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45화 (45/230)

45. 베두인족을 만나다(4)

베두인족은 서로 고개를 갸웃했다.

족장도 어처구니없었다.

코리노 족장이 외쳤다.

[우린 됐다. 하코넨 부족의 손님으로 가라. 양보하지.]

하코넨 족장도 외쳤다.

[우리도 양보한다. 코리노 족장의 손님으로 가는 게 좋겠다.]

태수가 씩 웃으며 크게 외쳤다.

[손님으로 가는데 선물이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부족의 미래를 담보할 선물을 싸 들고 가렵니다. 바로 물!]

다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 싸움은 긴 가뭄으로 시작되었다.

바로 물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자존심 강한 족장과 장로들은 코웃음 쳤다.

[물이라면 우리도 있다. 극심한 가뭄이라고 해서 손님 먹일 물도 없을 줄 아는가.]

[그렇다. 너는 우리 부족을 우습게 보는 것인가.]

[선물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자존심을 팔 것이라 여겼느냐? 우리 부족은 선물을 탐해 손님을 받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사막의 손님을 하루 대접하면서 보답 따윈 바라지 않는다. 우리를 그리 값싸게 여기지 마라.]

꼿꼿하게 목을 세우고 외치는 족장들.

하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봐야 저 꼿꼿한 목은 곧 부드럽게 풀리리라.

[저기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유조선 가득 물을 싣고 이쪽으로 왔습니다. 벌써 가까운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베두인족의 표정이 바뀌었다.

유조선 가득 물을 싣고 오다니.

그럼 그게 다 얼마나 되나.

가늠조차 안 된다.

[두 부족이 한꺼번에 몇 달은 실컷 먹고 마셔도 부족하지 않을 양입니다. 우기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그냥 물이 아니다.

[석회가 섞이지 않은 맑고 깨끗한 물을 손님맞이의 보답으로 드리겠습니다.]

한국처럼 맑고 깨끗한 물을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석회가 섞이곤 했다.

그랬기에 베두인족의 놀람은 더욱 컸다.

[하룻밤의 선물로 그 많은 물을 준다고?]

[게다가 석회가 섞이지 않은 깨끗한 물이라니.]

이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우물을 차지하지 못해서 옹달샘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석산의 코리노 부족.

그들은 더욱 애가 탔다.

물이 너무 탐났다.

부족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 족장에게 쏟아졌다.

[저자를 우리 부족의 손님으로 받아들입시다.]

[족장님, 물입니다. 다시없을 귀한 선물입니다.]

코리노족 중요 인물들 역시 족장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막 전사들과 달리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족장님, 그 정도 양의 물이라면 우기가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우물을 차지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립니다.]

[석산의 옹달샘이 말랐습니다. 우리는 더 버틸 여력이 없습니다.]

족장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태수는 그들이 충분히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그냥 기다려 줬다.

‘물이 탐나지 않을 리 없지. 금산의 배를 빌리길 정말 잘했구나.’

솔직히 처음부터 금산의 배를 빌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었다.

마침 대통령을 만날 때 금산의 장준용이 있기에 즉석에서 생각해 낸 꾀였다.

‘혹여 사막에서 공사할 때 식수를 구하기 어려울까 우려해 가져온 물이 이렇게 쓰이네.’

처음엔 우물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막에서 우물 개발이 쉬울 리 없다.

더구나 사막 부족의 물 사랑은 유명하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몇 달이나 선뜻 물을 내어주길 기대할 수도 없었다.

태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로 준비했었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바레인으로 향하는 유조선에 물을 실어주길 부탁했는데. 어쨌든 인부들이 공사하려면 마실 물은 있어야 하니까.’

여차하면 항구 근처에 물 저장탱크를 잔뜩 만들어서 그걸로 내내 버틸 생각으로.

현지 사정을 들어 보니 그것보다 훨씬 유용한 방법이 떠올라서 이런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내겐 중장비도 잔뜩 있다.’

애초에 태수는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고 대통령과 담판을 벌였다.

