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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114화 (114/230)

114. 위조 지폐 대작전(3)

태수가 돌아가자 파흐드가 바로 위조 지폐 감별사를 타박했다.

[손이 왜 이리 느려? 네놈이 굼뜨니까 내가 할 말이 없질 않느냐!]

파흐드의 인생에서 받은 돈을 끝까지 세지 못한 건 태수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밀려서 태수의 페이스에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바로 이놈 때문에!

[얼마나 된다고 빌빌대? 눈치나 보면서 요령이나 부리고 말이야. 이러라고 내가 돈 주는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위조 지폐 감별사는 때아닌 불벼락에 벌벌 떨었다.

지폐 감별이 늦어지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위조 지폐는 아닌 것 같은데, 또 미묘하게 이상하고. 뭐라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문제가 있어. 이걸 어쩌지?’

어렵다.

그 때문에 오늘따라 지폐 감별에 신중을 기하느라 시간이 꽤 들었다.

위조 지폐라고 우기기엔 너무 정교하고, 아니라고 확언하기엔 묘하게 다르다.

괜히 입을 다물었다가 돈에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불똥은 자신에게 튄다.

‘한 번만 더 확인하고, 확실하다 싶으면 말하자.’

위조 지폐 감별사가 신중하게 달러를 다시 확인한다.

[이렇게 느려서야. 쯧쯧, 못난 것.]

파흐드의 타박도 감수해야 한다.

파흐드는 응접실 한쪽 구석에 쌓인 달러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돈은 언제나 옳다!

[멍청한 호구 새끼. 어디 또 돈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와 봐라, 내가 도와주나. 흐흐흐.]

파흐드는 음흉하게 웃었다.

[뇌물은 역시 한청호가 최고야. 푸지게 듬뿍듬뿍 찔러 주잖아? 손바닥도 싹싹 잘 비비고,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매끄럽게 나불대고. 아주 마음에 들게 굴지.]

한청호는 매번 파흐드를 흡족하게 했다.

반면 태수는 어떤가.

돈 가방은 반가우나, 그 곱상하게 생긴 면상만 떠올려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에 반해 저 애송이는 태도부터가 글러 먹었어. 뇌물을 바치러 왔으면 굽실대야지. 어디서 고갤 빳빳하게 세워서 차를 호로록거려? 상전이 따로 없어.]

청탁하는 태도가 무척 못마땅했다.

[돈 가방이 두둑하지 않았으면 진즉에 몰매 때려 쫓아냈을 텐데. 매질 안 당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거야. 흥!]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 주제에!

[10억 달러짜리 공사면 2억 달러는 내게 바쳐야지. 쯧쯧.]

파흐드는 애초에 태수의 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한청호를 슬쩍 거들어 주기만 하면 2억 달러가 떨어진다.

태수에겐 돈 가방만 잔뜩 뜯어낸 후에 입을 싹 씻을 작정이다.

[건방진 새끼.]

마침 위조 지폐 감별사가 조심스럽게 파흐드를 불렀다.

[저기, 파흐드 님…….]

[왜? 무슨 일이야?]

[저기, 지폐 감별이 전부 끝났습니다.]

[이상 있어?]

[그, 그게… 좀 미묘하고, 조금 께름칙한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파흐드는 답답했다.

[그래서 위조 지폐야, 아니야? 확실해? 장담할 수 있어?]

[그것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몇 번이나 봐도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도 위조…….]

위조 지폐 감별사가 말문을 흐릴 때였다.

탕탕탕!

타다당탕탕!

저택 내부에서 벌어진 총격에 파흐드는 깜짝 놀랐다.

[무, 무슨 일이야?]

밖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비명 소리, 아우성 소리, 총탄 소리까지.

심상치 않다.

[꼼짝 마! 물러서! 모두 손 들고 엎드려!]

그때 응접실 문을 누가 발로 뻥 차고 들이닥쳤다.

완전 무장 상태로 장전된 소총을 들이밀고 빠르게 진입하는 군인들.

[움직이지 마! 바닥에 엎드려! 그렇지 않으면 쏜다!]

[사, 살려 주십시오!]

위조 지폐 감별사가 제일 먼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당황한 파흐드가 크게 노하여 외쳤다.

[내 집에서 이게 무슨 소란이야!]

무장 군인들 뒤에서 젊은 청년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는 압둘라의 아들이자 사우디 특수 경찰 고위 간부인 살만이다.

[위조 지폐 유통 혐의를 신고받았습니다. 조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삼촌 장관님.]

[위조 지폐? 그깟 위조 지폐 따위가 뭐라고!]

