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32화 (132/230)

132. 이미지를 팔아야지(1)

태수가 턱을 쓸었다.

“TBS 동인 방송이라면 아주 좋지.”

서울과 수도권, 부산 및 일부 동남권이 주 시청권역인 방송국이다.

홀쭉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 방송인 MBS 문학 방송과 방송국 2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큰 방송국이야.”

“특히 연속극과 예능을 주름잡고 있지. 벌써 기대가 되는데?”

박정환 대통령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내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전국구 방송국이 되었을 곳이다.

“이번에 동인 방송에서 연속극을 준비하고 있어. 마침 네가 말한 조건에 딱 맞더라고.”

홀쭉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복수를 위해 건설업에 뛰어들어 성공과 사랑을 쟁취하는 남자의 서사극이래. 어때?”

박철완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의욕적으로 맞장구친다.

“남자라면 건설이죠. 부동산으로 성공과 사랑을 쟁취하다니!”

부동산과 건설 얘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가는 박철완이 아닌가.

아직 기획 단계인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아주 좋은 기회군. 안 그래도 태양 아파트 홍보를 위해 방송을 알아보던 차다.’

이건 프로그램 끝날 때 협찬사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다.

신문 광고 이상으로 홍보가 될 것 같다.

‘이 돈 냄새!’

잡자!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하는 일이다.

“김 실장, 그 연속극은 우리가 협찬하기로 합시다.”

다짜고짜 나온 김 실장이란 호칭!

홀쭉이도 어쩔 수 없이 친구의 탈을 벗고 홍보실장이 되었다.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협찬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진 않습니다.”

“문제?”

“그것 때문에 지금 연속극 제작 자체가 무산되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극본? 제작비? 배우? 편성 시간? 제작진 부족?”

“촬영 장소가 문제라고 하는군요.”

황당했다.

다른 드라마들이 제작이 무산되는 이유와 너무나 동떨어진 문제라니.

“대부분 세트장에서 촬영할 텐데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일일 연속극이잖습니까.”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그것이었다.

일일 연속극.

70년대엔 보통 일일 연속극으로 드라마를 제작했다.

80년대에 언론 통폐합이 되면서 주말 드라마,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등등이 나뉘었다.

“기존의 세트장부터가 너무 협소하여 문제라고 합니다.”

“흐음.”

“이번 연속극은 야심 차게 초호화 캐스팅에 화려한 볼거리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극의 규모가 너무 커서 커버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스튜디오의 규모를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홀쭉이가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점점 대형화되는 프로그램을 감당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여기저기 새로 스튜디오를 알아보고 있는 모양인데,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중세 매스컴 센터는 확실히 작긴 하죠.”

현재 TBS 동인 방송은 서소문동에서 중세 일보와 한 빌딩을 나눠 쓰고 있다.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전속 배우들이 늘어나면서 스튜디오가 부족한 실정이다.

‘여의도 신사옥으로 옮기기 전까지 어려움이 많았다더니.’

여의도 신사옥이 건립되기 전까진 서소문 방송 센터와 운현궁 제3 스튜디오 등 여기저기 방송 시설들이 흩어져 있었다.

쇼 프로그램용 공개홀과 드라마 스튜디오를 제대로 갖추게 된 것도 여의도 신사옥 때부터다.

“건설사 회장님 집이라면 일단 크고 넓고 높아야 화면에 잘 나온다더군요. 상류층 집을 스튜디오에 꾸미고, 상류층 파티를 열 정도로 고급스러운 세트장이 필요하죠.”

확실히 회장님 집은 규모부터가 남다르다.

층고도 높고, 가구도 비싼 것들로 채워 넣는다.

또한 호화스러움을 보여 주기 위해 소품들 하나까지 전부 돈이다.

“또한 야외 촬영이 많아서 고민이라고 합니다. 촬영 시간은 촉박한데, 이동 시간은 많고.”

흥미롭다.

대체 얼마나 야심 차게 밀어붙이는 연속극이었나.

그런데 고작 촬영 장소 문제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니.

“촬영지 가까운 곳에 야외 촬영을 할 수 있는 공터도 필요합니다.”

“공터라면 수도권 외곽에 널려 있을 텐데요.”

지금 대치동과 잠실만 하더라도 황무지 논밭이 아닌가.

“각종 중장비, 인부들, 게다가 지속적으로 건설 정황을 보여 줘야 하니까요. 연속극 진행에 맞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나 봅니다.”

의아했다.

하지만 홀쭉이의 다음 말로 의문이 풀렸다.

