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태양 아파트 건설 계획(1)
공항에는 태수와 함께 귀국할 부하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태수야.”
계열사 3인방과 함께 송창준과 홀쭉이도 있다.
그리고 김우진도 태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정하셨습니까?”
“받아 주십시오.”
김우진의 결론이었다.
“대신 한국이 아니라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금의환향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태수는 그 자리에서 연락처 하나를 내밀었다.
송 비서의 연락처였다.
“여기에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 하기에 따라서 적당한 일이 주어질 겁니다.”
송 비서는 사람 쓰는 데 베테랑이다.
김우진이라면 잘 교육시켜 제대로 써먹을 만하다.
전생에서 김우진은 공격적인 투자와 사업 확장, 중동 건설로 대운 건설을 재벌 반열로 끌어 올린 능력 있는 남자였다.
“그럼 우린 갑시다.”
“예.”
태수 일행은 귀국길에 올랐다.
“오랜만에 태양 식구들 모두 모아 단합 휴가를 가야겠습니다.”
첫 단합 휴가를 선언하는 태수였다.
이미 며칠 전부터 한국에 전보를 보낸 후였다.
박철완이 태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작 직원 단합 휴가를 가는데 금산의 황금 명함을 쓰는 건 좀 아까운 일인 것 같은데요.”
상관없다.
“그럴 때 쓰라고 준 겁니다.”
아니다.
안 그래도 금산의 김 비서가 이 일을 전해 듣고 뒷목부터 잡았다던데.
* * *
태수가 탄 비행기는 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9월이 되어 한결 선선해진 날씨가 그들을 반겼다.
“좋군요.”
“좋네요.”
제주도 금산 리조트를 통째로 빌렸다.
금산의 여객선을 통째로 빌려 태양 그룹 식구들을 제주도로 보냈다.
금산 여행에서 운영하는 제주도 관광버스를 대절했다.
이 일에 황금 명함을 썼다.
박철완이 아까워하는 이유였다.
“다 왔습니다.”
금산 리조트에 도착했다.
앞에는 제주도 바다, 뒤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경치가 끝내준다.
잘 가꿔진 정원과 산책로, 너른 공터 한쪽엔 구기 시설장도 마련되어 있다.
심지어 야외 수영장과 야외 레스토랑까지 운영하는 호화 리조트였다.
‘관광지라고 금산이 제법 투자를 많이 했나 보군.’
아직 해외여행을 많이 가지 못할 때다.
제주도는 신혼여행 1순위 관광지였다.
정재계 유명 인사들은 해외 별장처럼 제주도 호텔과 리조트를 이용했다.
“회장님!”
“사장님도 오셨다.”
“저녁 식사부터 함께하시죠?”
직원들이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태수 부모님과 한수도 함께 있었다.
태양의 전 계열사 직원이 함께하는 초대형 단합 휴가였다.
* * *
태양 그룹의 단합 대회는 규모 자체가 거창했다.
식사라도 한 번을 하려면 식당 열댓 곳을 예약해야 할 정도였다.
관광버스를 나눠 타고 팀별로 제주도 관광지를 여행했다.
낮이면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오름을 등반하기도 했다.
태양 그룹 직원들은 즐거웠다.
“이런 단합 휴가라니, 다른 그룹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잖아.”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못 와 봤는데, 회사에서 제주도를 보내 줄 줄은 몰랐네.”
“여기 정말 좋다. 어디 남쪽 나라 외국 같아.”
그렇게 단합 휴가 마지막 날이 돌아왔다.
리조트 지하 대강당에서 태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예!”
대강당이 떠나갈 듯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말이 단합 휴가지 실제로는 회사가 후원하는 관광 및 여가 시간이었다.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낸 직원들 얼굴이 무척 밝았다.
태수도 만족스러웠다.
“오늘 모두가 함께 모인 것은 태양이 나아갈 길에 대해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태수의 말에 집중했다.
“태양 그룹은 크게 다섯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건설, 정유, 중장비, 광산과 금융.”
태양 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16곳이다.
“각 그룹이 서로 연락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럴 일이 있나?
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먼저 태양 아파트. 우리는 이 아파트를 한국 아파트의 대명사, 최고급 브랜드 아파트로 키울 생각입니다.”
