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23화 (123/230)

123. 신문 광고 전쟁(3)

한청호의 서재.

한청호가 석간신문을 패대기쳤다.

“금산의 장준용이 미쳤나? 아직 기초 공사를 하는 주제에 아파트 전면 광고를 실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그런데 태양을 시작으로 금산의 장준용까지 아파트 광고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모든 일간지에 한꺼번에, 동시에, 대대적으로.

“강남 아파트 개발은 금산이 책임지겠습니다? 직원 복지를 위해 아파트를 짓는 금산의 통 큰 직원 사랑? 최고의 기업 금산에 들어오면 새로운 아파트가 여러분을 반겨? 웃기고 있네!”

한청호는 씩씩댔다.

“다들 미쳐 가는군.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거야?”

이해할 수 없었다.

신문 광고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 분양할 때 그때 광고를 싣는 것만 해도 족하다.

그런데 갑자기 태양을 시작으로 아파트 광고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게 심상치 않다.

“대체 무슨 꿍꿍이야?”

다음 날, 한청호는 또 신문을 와락 구겨야 했다.

“한국 주택 공사까지 신문에 주공 아파트 전면 광고를 내걸어?”

진짜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다음 날, 또 다음 날.

신문과 방송은 연일 ‘강남 아파트’와 ‘강남 개발 빅3’에 대해 기사를 쏟아 냈다.

벌써 일주일째다.

한청호는 눈을 감았다.

“대통령까지 강남 아파트 개발 추진을 독려했단 기사가 뜨고, 신문들은 강남 아파트 개발의 빅3라며 우리 청일만 쏙 빼놓고 있잖아?”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우리 청일도 잠실에 대규모 아파트를 지을 거야. 여기서 밀릴 수는 없지.”

광고 전쟁에서 빠지면 사람들 뇌리에서도 빠진다.

잠실에 짓는 청일 아파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청일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

이때 빼면 청일 아파트는 찬밥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되는 법이다.

이건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그깟 광고, 우리 청일도 낸다!”

태수가 던진 미끼를 한청호가 덥석 무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일간지 신문 전면 광고로 일제히 잠실의 청일 아파트를 홍보한다.

-청일이 짓는 프리미엄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중앙 공급식 열병합 보일러가 들어간 최고급 아파트!

-석촌 호수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 미국 센트럴 파크가 부럽지 않다!

-대한민국 최고는 역시 청일 아파트!

태수는 신문을 접으면서 웃었다.

“이럴 때 빠지면 한청호가 아니지.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됐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내 땅을 안 사고 어떻게 아파트를 올릴까? 내가 분뇨로 퇴비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상 무시하긴 힘들 텐데.”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겠지.

“그럼 눈으로 보여 주면 위기감이 엄습하겠군. 당장 집을 철거해야겠어.”

그럼 한일권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보인다.

* * *

한일권이 회장실에 들어왔다.

“아버지.”

아들의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잠실은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헛소리!”

“강태수가 그곳에 분뇨를 농업용 퇴비로 만드는 사업을 하겠답니다.”

“뭐라고?”

한청호가 눈을 부라린다.

“강태수, 이 새끼가!”

“작정한 것 같습니다. 허풍일까 싶어서 며칠 지켜보는데, 집까지 철거하는 걸 보니 진심인 것 같습니다.”

화가 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분뇨 처리 시설이라니!

“분뇨 처리 시설이 아파트 한가운데에 생긴다면 아파트가 분양되겠어요?”

“막아! 어떻게 해서든 그것만은 안 돼!”

“공무원들에게 압박을 가해 봤지만 이미 허가가 떨어진 후라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젠장!”

허가가 떨어지기 전에 손을 써야지 허가가 떨어진 이후엔 소용없다.

한청호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지금 잠실을 포기하자고?”

“어쩔 수 없잖습니까? 애초에 이건 안 되는 사업이에요.”

“그래서 대안은 있고?”

“구로 공단 근처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형 아파트는 어떻습니까?”

한청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신문을 주워서 탁탁 턴다.

“청일이 잠실에서 아파트를 짓겠다고 이미 대대적으로 광고를 냈다! 그런데 그걸 철회하자는 소리가 나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금방 잊어요. 벌레들 기억력을 뭐 그리 무서워하실까.”

