“이거 받아라.”

김광록이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태수의 손바닥 위에 올린 얄팍한 서류.

“이건 뭡니까?”

“국빈관 땅문서랑 건물 문서, 사업자 등록증. 제대로 넘겨받았다.”

황당했다.

“이건 왜…….”

“국빈관, 오늘부로 문 닫았다.”

“…….”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국빈관이 문을 닫아?

아직 전두호의 삼천 교육대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중앙 정보부 취조실로 고이 보내 줬지. 흐흐흐.”

삼천 교육대나, 중앙 정보부나.

시기만 조금 다르지 국빈관 강제 해산은 변함없는 모양이다.

김광록은 뻔뻔하리만치 태연했다.

“힘으로 빼앗은 건 결국 힘으로 빼앗기는 법이라며 체념하면서 먼저 내놓더라.”

그게 강호의 도리라나 뭐라나.

뭔 소리인지 모르지만 주겠다니까 냉큼 받아 왔다.

김광록이 커다란 가방을 가리킨다.

“이거 말고도 뭐가 많이 나오더라고. 그거 줬더니 단번에 중앙 정보부에서 끌고 가던데.”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알겠다.

그놈들, 된통 걸렸구나.

그때 김광록이 장부 하나를 찾아 태수에게 건넸다.

“이게 네가 찾고 있던 거다.”

“이건…….”

“청일에서 받은 뒤처리 일거리와 목록들.”

한일권의 흔적을 찾았다.

“부잣집 아들이 험악한 일을 청부하고 다녔더라고. 여자들 많이 울렸겠더라.”

김광록이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는다.

태수도 장부를 보며 씩 웃었다.

“이참에 한일권 감방 구경시켜 줄 수 있겠군요.”

“당연히 구경시켜 줘야지. 이 정도면 한 20년은 푹 썩지 않을까?”

그럼 더할 나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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