태수의 뒤에서 직원 두 명이 미리 준비했던 커다란 도화지를 펼쳤다.
“강남 개발의 시작이 될 대치동 태양 아파트입니다. 대지 면적 약 8만 7천 평, 58개동 14층에 총 4,824세대가 들어갈 대단위 아파트입니다.”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단일 아파트 단지치고 규모가 너무 크다.
“한 세대는 보통 32평 규모가 될 겁니다. 위층으로 갈수록 48평, 64평짜리 대형 세대도 넣을 겁니다.”
이건 미친 계획이 아닌가.
시골집 대부분이 12평, 15평에 불과하다.
아파트는 보통 18평이고, 넓으면 24평이다.
그런데 32평이 기본 평수고, 넓으면 64평까지 짓는다니.
“주차장도 넉넉히 만들 겁니다. 곧 중산층에게 자가용이 보급되는 마이카(My car)시대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최고급 아파트에 들어오는 주민들이 제일 먼저 차를 삽니다. 주차장이 부족해서 불편하다면 최고급 아파트라 말할 수 없죠.”
그러기 위해서 기존 계획보다 대지 1만 평을 더 사들였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주차장과 공용 대지는 넓을수록 좋다.
돈 때문에 그렇게 투자를 못할 뿐이지.
“공원과 주민 시설들도 집어넣어야죠. 여섯 동마다 어린이 놀이터가 하나씩, 노인 시설과 경비 시설, 쓰레기 처리 시설도 갖출 겁니다.”
듣기만 해도 좋다.
이 정도 대규모의 최고급 아파트 단지를 짓게 될 줄이야.
직원들이 저마다 서로를 돌아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청일 아파트보다 더 큰 규모로 짓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일 아파트 토지 매입 시기보다 3, 4년이 더 빠르지.’
운이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장말동이 대치동 땅 1만 평을 내어 줬기에 더 수월했다.
박정환이 흔쾌히 아파트 건설을 허락해 줬기에 더 빠르다.
한청호처럼 아파트 건설 로비에 1년 이상을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박철완을 미리 만나 오랜 시간 동안 아파트 건설 계획에 공을 들였다.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강남 아파트 개발의 순간을!’
태수는 마이크를 쥐고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파트 집집마다 기름 보일러가 들어갈 겁니다. 개별 난방 방식으로, 냉난방 단열에 특히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지금은 대부분 연탄을 쓰던 때다.
때문에 연탄 가스 사고도 많았다.
골목길마다 연탄재가 가득 쌓이고, 부서져서 도로가 더러워지는 건 예사다.
80년대 정부의 규제 때문에 석탄 산업이 하향으로 접어들면서 기름 보일러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에 비해 태양 아파트의 기름 보일러, 그것도 집마다 개별 난방은 혁신적이었다.
‘청일 아파트는 중앙 공급형 열병합 방식이었지.’
그것보다는 개별 난방이 최고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개별 난방이 역시 좋다.
“수도와 전기도 집집마다 개별 계량기를 달 겁니다. 집집마다 110V가 아닌 220V 전기 시설을 넣겠습니다.”
직원들은 입을 벌린 채 다물 줄 몰랐다.
당시 수도와 전기 계량기를 집집마다 개별로 다는 곳이 어디 있나.
한 지붕 세 가족이 적당히 공과금을 나누어 내던 때다.
게다가 110V를 흔하게 쓰던 때가 아닌가.
220V 전기가 흔하게 보급되던 때는 90년대다.
전력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수는 벌써 15년, 적어도 10년이나 앞서서 220V 기본 배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각 가정에 에어컨 들어가야지, 세탁기와 냉장고 들어가야지, 텔레비전도 들어가야지. 선풍기에 가전 몇 가지 추가하면 곧 전력이 부족해져.’
최고급 아파트에 전력 부족이 웬 말인가.
한여름, 한겨울에 냉난방기 돌려도 가능하게끔 전기 용량을 넉넉히 배분할 생각이다.
“아파트 동마다 승강기가 들어갈 겁니다.”
엘리베이터는 있다.
그러나 무척 귀하여 고급 호텔에나 간신히 들어가고,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안내를 할 정도다.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라니!’
‘58개 동이나 되는데 동마다 엘리베이터가 들어가? 이게 말이 되나?’
말이 왜 안 되나.
