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19화 (119/230)

119. 안 팔아!(2)

청일 그룹 본사.

한청호의 회장실.

한청호가 보고를 받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 잠실 땅을 고작 이것밖에 못 샀다는 거야?”

박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우리보다 한발 앞서 땅을 사들인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놈에게서 땅을 사들던가!”

“사채 하는 놈들이 와서 사 갔답니다. 그놈들이 누군지는 아직…….”

“사채 하는 놈들이 땅을 사 봤자 몇 평이나 산다고! 우리 청일만 한 자금력이 있겠어?”

짜증이 와락 치민다.

“능력 없다는 개소리를 길게 둘러대지 마! 열흘 준다. 알았어?”

“열흘은 너무 촉박합니다.”

“해! 달려들어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열흘이야! 이딴 작은 일로 귀찮게 하지 말고 당장 나가서 땅이나 알아봐!”

박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파트 부지 딱 한가운데에 집 두 채가 있습니다. 이거 못 사면 아파트 사업 승인 자체가 안 나올 지경입니다.”

“뭐? 제대로 설명해 봐.”

“아파트 공사 한가운데, 마치 양궁 과녁 10점 자리에 집 두 채가 있습니다.”

박 비서가 지적도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우리가 지을 부지는 이렇게 됩니다. 지금 사들인 부지는 여기 이것, 이것…….”

진짜 희한할 정도로 정확히 한가운데다.

“알박기란 소린가.”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사야 되는 땅이다.

이걸 빼놓고는 뭘 해도 안 된다.

비켜 갈 수도 없고, 빼놓고 지을 수도 없다.

“무시하기엔 평수가 꽤 큰데?”

“이쪽 집은 작습니다. 텃밭까지 합치면 350평 정도?”

홀쭉이 집이다.

박 비서가 지적도에서 태수의 집과 땅을 가리켰다.

“이게 문제입니다. 평수가 1,800평이나 돼요.”

“1,800평? 이건 무시할 수도 없잖아.”

1,800평이면 작은 소형 빌라 단지 두어 개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아파트 건설 현장 가운데 저만큼 구멍이 나게 할 수는 없다.

“이거 못 사면 사업 승인 자체가 안 나오겠어. 옆 땅은 안 되나?”

“이쪽은 호수, 이쪽은 지하철 예정지, 이쪽은 국도 예정지, 이쪽은…….”

안 된다는 소리다.

심각한 문제다.

“토지 소유주는? 사유지야, 공유지야?”

“개인 소유입니다. 땅문서, 집문서 확실합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무조건 사!”

“아무리 설득해도 안 팔겠다는 대답만 도돌이표처럼…….”

“돈을 더 얹어 줘!”

“싫다고 합니다. 두 배도 싫다고 하고, 아파트 분양권도 싫다고…….”

한청호가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펜을 던졌다.

박 비서의 이마에 정확히 맞고 튕겨 나간다.

“야, 이 새끼야! 고작 땅 하나 가지고 뭘 이렇게 전전긍긍해? 구워삶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가!”

박 비서는 재빨리 몸을 돌려 회장실에서 나간다.

박 비서가 나간 회장실 문을 노려보는 한청호.

“저런 놈을 쓰려니 속 터져 죽겠어.”

못난 놈.

* * *

박 비서가 찾은 곳은 청일 건설 사장실 문 앞이었다.

똑똑.

“들어와.”

청일 건설 사장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콧노래를 부르는 젊은 남자.

한일권이었다.

“회장님께서 청일 아파트 부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박 비서가 한일권에게도 똑같은 설명을 한다.

하지만 한일권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손에 든 스위스산 잭나이프를 돌리며 피식 웃는다.

“나를 건너뛰고 회장님께 보고했다?”

한일권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너도 나 무시하냐?”

“아, 아닙니다.”

“전에 사업 몇 개 말아먹었다고 내가 이것도 말아먹을까 봐?”

박 비서는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빨리 용건만 전하고 튈 생각이다.

“열흘 내로 부지 확보를 완료하라고 하십니다. 회장님께서 무조건…….”

한일권이 가지고 놀던 잭나이프를 박 비서를 향해 집어 던졌다.

잭나이프는 박 비서의 관자놀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팍.

벽에 걸린 다트판 한가운데에 나이프가 꽂혔다.

소파에 앉아서 지켜보던 김재학이 박수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오, 나이스! 10점 만점!”

까딱하면 머리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박 비서는 달달 떨며 말했다.

“회, 회, 회장님께서…….”

“네가 하던가.”

팍.

잭나이프가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박 비서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깝다! 9점!”

한일권은 박 비서를 보며 씩 웃었다.

“열흘이야. 알았어? 땅 사 오라고. 대답 안 해?”

“아, 아, 알았습니다.”

“나가.”

팍.

잭나이프가 박 비서 가랑이 사이 바닥에 꽂힌다.

박 비서는 혼비백산해서 새하얗게 질렸다.

