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18화 (118/230)

118. 안 팔아!(1)

농가 주택 앞에 택시가 섰다.

홀쭉이가 튕기듯이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할매! 나 왔어!”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왔구나!”

홀쭉이 할매가 마당에서 뛰어나왔다.

홀쭉이가 할매에게 마주 달려 나가는데, 할매는 홀쭉이를 지나쳐 태수를 와락 껴안았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태수야, 정말로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고맙다, 고마워. 달마다 생활비에 먹을 것에 입을 것까지 챙겨 주고. 병원에 약에 차에 저쪽 총각까지.”

담 너머로 까만 머리가 슬쩍 보인다.

“태수야, 너한테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어찌 이리 멋있게 컸더냐. 네 기사가 실렸다기에 나온 신문 전부 사서 벽에 붙여 놨다. 부모님도 좋아하시지?”

좋아하다 뿐인가.

일주일 내내 동네 잔치를 열었다.

사돈에 팔촌까지 축하 전화가 와서, 그 전화 받느라 목이 쉬었다질 않나.

“할매, 할매 손자는 태수가 아니라 나라니까.”

“오냐, 우리 똥깡아지.”

이제야 홀쭉이 할매는 귀한 손자 얼굴을 부여잡는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다.

“내 새끼, 살 좀 붙었구나. 아이고, 좋다. 아이고, 잘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운동 열심히 했지. 봐. 이제 알통 있지?”

홀쭉이가 알통을 만들어 보인다.

태수의 눈엔 아직도 빈약하기 그지없는데, 홀쭉이 할매 눈엔 무쇠 팔뚝으로 보였다.

“아이고, 무슨 알통이 허리통만 하다냐.”

할매가 홀쭉이를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그런데 옆집 마당에서 어슬렁대던 커다란 그림자가 담벼락 너머로 찰싹 붙었다.

“허리통만 하기는. 딱 염통만 하구먼.”

2미터가 넘는 거구의 남자.

그것도 온몸이 근육으로 단련된 거한이다.

“알통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그가 알통을 만들자 질릴 정도의 근육이 뭉쳐댄다.

홀쭉이가 입을 떡 벌리면서 홀린 듯이 외쳤다.

“광록이 형님!”

태수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지. 이렇게 집 지키는 개로.”

김광록이 씩 웃었다.

“태수야, 오랜만이다. 이젠 아주 한국에 눌러 있을 셈인가 보지?”

“그러려고 합니다.”

“박 전 장군께는 인사드렸냐?

김광록은 박태종이 보낸 사람이었다.

또한 영등포에서 함께 자란 다섯 살 터울 동네 형이기도 했다.

“널 지킨다고 군대에서 나왔는데, 네놈 집이나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홀쭉이 옆집은 태수 집이다.

홀쭉이에게 집을 사 줄 때 옆집을 함께 사뒀다.

홀쭉이 할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그를 경호원으로 따로 붙여 줬다.

“자꾸 툴툴대면 월세 올릴 겁니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전원생활이 몸에 맞아서. 크하하핫.”

세입자에겐 집주인이 월세 올린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

심지어 그 집주인이 고용주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 * *

오랜만에 할매 덕에 저녁을 든든히 먹었다.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할매를 두고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평상을 깔아 두고, 거기서 오랜만에 술판을 벌였다.

이 순간을 제일 좋아하는 건 단연 홀쭉이었다.

“달다. 막걸리가 달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몰라. 흐흐흐.”

사우디에선 주류 반입 금지다.

그러니 강제로 금주했던 홀쭉이로서는 술이 오죽 그리웠으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사우디로 갔었나 몰라. 이 좋은 걸 두고 말이야.”

태수 등 뒤를 지켜 준다고 갔다가, 송 비서님께 호된 교육을 받느라 고생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맛은 꿀맛이었다.

“그건 그렇고, 광록이 형님은 거의 괴물이 되셨네요?”

“몸?”

“예전에도 키 크고 근육질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홀쭉이가 김광록의 근육을 보며 진절머리를 쳤다.

암만 갈비뼈를 왕(王) 자 근육이라고 우겨 봐도, 저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겠다.

“형님, 이 복근은 빨래판이 아니라 숫제 계단인데요?”

“크하하핫!”