[선왕 폐하 시해 사건의 수사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강제 수사를 해야겠습니다.]

[뭐?]

살만이 사우디 왕실 인장이 찍힌 수사 공문을 내밀었다.

진짜다.

‘이게 아닌데?’

파흐드는 당황했다.

[형님 폐하 시해 사건과 위조 지폐가 대체 무슨 연관인데?]

[이번 선왕 폐하의 암살범을 수색하다가 주머니에서 위조 지폐가 나와서 말입니다. 마침 같은 위조 지폐가 이쪽으로 유통되었다는 소식이 있어서요.]

[뭐?]

다른 것도 아니고 국왕 암살범과 얽힌 위조 지폐란다.

[조사에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협조 못한다.

절대 못한다.

[이건 모함이다! 허튼소리 하지 마! 위조 지폐 따윈 내 집에 없어!]

[위조 지폐 맞습니다!]

군인들의 총구가 자신에게 향하자 위조 지폐 감별사가 버럭 외쳤다.

[제가 위조 지폐 전문 감별사입니다! 아까 확인했는데, 위조 지폐 맞아요!]

[뭐?]

도움이 안 된다.

환장하겠다.

[그래서 제가 아까 보고 드렸잖아요? 위조라고.]

기억났다.

파흐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럴 리가! 저, 저 돈은!]

뇌물이다.

뇌물로 위조 지폐를 주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나?

절대 그럴 리 없다.

[저 돈은……!]

[그래, 저 돈은 어디서 난 겁니까? 파흐드 님이 위조 지폐를 유통한 겁니까? 아니면 제작한 겁니까? 위조 지폐와 함께 암살까지 같이 모의하신 겁니까?]

억울하다.

[받은 거야!]

[누구한테? 왜 받았습니까?]

뇌물이라고 말하는 순간, 뇌물 수수 혐의가 적용된다.

어느 쪽으로 둘러대도 범죄다.

‘시발, 좆 됐다.’

파흐드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더럽게 꼬였다.’

지하실을 뒤지면 진짜 국왕 시해와 관련된 증거가 나오게 생겼다.

심지어 칼리드를 해치고 차기 국왕 자리를 노리는 상황이다.

뜻을 함께하는 형제들과 작성한 연판장도 지하실에 있다.

파흐드의 집만큼 안전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젠장! 어떻게든 내 집에 발을 들이게 해선 안 돼!’

우기면 그만이다.

파흐드가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썩 꺼지지 못해? 내가 바로 사우디의 재경부 장관이야!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내 집에 함부로 들어올 순 없어!]

평소라면 그래야 했을 것이다.

특수 경찰 따위는 재경부 장관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돌아가야 했겠지.

[파흐드 삼촌.]

[시끄러워! 내 집을 뒤지고 싶다면 국왕의 허락부터 받고 와!]

사우디 국왕은 죽고, 자리는 현재 공석이다.

[당장 꺼져! 경호원! 경비원! 모두 들어와서 이놈들 끌어내! 내 뜻을 거역하면 죽여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 상황이다.

[경호원이고 경비원이고 간에 전부 제압되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뭐?]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파흐드의 저택이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모두 뚫렸다고?

[말도 안 돼!]

[말 돼.]

저 낮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

파흐드도 잘 아는 목소리다.

[서, 설마……!]

[그래, 나다.]

저벅저벅.

파흐드의 응접실에 걸어오는 남자.

칼리드였다.

[카, 칼리드 형님이 왜…….]

[몰라서 묻나?]

파흐드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 아무리 형님이라도 절 핍박할 수는……!]

[닥쳐.]

칼리드의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파흐드는 꼼짝할 수 없었다.

‘경호원들을 한 번에 밀어붙이고 여기까지 오다니!’

파흐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권력을 다툼할 새도 없이 힘으로 제압당했다.

상대가 작정하고 힘을 과시한 이상, 패배한 자의 말로는 뻔했다.

[저,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정말 몰라?]

칼리드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파흐드는 직감했다.

‘끝났구나!’

끝이다.

국왕 위를 두고 자리 다툼할 생각이었는데, 전부 끝나 버렸다.

칼리드가 어떻게 알고 선수를 친 것이다.

[샅샅이 뒤져라.]

[예!]

무장한 칼리드의 수하들이 빠른 속도로 집안을 뒤져대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곧 심복 하나가 돌아와 보고했다.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반란 모의가 확실합니다.]

심복의 손에는 형제들과 작성했던 연판장도 있었다.

칼리드가 차가운 눈으로 파흐드를 보았다.

[끌어내.]

[혀, 형님!]

