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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56화 (56/230)

56. 원하는 대로(4)

태수는 차를 세웠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자, 한눈에 사막이 내려다보였다.

[낮에 왔으면 장관이었겠군요. 특히 일출이나 일몰이.]

가슴이 확 트인다.

시야도 확 트이는 것 같다.

[그래도 달빛이 밝아서 운치 있군요. 별도 이렇게 쏟아질 것처럼 많고.]

[예뻐요. 사막도, 달빛도, 별빛도, 저기 소원 바위도. 절 여기까지 데려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가 소원 바위라며 가리키는 방향엔 정말 특이한 바위가 있었다.

독수리를 닮은 바위였다.

[독수리를 닮았군요.]

[독수리는 용맹하고 지혜롭죠. 사막 전사들이 말하길, 여기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댔어요.]

태수는 문득 의아했다.

‘아까부터 부족 남자들이 아니라 사막 전사라는 단어를 쓰네?’

검은색 모포를 뒤집어 쓴 그녀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제법 진지하게 소원을 빌고 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습니까?]

[비밀이에요.]

[저랑 관계된 소원입니까?]

[비밀이에요.]

그녀가 또 코끝을 찡그린다.

귀엽다.

[소원을 말하면 이뤄지지 않을 거예요.]

[세상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인다.

투명하고 예쁜 눈망울이다.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해야죠.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게 웃는다.

[말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고요? 혹시 아까 내가 끈 흔든 거 못 봤어요?]

[봤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제 천막을 지나치셨다는 거죠?]

[끈을 흔들기만 하고, 안 주기에.]

태수가 장난처럼 말하자, 그녀가 예쁘게 눈을 흘긴다.

[베두인족 여자들이 당신 주변에 잔뜩 몰려들던데요. 다른 여자의 끈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니죠?]

그녀가 이번에도 태수의 손에 끈의 끝자락을 내민다.

[다른 여자 끈 말고, 내 끈을 받아요.]

그녀가 태수의 목에 두 손을 걸고 속삭였다.

[사막의 밤이에요. 저 지금 무척 추워요.]

앙큼한 여자였다.

태수는 문득 그녀가 또 코끝을 찡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다.

[지금 이거 뭐하는 거예요?]

[춥다고 하시기에. 이걸 걸치고 있으면 제법 따뜻해질 겁니다.]

[···추워하는 여자에게 외투를 양보하는 젠틀맨은 낭만적이고 멋지긴 한데요.]

그녀가 또 코끝을 찡그린다.

역시 귀엽다.

[지금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죠?]

[티 납니까?]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면 감쪽같겠네요. 짓궂어요.]

태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번쩍 안아 올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태수의 목을 꽉 껴안았다.

태수에게 안겨오는 순간, 이 여자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태수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랍니까?]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럼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실 거예요?]

[기꺼이.]

그녀가 태수의 입술을 손끝으로 지분거리며 속삭인다.

[너무 뜨거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녀 눈빛이 뜨겁다.

[그날 밤처럼.]

태수의 대답을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죠.]

* * *

사막을 탈출한지 하루째 물이 떨어졌다.

이틀째, 육포까지 동났다. 먹을 게 없다.

사흘째,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

나흘째, 절망만이 가득하다. 사막을 벌레처럼 구르고 기어다녔다.

이대로라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 사막이, 너무 무섭습니다.”

“사막은···, 대체 언제 끝이 보일까요?”

빌어먹을 모래 언덕은 넘고 또 넘어도 끝이 없다.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최 사장···, 그놈만 잡으면······.”

이대로 사막에 낙오될 수는 없다.

그는 이를 갈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좀 더, 버티자······. 조금만 더······.”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절망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사장의 눈에는 독기가 철철 흘렀다.

“이만큼 왔으면, 거의 다 온 거야······. 내일은 사막을 벗어날 수 있을 거야······.”

독기로 태우는 희망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내일은, 사막을 벗어났으면······.”

기운이 없다.

그들은 모포를 둘둘 둘렀다.

사막의 밤은 너무나 혹독하다.

그들은 서로 옹기종이 붙어서 덜덜 떨었다.

“베두인족, 음식이, 천막이, 그립습니다······.”

