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21화 (121/230)

121. 신문 광고 전쟁(1)

한일권이 차에서 내려서 온다.

선글라스를 벗어 버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누구는 아파트 기초 공사가 끝나 가는데, 누구는 더러운 수작질 때문에 아파트 사업 승인도 못 받네.”

“무능력해서 그렇지. 분발해.”

한일권이 태수를 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땅 주인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안 그래?”

“땅문서며 집문서며 내 이름 석 자 제대로 박혀 있을 텐데.”

태수는 씩 웃었다.

“이제야 날 찾아오는 건 무능력하단 소리밖에 더 되나?”

박 비서가 찾아와서 땅 팔아 달란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데.

“내 집 구경은 잘했나?”

“다 무너져 가는 집이더군. 코딱지만 한 집 가지고 유세는 더럽게 떠네.”

“그 코딱지만 한 집을 사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 너야.”

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내 대답은 하나뿐이야. 안 팔아!”

한일권이 크게 웃었다.

“어이구, 고작 황무지 1,800평 가지고.”

“그래서 용건이 뭐야? 시비 걸러 왔어, 땅 팔아 달라고 부탁하러 왔어?”

한일권은 입술을 깨물었다.

양궁 과녁으로 치면 10점 만점 한가운데 땅이다.

노른자 중의 노른자.

어찌 그 땅을 포기하고 아파트 공사를 할까?

곧 죽어도 부탁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방법이야 많지. 그 땅을 쏙 빼고 아파트를 둘러 버려도 그만이고.”

마치 도넛 한가운데 구멍을 뻥 뚫은 것처럼.

“토지 강제 수용을 신청해도 그만이고.”

요건이 안 된다.

하지만 한일권은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렇지? 이럴 때 쓰려고 뒷돈을 처먹이는 건데.”

태수는 피식 웃었다.

“이런, 한발 늦었어.”

태수가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펄럭였다.

“내가 진즉에 사업 허가를 받았거든.”

한일권 눈앞에 사업 허가서를 내밀었다.

“내가 거기서 분뇨를 농업용 퇴비로 바꾸는 사업을 좀 해 보려고 말이야.”

아파트 입주민들이 싫어할 혐오 시설이다.

현재 지목상 잠실은 아파트 용지가 아니다.

근처는 전부 농업 용지다.

농업용 퇴비 사업 요건에 들어맞는다.

한일권이 눈을 푸르르 떨었다.

“이거 어쩌나? 아파트 주민들이 매일 분뇨랑 퇴비 냄새 맡으면서 살아야겠다. 아파트 분양이 되긴 할까 걱정이 많겠어.”

아주 얄미운 웃음이었다.

“청일 정유에 쌓아 놨던 적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장들이 독촉장을 보내도록 한 힘 보태 볼까?”

태수가 품에서 청와대 마크가 찍힌 은색 라이터를 꺼냈다.

한일권 눈앞에서 그걸 던졌다 받았다 한다.

“네 아버지가 대통령 각하를 움직여서 했던 그 수작, 나도 똑같이 되돌려 줄 수 있는데. 재밌겠지?”

박정환이 라이터를 줄 때 약속했다.

-다음번 담뱃불은 그걸로 붙이도록 하지.

-담배 한 개비와 맞바꿀 게 있으면 그때 말하도록.

“당한 것 그대로 되돌려 주지 않고서는 나도 성이 안 차서 말이야.”

청일이 태수가 당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태수가 쐐기를 박았다.

“꺼져.”

이곳에서도, 그리고 잠실에서도.

그곳에 태양 랜드를 올릴 생각이다.

한청호를 떠받쳤던 모든 것, 야금야금 빼앗아 올 생각이다.

* * *

한일권을 태운 차가 먼지를 흩날리며 꽁지 빠지게 달려 나간다.

새로 태수의 비서가 된 송창준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회장님, 동방 일보에서 취재진이 나왔습니다. 태양 아파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면서 회장님을 만나 뵙겠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동방 일보에서요?”

동방 일보라면 태수도 잘 안다.

‘노동 운동과 자유 수호의 기치를 내거는 바람에 박정환에게 요즘 단단히 찍혔다지?’

저쪽에서 기웃대면서 사진기 플래시를 터뜨리는 두 명의 기자가 보인다.

한 사람은 인부를 잡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는 기자.

‘한청호 속을 뒤집어 줄 때가 됐지.’

신문으로 대놓고 도발 한번 해야겠다.

‘또한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태양 아파트를 알려야 분양 전쟁에서 유리하지.’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데 신문만 한 게 없다.

아직 기초 공사밖에 안 해서 방송은 조금 이른 감이 있다.

‘조만간 기자들을 부르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군.’

