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42화 (142/230)

142화 차기범의 보답(2)

태수는 태양 아파트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송창준이 뛰어와 태수에게 보고했다.

“회장님, TBS 동인 방송국의 이건후 이사님이 오셨습니다.”

저쪽에서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이건후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이건후가 이곳을 찾은 건 처음이었다.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잠시 들렀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방송국 진행 상황이 궁금한 건 태수도 마찬가지다.

“방송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바로 촬영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에 들어갔으니까요.”

“아주 좋은 소식이군요.”

“스튜디오 진행 상황은 어느 정도나 진척됐습니까? 약속대로 한 달 내로 촬영에 들어갈 수는 있겠죠? 이미 방송 일정부터 잡아 놔서 더 늦어지면 곤란…….”

태수는 길어지는 말을 끊었다.

“스튜디오 작업은 거의 끝났습니다. 내일부터 촬영에 들어가도 됩니다.”

“……!”

이건후가 떡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그런데 이건후가 갑자기 웃는다.

“이제 보니 유머 감각이 상당하시군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하.”

“아까 방송국에 전화했는데, 연락 못 받으셨나 봅니다.”

“네?”

믿을 수 없다.

고작 보름이 지났을 뿐인데, 어떻게 스튜디오가 뚝딱 지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한 달 예정으로도 빠듯한 공사일 텐데요.”

독촉하려고 온 참이다.

태수가 일을 아무리 잘한다고 소문났어도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구경하시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태수가 이건후를 데리고 직접 모델 하우스로 향한다.

저쪽 공터 구석에 커다란 철골조 건물이 보인다.

“내부 공사는 끝냈습니다. 외부 마감만 남았죠. 오늘 내로 페인트칠도 끝날 겁니다.”

“허…….”

이건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고작… 보름…….”

말이 안 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죽었다 깨도 안 될 일이다.

이건후가 흥분해서 콧김을 뿜었다.

“아무리 빨라도 도면 나오는 데만 며칠은 걸립니다. 콘크리트 굳히는 데 사흘은 족히 걸리고요. 거기다 기초며 미장이며 하다못해…….”

태수가 손을 올렸다.

힘들게 설명할 필요 있나.

보여 주면 그만인 것을.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건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태수의 안내에 따라 모델 하우스 겸 스튜디오가 될 장소 안으로 발을 디뎠다.

딸깍.

불이 들어오자 내부가 환하게 밝아진다.

당장 사람이 들어와서 살아도 될 정도로 완벽히 셋팅되어 있었다.

수도와 전기는 물론이고, 가전에 가구까지 전부 갖춰진 채였다.

물론 비치된 제품 대부분이 태양 그룹의 제품이다.

“맙소사!”

진짜로 집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태양 건설이 고생 좀 했지요.”

박철완의 골조 팀과 인테리어 팀은 보름 동안 갈려 나갔다.

야근은 물론이고, 숙식마저 컨테이너에서 해결했을 정도다.

덕분에 태양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컨테이너 사무실이 생기고 말았다.

요즘 태수마저도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오늘 외부 마감이 끝나는 대로 모든 공사가 끝납니다. 당장 내일부터 방송 시작해도 됩니다.”

이건후는 귀신에 홀린 기분마저 들었다.

들끓는 흥분으로 소름이 돋았다.

“왠지 집들이에 온 기분이군요.”

“찬찬히 둘러보시죠.”

이건후가 남의 집 구경하듯 스튜디오를 돌아다닌다.

거실, 주방, 안방, 화장실은 물론이고 베란다까지 확인한다.

“인테리어에 신경 많이 쓰셨군요. 조명, 가구, 카펫과 커튼, 소품까지. 기대 이상입니다.”

“부잣집이니까요. 더구나 CF도 생각해야 하잖습니까.”

“호텔처럼 꾸며졌군요. 아니, 호텔보다 더 좋습니다.”

이건후는 호텔에 익숙하다.

삼청 그룹 계열사인 삼청 호텔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 및 유학 생활로 외국 호텔도 많이 이용해 봤다.

그래서 지금 이 견본 주택이 얼마나 세련되게 꾸며졌는지 알겠다.

“이제 보니 태양 그룹 사람들이 안목이 높군요. 외국 호텔 이상으로 제대로 꾸며놨을 줄이야.”

태수 역시 호텔이 익숙하다.

심지어 21세기 호텔까지 경험했으니 자연히 눈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건후는 그저 감탄만 연발할 뿐이다.

