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청일 사냥을 준비하다(1)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나올 때는 가볍게 나왔지만 돌아갈 때는 선물로 양손이 무거웠다.
태수는 강원도 광산 마을 집에 도착했다.
“저 왔습니다.”
태수를 본 어머니가 들고 있던 소쿠리를 떨어뜨렸다.
태수는 어머니를 보며 활짝 웃었다.
“태수야!”
어머니가 버선발로 달려와 아들을 덥석 껴안았다.
태수도 어머니를 꽉 안아 드렸다.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벌써 왔니? 얼굴 탄 것 좀 봐. 밥은 잘 먹고 다녔니? 왜 이렇게 말랐어?”
“마르긴요. 잘 먹고 잘 지내다 왔습니다.”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고생했다.”
어머니가 태수의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뭐? 태수가 왔다고?”
안방에 누웠던 아버지도 후다닥 달려왔다.
맨발로 부엌까지 전력질주로 주파한 아버지.
태수를 보고 반가움이 역력했다.
“대통령 각하께서 맡기신 공사는 어쩌고 돌아왔어? 벌써 다 지었을 리가 없는데?”
“어버이날이잖아요. 가슴에 꽃 달아 드리려고 왔죠.”
“아니, 이게 다 무슨 말이냐? 가슴에 꽃 달아 준다고 중동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다고?”
황당하면서도 기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중동에 한 번 가면 10년은 못 볼 줄 알았다.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중동에 간 거지 감옥에 간 것도 아닌데요. 마음만 먹으면 오는 거죠.”
“비행기 푯값이 비싼데······.”
“그 돈이 없어서 못 오겠습니까?”
“······.”
73년이니 비행기 표가 무척 비쌀 때다.
하지만 태수에겐 상관없었다.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깟 비행기 삯 따윈 몇 번이라도 치를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태수야, 일단 밥부터 먹자. 중동에 다시 보낼 때 보내더라도 내 아들 밥 한 끼는 내 손으로 챙겨야겠다.”
어머니가 서둘러 밥하려는 걸 태수가 말렸다.
“어머니, 일단 아들 절부터 받으세요.”
“오냐, 그러자.”
태수가 부모님 앞에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준비해 온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렸다.
‘전생에선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이런 것도 못해 드렸지.’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철없던 시절이다.
부모님이 천년 만년 살아계실 줄 알았다.
어버이날은 해마다 돌아오니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건강만 챙기세요. 다른 건 제가 챙겨 드리겠습니다.”
태수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태수야, 지금도 네 덕에 충분히 행복하다. 네 얼굴을 다시 보니 너무 좋구나. 이보다 더한 효도가 없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라. 앞으로 어버이날은 물론 생일도 챙길 필요 없으니 우린 신경 쓰지 말고 넌 네 일을 열심히 해라.”
태수는 웃으며 선물을 나눠드렸다.
“이건 서양에서 만드는 화장품과 향수입니다.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구두예요.”
“어머나, 이게 다 웬 거야? 늙은 내가 이런 걸 쓴다고 욕하지 않을까? 근데 정말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좋구나.”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다.
화장품과 향수, 가방과 구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과 연신 터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신다.
“이건 아버지 겁니다.”
“양담배잖아? 게다가 양주까지!”
아버지도 입이 귀에 걸렸다.
“제가 전에 약속했잖아요. 다음엔 청자 담배 대신 양담배로 사 드리겠다고요.”
“이 귀한 것을 정말로 사 오다니!”
아버지가 담배를 만지작거린다.
“입이 근질거려서 못 쓰겠다. 한 대 피우고 오자.”
아버지를 따라서 마당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태수가 성냥을 켜서 담뱃불을 놓아 드렸다.
“먼 데 나가 고생했다.”
아버지가 태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앞으로도 네가 고생이 많을 것이다. 그저 건강하게, 아프지 말거라.”
아버지 얼굴에 미안함이 어린다.
그때 광산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한수가 형을 발견하고 크게 외쳤다.
“형!”
“어, 한수 왔냐?”
“이렇게 와도 돼? 중동 일은?”
“홀쭉이가 하고 있지.”
“······.”
한수의 표정이 묘하다.
기쁘고 반가운데,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는 표정이 딱 저럴 것이다.
