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71화 (71/230)

71. 국방부 장관 앞에서 전쟁을 논하다(3)

종로에 위치한 초명 은행.

그곳 사무실에서 최무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해? 장수 은행에서 미국 투자 회사에서 대규모 투자 제안을 받았다고?”

종로의 딱따구리라 불리는 남자.

최무룡의 오른팔이 입을 열었다.

“지금 소문이 파다합니다.”

“소문의 진위는?”

“정보 상인들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고 말을 흐립니다만, 묻는 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물밑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소문 퍼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이어진다.

가뜩이나 경쟁자인 장말동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최무룡이니 투자 소식에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직 협정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자금 규모가 상상 이상이라네요.”

“얼마나 되는데?”

“1억 9천만 원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뭐? 1억 9천만 원?”

70년대 물가는 대략 2020년 기준으로 1/30 정도다.

최무룡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많은 돈을 장수 은행에 투자한다고? 왜?”

“장말동이 비밀리에 미국 투자자와 접선했다는군요. 미국 투자자가 자금 세탁을 이유로 장수 은행과 모종의 협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자금 세탁? 협약은 또 무슨 말이야?”

“투자금을 줄 테니 장수 은행 이름으로 주식을 사들이라고 했답니다. 그 미국 투자자가 같은 이유로 여러 곳에 손을 뻗치고 있다네요.”

최무룡은 신음을 흘렸다.

“장수 은행에 차명 주식을 부탁했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장말동의 반응은?”

“군침을 흘리면서 달려든다는군요. 수익률 높일 좋은 기회가 왔다면서 말입니다.”

장말동이라면 그럴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칠 자가 아니다.

“장말동은 투자금만이 아니라 쌈짓돈까지 전부 털어서 주식을 사들이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식을? 직접? 차명 주식 외에 따로 또 투자를 한다고?”

“당연하죠. 저라도 그런 정보를 얻으면 달려듭니다. 게다가 전부 우량주라서 연일 하늘을 모르고 주가가 상승하고 있답니다. 장말동이 입이 귀에 걸렸답니다.”

의심이 많은 최무룡은 쉽사리 걸려들지 않았다.

“애들 풀어서 그 소문에 대해 샅샅이 수집해 와.”

“예.”

“장말동이 주식을 얼마나 사들이는지도 보고해. 증권가 애들을 매수해서.”

“예.”

“장말동이 사들인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도 확인해.”

“예.”

최무룡은 물었다.

“그런데 장말동이 사들이는 주식은 어디 주식인가?”

“유럽 석유 회사 주식이랍니다.”

지금 서구 유럽은 산유국의 헐값 석유로 유례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장말동이 아니라도 석유 회사 주식은 연일 오르고 또 오르고 있다.

최무룡은 턱을 쓸었다.

“유럽 석유 회사 주식이란 말이지······.”

구미가 당긴다.

* * *

태수의 두 번째 전쟁은 칼리드와 라흐만 부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칼리드 님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번 전쟁은 흘려 들으셔도 됩니다.]

처음으로 태수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가족의 일이기 때문에 제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꺼려지는군요. 차라리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흐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님, 일단 한 번 들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으음.]

칼리드는 갈등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상황을 누가 만족할까.

지금 칼리드는 사방팔방 조여 오는 형제들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태다.

[아버님.]

[좋다, 일단 한 번 들어나 보도록 하자. 그대의 말을 듣고 난 후에 마음을 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이제 그대의 계획을 말해 주겠는가?]

[원하신다면 말해 드리겠습니다.]

태수는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 전쟁이 닥치면 국방부 장관인 칼리드 님의 영향력이 강해집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사우디 왕실에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으음.]

[칼리드 님을 견제하려는 세력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정적은 초대 국왕의 4남 건설부 장관과 9남 재경부 장관.

그들은 사사건건 칼리드와 맞서며 그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반면 그들의 세력은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

[그랬기에 라흐만 님이 서쪽 도시까지 내몰린 것이겠지요. 고작 작은 고속 도로 공사에 명운이 달릴 만큼.]

