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01화 (101/230)

101. 태양 그룹 출범하다(4)

금산의 장준용이 말했다.

“청일의 한청호가 청일 호텔 착공식을 한다고 정재계 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뿌렸네. 같은 날짜, 같은 시각으로. 다들 거기 갔을 거야.”

일부러 태수의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서다.

쪼잔하고 치사한 수작이다.

“장수 은행에서도 초대장을 받으셨을 텐데 왜 한청호가 아니라 이쪽에 참석하셨소?”

“그러는 금산 장 회장은 어째서 이쪽에 오셨을꼬?”

“저야 그쪽보다 이쪽에 참석하는 게 좋으니 그랬소만.”

“나 역시 그렇다고 칩시다.”

장준용과 장말동이 씩 웃었다.

“강태수가 각하께 밉보여 은행 대출이 꽉 막혔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은행에도 친구가 있었군.”

“금산의 장 회장이 청일의 한 회장과 앙숙이라더니 실제로 확인해서 기쁘다네.”

중장비의 이창원과 정유의 노일국이 와서 인사했다.

“두 분 모두 오랜만입니다.”

“이리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장준용은 어리둥절했다.

만나기만 하면 개싸움 난다던 이창원과 노일국이다.

그런데 개싸움은커녕 사이가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

“청일의 폭주하는 쌍두마차가 어째 태양에선 이리 얌전한가?”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과로 때문에요.”

“과로 때문이죠.”

업무량에 치여 과로를 거듭하니 싸울 기력도 없었다.

장준용이 크게 웃었다.

“강 회장이 자네들을 제대로 부려 먹나 보군 그래.”

그때였다.

주차장에 택시가 10대 넘게 일렬종대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때였다.

택시 앞 다섯 대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외국인 경호원이 쏟아져 내렸다.

택시 뒤 다섯 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경호 대열을 완성하고, 가운데 있던 택시 문을 열었다.

엄청나게 화려하게 치장한 외국인이 택시에서 내렸다.

태수는 반가운 얼굴을 알아보고 피식 웃었다.

[라흐만 님, 먼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내 친구가 가업을 일으키고 발족식을 갖는다는데 안 와 볼 수가 있어야지.]

라흐만이 태수에게 다가온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재빨리 주변을 확보했다.

홍해 갈라지듯 길이 만들어졌고, 모든 사람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저 외국인 신분이 어떻기에? 온몸이 죄다 번쩍번쩍한데?”

“어디 왕족이나 국왕쯤 되는 거 아냐?”

반쯤은 들어맞는 추측들이었다.

실제로 라흐만은 사우디의 왕족이 맞기도 하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라흐만 님께도 늦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우디 동쪽 도시 개발 담당자로 승진하셨다면서요?]

[다 자네 덕분이지.]

라흐만이 태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내가 직접 계획하고 있어. 생각보다 공사 입찰 예정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금산의 장준용이 벌떡 일어났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 담당자를 이리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금산의 장준용이올시다!]

무려 10억 달러짜리 공사의 담당자가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 예산의 반에 가까운 금액의 공사다.

금산의 장준용이 공들이는 공사의 담당자를 눈앞에서 만났다.

[이자는 누구지?]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큰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아마도 저와 같이 공동 입찰을 추진하지 않을까 싶군요. 금산이라면 들어 보셨을 텐데요.]

[이제 보니 사우디에 유조선으로 물을 내놨다던 그 사람이로군.]

라흐만이 알아보자 장준용은 재빨리 라흐만 곁으로 바싹 달라붙었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 입찰은 언제쯤으로 생각하십니까?]

장준용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유였다.

태수는 택시에서 내리고 있는 익숙한 얼굴을 한 명 더 알아봤다.

“송소리 씨.”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아빠가 직접 보고드리라고 해서 같이 왔어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가져 왔죠. 누구 명인데요.”

아주 잘됐다.

