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13화 (113/230)

113. 위조 지폐 대작전(2)

한청호의 서재.

전보를 본 한청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실패>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젠장!”

되는 일이 없다.

이 일을 위해 얼마를 쏟아부었는데!

“아주 엉망진창이야!”

마음에 드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사우디로 가야겠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 입찰,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칼리드가 사우디 국왕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

* * *

태수는 말했다.

[칼리드 님, 솔직히 말하십시오. 제가 파흐드 님 집에 가서 무얼 하길 바라십니까? 그냥 뇌물을 전하고, 동정을 살피기를 원하십니까?]

한참 만에 칼리드가 입을 열었다.

[파흐드의 집을 조사하고 싶다.]

암살범과 연관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집을 뒤져 증거를 찾고 싶다.

아직 처분하지 못한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흐드의 집은 철통 보안을 자랑해. 게다가 조사할 명문도 없어. 그러니 자네를…….]

[손님인 제가 파흐드 님 집을 뒤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림도 없다.

칼리드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 일을 그냥 덮을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칼리드의 안색이 어두워질 때 태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파흐드 님의 집을 조사할 명분을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게 뭔가?]

[그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습니다.]

태수는 칼리드를 똑바로 보았다.

[만일 암살범과 파흐드 님이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으음.]

칼리드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지. 동생을 죽일 생각은 없네. 재산을 몰수하고, 직위를 박탈하고, 국외 추방을 하는 데 그칠 생각이야.]

그럴 줄 알았다.

[왕위 찬탈을 위해 패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국외로 새어 나가길 바라지 않아. 그건 너무 부끄럽고 추악하지 않나. 국제 사회에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야.]

체면.

칼리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사우디 왕실의 체면이 깎이길 바라지 않는다.

덮을 수 있다면 덮어야 한다.

[듣자 하니 파흐드 님께선 위조 지폐 감별사를 불러들여 달러를 한 장씩 일일이 조사한다던데요.]

송 비서에게 전해 들은 정보가 있다.

송 비서는 재경부 장관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지만 그건 아주 좋은 정보였다.

[뇌물에 위조 지폐를 뒤섞겠습니다.]

[위조 지폐를?]

[재산 몰수, 직위 박탈, 국외 추방의 명분으로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거라면 명분으로 적당하다.

칼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연관이 없이 결백하다면 모든 게 오해였다는 것으로 끝나기에도 좋죠.]

[좋아.]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

태수는 난색을 표했다.

[당장 어디서 위조 지폐를 구하겠습니까?]

[그건 이쪽에서 준비하지. 마침 사우디엔 위조 지폐가 넘쳐서.]

[…….]

[우리가 석유를 팔아서 달러가 많아. 그러니 위조 지폐도 꽤 들어와. 그걸 골라내는 것도 일이라네.]

문제가 간단히 풀렸다.

아주 좋다.

[위조 지폐 중에서도 최고급이 있어. 웬만한 위조 지폐 감별사들은 못 잡아내. 그들 중에 몇 명은 위화감을 느낀다고는 하는데, 콕 짚어 위조 지폐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졌거든.]

달러는 원래 위조하기 쉽다고 들었다.

한국 조폐 공사가 이쪽 분야로는 알아준다고 명성이 자자하다.

[위조 지폐 감별사도 헷갈려서 세 명이나 달라붙어 옥신각신한 끝에야 간신히 위조 지폐로 판명된 물건이지. 그걸 내어 주지.]

더할 나위가 없다.

[대체 그런 위조 지폐는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위조 지폐를 들고 국경을 넘으려던 놈들을 국경 수비대가 잡았다.]

얼씨구!

[위조 지폐를 유통하려는 놈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골치가 아주 아프지. 오죽하면 위조 지폐 감별사가 요즘 각광받는 직업이란 소리가 생기겠나.]

솜씨 좋은 놈이 위조 지폐를 만들었단 소리다.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너무나 그럴싸하여 국방부 장관인 칼리드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 정도다.

[위조 지폐는 얼마나 준비하면 되겠나?]

[적당히 섞죠.]

[그러니까 몇 장?]

[대충. 알아서. 요령껏.]

[……?]

한국인의 만능 단어, 적당히!

이왕 지른 김에 한 번 더 지르자.