한청호에게 인력 부족과 공사 기한 부족을 내세워 중장비를 잔뜩 뜯어냈다.

그때 일부러 도로 건설과는 조금 다른 장비들도 요구했다.

바로 각종 드릴을 말이다.

‘이번에 도로 공사하는 김에 수로까지 한꺼번에 깔면 돼. 베두인족의 우물을 깊게 파고, 수로를 연결해 그 물을 우리도 함께 쓴다.’

사막에서 수맥 찾느라 허비할 시간과 노력도 필요 없다.

마침 잘됐다.

이왕 하는 공사, 겸사겸사 수로 연결하는 건 일도 아니다.

‘이번에 물을 제공함으로써 위치가 바뀔 것이다. 공사를 부탁하는 처지가 아닌,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로.’

상황이 바뀌면 태수의 입장도 바뀌게 될 것이다.

공사에 어려움을 겪던 삼원 건설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태수가 송창준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근처에 석회암 석산이 있습니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 말입니다.”

“석회암 석산이요? 코리노 족이 차지한 석산이 바로 석회암 석산입니다만.”

송창준은 저기 앞에 보이는 석회암 석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저기 보이는 저 산입니다. 코리노족이 차지한 모아딥 석산입니다.”

“역시, 안 그래도 딱 저런 석회암 석산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발견하는군요.”

“······?”

한쪽에는 석회암 석산이 있고, 바로 근처에는 큰 우물이 있다.

도로 공사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더할 나위 없다.

‘이거야 원, 수고를 이렇게 덜다니.’

안 그래도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세울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려고 전문가와 광부들까지 잔뜩 데리고 왔다.

현지에서 필요한 인력과 자재를 될 수 있는 한 자체 수급하기 위해서였다.

‘저 석회 광산을 개발해서 시멘트 공장을 차리면 되겠군. 근처에 시멘트 공장도 없으니, 잘됐다.’

이곳 사막 마을 근처에는 시멘트 공장이 없다.

태수가 도로를 까는데 시멘트까지 멀리서 수입해 와야 할 지경이다.

‘공사가 다 끝나고 중동에서의 사업을 완전히 정리할 때, 이들에게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넘기는 것도 좋겠지. 경제적 자립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그때 코리노 족장이 한 손을 높이 들었다.

[모두 조용히 해라.]

코리노 족장은 부족원들을 한 명씩 살펴보며 탄식했다.

[언제나 똘똘 뭉쳐 적을 맞이하던 우리 부족이 외부인의 말 몇 마디에 이리 사분오열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코리노족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코리노 족장은 말했다.

[아직 물이 가득한 유조선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에 휘둘려 이러쿵저러쿵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다.]

코리노 족장은 태수를 가리켰다.

[하룻밤 손님을 맞이한 대가로 그 많은 물을 선물로 준다는 게 가능한가? 너희들이라면 일면식 한 번 없는 이들이 가뭄으로 고생한다는 이유로 먼 나라에서 유조선까지 빌려 물을 가득 싣고 올 수 있겠나?]

다들 입을 다물었다.

[둘 중 하나다. 그는 우리가 감히 판단할 수 없을 만큼 그릇이 큰 자이거나, 아니면 우리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사기꾼이다.]

믿을 수 없이 좋은 제안이라 불안하다.

누구도 그들에게 이렇게 좋은 일을 해준 적이 없다.

그랬기에 이토록 외로운 싸움을 해온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먼저 사실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 정말 유조선 가득 물이 있는지.]

하코넨 족장 역시 같은 뜻이었다.

[모두들 경거망동을 삼가라.]

하지만 당장 족장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태수의 말이 사실이기만을 바란다.

그럼 이자의 말은 뭐든 들어줄 텐데.

뭐든 내놓을 수 있을 텐데.

이 가뭄을 이겨낼 물만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두 가지를 묻고 싶다.]

[물어보십시오.]

[먼저 그 유조선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

태수가 송창준에게 말했다.

“빠른 이동을 위해 저희 쪽에서 차량과 길 안내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려고 파견된 건데요.”

