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58화 (58/230)

58. 가자, 한국으로(2)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캡틴? 왜 여기서······.”

암살자는 당황했다.

캡틴의 신호에 따라 무장한 사람들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송진구와 사채업자, 광부들이었다.

“젠장!”

암살자보다 이쪽이 빨랐다.

푸슉.

송진구의 총이 불을 뿜었다.

짐승 잡는 장총이었다.

“유감이야. 나 역시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잘 자라.”

꿀잠을 기원해주는 송진구였다.

허벅지에 마취탄을 맞은 암살자는 휘청거렸다.

“한 숨 푹 자라. 깨어나 보면 한국일 테니까.”

“비행기 멀미는 안 하겠네. 큭큭큭.”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됐다.

암살자는 금방 붙들려서 무장 해제되었다.

입에 재갈이 물리고, 단단히 포박되었다.

벌써 약이 도는지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이 새끼 옆방에 처넣고 다시 대기한다. 이불 새로 갈고.”

“예.”

암살자를 끌고 옆방 문을 열었다.

‘아니?’

자신과 똑같이 포박된 야행복 차림의 남자들이 벌써 셋이나 잠들어 있었다.

캡틴은 암살자를 밀어 넣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기에 일찍 자라고 말했는데. 말 안 듣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오는 놈들이 대체 몇 놈이나 더 나올지 모르겠군.”

송진구가 마취총을 흔들며 웃었다.

“불면증 환자에겐 수면제가 보약이지.”

캡틴이 태수에게 말했다.

“대단하군요. 이렇게 완벽하게 방비해두셨는지는 몰랐습니다. 차 실장님의 걱정은 괜한 우려였습니다.”

태수는 캡틴이 전해줬던 쪽지를 떠올렸다.

차기범이 보낸 것이었다.

<이들 중에 한청호가 보낸 암살자가 섞여 있소. 내가 일부러 출국 일정을 늦춰준 이유요. 요원들이 귀국하기 전까지 핑계를 대어 멀리 피하시오. 이래도 내게 고마워하지 않을 테요?>

차기범은 경호원 중에 한청호의 첩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자가 누군지 특정하지 못했다.

은밀하게 매수되었고, 정보만 전달하며, 몰래 일을 조금 방해하는 정도.

그게 차기범의 신경을 건드리곤 했다.

“차 실장님께선 암살자와 강태수 씨의 접촉 시간을 최대한 짧게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차 실장님도 언제까지 일정을 연기할 순 없었겠죠. 각하께서 원하는 것을 무시하긴 어려웠을 테니까요.”

“바로 그렇습니다. 때문에 미리 대사관에 연락하여 귀띔하기로 한 것이었죠. 제게 쪽지를 전달하게 했고요.”

차기범은 캡틴에게 쪽지를 전달하면서 태수에게 한 가지 정보를 더 제공했다.

-캡틴은 차기범이 신뢰하는 수족이다.

그래서 태수는 일부러 캡틴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캡틴은 씩 웃었다.

“차 실장님께선 강태수 씨가 요령껏 피하기를 바라셨는데, 강태수 씨는 생각이 다르시더군요. 이걸 정면 돌파해서 함정으로 되받아 치다니. 배짱이 대단하십니다.”

한청호가 보낼 암살자가 있다는 걸 뻔히 안다.

게다가 차기범이 캡틴을 보내어 귀띔까지 해줬다.

진즉 이들에 대한 준비는 끝내둔 상태였다.

실패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함정을 준비하신 겁니까?”

캡틴은 강태수가 쥐여 줬던 쪽지를 떠올렸다.

<개인 방을 배정해서 일찍 자유시간을 주십시오. 쥐새끼들은 치즈 냄새에 홀려 스스로 쥐덫에 뛰어들 겁니다. 우린 쥐덫 뚜껑만 단단히 닫읍시다.>

그 밑에는 태수의 숙소가 적혀 있었다.