“강태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미엄 아파트를 짓는다고 신문에 광고를 때리고 있다! 그런데 뭐? 청일 아파트는 고작 노동자들을 위한 소형 아파트를 지어?”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

“지금 나더러 황무지 헐값인 잠실 땅을 두고, 공장이 몰려 땅값이 비싼 구로에 아파트를 지으라는 게냐?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개새끼처럼?”

“그럼 기어이 잠실에 아파트를 지으려고요?”

“지어야지! 내가 각하 앞에서 잠실에 아파트를 올리겠노라 단언하고 나왔어!”

그러니 물릴 수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잠실에 청일 아파트는 꼭 지어야 한다.

“이건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아버지. 현실을 직시하셔야죠.”

“젠장!”

화가 난다.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다.

“아버지 청일엔 막대한 대출금이 쌓였고, 적자도 많아요. 당장 아파트 지어서 팔아야지 숨통이 트일 상황이에요.”

돈이 펑펑 잘 나오던 청일 정유와 청일 중장비를 빼앗겨서 그렇다.

오일 쇼크 때문에 누적된 적자까지 청일이 전부 떠안은 상황이다.

청일 호텔까지 짓느라, 대규모 아파트 공사는 여력이 없다.

“일단 지어서 팔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요.”

“다음은 없어!”

철모르는 소리에 속이 뒤집힌다.

“개돼지들에게 신의를 잃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각하께 신뢰를 잃으면 그다음은 없단 말이다!”

사업 수완이 좋아서 재벌이 된 게 아니다.

박정환의 눈에 들어서 그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며 돈 되는 걸 받아 와서 재벌이 됐다.

그러니 박정환의 눈 밖에 나면 다음은 없다.

한청호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태수가 그 땅, 토해 내도록 만들어!”

뒤는 없다.

배수진이다.

* * *

태수는 장준용이 주고 간 초대장을 열었다.

<금산의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금산이 벌써 창립 30주년이나 됐나?”

자수성가하여 재벌이 된 대표적인 인물이 장준용과 신군호를 꼽는다.

장준용은 자동차 수리공으로 시작해 건설로 대박이 났다.

그래서 지금도 금산은 자동차와 건설로 이름이 높다.

반면 신군호는 일본에서 껌을 팔다가 대박이 났다.

제과를 기반으로 영역을 넓혀 유통 재벌이 되었다.

“대체 누굴 소개해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반드시 참석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장준용의 얼굴이 떠오른다.

소개할 사람이 있다면서 말이다.

빠지면 후회할 거라면서 장준용은 의뭉스럽게 웃었다.

“회장님!”

박철완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방금 금산의 김 비서님을 만났어요. 초대장을 주시던데요. 혹시 회장님도…….”

초대장이라면 며칠 전에 받았다.

태양 아파트 건설 현장을 찾은 장준용이 직접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초대장을 보고 있었던 참이다.

박철완이 태수의 손에 들릴 초대장에 눈길을 빼앗겼다.

“어? 초대장이 제 거랑 좀 다르네요.”

“음?”

“이것 보세요.”

박철완이 품에서 초대장을 꺼낸다.

“이건 아까 김 비서님이 주고 가신 거예요. 확실히 회장님 것과 다르죠?”

태수가 받은 초대장은 흰 바탕에 황금색 테두리를 둘렀다.

박철완이 받은 초대장은 흰 바탕에 은색 테두리다.

“아마 VIP룸 초대석일 거예요.”

전에 금산 조선중공업 출범식 때 차기범이 데려간 VIP룸엔 박정환이 있었다.

‘이번에도 VIP룸을 운영한다는 뜻인가?’

그럼 박정환이 온다는 건가?

태수는 슬쩍 초대장을 다시 보았다.

“지난번에 받은 초대장은 평범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흰색 초대장.”

“그땐 저도 똑같은 것으로 받았어요. 아마 회장님 때문에 장 회장님께서 이번엔 특별히 신경 쓰신 게 아닐까요?”

나 때문에?

“혹시 그때 안내인이 층을 잘못 안내한 것 때문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초대장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다.