“통역이 사라지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송창준이 외무부 직원을 불러 지시한다.

아까 공항에서 중장비를 가져오도록 파견됐던 그자였다.

“그럼 제가 항구에 다녀오겠습니다.”

“항구까지는 오래 걸립니까?”

“가깝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 정말 금방이면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준비는 끝났다.

[대표를 뽑아 물을 확인합시다. 우리 쪽 사람이 항구까지 길 안내를 할 겁니다.]

베두인족 수뇌부 몇 명이 손을 들고 자원했다.

[제가 직접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저 역시 함께 갔다 오겠습니다.]

믿음직하다.

[좋다.]

수뇌부가 항구를 향해 떠났다.

[물은 그렇다 치고, 너는 왜 우리를 위해 우물과 수로를 깔겠다고 하는 것이냐?]

[제가 좋은 뜻으로 왔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기 힘드실 겁니다. 우리는 초면이고, 공사엔 돈이 많이 들 테니까요.]

이해가 간다.

많은 돈과 인력이 들어가는 공사이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외부인이 선뜻 공사해 주는 이유가 궁금할 터다.

[물은 선물. 우물은 호의. 게다가 내겐 중장비가 있습니다. 다른 말이 더 필요합니까?]

다들 못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건 태수의 진심이었다.

‘물을 주고, 인부를 얻는다. 마을의 공사를 해주고,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얻는다. 나는 베두인족과 상부상조할 생각이다.’

처음엔 삼원 건설의 못 마친 공사를 끝낼 생각으로 왔다.

오일 쇼크를 이용해 아파트 건설 자금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베두인족들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함께 부자가 되는 길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금산의 장준용이 싣고 온 물이다. 인부들을 먹이기 위해 가져온 물이었다. 그럼 베두인족에게 주고, 그들을 인부로 고용하면 되는 일이다.’

그들이 반유목 민족이 된 이유가 무엇이겠나.

가뭄에 우물 하나 때문에 부족의 생사를 건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가뭄이 들었는데, 왜 다른 나라에서 물을 사 오지 않습니까?]

물을 사 올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뭄이 들었는데, 왜 수로와 우물을 정비하지 않습니까?]

대규모 수로 공사엔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가뭄이 들어서 우물이 바닥을 드러낼 때 그때 공사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베두인족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물이 많은 우기에는 공사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이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기에 우물 공사는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쉽다.

[마침 공사 시기도 딱 맞고, 여러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제게는 이렇게 중장비도 있지요.]

태수가 도열한 중장비를 가리켰다.

[중장비만 있으면 백 사람, 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습니다. 우기가 오기 전에 우물을 정비하고 수로를 깔 수 있습니다. 그것만 완성하면 앞으로 물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깊은 우물은 가뭄에도 끄떡없다.

[공사를 안 할 이유가 있습니까?]

베두인족들도 안다.

이건 기회라는 것을.

저 정도로 대규모 중장비가 있으면 우물 공사는 쉽고 빠르게 끝날 것이다.

애들은 안심하고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한 번도 구조의 손길을 받아본 적 없는 길 고양이처럼, 그들은 도움의 손길을 잔뜩 경계했다.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무엇이냐?]

[전 도로 공사를 하러 왔습니다.]

[도로 공사?]

[네, 전에 다른 한국인들이 도로를 공사하다 그만둔 일을 마저 끝맺으려고 합니다.]

태수가 중동까지 오게 된 이유이며, 태수가 반드시 끝내야 하는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자 족장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구나. 그자들과 네가 무슨 상관이라고 이리 과한 호의를 베풀면서까지 공사를 계속하겠다는 거지?]

[물이 선물, 우물이 호의라면, 도로 공사는 명예를 위해서.]

[명예?]

[사우디 국민에게 한국인은 책임감 없이 도망간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전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 공사하는 겁니다. 다른 말이 더 필요합니까?]

명예란 말에 베두인족들은 동요했다.

그들은 사막의 전사들로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태수가 품에서 문서를 하나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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