당시 청일 아파트에도 엘리베이터는 있었다.
총 12대였다. 144세대당 한 대꼴로 집어넣었지만 말이다.
“하수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할 겁니다. 그래서 수세식 화장실, 그것도 양변기에 욕조를 넣을 겁니다.”
아파트니 수세식 화장실이 필요하긴 하다.
그런데 수세식 화장실만 있어도 부잣집 소리를 듣는데 양변기라니!
“그래서 여러분들의 연계된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일이 많다.
아파트 하나 짓는 데 개발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직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태양 아파트를 짓기 위해 태양 건설을 기본으로, 전기 시설은 태양 전기가 지원합시다.”
“예!”
“태양 전자는 개별 계량기, 기름 보일러 개발. 알겠습니까?”
“예!”
해당 업체 사장 및 직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기름 보일러를 돌리려면 정유도 같이 참여하세요. 주변에 주유소를 크게 지어야겠군요. 14층이나 되는 높이까지 기름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겠죠.”
“예!”
“엘리베이터는 중장비에서 지원하십시오.”
“예!”
태수는 직원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태양 아파트는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말아야 하고, 태풍이 와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층간 소음 문제가 없도록 제대로 지읍시다.”
70년대엔 한 집에 여러 가구가 붙어 사는 게 당연할 때였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였으니 층간 소음이 문제가 아닌 때다.
하지만 미래엔 층간 소음 때문에 칼부림 나기도 하는 세상이 된다.
처음부터 제대로 지으면 이웃끼리 얼굴 붉힐 일도 적을 것이다.
“부실 공사란 있을 수 없습니다. 뼈대가 될 철강을 아끼지 말고, 시멘트도 양질로 써야 합니다.”
“예!”
“태양 중석과 태양 시멘트, 거기에 태양 목재, 태양 창호와 태양 화학까지. 아파트 건설 기간 동안 무척 바빠지겠습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태양 중장비에서 레미콘과 펌프카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군요.”
“염려 마십시오. 안 그래도 요즘 연구 중입니다. 제법 성과가 나오고 있고요.”
만족스럽다.
“태양 보험에선 태양 아파트와 관련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합시다. 아파트 화재 보험을 준비하고, 주택 보험 상품에 대해 고민하십시오.”
“예!”
태양 직원들이 전부 큰 소리로 대답한다.
앞으로 일거리가 많지만 정말 최고급 아파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지을 건 아파트만이 아닙니다. 아파트를 둘러싸고 네 개의 국민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두 개씩 들어갑니다. 또한 영동5로와 영동6로, 남부순환로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도로는 광화문 앞 세종대로였다.
전생에선 청일이 이 영동대로를 뽑아 두 번째로 큰 도로가 완성되었다.
다행히 강남 주변이 논밭이라 아직 도곡로까지는 안 지을 때다.
“도로는 14차선 70여 미터의 대로로 계획했습니다. 모두 도로 포장재로 아스팔트를 덧입힐 계획입니다.”
아스팔트 도로만의 장점이 있다.
빠르게 완성되며 시공 및 보수가 쉽다.
상하수도를 포함한 많은 지하 매설물을 도로 아래 시공하기가 좋다.
또한 승차감이 좋아서 고급 승용차가 다니기에 좋다.
“태양 정유, 도로 공사에 아스팔트 지원합시다.”
“예!”
“태양 중장비, 아스팔트를 깔 때 쓸 로드롤러 개발과 지원도 추가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뿐인가?
“아파트 주민들의 편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태양 쇼핑센터를 건립하고, 자녀들의 교육 수준을 올려 줄 학원가를 세울 생각입니다.”
박철완이 요 몇 년간 매일 야근하며 계획한 프로젝트다.
“그 쇼핑센터 한가운데 태양 그룹의 본사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태양 그룹의 본사?
“우리는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지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본사가 필요합니다.”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연계, 협력할 일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터였다.
공장과 지점은 남기더라도, 구심점은 필요하다.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강남 개발의 중추가 될 대치동.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태양 그룹이 제대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 동안 땅값이 수십만 배가 뛴 강남의 노른자.
그곳에 청일 대신 태양이 깃발을 꽂았다.
“이에 대해서 기획 조정실이 큰 힘을 써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기획 조정실을 세우며 태양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기획 조정실장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