맞는 말이다.

이번에 라흐만 역시 4남 건설부 장관의 입김으로 좌천됐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고, 공을 전부 가로채 버린다.

그러기를 여러 번.

결국 라흐만은 억울하게 서쪽 도시까지 쫓겨났다.

칼리드의 수족을 자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전시에 국방부 장관의 힘은 일국의 왕을 능가할 정도지요.]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전쟁은 위기이자 곧 기회이기도 하다.

전공을 쌓고, 이름을 떨치고, 부하들과 함께 공을 나눈다.

즉, 왕실에서 세력을 넓힐 다시 없을 기회란 말이다.

라흐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버님, 언제까지 큰아버님인 형에게 양보하고, 내어 주고, 물러나실 생각입니까?]

라흐만은 그 와중에 희생된 제 형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큰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아버님의 사정을 봐주었습니까? 이제 보이지 않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끝은 결국 벼랑입니다. 제가 그 끝에 서 있습니다.]

이미 코너 끝에 몰린 칼리드다.

후계자마저 서쪽 도시 끝으로 밀려났을 정도니까.

[다음은 아버님의 오른팔인 방위군 사령관 압둘라님의 차례일 겁니다. 그래도 참으시겠습니까?]

라흐만의 읍소에 칼리드는 눈을 감았다.

[아버님, 정치란 그런 것이 아닙니까? 승자 독식. 이긴 자는 권세를 누리고, 진 자는 목숨을 빼앗기는 법입니다.]

정치도 전쟁이다.

총칼 대신 서로의 목숨과 지위를 두고 다투는 살벌한 전쟁.

[아버님이 밀려나면 함께하는 우리도 전부 무너집니다. 마치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는 도미노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칼리드의 세력은 지금도 위태롭다.

칼리드가 태수를 보았다.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기만 정책을 펼치는 겁니다. 누구도 지금 전쟁이 날 것이란 걸 모를 때, 전쟁 준비는 그때 하는 겁니다.]

칼리드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태수가 던진 말 때문이었다.

라흐만이 다시 말을 보탰다.

[아버님, 상대는 차기 국왕 위를 노리며 칼을 가는 자들입니다. 현 사우디 국왕 폐하께서 언제까지 아버님을 지켜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현 국왕께서 지켜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칼리드가 이렇게 몰려 있는 것이다.

칼리드가 태수를 보았다.

[그대도 같은 생각인가?]

[모든 것은 칼리드 님의 뜻대로. 저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태수는 딱 잘라 말했다.

사우디 왕실 정치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아버님, 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으로 만들어집니다. 운명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성취하는 겁니다.]

아들의 말에 칼리드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강자에게 기대어 자비를 기대하는 것보다 스스로 강자가 되어 살길을 찾는 게 낫습니다.]

그에게도 야망은 있었다.

지금껏 꾹 눌러 참기만 했던 야망이었다.

[그 말은······.]

[이번 전쟁을 기회로 아버님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이건 하늘이 내려 준 역전의 기회입니다.]

아들이 간절한 눈으로 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서쪽 도시 끝으로 쫓겨나서 자칫 국외로 추방될 지경에 몰렸던 라흐만이다.

‘그래, 형님의 독수(毒手)에 라흐만을 잃을 뻔했지.’

고운 말을 건넸다고 고운 말이 돌아오길 바라는 건 잘못이었다.

‘라흐만의 말이 맞다. 난 늘 투르키 형님에게 양보하려 하지만 형님은 날 자꾸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어.’

칼리드는 벌써 세 아들을 잃었다.

‘내 후계자가 될 라흐만까지 잃을 순 없어. 나도 살아야겠다.’

이제껏 집안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만 어쨌건 형제들과 친척들이 요직에 앉아 사우디 왕실을 이끌어 간다.

그래서 화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을 합쳐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일한 생각이었어. 바보같이······. 적이 내 목에 칼을 들이밀었는데, 난 칼 든 적을 아직도 형제라고 믿고 있었구나.’

칼리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옳아. 전쟁 준비를 시작해야겠어. 아무도 모르게.]