“형이 아버지 가슴에 꽃 달아 드렸어?”
한수가 아버지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을 보았다.
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한수가 종이봉투에서 더 크고 화려한 카네이션 꽃다발을 꺼내며 씩 웃었다.
“생각보다 좀 작네?”
이 자식이!
태수가 슬쩍 아버지 담배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양담배를 참 좋아하시더라.”
한수가 종이봉투를 구겼다.
종이봉투엔 청자 담배가 들어 있었다.
한수가 됫병 소주를 꺼냈다.
“이번에 아버지께 인삼주를 담아 드려야 하나, 과일주를 담아 드려야 하나?”
“됐어. 내가 양주 사 드렸어.”
파지직!
“제법인데?”
“너 역시. 꽃다발이 참 크더라?”
오랜만에 형제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그때 태수 어머니가 말했다.
“시끄럽다, 밥 먹자. 다들 밥부터 먹고 얘기해요!”
이 집에선 국자를 든 어머니가 제일 막강하다.
* * *
한수가 태수 방에 들어왔다.
“형, 따로 보자는 말은 왜 했어?”
“너랑 의논할 일이 있어서.”
한수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태수 대신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해 줘야 할 일도 있다.
“형, 중동에는 이제 안 돌아가?”
“아니, 곧 들어가 봐야지.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
“볼일?”
“너한테 부탁할 것도 있고, 또 장말동 어르신을 만나려고. 그때 너도 같이 데려갈 거야.”
셋이 모여 같이 의논해야 할 일이다.
한수가 눈을 크게 떴다.
“형, 중동에서 크게 사고 쳤어? 돈 필요해? 사채 쓰게?”
이 자식은 날 뭐로 보고!
“사채라니, 어르신이 사채업 접은 지가 언젠데.”
“그럼 은행 대출받게?”
“아니, 대출도 필요 없어. 다른 일로 의논할 게 있어.”
무기 상인인 장말동을 만나야 할 일이다.
또한 은행장인 장말동도 만나 볼 생각이다.
중동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해야 하니까.
“동맹이잖아. 좋은 일이 있으니 함께해야지.”
태수가 굳이 중동에서 한국까지 찾아온 이유였다.
한수에게 미국에 가서 일을 좀 부탁하려고 할 때였다.
한수가 먼저 선수 쳤다.
“안 그래도 형이 돌아오면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뭔데?”
“나, 중앙 정보국에 들어갈까 싶어.”
“뭐?”
느긋하게 앉아 있던 태수가 벌떡 일어섰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전생에 안기부 송곳이라 불렸던 한수다.
그랬던 녀석이 제 발로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 정보국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꺼낸다.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는 아니고, 광산 일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무슨 생각?”
“이게 정말 내 일이 맞나? 내 적성에 맞나? 이건 형의 일인데······.”
태수는 가만히 한수의 말을 들었다.
“한자리에 매여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 따분하다, 나는 좀 더 거친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태수는 눈을 감았다.
시장 바닥에서도 애들을 부리며 해결사 노릇을 하던 한수였다.
광산에 매여 매출 증표, 회계 장부, 땅문서나 확인하는 일은 답답할 터였다.
한수를 곁에 두고 싶었던 건 솔직히 태수의 욕심이었다.
‘한청호는 한수를 안기부에 보냈었다. 한수는 안기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가 되었고. 내가 욕심을 부린 건가?’
한청호가 두 형제를 떼어 놓기 위해 그런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수는 날카로운 일이 적성에 잘 맞았다.
‘눈썰미도 좋고, 흐름 보는 눈도 좋지. 그래서 주식도 잘 예측하더라고. 금융 쪽 일이 적성에 맞을 줄 알았는데.’
한수의 장점은 예리하고 날카롭다는 데 있었다.
‘상대의 약점도 잘 찌르고, 일의 허점도 잘 파악한다. 정보 수집은 특기지. 빠르고 정확하고. 이 부분은 확실히 감찰 쪽 재능이야.’
여러모로 탐나는 인재였다.
태수는 한수를 옆에 두고 쓰고 싶었다.
‘안기부나 중앙 정보국처럼 위험한 일에 쓰는 재벌의 칼잡이로 키우고 싶진 않았는데.’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일이다.