[한청호보다 더 많은 돈을 먹여야 집에 발이라도 들일 수 있을 겁니다. 한청호는 여행용 트렁크로 달러를 준비했다던데요.]

[그럼 우리는 트렁크 세 개, 아니 다섯 개로 준비하지.]

부자다.

역시 오일 머니가 흘러넘치는 사우디 왕족!

통이 커서 참 마음에 든다.

[아주 좋습니다.]

태수와 칼리드가 동시에 씩 웃었다.

[괜찮겠나?]

[칼리드 님께서 하나만 약속해 주신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가 뭘 해 주면 되지?]

[경찰을 불러 주십시오.]

칼리드는 황당했다.

사우디 재경부 장관 집에 경찰이라니.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멀쩡합니다.]

태수가 칼리드를 슬쩍 가리킨다.

[칼리드 님의 심복으로 보내면 되잖습니까? 이참에 칼리드 님의 힘을 보여 주십시오. 정적을 찍어 누르는 데는 그보다 확실한 방법도 없습니다.]

구미가 당긴다.

[경찰, 검찰, 군경찰, 헌병대, 호위대, 국가 정보원. 뭐든 좋습니다. 일시에 급습해야 할 겁니다.]

[일시에? 무장하란 소리겠지?]

[파흐드 님 저택은 철통 보안을 자랑한다면서요. 이참에 제대로 위력을 보여 주셔야죠. 다른 이들이 칼리드 님을 두려워하도록 말이죠. 그래야 앞으로가 편해지실 겁니다.]

칼리드가 무척 흡족해한다.

[아주 마음에 든다.]

태수의 호언장담처럼 이번 일로 한꺼번에 이득을 얻게 됐다.

1. 조사할 명분을 얻는다.

2. 국왕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권력 암투에서 승리한다.

3. 모두에게 칼리드의 힘을 똑똑히 보여 준다.

칼리드는 눈앞의 대담한 청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들이 좋은 녀석을 친구로 두었다.

[자네, 위조 지폐 들고 재경부 장관 집에 뇌물 전하러 가는 길이야. 알고는 있나?]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겠나?]

[그럼 안 가도 됩니까?]

[…….]

태수는 씩 웃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대신 위험한 만큼 대가는 톡톡히 챙겨 주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말게.]

아, 이 황홀한 돈 냄새.

아까보다 더 좋다.

이 차기 사우디 국왕은 아주 작정해서 챙겨 줄 모양인가 보다.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 출격하죠.]

태수의 자신만만한 대답.

칼리드 역시 씩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나 역시 함께 가지.]

[그 몸으로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까짓 상처쯤이야. 나 아직 안 죽었어.]

칼리드가 수술한 왼쪽 팔을 움직인다.

아플 텐데도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형님과 동생의 죽음에 관한 일이야. 확실히 매듭짓는다.]

칼리드가 작정했다.

* * *

며칠 후 사우디 재경부 장관 파흐드의 집 앞에 태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러로 가득 채운 여행용 트렁크가 모두 다섯 개다.

[아이고, 이게 다 얼마야? 어서 들어오게! 빨리 들어오게!]

파흐드는 맨발로 달려 나와 여행용 트렁크를 끌어안았다.

태수는 간단한 검문검색을 거친 후 파흐드의 응접실로 초대되었다.

파흐드는 달러 가방을 보며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아주 통이 크구만! 아주 시원시원해!]

통이 큰 건 태수가 아니라 칼리드였다.

파흐드는 바로 위조 지폐 감별사를 불러들였다.

역시 노골적으로 태수 앞에서 지폐의 위조 여부를 감별하겠다는 것이다.

송 비서는 무척 불쾌했던 경험으로 기억하는 무례였다.

하지만 태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위조 지폐 섞였다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뭐.’

혹시나 위조 지폐가 섞였을까 괜히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태수는 속 편하게 차를 호로록 마셨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나와 대화 좀 하자고. 그러려고 멀리서 이곳까지 왔을 테니까.]

[뭐, 그럽시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태수는 파흐드와 마주 앉아야 했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입찰하러 왔다고?]

[네.]

[제대로 잘 찾아왔네. 아암, 내가 바로 주베일 산업항 공사 입찰을 결정짓는 최고 권력자라고 나 할까?]