혹시나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장말동 어르신을 찾아갔었는데, 이렇게 제시간에 맞춰 올 줄이야.

준비는 차고 넘친다.

“물건은 어디 있습니까?”

“택시 트렁크에 실었어요. 여기요.”

태수가 한수를 불렀다.

“송소리 씨가 가져온 물건들을 내 차 트렁크에 옮겨 실어 줘.”

“알았어.”

송소리가 태수를 슬쩍 봤다.

“저기 높은 분께서 이쪽에 전보를 보냈더라고요. 전용기를 태워 줄 의향이 있으니 주베일까지 오라고.”

“제가 혹시나 해서 미리 라흐만 님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안 그러면 송소리 씨가 이거 들고 밀항으로 와야 할 테니까요.”

송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된 거군요. 아주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높은 신분의 부자 친구 덕분에 전용기 얻어 타고, 검색도 최소로 받고, 물건도 그러려니 넘어가고, 택시까지 얻어 타고.”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태수는 시계를 확인하곤 크게 외쳤다.

“태양 그룹 출범 행사 시작합시다!”

* * *

태양 그룹 출범식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이었다.

태수가 기념 축사를 낭독하고 있는데, 검은색 지프차가 행사장 한가운데 들어섰다.

중앙 정보국 소속 마크를 떡하니 찍고 있는 차였다.

“중앙 정보국에서 나왔네?”

“무슨 일일까?”

직원들이 다들 불안한 얼굴을 했다.

중앙 정보국에서 나왔다 하면 누군가를 잡아가는 일이 흔했다.

그러니 자연히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삐이-

태수는 마이크를 내리고 가만히 상황을 응시했다.

차에서 내린 중앙 정보국 요원이 뚜벅뚜벅 걸어 태수에게 왔다.

“중앙 정보국에서 나왔소.”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각하께서 전할 말씀이 있다고 하여 대신 왔소.”

박정환은 태양 그룹 출범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호실 소속도 아니고 중앙 정보국 소속에서 요원이 나와 전할 말이 있다니.

“용건은 모두 세 가지요.”

다들 귀를 기울였다.

수백 명의 태양 직원들이 모인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첫째, 태양 그룹은 오늘부로 재벌 기업으로 출범하는 바, 이를 축하한다고 하셨소. 앞으로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길 바라 오.”

그 소리를 듣고 직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둘째, 나라 경제가 석유 파동으로 심히 어려우니 부실 기업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내릴 것이라 하셨소.”

태양 그룹은 부실 기업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직원들이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그런 의미로 태양 그룹은 인수한 각 기업의 부채를 일시 상환하라 하셨소.”

누군가 숨 들이켜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기업들의 부채가 얼마인가.

그걸 어찌 일시 상환하라는 소린가.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태수가 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용건이오.”

중앙 정보국 요원이 다시 뚜벅뚜벅 걸어왔다.

태수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아, 전원을 완전히 꺼 버리는 남자.

그가 태수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한민국에서 돈 벌어먹고 싶으면 위로 상납해야 하는 건 알지?”

정치 자금을 요구하는 거다.

“청일 정유만 먹으라고 했더니 중장비까지 먹었다며. 그러니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지. 안 그래?”

“얼마를 원하십니까?”

“10억.”

2020년 기준으로는 300억 가까운 돈이다.

그룹으로 출범하자마자 요구하는 액수로는 과하다.

하지만 중앙 정보국 요원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각하께서는 당신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분할 납입 액수와 기간이 정해진다고 하셨지.”

웃기는 소리였다.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각하께 빌어.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발족한 태양 그룹은 내일부로 해체될지 모르니까.”

중앙 정보국 요원이 비릿하게 웃었다.

태수는 그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각하께선 지금 청일 호텔 착공식에 참석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어쩔 테냐?”

“직접 만나 뵙고 상납금을 올려야죠.”

중앙 정보국 요원의 눈이 커졌다.