딱 좋다.

“좋습니다. 인터뷰합시다.”

“따로 자리를 마련할까요?”

태수는 벌써 기자들에게 성큼성큼 가고 있었다.

송창준은 재빨리 태수의 뒤를 따랐다.

태수가 다가오자 기자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동방 일보에서 나오셨다고요?”

사우디에 취재하러 왔던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눈에 띄게 반가워했다.

즉위식에서 태수를 보고 신이 나서 호평 일색인 기사를 썼던 자들이었다.

“강태수 회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동방 일보의 이성준입니다.”

“동방 일보의 오정태입니다.”

“강태수입니다.”

태수는 선뜻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여기는 시끄러우니 조용한 곳에서 잠깐 얘기 좀 나눌까요?”

“좋습니다.”

* * *

컨테이너 안.

인부들이 쉴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임시 사무실이었다.

따로 곤로와 수도를 연결해서 식사도 할 수 있게 만든 휴게실이기도 하다.

두 기자가 질문을 퍼부었다.

“단일 아파트 단지로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 규모인 것 같습니다. 고속 도로와 학교를 기부 채납하는 대가로 아파트 사업권을 따냈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듣자 하니 평수가 상당히 크던데요. 최소 평수가 32평, 최대 평수가 64평이라죠?”

“너무 큰 것 아닙니까?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라고 하기에는…….”

태수는 손을 들었다.

“천천히 하나씩 합시다.”

기자들이 그제야 태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태양 아파트는 최고급 아파트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를 짓고 있죠.”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까지 받아 적다가 이성준이 고개를 갸웃댄다.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 주택이 아닙니까? 그런데 중산층이라뇨?”

“중산층이 아파트에 살지 말란 법은 없지요.”

“중산층이라면 마당 딸린 2층 양옥집을 짓겠죠. 굳이 아파트에 들어가진 않을 텐데요?”

70년대 인식이 그랬다.

“아파트는 마당 딸린 개인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집이잖아요.”

많은 수의 사람을 좁은 땅덩이에 수용하여 국토 손실을 줄이는 방법으로 고안됐다.

“아파트는 애초에 중산층을 위한 게 아니라 서민, 그것도 빈민을 위한 공동 주택이죠. 그러니 한국 주택 공사가 주공 아파트를 짓는 것 아닙니까?”

싼값에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태수는 여유롭게 웃었다.

“중산층이 아파트에 입주할 이유는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태수는 말했다.

“첫째, 주차장을 구비하고 있기에 차량을 소유하기 편리합니다.”

“하지만 지금 차를 소유하는 사람들은 전부 최상층 부잣집인데요.”

“곧 중산층에도 자동차가 보급될 테니까요.”

몇 년 남지도 않았다.

지금 한국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국민 소득도 연일 높아지고 있다.

중산층이 점점 대두되고 있다.

“둘째, 교육 시설에 접근하기 편리합니다.”

“교육 시설이요?”

“아파트의 아이들을 위해 네 개의 국민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두 개씩 짓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파트 주민을 위한 도서관도 지을 예정입니다. 저쪽은 학원가가 될 예정이고요.”

태수가 건축 도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곳은 걸어서 학교와 학원을 쉽게 가고, 도서관에서 마저 공부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학군이 탄생할 겁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는 중산층입니다.”

우리는 중간 관리 계층을 일컬어 중산층이라 말한다.

중간 관리 계층이 하는 일엔 반드시 고등 교육이 필요하다.

중산층은 자식들도 중산층이 되길 희망하여 교육에 힘을 쏟는다.

“셋째, 이곳엔 편의 시설의 접근성이 좋습니다. 바로 아파트 상가 때문이죠.”

모두 4,824가구가 들어선다.

기본 2만여 명에 달하는 인구가 밀집된다.

그러니 도로를 따라 아파트 상가를 빙 두를 예정이다.

“집 바로 앞에서 병원, 은행, 슈퍼마켓, 미용실과 세탁소 등 상권이 갖춰졌습니다. 멀리 시내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중산층을 경제력을 갖춘 계층이다.

그들은 부유한 생활을 누리길 원하며 길바닥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넷째, 집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마당의 잡초를 가꾸는 데,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연탄을 나르기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파트 관리소를 두고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생각이다.

“편리함, 간편함, 풍족함. 우리는 중산층이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생각입니다.”

중산층을 타고 태양이란 이름을 전국에 떨칠 생각이다.

“이곳은 중산층의 부와 품격에 걸맞게 평수가 넓고, 최고급 시설로 갖출 예정입니다. 그러기 위해 엘리베이터, 기름 보일러, 전기, 수도, 하수도 배관을 정비했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태양 건설은 최고급 아파트를 지을 겁니다.”