[조용히 처리할 것이다.]

파흐드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무릎으로 기어가 칼리드의 다리에 매달려 빌었다.

[형님,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형님께 개기지 않겠습니다! 형제의 정을 생각해서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신다면……!]

[넌 선을 넘었어.]

형제의 정을 생각했다면 형제에게 총구를 들이대진 말았어야지.

그것도 모자라서 또 반란을 모의하다니.

칼리드는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재산 몰수, 직위 박탈, 국외 추방.]

[형님!]

[닥쳐라. 한마디 더 할 때마다 사지육신 하나씩 끊어 놓겠다.]

[……!]

파흐드는 입을 다물었다.

칼리드는 한다면 하는 자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늘 극도로 경계하고, 누르기 위해 별수를 다 썼다.

[잘 가라.]

권력 싸움의 끝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승자독식.

Winner takes all.

[가시죠.]

파흐드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파흐드는 군인들 손에 붙들려 질질 끌려 나갔다.

* * *

[장관님께서 부르십니다.]

태수는 파흐드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칼리드의 심복이 태수를 지하실까지 안내했다.

강제로 총을 갈겨 몇 겹이나 되는 철문을 통째로 뜯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돈 냄새 좀 봐라. 환장하겠다.’

사방에서 돈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너무 많은 곳에서 좋은 향기가 나서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다.

‘이제 보니 따로 챙겨 둔 보물 창고였나.’

뇌물을 받은 것 중에 일부를 이곳에 모아 놓은 것 같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금고를 잔뜩 채운 것은 달러 뭉치였다.

다른 금고가 더 있다.

‘대단하군.’

골드바, 보석과 귀금속, 미술 작품들도 잔뜩 있다.

각종 서류와 장부가 지하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칼리드는 지하실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왔나?]

칼리드의 등 너머로 분노의 기색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만에 칼리드의 목소리도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칼리드가 뒷짐을 진 채 파흐드의 지하실을 둘러본다.

[돈을 참 좋아하는 녀석이었지.]

오죽했으면 돈에 환장한다는 소리를 들었을까.

[욕심이 너무 많았어.]

돈만 밝혔으면 되었을 것을.

탐욕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을 원했다.

[욕심은 욕심으로 그쳤어야 하거늘.]

행동으로 옮긴 것이 문제다.

[녀석은 이 길로 국외로 추방될 거야. 나는 이대로 모든 사건을 덮을 생각이네.]

그러리라 짐작했다.

칼리드는 체면을 중시하기에 국제적 집안 망신을 자초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증거 대부분을 인멸했지만 채 태우지 못한 것들이 몇 개 나왔어.]

칼리드를 노린 2차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일을 해 주었어.]

[별말씀을요.]

[위조 지폐, 그것보다 더 적절한 명분은 없었을 거야.]

사우디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재계 유명 인사들도 알고 있는 게 위조 지폐 소동이다.

오죽하면 사우디 국방부 장관인 칼리드까지 관심을 기울였을까.

[위조 지폐 유통범이 잡혀 국외로 추방당했으니 국민들도 안심할 테고.]

이번에 태수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이다.

암살범의 배후를 잡았고, 사우디 왕실에 힘을 보여 위엄을 세웠고, 명분까지 챙겼다.

[이 모든 게 전부 자네 덕분이야.]

태수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칼리드는 간혹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라흐만은 사우디에서 내쫓겨 국외로 추방당했을 것이다.

-큰 피해 없이 중동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우디에서 서방 석유 회사들을 내쫓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 싸움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틀어쥐지 못했을 것이다.

-사우디 국왕에 즉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많은 공을 어찌 다 갚을까.]

칼리드가 태수를 지하실로 초대한 이유였다.

[골라 보게.]

칼리드가 태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 탐욕스러운 놈이 여태껏 남의 등 쳐 먹으면서 모은 것들이야.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가져가도 좋아.]

그렇게 말하니 당황스럽다.

[뭘 얼마나 주실 생각이십니까?]

[적당히.]

태수에게 배운 만능 단어가 있었다.

[대충, 요령껏, 알아서, 챙겨 가.]

칼리드는 등을 돌렸다.

[내 즉위 선물이라고 하지.]

태수가 확인할 시간도 주지 않고, 칼리드는 지하실에서 나간다.

이 많은 금은보화를 겁도 없이 태수에게 보인 채 말이다.

칼리드가 지하실에서 나간 후 태수는 작게 중얼거렸다.

“적당히 가져가라니, 후회할 텐데.”

숨길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역시 사우디 왕족. 통도 크다.”

지금 이 상황,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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