박철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한경련 초대장일지도 모르겠어요. 금산 회장님이 현재 연합 회장을 맡고 계시잖아요.”

한경련이라면 한국 경제인 연합회다.

한국 재벌의 모임으로, 대한 상공회의장, 한국 무역 협의회, 중소기업 연합회, 전국 경영자 총협회를 포함한 경제 5단체 중 하나다.

‘한경련이라…….’

1961년 삼청 그룹 이병춘 회장이 일본 경단련을 모델로 하여 대기업을 모아 창립하였다.

이후 박정환 정권 시절 여러 특혜를 받으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설립 목적은 거창하나, 실상은 특정 이익 단체가 모여 재벌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압력 단체로 기능하고 있었다.

‘내가 청일 그룹의 일을 도맡아 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덩치가 커졌었지.’

21세기엔 제조업, 무역, 금융, 건설 등 전국적인 업종별 단체 67개와 대기업 436개 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기업 재벌 총수가 2년마다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았는데, 한일권 역시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난 한 번도 제대로 참여해 본 적 없군. 재벌들의 모임이라…….’

태수는 직접 재벌 모임에 참여해 보지는 못했다.

그건 청일 그룹의 총괄 비서가 되어서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였다.

‘무척 배타적인 사모임이었지.’

금산 호텔에서도 그랬다.

층을 나눠 재벌 및 유명 인사의 자제가 한 층에서 모임을 가졌다.

다른 층에는 사모님들이, 또 다른 층에는 사장님들이 모인다.

실질적으로 총수 노릇을 한다고 해도 태수가 머물 수 있는 건 메인 홀.

사회적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있는 장소까지가 한계였다.

“장 회장님께서 직접 초대장을 주러 오셨으면 말 다했죠. 회장님을 한경련 신입 회원으로 초대하신 게 아닐까요?”

“신입 회원이라…….”

태수는 잠시 턱을 쓸었다.

갈까 말까.

“귀찮은데…….”

지난번 금산 호텔에서 열린 금산 조선 중공업 출범식 때를 떠올렸다.

똥파리들만 잔뜩 날리는 그곳을 굳이 가야 하나 싶다.

청일 그룹의 총수 일을 할 때도 한경련 따위는 안 갔어도 재계 서열 1위까지 청일을 끌어올렸다.

“회장님, 귀찮아도 웬만하면 참석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박철완.

“재벌들끼리 갖는 모임이에요. 여기서 은밀하게 이권이 오가고, 정보를 교류하고, 끼리끼리 해 먹거든요. 괜히 그들끼리 사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게 아니에요.”

“흐음.”

“한 번 가 보시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아요.”

박철완은 초대장을 가리키며 웃었다.

“금산의 장 회장님이 직접 초대장을 줬는데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요.”

그건 그렇다.

이런 줄 알았으면 아예 초대장을 받지 않는 건데 그랬다.

* * *

청일 그룹 본사 회장실.

박 비서가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건넸다.

“금산 그룹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한청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지금 내 코가 석 잔데 그깟 일을 축하하러 가야겠어?”

“이번에 박정환 대통령 각하께서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구미가 당긴다.

“또한 강남 아파트 개발 빅4의 주역들에게 따로 초대장을 보내어 이를 의논하고자 한다는군요.”

한청호는 초대장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기존의 흰색 초대장과 달리 금테가 둘러져 있었다.

‘각하 앞에서 잠실에 아파트를 세우겠노라 큰소리를 쳤는데, 아직도 부지 매입부터가 삐걱대니 원.’

욕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박정환은 굼뜨게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샤를롯의 신군호가 을지로 호텔 공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청일에 빼앗긴 이유가 무엇이겠나.

“듣자 하니 이번에 각계각층에서 초대를 받고 금산을 축하해 준다고 합니다.”

금산 장준용은 발이 넓다.

“그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야?”

“이번에 승진한 전두호 보안 사령관도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말이 달라지지.

전두호 보안 사령관은 박정환의 비호를 받아 군에서 사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중앙 정보부의 부장과 차장도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박정환 대통령 각하께서 그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은다고 합니다.”

별들의 잔치가 열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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