“거긴 따뜻했어요······.”

“흑, 제때 밥 주고, 물주고······.”

입안에 모래가 든 것처럼 까끌거린다.

입술도 쩍쩍 갈라져 피가 난지 오래다.

사막의 밤은 얼음장 같고, 사막의 낮은 오븐 안 같다.

“제발······.”

“부디······.”

그들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잠들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사막 전사들.

[이만 그들을 데려올까요?]

[일단 푹 잘 수 있도록 근방에서 보초를 서줘라. 이상이 있으면 바로 알리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날 밤, 사막 전사의 쪽지를 매단 독수리가 날아올랐다.

* * *

다음날 그들은 구조되었다.

어디선가 사막 전사들이 나타났다.

“사, 살았···, 살았다······.”

기적이었다.

[그늘 막을 쳐라. 묽은 수프를 끓인다. 잠시 여기서 쉬어간다.]

사막 전사들은 그들에게 물을 먹이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고, 고맙, 흑···, 고맙습니다······.”

새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은 됐다.]

그런데 뒷말은 차가웠다.

[잠시 쉬고 난 후 우리는 마을로 돌아간다.]

“아, 드디어 마을로······.”

[너희들은 알아서 갈 길을 가도록.]

“헉······!”

그들을 두고 떠난다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이 사막에 또 남겨진다면?

이번엔 죽음뿐이란 걸 그들도 안다.

[물과 식량을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이번엔 부디 제대로 사막을 벗어나길 빌어주지. 그대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라.]

탈출을 강행했던 그들이건만, 풀어주겠다는 소리가 너무 야속하다.

“아, 안 돼······.”

사막 전사들이 내미는 물주머니와 음식 주머니를 보고 서러워서 울었다.

“살려줘. 제발, 우릴 사막에, 버리지 마······.”

“사막은 무서워요. 베두인 마을로, 제발······.”

사막 전사의 바짓가랑이를 애처롭게 붙든다.

길을 떠나려던 사막 전사가 돌아보았다.

[우리 마을이라면, 그대들이 그토록 떠나고자 했던 곳이 아닌가?]

“아니, 아니야······.”

삼원 건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막 전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막 전사들은 이미 떠난 자는 붙잡지 않는다.]

“부, 부탁합니다.”

“제발, 우리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사막 전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말없이 삼원 건설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그러자 부사장이 기어와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잘못했다. 다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는가?]

“여자들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마을로 돌아가야죠.”

부사장이 말에 너도 나도 입을 보탰다.

“직접 만나서, 사과 해야죠.”

“길을 몰라서 그래요. 제발 같이 갑시다.”

사막 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가 사막 전사들에게 낙타를 끌고 오도록 했다.

[원하는 대로 도와드리지. 마을로 데려간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삼원 건설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다.

낙타에 나눠 실리면서 그들은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드디어, 사막을 벗어난다······.”

고생은 이제 끝났다.

그들은 이제 안전하고 따뜻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꿈같은 일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다들 사막 전사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천사야. 당신들은 천사야.”

“이 은혜, 절대 안 잊겠습니다.”

“사막을 가로질러 우릴 찾아와주다니······. 크흑.”

그들은 차례로 낙타에 나눠 태워졌다.

탈출하고 밤낮 없이 걸었던 길이었는데, 사막 전사들은 고작 2시간 만에 마을로 돌아왔다.

“도, 돌아왔다. 크흑.”

“간신히, 돌아왔어.”

그들은 감격에 겨웠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사막 전사는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놓아주겠다. 마을에 들어가면 여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도 마을에 가겠는가?]

“사과하겠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돌아오는 동안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후였다.

그렇게 마을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여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실제로 사막에서 반쯤 죽었다가 겨우 살아났다.

그것도 베두인 사막 전사들 덕분에.

“몹쓸 짓을 하려던 원수에게 오히려 은혜를 베풀어 주다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베두인족 여자들도 그들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상처받았던 그녀들이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좋아요. 용서하겠어요.]

그렇게 그들은 원래 지내던 천막으로 보내졌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 누워 행복하게 웃었다.

“천국이다. 천국이 따로 없어.”

“행복해.”