그래서 태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한수에게 잔인한 현실을 알려 줘야 할 때다.
“한수야.”
“어.”
“중앙 정보국에 들어가면 넌 권력의 칼로 살아야 해.”
“칼?”
“넌 칼이 되고 싶은 거냐? 칼이 하는 일은 이렇다.”
태수는 칼을 손에 든 시늉을 했다.
그리고 한수를 푹 찔렀다.
긴장한 한수를 연달아 찔렀다.
“푹푹푹! 이렇게 네 손에 네 몸에 남의 피를 묻히고 살아야 한다. 그게 칼의 숙명이야.”
한수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네 능력? 네 적성? 중앙 정보국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출세한다는 뜻이 뭘 것 같으냐?”
“······.”
“칼은 날카롭게 버려져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
“그건 남을 더 많이, 잘 죽여야 한단 뜻이다.”
태수가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는 시늉을 한다.
한수는 태수의 손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느꼈다.
“손에 남의 피 묻히고 사는 일, 쉬운 일 아니다. 넌 남의 원한을 먹고살래?”
태수는 한수의 손을 꽉 잡았다.
“이 손에 피를 묻히고 받는 인정, 너는 그게 기쁠 것 같으냐?”
한수가 입을 다문다.
이왕 꺼낸 말, 태수는 작심했다.
“네가 중앙 정보국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줄 알았냐? 그게 가문의 명예이고, 부모님의 기쁨이 될 줄 알았어?”
한수의 정곡을 콱 찌르는 말이었다.
태수가 대통령의 명에 따라 중동에 갔을 때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던가.
그때 한수는 생각했다.
-나도 나랏일을 하고, 가문의 명예가 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
-내 적성과 능력에 맞게 중앙 정보국에서 일해 보면 어떨까?
하지만 태수가 말하는 현실은 피투성이 길이다.
“겉을 번드르르하게 포장했어도 본질은 하나다.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칼!”
명령에 따라 죄 없는 사람 잡아들이는 일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그때가 되면 진실 여부는 상관없다.
정의보단 목적이 우선이다.
“원한 살 일밖에 없는 암투용 칼! 전쟁용 칼! 살인자의 칼!”
한수가 눈을 질끈 감는다.
“자식 손에 피 묻는 일을 좋아하실 부모님이 어디 있겠어? 네가 먼저 휘두른 칼 때문에 너 역시 칼 맞을 수 있다는 걸 왜 몰라!”
전생에 한수 부부는 살해당했다.
원한으로 인한 보복 살인!
그것이 한수 부부의 사건 명칭이었다.
‘한일권이 뒤에서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결국 안기부 일로 원한에 사무쳤던 놈이 벌인 짓은 맞으니까.’
실제로 중앙 정보국이나 안기부, 검찰에 들어가서 다 그런 일만 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수는 안기부에서 칼잡이로 이름을 날렸다.
-정치 권력자들과 재벌들이 탐내는 칼잡이!
낭중지추란 의미에서 붙은 별명은 안기부 송곳이었다.
깊고 예리하게 잘 찌른다는 뜻이었다.
‘결국 한수는 두 손 가득 피를 묻히고 살았지.’
능력이 너무 뛰어나 두각을 드러냈다.
인재일수록 그런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태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수야, 네 적성, 네 능력, 칼이 되기 딱 좋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어.”
“···형?”
“하지만 칼이 되더라도 남에게 이용당해 휘둘리진 말아야지.”
한수는 남의 뒤를 닦아 주느라 제 손에 피를 묻히고 죽었다.
그건 개죽음이다.
태수는 오랫동안 그게 마음 아팠다.
“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태수가 한수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 한수야.”
“······.”
“네가 나를, 부모님을, 우리 회사를 지켜 주면 안 되겠냐?”
한수가 눈에 띄게 동요한다.
“정녕 피를 봐야 한다면 차라리 회사의 곪은 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용 칼이 되어 주면 안 되겠냐?”
수술용 칼도 칼이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
“회사가 커질수록 나는 밖으로 돌 거고, 적은 더 많아질 거고, 회사는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겠지.”
“······.”
“나 혼자서는 힘들어. 도와주라, 한수야.”
한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