이번 국왕 암살 사건 때 사우디 건설부 장관이 휘말려 죽었다.

산업부 장관도 죽고, 그 밖에 다른 몇 명의 입찰 선정으로 예정된 자들도 죽었다.

달러를 보는 파흐드의 눈에는 탐욕과 기쁨밖에 보이지 않았다.

‘돈에 환장한다더니.’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보여서, 돈에 환장해서, 돈지랄이 대단해서.

세간에서 평가하는 파흐드는 ‘돈’이란 수식어가 반드시 따라다니는 남자라고 한다.

그렇기에 다들 ‘하늘이 내린 재경부 장관’, ‘그것은 천직!’ 이라며 놀려 대곤 했다.

사우디에서 뇌물을 좋아하기로는 첫 손에 꼽히는 탐관오리였다.

[자네, 너무 늦었어. 입찰 마감일이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다는 건 알지? 다른 경쟁자들은 몇 번이나 내 집을 다녀갔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뇌물을 뿌리기엔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

태수라고 모를까.

하지만 칼리드의 부탁을 받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집에 뇌물을 싸 들고 들어서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좀 더 많은 가방을 가져와.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무려 10억 달러짜리 공사야. 그걸 생각하면 성의가 좀 약소하지 않나?]

여기서 더 탐욕을 부리는 파흐드다.

[고작 여행용 트렁크에 달러를 채워서 다섯 개? 누구 코에 붙이라고?]

뇌물을 가져왔단 소리에 맨발로 달려온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가져온 돈이 적다고 타박한다.

파흐드는 알고 있었다.

뇌물로 선뜻 이 돈을 내놓을 수 있는 자라면 조르면 더 내놓는다는 사실을.

[이거 받고 더블로 가지. 어때? 그럼 내가 주베일 산업항 입찰에서 힘을 좀 쓸 의향이 있는데 말이야. 그럼 틀림없이 자네 앞으로 공사가 떨어질 거야. 내 장담하지.]

파흐드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태수를 보았다.

[나 재경부 장관일세. 내가 힘써서 안 되는 일이 있겠나? 걱정을 하지 말고 돈 가방이나 더 준비해 와. 우리 공사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그때 다시 하지.]

노골적인 뇌물 요구!

[이 정도 돈을 부족하다고 하시다니. 욕심이 많으시군요.]

[돈 없나?]

[있죠.]

[그럼 뭐가 문제야?]

태수는 문제없다.

파흐드가 문제겠지.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위조 지폐로 가득 드릴 의향은 있습니다만.

태수의 대답에 파흐드의 입이 귀에 걸렸다.

군침이 줄줄 흐르는지 손등으로 슥 침까지 닦을 정도로 좋아한다.

태수는 손목시계를 흘깃 보았다.

‘약속 시간이 되었군.’

슬슬 시간이 다 되었다.

태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는 제대로 전달했으니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앉아 있어. 지폐 감별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파흐드가 태수의 팔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늘어질 때 떼어 내는 방법을 잘 아는 태수다.

[흐음, 제가 시간에 늦어 계약을 펑크 내면 곤란해집니다.]

[곤란해지기는, 뭘 그런…….]

[돈 가방 준비하는 데 곤란해진단 뜻입니다.]

아, 그건 안 되지.

태수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이 느슨해진다.

태수는 이참에 쐐기를 박았다.

[파흐드 님, 한번 생각을 해 보시죠.]

[뭘?]

[뇌물로 위조 지폐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습니까?]

[…….]

순간 파흐드는 말문이 턱 막혔다.

[뇌물을 주는 이유는 잘 보여 청탁하기 위함인데, 위조 지폐를 가져왔다간 미운털만 잔뜩 박힐 것 아닙니까?]

[그렇지.]

[차라리 안 주니만 못한 뇌물을 구태여 힘들게 가져왔겠습니까?]

[그도 그러네.]

[우리는 다음번에 돈 가방을 앞에 두고 다시 얘기하기로 했는데, 제가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없지.]

태수가 꾸벅 인사했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죠.]

[…잘 가게.]

태수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려 버린 파흐드.

태수는 파흐드의 집에서 나왔다.

태수가 무사히 파흐드의 집에서 나오자 칼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지.]

무장한 병력들이 파흐드의 저택을 급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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