“이제 고생은 끝이다. 살았어.”

너무도 그리운 곳이었다.

그럴수록 그들의 가슴엔 베두인족들에 대한 고마움이 무럭무럭 자랐다.

“날 구해줬던 그 순간, 난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죽어도 못 잊지. 그건, 정말 기적이었어.”

“하늘이 도왔어. 난 조상님을 잠깐 뵙고 왔다니까?”

그들은 고분고분하게 포로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베두인족이 주는 밥?

“아이구, 뭐 이런 진수성찬을! 잘 먹겠습니다.”

“요리사가 누군지 몰라도, 진짜 솜씨가 최곱니다.”

베두인족이 주는 물.

“아이고, 이런 귀한 물을 저희들에게까지 나눠주시다니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막에서 물구하기 힘드셨을 텐데요.”

베두인족이 주는 옷과 모포.

“덕분에 따뜻하게 잠 잘 자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기부 천사예요. 사막에 나가보니 옷감 구할 데도 없던데.”

“잘 입겠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두인족장이 태수를 돌아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력갱생을 꿈꾸며 탈출하더니, 정말 인간 갱생한 것 같습니다.]

태수도 동의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누가 탈출하라고 했나?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서 다 잘 풀렸으니 됐지.

그런 그들에겐 딱 하나, 소원대로 풀리지 않은 일이 있었다.

“누가 최 사장 좀 잡아와 주실 분? 안 계시겠죠?”

“최 사장만 금고에서 돈 꺼내 쓰면서 호의호식하게 둘 순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막의 천사들, 사막 전사들에게 도움을 요청 했다.

“제가 최 사장이 어디 있는 지 압니다. 그러니 가서 꼭 좀 잡아서 데려와주십시오. 물론 사례도 넉넉히 하겠습니다.”

사막 전사들을 믿고 맡길 수 있기에 부탁하는 청이었다.

“금고 안에 든 돈 절반! 그걸 베두인족에게 드리겠습니다.”

현상금까지 걸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우리 몫을 베두인족에게 드리겠습니다.”

“여태 염치없이 빈대처럼 붙어 있으니, 숙식을 제공해주신 값은 치러야죠.”

부사장은 독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니 저희 대신 꼭 좀 잡아와주십시오.”

그가 이를 갈았다.

“그게 제 남은 악이고, 깡이고, 미련이고, 소원입니다.”

내가 그놈 때문에 무슨 꼴을 겪었는데!

내가 고생했으니, 너도 한 번 고생해봐라!

최 사장, 가만둘 수 없다!

베두인족장이 슬쩍 태수에게 웃으며 말했다.

[은인, 저들의 소원을 들어줘야 할까요?]

[사막 전사들이 수고스럽겠지만, 소원이라면 까짓 것 들어줍시다.]

바로 그날, 사막 전사들이 간단하게 최 사장과 함께 도망친 일당을 잡아왔다.

부사장이 짐작한 곳에 처박혀서 호의호식하며 잘 놀고 있었다.

“오해야! 우린 베두인족들이 싸움 멈출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그럼 당장 공사 시작해야지! 부 사장, 자꾸 눈 그 따위로 뜰래?”

“내가 지금 눈깔 안 돌아가게 생겼냐? 최 사장, 넌 오늘 내 손에 죽어!”

삼원 건설의 12명 수뇌부가 모두 모인 천막.

그날 천막에선 밤새도록 개싸움과 곡소리가 난무했다고 했다.

베두인족장은 싱글벙글했다.

[저들 덕분에 2백만 달러나 벌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수고비치고는 제법 짭짤합니다.]

[숙식비라지 않습니까? 은혜를 갚으려고 그러나 봅니다.]

태수는 주머니에 든 전보를 만지작거렸다.

송창준이 전한 전보였다.

-사우디 시각으로 내일 오후, 특수요원들이 탄 비행기가 도착할 겁니다.

태수는 족장과 수뇌부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내일 저들을 데리러 한국에서 사람들이 올 겁니다. 무서워하지 말고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태수가 삼원 건설 수뇌부에 대해 말할 때, 그들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하지만 태수의 뒷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저도 같은 비행기로 귀국하려고 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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