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44화 (44/230)

44. 베두인족을 만나다(3)

베두인족 전사가 살벌하게 노려본다.

터번을 하고, 가죽 갑옷을 덧대어 입은 베두인족 전사.

허리에는 곡도(샴쉬르:shamshir, 이슬람권의 칼. 영어로는 시미터:scimitar라고 한다.)를 차고 있었다.

[이곳은 전장이다. 외부인들은 모두 돌아가라!]

송창준이 재빨리 통역한다.

태수는 크게 외쳤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물 공사를 시작할 겁니다! 바로 베두인족을 위해서!]

[우물 공사? 우리를 위해서? 이게 다 무슨 소리지?]

베두인족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중에 글을 아는 자가 있어 펄럭이는 천에 적힌 글을 읽었다.

그럴수록 더욱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내일부터 공사를 시작할 겁니다! 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물으셔도 좋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차량 행렬이 보인다.

그 앞에는 송창준이 보냈던 외무부 직원이 있었다.

그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크게 외쳤다.

“중장비 도착했습니다!”

무려 포크레인 40대, 덤프트럭 30대, 레미콘 25대, 불도저 30대의 행렬이다.

거기에 덤프트럭엔 관정 드릴 및 탐사 드릴, 코어 드릴, 분쇄기 등이 실려 있다.

포항 철강이 보낸 자재까지 잔뜩!

[이, 이건 대체 무슨···!]

베두인족들은 크게 당황했다.

[이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베두인족 전사가 부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족장과 장로님들을 모셔 와라. 부족의 전사들도 전부.]

[예, 알겠습니다.]

베두인족이 재빨리 달려간다.

현장에 남아 태수를 노려보는 베두인족 전사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중장비 군단을 불러온 거냐? 우리를 핍박할 셈이냐?]

핍박은 무슨.

속셈이 있다면 작은 걸 주고 큰 걸 얻기 위해서지.

바로 현지 자체 수급!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요. 플래카드에 적힌 그대롭니다. 저흰 베두인족의 우물을 공사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침묵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 * *

아까부터 베두인족 전사는 칼을 빼 들고 이쪽을 노려본다.

송창준은 입안이 바싹 마르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베두인족 전사가 뛰어나다는 소리는 익히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위압감이 대단하군요.”

“그러네요.”

말은 그렇다면서 태수는 태연했다.

명예를 중시하는 베두인족들이 다짜고짜 칼을 휘두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태수는 송진구와 일행을 돌아봤다.

“나머지 트렁크도 확인했습니까?”

“문제없어.”

송진구가 인상을 팍 쓰면서 허리춤을 툭툭 두들긴다.

광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어딘가를 툭툭 두들긴다.

그새 잘도 챙긴 모양이다.

“손도 빠르십니다.”

“어쩔 수 있나. 또라이 네놈이 이걸 준비했다는 건 위급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너희들이 칼이라면 이쪽은 총이다!

송창준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무모한 일을 벌인 거 아닐까요?”

“이곳에서 공사하기 위해서 한 번은 베두인족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봐야 하잖습니까?”

“두 부족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당장 여기서 싸움이 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지금 전세가 아주 팽팽해요.”

그럴 것이다.

전력이 대등하지 않다면 싸움이 이리 오래 길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이곳은 베두인족이 전장으로 택한 곳이다.

당장 싸움이 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송창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베두인족의 싸움을 말리고 공사를 재개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외무부에서도 속수무책이에요. 그런데 일부러 베두인족을 불러들이다니, 대체 어쩔 생각입니까?”

태수는 시소 흉내를 보이며 물었다.

“시소, 베두인 일족을 양쪽에 올려 둔 시소를 떠올려 보세요. 시소가 땅에 닿게 하는 방법을 아십니까?”

“네, 한쪽에 무게를 더 실으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그럼 그 무게를 얼마나 더 실어야 할까요? 두 일족의 운명이 걸린 무게를 움직이려면 어떤 걸 올려 둬야 할까요?”

“그, 글쎄요.”

태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시소의 한쪽만 땅에 닿으면 나머지 한쪽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높이 올라가겠죠?”

“맞습니다. 한쪽이 먼저 내리면 반대쪽은 높아진 만큼 쿵 하고 추락하겠죠. 우르르 쓰러지면서 아찔한 충격이 올 테고요.”

놀이터에서 보는 가벼운 시소가 아니다.

무려 베두인 일족을 양쪽에 올린 시소다.

“그럼 이때 먼저 내린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서로 몇 달 동안 싸운 사람들이라면?”

송창준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다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될 거란 말씀입니까? 어쩌면 일방적인 학살이······.”