“오일 쇼크 때문에 촬영에 협조하기로 했던 건설 회사가 부도나서요. 외부 촬영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었다고 합니다.”

오일 쇼크 때문에 부도난 회사가 한둘인가.

동인 방송 측에서는 발을 구르겠지만 지금 너도나도 난리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연속극 기획 자체가 무산되게 생겼다는군요. 우리가 협찬한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고요.”

태수는 피식 웃었다.

“별로 어려운 문제도 아니군요.”

그거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촬영 장소만 해결해 주면 되잖습니까.”

극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작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배우나 제작진이 부족해서 곤란한 것도 아니다.

TBS 동인 방송은 전속 배우진에 대한 지원이 많고 대우가 좋아서 출연 방송인들끼리 결속력이 대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연속극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돈 문제가 제일 무섭지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죠.”

보통 제일 큰 문제는 돈 문제다.

돈만 있으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데 우리는 돈도 있고, 공터도 있고, 장비도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태수가 보고 있던 아파트 건설 도면 중 한쪽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여기를 비워 주겠습니다.”

태양 아파트 1단지가 들어가는 곳과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이번에 갑작스럽게 공사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총 58개 동이 들어가야 하는 곳에 고작 12개 동밖에 들어가지 않게 됐죠. 그래서 우리 공사 현장에는 빈 땅이 많습니다.”

한청호를 압박하기 위해.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과 달리 급선회하여 분양 일정을 당긴 시점이다.

어쩔 수 없이 일부 아파트만 짓기로 한 결정이 못내 뼈아팠는데, 이게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우리 아파트 공사 현장 공터에서 야외 촬영을 하면 되겠군요.”

무려 8만 5천여 평이나 되는 아파트 부지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 중장비와 자재, 인부까지 상주하니 촬영도 쉬울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임시 스튜디오를 지어 제공합시다.”

“네?”

홀쭉이가 입을 떡 벌렸다.

“우리가 스튜디오를 지어 준다고요?”

“스튜디오가 아니라 임시 스튜디오. 방송국 안에서도 자주 지었다 부쉈다 하는 거. 세트장 말입니다.”

“왜요? 고작 드라마 하나 때문에 그런 출혈을 감수하려는 거죠?”

동인 방송국 좋으라고?

“설마. 내가 호구도 아니고. 겸사겸사 일석이조니까 지으려는 겁니다.”

“……?”

태수는 씩 웃었다.

“어차피 모델 하우스 하나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걸 임시 스튜디오로 제공하면 됩니다.”

“……!”

“아파트 분양 홍보 전략으로 더할 나위 없습니다. 임시 스튜디오 짓는 것으로 그 이상의 홍보 효과를 낼 수만 있다면 그만한 투자는 감수해야죠.”

어째 홀쭉이보다 박철완이 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델 하우스라고요?”

눈빛이 초롱초롱함을 지나쳐 번뜩이기까지 한다.

태수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다급하게 묻는다.

“자세한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박철완의 반응을 보고 태수는 문득 깨달았다.

‘아, 그렇군. 모델 하우스를 이용한 아파트 분양 전략은 80년대에나 되어야 유행하는군.’

박철완뿐만이 아니다.

연속극 기획 제작팀과 미팅 약속을 잡은 홀쭉이도 관심을 보인다.

태수는 말했다.

“모델 하우스는 쉽게 말해서 견본 주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태수가 아파트 건설 도면을 들춘다.

완성된 건물 예상도를 찾아냈다.

“예상 도면을 실제 집으로 보여 준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파트와 구조가 똑같은 견본 주택을 직접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박철완이 떠듬떠듬 대답한다.

“아파트 내부를 보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거실을 어떻게 꾸밀까, 이 정도 평수라면 가구는 무엇으로 놓고, 이 방은 누가 쓸까.”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죠.”

“그럼 아파트가 전부 지어지지 않았을 때 아파트 분양에 앞서 견본 주택을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도 생각해 봅시다.”

“……!”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랬습니다. 아주 좋은 분양 홍보 전략이 될 겁니다.”

박철완의 표정이 밝아진다.

홀쭉이도 마찬가지다.

태수가 지금 회장님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홀쭉이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태수야, 너 진짜 대단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봅시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델 하우스를 그냥 휑한 공간으로 내놓는 게 아니라 상류층 회장님이 쓰는 가구를 넣고, 고급 커튼과 카펫을 깔고, 비싼 주방 가전과 주방 가구를 채워 넣는 겁니다.”

모델 하우스를 보고 완성된 아파트를 예상하여 구매를 결정한다.

당연히 모델 하우스를 얼마나 예쁘게 꾸미느냐가 아파트 분양과 직결된다.