“강태수 씨 말대로 쥐덫에 쥐새끼가 스스로 뛰어든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귀국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조급한 마음은 항상 무리수를 두게 하는 법.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치즈를 자처하신 거잖습니까? 처음에 이 계획을 듣고 너무 무모하다고 말릴 정도였습니다.”

태수는 씩 웃었다.

“계산된 위험은 무모함과 다릅니다. 그건 감수해야죠.”

“배짱 좋게 치즈를 흔들어대니, 쥐새끼들이 달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테죠. 멋지게 성공하셨습니다.”

캡틴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 모든 건 차 실장님께 그대로 전달될 겁니다.”

“아뇨, 전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네? 어째서······.”

캡틴은 의아했다.

“이건 차 실장님께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차기범은 무려 대통령 경호실장이란 권력자다.

누구나 그의 눈에 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태수는 그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제가 어필해서 뭣하겠습니까? 차라리 캡틴께서 승진하시는 게 낫지요.”

승진이란 말에 캡틴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움직인다.

돈은 거절할 수 있다.

그러니 한청호의 뇌물 그물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일수록 명예를 탐한다는 걸 태수는 잘 알고 있었다.

“강태수 씨의 말은, 지금 제게 공을 넘겨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싫으십니까?”

태수는 빙그레 웃었다.

“중동까지 수고스럽게 먼 길을 오셨습니다. 이것으로 대통령께서 내릴 훈장 배지는 하나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이왕 배지 다는 거, 좀 더 좋은 것으로 달면 좋잖습니까?”

“더 좋은 것이라면······.”

“경호원에 스며든 첩자를 색출했으니, 차 실장님께서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꿔주실 겁니다.”

차기범이 그 공을 잊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캡틴의 얼굴에 욕심이 어린다.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닙니다. 잡으세요.”

태수가 캡틴에게 손을 내밀었다.

캡틴이 씩 웃으며 태수의 손을 잡았다.

“염치없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으니까요.”

“그럼요. 잘 잡으셨습니다.”

“기회를 주신 점,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

“좋은 인연을 이렇게 맺는군요.”

캡틴은 태수를 보며 생각했다.

‘보통 비범한 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능력 이상으로 자기를 포장하려 안달이 났는데.’

오히려 태수는 반대였다.

‘차 실장님께 어떻게, 얼마나, 어디까지 보고하느냐. 이것이 내 숙제가 되겠구나.’

아예 공을 전부 가로채도 상관없다.

심지어 강태수마저 그러라고 등 떠밀고 있었다.

더구나 암살자들의 진술도 같을 터였다.

제압될 때 캡틴만 확인했지, 강태수가 주도한 장면을 본 건 아니었으니까.

‘훈장 종류가 달라진다고 했다. 차 실장님은 이 일로 내 가치를 더욱 높이 쳐줄 것이다.’

캡틴은 결심했다.

‘이자의 뜻대로 따른다. 더 성공해서 언젠가 이 공을 갚을 날이 있겠지.’

같은 시각, 대사관에선 송창준이 차기범에게 전보를 보내고 있었다.

태수가 미리 부탁한 전보였다.

-당신이 보낸 경호원들 중에서 한청호의 첩자를 전부 색출해드리겠습니다.

-이래도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합니까?

* * *

차기범은 부하가 내민 전보를 받았다.

-당신이 보낸 경호원들 중에서 한청호의 첩자를 전부 색출해드리겠습니다.

-이래도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합니까?

보자마자 웃음이 나온다.

기대 이상이다.

‘강태수, 진짜 보통이 아니구나.’

한청호가 그의 턱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나 교묘하게 매수하는지, 믿을 만한 놈들도 어느새 첩자로 변해 있었다.

누가 넘어갔는지, 어디까지 넘어갔는지를 정확히 모른다.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캡틴뿐이었다.

‘첩자로 예상되는 놈들을 추려 보냈는데, 진짜로 첩자였던 모양이야.’

몇 년을 곁에 두고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놈들이다.

차기범 옆에서 대통령의 정보를 훔치는 쥐새끼 같은 놈들이다.