“견본 주택이라고 했던가요?”

“태양 아파트 구조와 똑같이 뺐습니다.”

“층고가 상당히 높은데요.”

“카메라에 아주 잘 나오겠죠? 부잣집은 층고부터가 높잖습니까.”

“허…….”

기가 찬다.

“32평형, 48평형, 64평형을 기본으로 두고, 이참에 한 가지 구조를 더 뺐습니다. 태양 아파트에도 실제 추가할 새로운 평형대를 소개해 드리죠.”

태수가 문을 열면서 싱긋 웃는다.

“태양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128평형입니다.”

태양 아파트가 지어지면 태수가 들어가서 살 집이다.

“방 여덟 개, 거실 두 개, 욕실 네 개입니다. 거기에 드레스 룸은 별도, 베란다, 다용도실, 세탁실, 창고와 펜트리도 넣었습니다.”

이건후의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와…….”

이건 우리 집보다 더 좋다.

이건후가 살고 있는 집이 대지 700평에 건평 94평짜리 마당 딸린 2층 주택이다.

그런데 이건 그냥 한 층으로 128평이란다.

“실제로 태양 아파트에 이걸 추가하신다고요?”

“네, 4,824세대의 태양 아파트 중 단 8세대밖에 없을 펜트하우스죠. 14층 꼭대기 층이라 따로 야외 테라스도 추가될 예정입니다. 전경이 끝내줄 겁니다.”

꿀꺽.

이건후가 군침을 삼켰다.

“저한테도 한 채 분양하시죠.”

“……?”

스튜디오 소개하는데, 뜬금없이 분양이라니?

이건후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인테리어도 이것과 똑같이 해서, 저한테도 한 채 팔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살게요.”

모델 하우스를 개방하자마자 태양 아파트 분양 실적을 올리게 생겼다.

* * *

성북동 대운각.

고급 요정에서는 오늘도 은밀한 만남이 이뤄졌다.

한청호가 무릎을 꿇고 비취색 도자기 술 주전자를 들었다.

“한 잔 받으시죠.”

맞은편에서 도자기 술잔을 드는 남자.

차기범이었다.

“차 실장님께서 따로 저를 부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청호가 차기범의 눈치를 본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차기범은 말없이 술잔을 받아 마신다.

빈 술잔을 내려놓자 재빨리 한청호가 술을 다시 채운다.

“각하께서 보내셨습니까?”

차기범은 말이 없이 술만 마신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세 잔, 네 잔.

술은 마시는데, 말은 없다.

쪼로록.

대체 몇 분이나 이러고 있는 건가.

참지 못하고 한청호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예비 사돈 때문이십니까?”

딱.

큰소리가 나도록 도자기 술잔을 술상에 내려놓는 차기범.

차기범의 눈살이 찌푸려져 있었다.

한청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두호 때문이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차기범과 전두호가 박정환의 총애를 다투고 있다는 것을 한청호가 왜 모르나.

전두호가 대통령 대면 보고를 두고 차기범과 부딪쳤다.

‘성질 좀 죽이고 훗날을 도모하면 됐을 것을. 전두호가 이번엔 좀 성급했지.’

전두호는 이번에 육군 참모 총장에게 불려 가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화가 나서 씩씩대는 전두호를 어르고 달랜 사람이 한청호다.

그런데 이번엔 차기범까지 달래게 생겼다.

‘각하의 최측근인 차기범이다. 눈 밖에 나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는데, 이거 큰일이군.’

한청호는 자꾸만 입안이 말라서 술을 마셨다.

차기범은 한참이나 한청호를 노려본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한 회장.”

“예.”

“결혼 축하하네.”

“예, 예.”

“축하주 한 잔 받지.”

이게 축하주인가, 사약인가.

어쩔 수 없이 공손히 차기범이 주는 술을 받기는 하는데, 마음은 불편해 죽겠다.

이게 다 전두호 때문이다.

‘이런 눈치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전두호가 칼을 갈고 있다.

오랫동안 한청호가 공들였다.

조만간 그 결실이 빛을 볼 것이다.

‘박정환과는 껄끄러운 게 너무 많아. 더구나 나에게 요즘 부쩍 냉담해졌고.’

박정환과 얽히고설킨 더러운 관계가 참 끈끈했었다.

하지만 이게 좋을 땐 공범인데, 나쁠 땐 족쇄란 말이지.

‘일본 비밀 금고에서 박정환의 약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박정환과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했지.’

사우디의 칼리드가 박정환에게 그것을 언급했을 때부터였다.