이게 홍보 전략의 핵심이다.

“회장님 집을 판다는 전략이죠.”

자연스레 상상이 된다.

홀쭉이는 소름이 돋았다.

“우리 태양 아파트를 회장님 집이라고 홍보합시다.”

태수는 웃으며 말했다.

“이미지를 팔아야죠. 최고급 브랜드라는 게 따지고 보면 고급 이미지를 끼워 파는 거잖습니까.”

아파트도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다.

명품 브랜드 아파트는 일반 주공 아파트보다 몇 배나 더 높은 가격에 팔릴 것이다.

“현실에서 회장님 집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남의 집안이 궁금한 건 다들 똑같습니다.”

집들이를 왜 하겠나.

드라마를 왜 보겠나.

“난 모델 하우스를 무료로 개방해서 사람들에게 공개할 겁니다.”

박철완은 주먹을 꽉 쥐고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끝내주는군요.”

“회장님 집을 직접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도처에 깔렸습니다.”

“거기다 공짜라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룰 거예요. 회장님 말씀처럼 홍보 효과로는 그만입니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드라마를 추가하는 겁니다.”

드라마는 아주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다.

“매일 보는 드라마 속 회장님 집. 그게 현실에 존재하고, 심지어 내가 그걸 살 수 있습니다.”

드라마는 물건을 팔지 않는다.

드라마는 이미지를 판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번다.

“구매력이 충분한 중산층의 마음을 파고드는 겁니다.”

태수가 드라마의 이미지를 태양 아파트에 얹으려는 이유다.

“중산층은 경제력이 넉넉합니다. 교육 수준도 높고, 체면을 중시하죠. 그런 그들을 사로잡으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죠. 바로 로망! 상류층을 향한 갈망!”

중산층이 원하는 건 상류층의 삶이다.

태수는 쉬지 않고 말했다.

“산업 혁명 시대에 상류층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대두했습니다.”

“…….”

“상류층을 따라 하고자 그들 역시 티타임을 도입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류층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죠.”

“…….”

“인도와 동양에서 들여오던 홍차 대신 이번엔 커피가 등장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중산층을 보고 노동자 계급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박철완이 대답했다.

“빵을 태운 물을 마시기 시작했죠.”

태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굳이 빵을 태워 가면서까지 까만 물을 마신 겁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상류층의 삶을 누리고 싶다는 열망을 채우기 위해서죠. 아파트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다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사람들이 우리 태양 아파트의 분양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건 다들 알고 있겠죠?”

그걸 누가 모르나.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호기심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구매에는 차가운 경우가 많았다.

-김장독 묻을 데가 없잖아!

-마당도 없는 집이 집인가?

-아무리 최고급 집이라고 우겨 봐야 닭장이지!

“지금 태양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신개념 아파트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관심을 우리 태양 아파트의 분양 인기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오죽하면 장준용이 걱정하며 말리러 왔을까.

사람들은 아파트를 빈민들을 위한 주거 대체제로 인식하고 있다.

태수가 딱 잘라 말한다.

“사람들 인식을 바꾸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효과적인 수단, 더 효율적인 홍보, 더 확실한 새로운 임팩트!”

태수가 홀쭉이와 박철완과 눈을 마주친다.

“그걸 위해 이미지 전환은 꼭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로망을 부추기고, 상류층의 삶을 꿈꾸게 만들고, 그것을 사고 싶도록 만들어야죠. 그렇게 최고급 브랜드 아파트가 탄생하는 겁니다.”

전생에서 청일은 대치동 청일 아파트로 최고급 브랜드 아파트 이미지를 손에 넣었다.

그 이후 아파트 건설에서 청일의 독주를 막을 기업은 없었다.

“한 번 제대로 확립한 이미지만큼 무서운 게 없습니다. 명품이 질이 좋으면 얼마나 더 좋다고 물건 뒤에 ‘0’이 몇 개나 더 붙겠습니까?”

태수는 말했다.

“좋은 물건이 좋은 가격에 팔리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명품은 질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명품 브랜드 만들기는 이처럼 중요한 일입니다.”

태양 아파트를 대한민국 최고급 명품 아파트 브랜드로 만들 것이다.

“따라서 모델 하우스와 일일 연속극은 반드시 최고급 전략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 다들 명심하십시오.”

홀쭉이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이번 일일 연속극을 통해 우리 태양 아파트의 이미지를 한층 끌어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태수가 씩 웃으며 아파트 완공 예상 도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김 실장, 내일 방송국 관계자와 미팅에 나와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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