홀쭉이의 사탕발림에 기분이 좋아진 김광록이 호탕하게 웃는다.

“형님, 못 보던 사이에 껍데기가 아주 누더기가 됐네요? 이 상처들은 다 뭐예요?”

“뭐긴? 영광의 훈장들이지.”

칼자국이 대체 몇 개야.

영등포 제일가는 싸움꾼이었던 시절에도 몇 개 없던 상처다.

몇 년 안 본 사이에 무슨 싸움을 이리 많이 하고 다녔나.

“특수 훈련 받다 보면 이런 상처는 예사야.”

“무슨 북파 공작이라도 하다 오셨어요?”

“궁금해?”

김광록이 잇몸을 드러내며 살벌하게 웃자 홀쭉이는 격하게 고개 저었다.

“아닙니다. 예, 형님 팔뚝에 칼자국 났으면 상대 모가지는 절단 났겠죠. 암요. 바로 황천 건너 저승 땅에 발자국 찍었을 거예요.”

“크하하핫!”

김광록이 좋다고 웃는다.

태수가 슬쩍 물었다.

“군대 말뚝 박는다더니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김광록의 꿈은 대장군이었다.

삼국지 같은 난세에 태어났으면 대장군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김광록은 일찌감치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장군 되긴 글렀더라.”

김광록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는 군대도 전공이 아닌 연줄로 올라가는 시대란 말이야.”

이제 전쟁은 끝났다.

그러니 전공을 올릴 기회도 끝났다.

“지들끼리 끌어 주고, 당겨 주고, 밀어주고, 올려 주고. 아주 끼리끼리 다 해 먹더라고. 거기엔 내 자리가 없었을 뿐이야.”

능력이고, 무력이고, 전술이고 간에 다 필요 없다.

“군부대에 비밀 사조직이 기승을 부리니 나 같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처형대 위에 오르는 법이야.”

“형님 같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데요?”

“나? 돈 없고, 백 없고, 욕심 없는 사람.”

“생각 없고,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고요?”

“사람 보는 눈 없는 사람이라고 치자. 동기한테 거하게 배신당하고 나왔다.”

태수 역시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두호의 오성회를 말하는 거군.’

오성회는 신군부를 말한다.

1963년 전두호, 노태우, 정호영, 김복달, 윤팔용 등 육사 11기생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결성한 군 사조직이다.

각 기수를 내려오며 주로 경상도 출신의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회원을 꾸준히 모집해 왔다.

‘박태종의 추천을 받고 내게 온 자가, 오성회에선 튕겼다니.’

태수는 묘한 눈으로 김광록을 보았다.

박정환과 박태종은 전두호를 적극 후원하고 있었으니까.

‘광록이 형님은 전생에선 오성회를 타고 날아오르지 못했지. 어디 용병한다고 외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그 이후는 모르겠고.’

한수와 홀쭉이는 김광록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군대에서 비밀 사조직이 기승을 부려요? 대통령께서 그걸 가만히 두고 보시고요?”

김광록은 혀를 찼다.

“뭘 모르는군. 대통령 각하께서 뒤에서 키워 주고 끌어 주는 조직이야.”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군대 아래 기수 꽉 잡고 허튼짓 못하게 감시하게 하려면 말 잘 듣는 놈들 시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원래 군대 내 사조직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치질의 기본이 조직 관리다.

그것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조직은 엄격히 통제해야 변수를 줄일 수 있는 법.

“군사 쿠데타가 또 일어날지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군대를 장악한 실세를 잡아다 부리는 게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지.”

“태수가 뭘 좀 아네.”

박정환은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자다.

이후 지금까지 쥔 권력을 내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군부 세력을 확실히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박정환이 정권을 빼앗긴다면 군사 쿠데타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말 잘 듣는 전두호를 중심으로 오성회를 만들어 군대를 감시하고 있었지.’

전두호는 영악하게 육군 사관 학도들을 부추겨 5.16 군사 정변 지지 시위를 벌였다.

그 일로 박정환의 관심을 끌어 눈에 들 수 있었다.

-박정환이 전두호의 뒤를 봐준다.

-전두호가 군대 장교들을 비밀리에 모아 조직적으로 박정환을 지지한다.

-군대 내의 불순분자들을 색출, 처벌한다.

박정환이 군부 독재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이유였다.