강태수는 그놈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이놈들을 잡아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그때 부하가 전보를 더 내밀었다.

역시 사우디 주재 대사관에서 온 전보다.

-특수요원들이 임무를 훌륭히 마쳤습니다.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작전 수행 증거 사진 및 구조된 사람들의 인적 사항은 캡틴이 가지고 갑니다.

완벽하다.

‘중동에 발 내딛기 무섭게 임무 완료로 전부 귀국한다. 피하기는커녕 첩자 색출이라니. 내 충고가 무색해지는군.’

강태수.

진짜 대단한 자다.

차기범은 전보를 가져온 부하에게 말했다.

“각 언론사에 전화 돌려.”

취재진들 공항에 집결시킨다.

각하의 이미지 쇄신 작전은 이곳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사우디 발 대한민국 행 비행기로 영웅들이 돌아온다고 알려. 각하의 명을 받고 중동에 피랍된 국민을 구출하고 돌아오는 영웅들이다.”

차기범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 기쁜 소식을 들으면 각하께서 무척 좋아하시겠군.’

차기범은 부하에게 한 마디 더 당부했다.

“또 하나. 사우디 외교부를 통해 강태수에게 전보를 보내라.”

“뭐라고 보낼까요?”

“차기범이 고마워하더라고.”

앓던 이를 뽑아줬으니, 그 보답은 제대로 해야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보내.”

* * *

공항은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때 사우디에서 온 특수요원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뒤로 그들이 구출한 삼원 건설 수뇌부들이 나왔다.

촤촤촤촤촤촤촤촷.

사진기 플래시가 터지고, 취재진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피랍된 자국민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었습니까?”

“중동 테러범의 소행입니까?”

“작전을 지휘하고 계획한 사람은 누굽니까?”

캡틴은 손을 들었다.

이미 출국 전에 미리 약속된 말만 내뱉는다.

“대통령 각하께서 피랍된 국민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시고는, 그들을 구조하라 저희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촤촤촤촤촤촤촤촷.

“국민 한 사람이라도 위험에 처했다면, 국가는 그를 안전하게 구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 각하께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촤촤촤촤촤촤촤촷.

“위험한 임무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로 인한 위험은 기꺼이 감수해야죠.”

캡틴이 마무리했다.

“구출된 사람들의 피로가 심합니다. 그들에겐 안정과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자세한 상황은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촤촤촤촤촤촤촤촷.

캡틴의 지휘에 따라 특수요원과 삼원 건설 수뇌부들이 공항을 빠져 나간다.

취재진들도 앞 다투어 그들을 따라 간다.

“취재 열기가 뜨겁군. 박정환이 꽤 좋아하겠어.”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수도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 밖으로 나와 제일 먼저 한 일, 그건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일이었다.

“흐음, 역시 한국이 좋아. 딱 좋은 화창한 날씨.”

중동에 떠나 있는 동안, 어느새 한국엔 봄이 찾아왔다.

1973년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귀국 일정이 짧다. 다시 중동으로 떠나려면 일정이 빡빡해.”

한국에 온 목적은 총 세 가지다.

“제일 먼저 장말동을 만나야겠어. 내가 두 가지 일거리를 가져왔으니, 어르신도 엄청나게 바빠지시겠군.”

만날 사람은 또 있다.

“금산의 장준용. 그를 만나 감사를 전해야지. 또 부탁할 일이 있으니까.”

또 하나 더.

“한수를 미국에 보내야겠다.”

한수가 미국에서 따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몰리브덴 광산과 석회 광산, 시멘트 공장은 예전 시멘트 공장 사장님이 알아서 잘 굴려줄 것이다.

믿음직한 경리도 있고.

“타고 왔던 비행기로 다시 중동에 돌아가려면 진짜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여야겠는데?”

서둘러야겠다.

“오일 쇼크 때, 청일 정유를 잡아먹으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지.”

못 잡아먹어도 좋다.

하지만 최소한 박살은 내놓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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