아파트에 대한 인식부터 바꿀 상류층의 아파트가 될 것이다.

“크으- 대단하군요.”

동방 일보 기자들은 열심히 태수의 말을 받아 적었다.

오정태는 사진기를 들고 태수가 말하는 예상 준공도를 찍기도 했다.

“진짜 이런 집이라면 저부터 들어가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성준과 오정태는 나직이 감탄했다.

“솔직히 말해서 놀랐습니다. 강남 개발이 시작되고, 대단지 아파트가 속속 들어설 계획이라곤 합니다만 큰 기대는 안 했습니다.”

강남 아파트 개발의 빅4 라고 해서 요새 말이 많다.

박정환의 주도 아래 의욕적인 아파트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서울 사람들이 자리 잡은 곳이 아니라, 조금은 외곽지인 강남 논밭에 주목한 것이다.

“기자들은 강남 빅4를 압구정동의 금산, 개포동의 한국 주택 공사, 잠실의 청일, 그리고 대치동의 태양, 이렇게 꼽고 있습니다.”

이성준은 말했다.

“규모로는 그들 중에 단연 태양이 최고죠. 하지만 다른 건설사에 비해 태양은 한 수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태양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다른 건설사들은 오랫동안 관급 공사를 주도하며 덩치가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태양은 고작 설립한 지 2년, 관급 공사라고 해도 삼원 건설이 먹다 남긴 것을 마무리한 것이 전부다.

“사우디에서 고속 도로 공사 두 개를 따냈고, 포항 철강의 외주로 학교 공사를 끝냈고, 삼원 건설이 흘린 공사 몇 개. 그것이 실적의 전부였으니 우려가 컸죠.”

이제야 갓 재벌의 반열에 오른 태양 그룹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태양 그룹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솔직히 한국 주택 공사가 추진하는 주공 아파트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임대 주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그게 돈이 되니까요.”

노동자들의 월세는 짭짤한 현금 수입원이다.

당시 아파트에 대한 인식부터가 그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금산마저도 직원용 사택으로 아파트를 짓는데, 대통령 각하께서 규모를 조금 더 키우라 하시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단지를 짓게 되었을 뿐이잖습니까.”

이성준이 태수에게 놀란 이유다.

“그런데 발상을 전환하여 아파트를 중산층에 팔겠다는 기획, 무척 신선하고 참신했습니다. 처음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장님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태수가 하는 아파트 공사 계획을 들으니까 저 세상 계획인가 싶었다.

“무슨 아파트가 이렇게 고급스럽습니까?”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니까요.”

“엘리베이터와 220V 전기, 기름 보일러와 양변기, 욕조가 들어가 있는 화장실, 여섯 개나 되는 어린이 놀이터와 아파트 관리소. 크아, 다시 봐도 엄청나군요.”

신문 기자들도 덩달아 들떴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 브랜드는 태양이 될 것 같습니다. 강남 아파트의 빅4가 아니라, 대한민국 독보적인 최고가 되겠군요.”

그래야 한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기사로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십시오. 이참에 제대로 뽑아 보겠습니다.”

태수가 송창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송창준이 흰색 돈 봉투를 두 개를 건넸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돈 봉투를 받고 두 기자는 화를 냈다.

“지금 저한테 뇌물 건네시는 겁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강 회장님.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군요.”

“언론인을 매수하려 하다니. 이거 실망입니다.”

“저는 그만 가겠습니다. 기사는 다시 생각해 보죠.”

태수는 빙그레 웃었다.

“뇌물이 아니고 신문 광고를 내려고 준비한 건데요?”

“광고요?”

“신문 광고 따오는 일도 하지 않으십니까?”

그거라면 말이 달라진다.

경멸 어린 눈동자 대신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바뀐 기자들.

“고객님, 어떤 광고를 넣어 드릴까요?”

“태양 아파트 광고를 넣겠습니다.”

태수는 씩 웃었다.

“신문 2면을 통째로 태양 아파트 광고하는 데 쓰겠습니다.”

신문 귀퉁이에 작게 광고를 싣는 것만 해도 꽤 돈이 든다.

그런데 무려 2면에 걸친 전면 광고라니.

지금껏 이 정도 스케일의 광고는 없었다.

“2면이나?”

“맙소사!”

태수는 돈 봉투를 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두 개 준비했죠.”

이게 그 뜻이었어?

기자들의 눈에는 태수에 향한 호의가 가득했다.

눈앞의 이 젊은 재벌 총수는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

* * *

청일 그룹 본사 회장실.

그곳에 한일권이 다급하게 뛰어들었다.

“아버지!”

똥줄이 바짝 타는 얼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