김재학이 머리를 흔들며 외쳤다.

“꽝! 영락없는 헛손질!”

박 비서는 도저히 못 참고 청일 건설 사장실을 뛰쳐나갔다.

그제야 잭나이프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한일권.

그가 김재학을 돌아보며 웃었다.

“야, 일어나. 그 땅 사러 가.”

“응? 나?”

“어, 너.”

“왜? 방금 박 비서가 땅 사러 갔잖아. 그럼 된 거 아냐?”

“그게 됐으면 날 찾아왔겠냐?”

이 자리에 어떻게 복귀했는데.

이번에도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한일권이 고개를 까딱했다.

“어깨들 불러서 다녀와.”

“형님들을?”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저 지랄이지. 깽판을 제대로 쳐줘야 그 새끼들이 순순히 땅을 내놓을 거 아냐.”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이다.

김재학이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좋아. 한 번 가 볼까?”

안 그래도 오래 참았다.

신나게 깽판 칠 생각에 벌써 웃음이 나는 김재학이었다.

* * *

김재학은 의자에 앉아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어깨들이 몽둥이를 휘둘러 물건을 부순다.

“아이고! 아이고!”

집안 살림살이가 망가지는 걸 보면서 가족들은 오열을 했다.

“땅 팔래, 안 팔래?”

김재학은 이 말을 딱 두 번 했다.

‘안 팔겠습니다.’란 대답을 듣는 순간부터 이 지옥이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이번엔 물건이 아니야. 사람 차례지.”

김재학의 눈이 제물을 고른다.

“어이, 꼬맹이. 너부터 할까?”

어쩔 수 없이 땅 주인은 울부짖었다.

“팔게요! 팔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하세요!”

김재학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중 한 명이 서류를 하나 꺼냈다.

“도장 찍어.”

땅 주인은 덜덜 떨면서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땅문서를 빼앗겼다.

처음 제시한 금액의 1/4 가격으로.

“그러게 좋은 말 했을 때 순순히 넘겼으면 서로 좋잖아.”

김재학은 그렇게 떠났다.

김재학이 잠실의 땅 주인을 만나고 돌아다니자 청일 건설의 아파트 부지 확보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 * *

잠실 홀쭉이의 집.

홀쭉이는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바쁘게 술상을 준비한다.

“오늘은 소주에 맥주, 일명 폭탄주다.”

오늘 홀쭉이 집에서 모인 이유였다.

하지만 태수는 서류를 검토하느라 바쁘다.

한수 역시 영어 사전까지 꺼내서 영어로 된 서류를 읽느라 바쁘다.

홀쭉이는 손을 비비며 즐거워했다.

“한수야, 광록이 형님은?”

“창고 정리하신다고 하던데요.”

“이 시간에? 그건 내일 마저 하시지. 가서 형님 좀 불러올래?”

“맞아 죽기 싫습니다. 광록이 형님 성질 아시잖아요.”

“…기다리자.”

홀쭉이가 한수를 돌아봤다.

“한수야, 홍보실에 애들 좀 데려다 써도 될까?”

“애들? 누구요?”

“너 구두닦이 할 때 데리고 있던 애들 말이야.”

“아, 그 녀석들이요?”

한수는 영등포에서 살 때 시장 바닥에서 애들을 모아 놓고 해결사 노릇을 한 적 있다.

“그놈들은 왜요?”

“홍보실 일 중에 네가 하던 일과 많이 비슷한 일이 좀 있어. 정보 모으고, 정리하고, 문제 해결하고. 접선도 하고, 로비도 하고.”

원래라면 한수가 했어도 좋았을 일이다.

전생에 한수가 했던 안기부 일과 매우 비슷할 테니까.

하지만 한수는 이번에 미국에 가야 한다.

“송 비서님이라면 많은 걸 가르쳐 주실 거야. 꼭 곁에서 많이 배워라, 한수야.”

송 비서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투자 회사를 운영하지만 한국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한수를 대신해서.

태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미국 은행 인수하면서 제법 투자할 기업을 많이 찾았다고 하더라. 네가 한 번 가서 살펴봐.”

“알았어.”

그런 이유로 한수도 요즘 바빴다.

“한 녀석을 소개해 드릴게요.”

“누구? 정환이? 아니면 우석이?”

“정환이를 아세요?”

“그럼, 같은 동네 사는 동생을 왜 몰라. 술도 몇 번 같이 먹었는데.”

“잘됐네요. 정환이가 저 대신 시장에서 자리 잡았거든요.”

태수도 기억났다.

시멘트 공장과 석회 광산을 인수할 때 한수의 심부름으로 집까지 찾아와 표를 전해 준 녀석이다.

“정보원들 부리게?”

“음, 본격적으로 좀 굴려 보려고. 태수야, 홍보실 예산 좀 넉넉히 책정해 줘. 슬슬 관계 공무원들 만나서 기름칠 좀 해야겠다.”

전생에 홀쭉이가 잘했던 일이다.