칼리드가 결심을 굳혔다.

전생에선 후계자 라흐만을 잃은 후에야 피눈물을 흘리며 내렸던 결단이다.

하지만 이번엔 태수 덕분에 라흐만을 잃기 전에 먼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투르키 형님, 저도 이제 양보만 하진 않겠습니다. 제게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이번을 기회로 난 왕실 정치 싸움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아버님!]

라흐만이 제 아버지의 말에 감격하였다.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결단이었다.

[내 스스로 강자가 되어 살길을 찾고, 내 사람들을 지켜 낼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조금 밀려나 있던 국방부 장관을, 차기 국왕으로 만드는 결단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결단을 이끌어 낸 건 다름 아닌 태수였다.

라흐만이 고마움이 가득한 눈으로 태수를 보고 있었다.

태수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지막이로군. 그대의 세 번째 전쟁, 승리의 계획을 들어 보고 싶다.]

태수는 세 번째 전쟁에 대해 말한다.

[제가 말씀드릴 세 번째 전쟁은 바로 석유 전쟁입니다.]

[석유 전쟁?]

칼리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우디는 현재 산유국에서도 수위를 달릴 정도로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지금 사다트가 벌이는 전쟁을 이용해 사우디가 중동의 산유국들을 상대로 석유 전쟁을 벌이라는 뜻인가?]

[상대가 틀렸습니다.]

태수는 씩 웃었다.

[중동의 산유국들과 석유 전쟁을 벌여서 뭐합니까? 오히려 그들과 손을 잡고 다른 놈들을 몰아내야죠.]

[설마······.]

[사우디 석유에 빨대를 꽂고 헐값에 빨아들이는 모기 같은 놈들 말입니다.]

서구의 석유 회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럼 사우디는 전시 체제로 돌입합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가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른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시나이반도가 전쟁터가 됩니다. 그때 석유를 되찾아 오십시오.]

실제로 중동 전쟁이 발발하자 여섯 나라 중동 산유국이 일제히 손을 잡고 석유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오일 쇼크다.

그때 사우디는 제 나라에 기생하고 있던 외국 석유 자본을 무참히 뽑아 버린다.

그렇게 사우디는 석유를 되찾아 국유화할 수 있었다.

칼리드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우리 왕국의 석유를 제 것처럼 차지하여 제 배만 불리는 모기 같은 놈들!]

초기 석유 채굴 자본이 없어서 서구 열강들에 빼앗겼다.

사우디의 석유로 그들의 배를 불리는 건 그만하면 되었다.

[그놈들을 쫓아낼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이건 하늘이 우리 사우디 왕국에 내리신 둘도 없는 기회다.]

칼리드가 태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것만은 내가 그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군. 석유만 되찾아 온다면 우리 사우디 경제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며 국민들은 배불리 살 수 있다.]

중동 전쟁에 승리한다고 해도 전쟁터에서 흘릴 피와 짓밟힐 국토가 있다.

세력 전쟁에 승리한다고 해도 밀려나 눈물 흘릴 형제와 친척이 있다.

하지만 석유 전쟁은 다르다.

이것만 승리한다면 사우디는 석유로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다.

이 나라의 자원으로 이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을 절호의 기회다.

[고맙다. 내 다른 건 몰라도 석유 전쟁만큼은 절대로 이겨야겠다.]

칼리드는 태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자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을 바꿀 기회였는지도 모르겠군.’

아마도 그럴 것이다.

칼리드는 태수를 만나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 나라, 내 국민을 위해서라면. 이 전쟁, 반드시 승리하겠어.]

세 가지 전쟁을 모두 승리한다.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가 만든 세계적인 도박판에서 기필코 이기고 말겠다.

[그대는 내게 피할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할 방법을 가르쳐 줬다.]

구라의 꽃은 역구라!

상대의 기만책에 부응하여 노리는 한 판 역전승!

[그대는 내게 세 가지 전쟁에서 승리하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 줬다.]

명예, 권력, 그리고 석유!

[나는 그대에게 무엇으로 보답하면 되겠나?]

이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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