대부분 기업을 찾아가서 첫 정치자금 상납을 요구하면 반응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절대로 못 낸다면서 마음대로 해 보라고 뻣뻣하게 구는 놈.

-둘째, 제발 깎아 달라며 바짓가랑이 붙들고 사정하는 놈.

-셋째, 뒷돈을 먹이면서 서류를 조작하자고 꼬드기는 놈.

그런데 이자는 달랐다.

아주 선뜻 정치 자금을 직접 상납하겠다지 않나.

그것도 무려 10억을!

“잘못 들었나 보지? 1억이 아니야. 10억이라고.”

“제대로 들었습니다. 10억.”

“그걸 지금 당장 내놓는다고?”

“그거 받아 가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

단번에 말문이 막혔다.

돈 받아 가겠다고 온 건 맞는데, 실제로 받아 갈 수 있을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나.

‘상식적으로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대뜸 10억 내놓으라는데, 바로 10억 줄 수 있는 놈이 어디 있어?’

재벌 기업 총수를 찾아갔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조만간 돈 가방을 준비해 놓겠다고 말미를 달라고 사정한다.

“갑시다.”

“어디로?”

오히려 중앙 정보국 요원이 멍청하게 반문하고 말았다.

“각하께서 계신 곳으로 갑시다. 청일 호텔 착공식에 있는 거 맞죠?”

“…아마도.”

“바로 출발합시다. 지체하다가 각하께서 떠나면 번거롭잖습니까.”

“…….”

태수가 중앙 정보국 요원이 들고 있는 마이크를 빼앗았다.

단번에 마이크를 켜고, 직원들을 향해 웃었다.

“이것으로 태양 그룹 출범식을 마치겠습니다.”

뭐라고?

시작 5분 만에 기념행사가 끝나다니.

여기 참석한다고 강원도에서, 서울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왔는데.

“행사가 짧아서 불만이십니까? 8월 한여름 땡볕에서 몇 시간씩 서서 함께 동료애를 다져 볼까요? 경축사도 길게 잘할 자신 있습니다.”

다들 기겁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전혀 불만 없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태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 짧은 농담으로 직원들은 긴장을 풀고 웃고 있었다.

“저는 이분과 함께 옆 동네 호텔 착공식 행사장에 다녀올 겁니다. 그러니 다들 걱정하지 마시고, 준비한 점심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태양 그룹 전 직원이 웅성대면서 서로를 돌아봤다.

“우리 어머니 손맛이 기가 막힙니다. 아마 맛있는 점심 식사가 될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와아아-!”

태수 어머니의 손맛을 알고 있는 광부들이 제일 먼저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다른 태양 소속 직원들도 호기심을 드러낸다.

어느새 걱정은 저만치 사라진 후였다.

‘좋아,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태수는 중장비의 이창원과 정유의 노일국을 찾았다.

“이창원 부사장, 노일국 부사장. 당신들은 나와 함께 갑시다.”

“예!”

“예!”

태수는 이번엔 장말동을 돌아봤다.

“장수 은행 은행장님도 함께 가십시다.”

“엥? 나까지?”

“돈 받기 싫으시면 마시고요.”

“가자!”

태수가 마이크를 끌 때 라흐만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한청호가 수작을 부린 건가?]

[보시다시피.]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한청호 쪽 행사장이요. 거기서 대통령을 만나고, 은행장들을 만나 담판을 지을 생각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곳이라면 나도 가지.]

그러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선뜻 온 게 아닌가.

라흐만이 간다니 경호원들까지 우르르 따라붙게 되었다.

“아, 아쉽다. 나만 못 가.”

하필 가는 곳이 한청호 쪽 행사장이라지 않나.

송소리만이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식판을 들고 야무지게 음식을 챙기고 있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한식이던가.

부르릉.

자동차와 택시가 줄지어 떠났다.

청일 호텔 착공식에서 제대로 판을 벌이기 위해서.

무슨 판? 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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