“광록이 형님께선 같은 육사 출신인데, 왜 지레 포기하셨습니까? 기회는 있었을 텐데요.”

“엿 같은 짓을 강요하더라고. 나더러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충성 서약을 바치라는 거야. 인격 말살까지 감행하겠다는데, 제정신이 아니야.”

태수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이 오성회 사건은 93년 김영상 대통령의 문민정부에 들어서야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한다.

“눈 밖에 나서 진짜 더러운 일만 당하다가, 짜증 나서 군복 벗었다. 젠장, 군대 밖 공기는 더럽게 좋더라. 예쁜 여자를 못 만나서 이 모양이지.”

지키라는 대면 경호 대상이 하필이면 칠순 할매라니.

이놈의 팔자도 원.

김광록이 막걸리를 주전자째 벌컥벌컥 마신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막걸리를 손등으로 대충 훔친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반갑습니다.”

쨍.

막걸리 사발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태수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요즘에 땅 산다고 기웃대는 놈들은 없습니까?”

김광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냐? 요즘 여기 땅 찾는 사람이 들쑤시고 있다더라.”

그럴 줄 알았다.

“청일 건설에서 나왔죠?”

“어떻게 알았냐? 너도 만났어?”

그럴 리가.

하지만 그러리라 예상했다.

김광록이 난처한 듯 웃었다.

“태수야, 네 부탁을 받고 나도 퇴직금 털어서 이 동네 밭뙈기를 몇 개 사들이긴 했는데, 이참에 좀 팔까?”

“기다리면 땅값이 더 오를 겁니다.”

“이 황무지가 어느 세월에? 그러니 다들 안달이 났지. 청일 건설에서 두 배를 불렀대. 다들 솔깃해서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그랬겠죠.”

이곳은 곧 금싸라기 땅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헐값의 쓸모없는 땅에 불과하니 다들 몸이 달았겠지.

“홀쭉아, 할매를 잠깐 강원도 광산에 다시 모시자.”

“왜? 나 한국 들어왔으니까 여기서 같이 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곧 이 집이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그런다.”

청일이 수틀리면 어떻게 나오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니 나이 지긋하신 홀쭉이 할매가 봉변을 당하는 게 우려된다.

“우리 없을 때 이상한 사람이 행패라도 부릴까 봐 그래.”

“광록이 형님이 옆집에 사시는데?”

“실랑이에 말려 할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 연세에 넘어졌다가 뼈 부스러져서 돌아가시는 분들 한두 분 보냐?”

“그건 그러네.”

송 비서에게 청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전해 들은 홀쭉이.

바로 태수의 말을 알아들었다.

“내일 당장 할매 모시고 강원도로 가야겠다.”

“좋아.”

“태수, 넌?”

“난 당분간 평소처럼 호텔에서 지낼 생각이야.”

“그럼 광록이 형님은?”

갑자기 김광록이 손바닥에 주먹을 탁 친다.

“아하! 그럼 나도 홀쭉이 할매를 따라 강원도로 가야 되는 거야?”

강원도엔 광부들이 우글대서 괜찮습니다.

“아뇨, 형님은 평소처럼 이대로 여기서 지내셔도 좋습니다. 물론 월세도 안 받습니다.”

“오, 좋아. 크하핫!”

태수는 씩 웃었다.

“대신 집 잘 지키셔야 합니다. 건달들이 쳐들어오면 혼쭐내 주실 자신은 있죠?”

“크하하핫. 당연한 걸 뭘 입 아프게 묻고 있어?”

김광록은 태수 이상으로 사악하게 웃었다.

“그거라면 내 전문이지. 안 그래도 몸이 근질대서 죽겠다니까. 이왕이면 개호로 잡놈의 새끼가 쳐들어와 주면 좋겠네. 그럼 나야 감사 땡큐지!”

유독 불끈대는 김광록의 근육은 잔뜩 성이 난 상태다.

“네가 지원해 준 것들도 아주 마음에 들어.”

태수가 미리 종류별로 쓸 만한 것들을 많이도 보내 주었다.

무기 상인과 친하니까 구하기도 쉽다.

“집주인, 걱정하지 마. 이 집은 내가 지켜. 크하하핫!”

이 형님, 아주 든든하다.

‘이참에 알박기가 뭔지 제대로 보여 주지.’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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