그걸 수습해 보겠다고 용을 썼지만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강태수, 전부 그 자식 때문이야.’

강태수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꼬였다.

그놈은 아주 간단하게 박정환의 관심을 가져가 버린다.

내가 뇌물은 더 듬뿍 내놓고, 더러운 뒤처리까지 도맡아 하는데!

‘박정환은 나보다 강태수에게 마음이 더 기울었어. 이젠 새로운 배로 갈아탈 때다.’

전두호라는 크고 튼튼한 배로 말이다!

말없이 술만 마시던 차기범이 입을 열었다.

“자네 딸 결혼식 말이야.”

“예.”

“식장은 잡았나?”

“아직 안 잡았습니다. 하지만 전두호 보안 사령관께서는 육군 장성들이 이용하는…….”

차기범이 한청호의 말을 단칼에 자른다.

“청일 호텔을 놔두고?”

청일 호텔.

박정환이 외국 국빈들을 맞이하기 위해 지으라고 명한 호텔이다.

샤를롯의 신군호가 지을 예정이었으나, 공사가 지체된 틈을 이용해 한청호가 가로챘다.

“내년 5월 18일까지 못 짓나?”

“그것이…….”

아직 공사 기한은 넉넉하다.

하지만 문제는 공사 기한이 아니다.

돈이다.

“청일 아파트와 함께 짓다 보니…….”

딱.

이번에도 큰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는 차기범.

변명을 칼 같이 자르는 통에 한청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고작 국빈 호텔 하나 짓는데, 각하께서 몇 년이나 기다리셔야 하나?”

박정환은 신군호 때문에 3년을, 한청호 때문에 1년을 기다리고 있다.

차기범의 눈빛이 싸늘하다.

“지난번에 사우디에서 왕자가 한 명 내한했었지.”

라흐만을 말하는 거다.

태양 그룹 출범식에 왔다면서 청일 호텔 착공식에서 깽판을 놓고 갔던 그 자식!

“금산 호텔에서 묵었다지?”

“예.”

“그걸로 각하께서 매우 못마땅해하셨다는 건 아 나?”

“그러셨습니까?”

한청호도 듣는 귀가 있다.

라흐만이 스위트룸이 작고, 고급 레드 와인도 없다며 불만을 투덜댔다고 했다.

그 이후 금산 호텔 바엔 고급 주류를 속속 준비해 놓았다고 들었다.

“국빈이 머물만한 호텔이야. 공사를 미룬다는 이유로 청일에서 가로채 갔으면 제 말에 책임지고 그만한 결과를 내놔야지.”

딱.

이러다 도자기 술잔이 깨질 지경이다.

한청호는 재빨리 술 주전자를 들고 차기범의 잔을 채워 주었다.

“각하께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청호, 그 친구 안 되겠어.”

식은땀이 난다.

박정환의 인내심이 동났다는 뜻이다.

“청일 호텔을 두고 육군 야외 결혼식장을 이용하겠다면 말리진 않아.”

한청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각하께서 청일 호텔을 주시하고 계시다는 것만 알아 둬.”

차기범의 눈은 차디찼다.

“청일 아파트가 어찌 지어지게 되었나, 기억해야 할 거야.”

박정환이 한청호 대신 억지로 강태수의 땅을 빼앗아 줬다.

그때 박정환이 한청호만 따로 남으라고 했다.

-내가 애송이 손에서 땅문서 빼앗을 군번이야? 쪽팔리게!

한청호는 그때 바닥에 넙죽 엎드려 빌어야 했다.

박정환이 차갑게 말했다.

-청일 호텔과 청일 아파트. 빨리 올려야 할 거야.

박정환은 뒷말은 더 하지 않았다.

그만하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테니까.

“각하께서 직접 경고해야 알아들을 텐가?”

“아닙니다.”

박정환이 다시 그 일을 거론한다면 끝이다.

한청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제 딸의 결혼식입니다. 이왕이면 아버지가 버진 로드를 깔아 줘야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차기범이 차갑게 웃었다.

“자네 딸은 좋은 아버지를 두었군.”

차기범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건은 끝났다.

한청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대운각을 벗어났다.

‘강태수, 자네가 부탁했던 첫 번째 청은 들어줬다.’

강태수는 말했다.

-청일 호텔에서 결혼식을 열도록 한청호를 압박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한청호에게 확답을 들었다.

차기범은 뒤도 안 돌아보고 차에 올랐다.

“출발해.”

차는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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