로비, 그리고 영업.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추진해 봐. 예산 넉넉히 배정해 줄 테니까.”

그때 옆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집주인 나와!”

철제 대문 뻥 차는 소리였다.

태수와 한수, 홀쭉이가 동시에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 간덩이 부은 놈이 광록이 형님을 건드리지?”

“그러게요. 집중하실 때 부르면 일단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인데요.”

우렁찬 목소리는 겁이 없었다.

“집주인 나오라는 소리 안 들려?”

태수가 아주 잘 아는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재수가 없다.

“재학이 왔구나. 그런데 옆집부터 시작하네?”

태수가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한수와 홀쭉이도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 * *

김광록이 크게 외쳤다.

“어떤 새끼가 남의 집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

“노크? 이러면 되나?”

와장창.

김재학과 어깨들이 철제 대문을 발로 뻥 차자 대문이 덜컹거리면서 망가졌다.

“노크, 확실하지?”

망가진 대문 사이로 건들대며 들어오는 김재학.

“욕심을 과하게 부리면 탈이 나요. 청일 건설이 호구로 보이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껌을 짝짝 씹고 있다.

“적당히 배불리 처먹을 금액을 제시해 줬으면 ‘어이구, 감사합니다.’하고 땅문서를 토해 내야지. 누가 간만 보래? 용역 깡패들 불러야 정신 차릴래? 으헉!”

김재학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다가 화들짝 놀랐다.

2미터의 근육질 거한, 김광록이 웃고 있었다.

창고 정리를 하던 차라 손에는 장도리와 전기톱이 들려 있었다.

들고 있는 사람이 워낙 튼실한지라, 전기톱이 그냥 휴대용 톱처럼 보이는 마법이 펼쳐졌다.

“우리 집에 잘 왔다. 대문까지 부숴 주고. 정말 좋다.”

“응?”

“손에 뭘 많이 들고 와서 정말 고맙다. 의도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네.”

김광록이 장도리와 전기톱을 휙 던졌다.

두 팔 벌려 손님을 환영한다.

그러자 김재학은 밝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말이 통하니까 좋잖아. 그러기에 진즉에 땅 넘겨주면 오죽 좋아? 도장 찍자고.”

김광록은 잇몸까지 드러내면서 활짝 웃었다.

“일단 맞자.”

“응?”

“대문 부쉈잖아. 뼈 부순 걸로 서로 퉁 치자고.”

김광록이 순식간에 김재학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퇴로부터 막고. 콧구멍도 막고.”

대문 제일 가까이에 서 있던 놈의 안면에 김광록의 주먹이 꽂혔다.

코뼈 부러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코피가 터졌다.

“억!”

“이 꽉 깨물어.”

젊은 나이에 틀니하고 살기 싫으면.

김광록이 주먹을 뻗자 뺨을 맞고 멀리 날아갔다.

허공에 이빨 두어 개가 같이 날아간다. 더 멀리.

“쇠 파이프 좋지.”

지팡이로 딱이다.

로우킥 한 방에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으아악!”

“송곳? 이런 건 들고 다니다 잘못 찔리면 숨 못 쉬는 거야.”

빡.

명치에 묵직하게 주먹을 꽂자 상대는 꺽꺽대다가 호흡 곤란으로 기절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어깨 두 명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풀스윙이었다.

“으아아!”

쐐액.

가볍게 머리를 흔드는 것으로 피해 낸 김광록.

“지팡이! 지팡이! 옆구리! 옆구리!”

빠각. 빠각. 빠각. 빠각.

연속 킥에 뼈 부러지는 소리는 당연히 따랐다.

어깨들은 다리와 옆구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군다.

김광록은 마지막 남은 일곱 번째 놈의 턱을 후려갈겼다.

팽그르르.

360도를 도는데, 눈동자가 이미 흰자로 뒤집혔다.

마지막 놈까지 바닥에 털썩 쓰러져 게거품을 물었다.

순식간에 일곱 명 전원 전투 불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 대가리끼리 대화란 걸 좀 해 볼까?”

김광록은 주먹에 튄 타액과 피를 셔츠에 슥 닦는다.

“으, 으어…….”

새파랗게 질린 김재학이 비틀대며 뒷걸음질 쳤다.

평상에 다리가 걸려 바닥에 요란하게 나뒹군다.

“아까 뭘 찍자고? 뭘 토해 내? 뭘 봐? 뭘 차려?”

도장 찍자고 했다. 땅문서 토해 내라고 했다. 간만 본다고 했다. 정신 차리라고 했다.

김광록이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일어나. 눈높이가 안 맞잖아. 내가 쭈그려 앉으리?”

김재학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셋 샐 때까지 안 일어나면 내장 터질지도 몰라.”

김광록이 발을 높게 들어 찍어 찰 준비를 끝내자 바닥에 굴러다니던 김재학이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아까 대문, 네가 찼지? 오른발이야, 왼발이야?”

김재학은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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