“만약 사우디 왕실에서 이걸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제가 억지로 시소를 한 편으로 기울이며 만든 참상을 본다면?”

“으음.”

“그럼 제가 공사를 재개하기 참 힘들어지겠죠? 외무부에선 지금보다 더욱 거센 항의를 받을 테고 말입니다. 송 서기관님도 엄청나게 바빠지겠군요.”

송창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습니까. 답이 없다고. 지금으로선 손 놓고 베두인 일족들이 싸움을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설마 제가 답도 없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송창준이 놀란 얼굴로 태수를 보았다.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팽팽한 시소를 어떻게 내리려고요?”

“저라면 이렇게.”

태수가 시소 받침대를 톡 치는 시늉을 한다.

“시소 받침대만 날려 버리고 사람들을 모두 안전하게 땅에 내리겠습니다.”

멀쩡하게 발을 땅에 잘 붙이고 살던 베두인 족은 왜 시소에 올라타게 됐을까?

전부 시소 받침대가 가운데 생겼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 그건 바로 물이다.

“이들이 싸우게 된 이유는 결국 물 때문이잖습니까?”

사막에서 물은 생존을 의미하기에 물러설 수도 없다.

“이해관계가 얽힌 싸움이라면 이해관계로 풀면 그만입니다.”

“그 말씀은······.”

“물이 문제라면 물을 주면 됩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줄 물이 없으니 문제지.

“유례없는 가뭄입니다. 다들 속수무책인 이유가 따로 있겠습니까? 물이 너무 부족해서 어찌해 볼 방안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관정 작업을 해서 우물을 판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따로 준비한 것도 있고요.”

“따로 준비한 거요?”

“아까 근처 항구에 유조선이 도착했다고 하셨잖습니까.”

“······?”

그때였다.

양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마어마한 숫자의 전사들이 달려온다.

그 모습을 보고 송창준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저게 다 몇 명이야?”

실제 전사들의 숫자 이상으로 느껴진다.

전쟁을 앞둔 전사들의 험악한 기세에 압도당한 것이다.

송진구도 욕설을 뱉었다.

“잡것들, 살벌하게도 노려보네. 사채업자를 쫄로 보나? 쪽수에 쫄면 사채업 못 하지!”

“형님, 이젠 용역입니다.”

“시발, 아무렴 어때? 대한민국 용역 깡패의 위엄을 여기서 떨쳐 봐?”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의 송진구는 더욱 포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송진구를 따라왔던 전 사채업자, 현 용역 인부들도 하나같이 똑같았다.

심지어 광부들은 어느새 웃통을 벗고 곡괭이랑 삽까지 하나씩 손에 쥐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송창준은 기겁했다.

“이쪽은 또 왜 이래요? 이러다 진짜 싸움 나겠어요! 지금 시비 걸러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태수는 한쪽에 도열해 있는 중장비를 힐끔 보더니, 몸을 바로 했다.

“베두인족과 대면할 시간이군요.”

태수가 가슴팍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낸다.

흰 천이었다.

그걸 막대기에 단단히 묶는다.

송창준은 의아했다.

“지금 뭘 만드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십니까?”

“꼭 백기(白旗)처럼 보입니다만······.”

“눈썰미가 아주 좋으시군요.”

태수가 백기를 송창준의 손에 꽉 쥐여 준다.

엉겁결에 백기를 받아 든 송창준.

태수는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저 혼자 다녀오고 싶지만 여기서 현지어를 말할 수 있는 분은 송 서기관님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송창준은 제 손에 들린 백기를 보았다.

“설사 제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걸 흔들면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사막 부족은 명예를 아는 전사들이니까요.”

송창준은 울컥했다.

“그럼 당신은······.”

“한국을 대표해서 대화를 청하는데 목숨이 아깝다고 백기부터 흔들고 시작할 순 없잖습니까? 어깨 펴고 당당하게 가야죠. 깔보지 못하도록.”

송창준은 말문이 턱 막혔다.

태수는 송창준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씩 웃었다.

“멀찍이 계세요. 멀리서도 잘 들을 수 있도록 제가 크게 말할 테니까요.”

말을 마친 태수가 베두인족을 향해 홀로 걸어간다.

홀쭉이가 재빨리 태수 등 뒤에 따라붙었다.

“태수야, 같이 가.”

“위험해. 너는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사막 전사들의 얼마나 포악한지 홀쭉이도 안다.

하지만 홀쭉이는 씩 웃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함께 죽자. 친구가 다 뭐냐? 네 등은 내가 지킨다고 몇 번을 말하냐?”

고마웠다.

태수도 홀쭉이가 사막 전사들을 앞에 두고 함께 죽자고 말해줄 줄은 몰랐다.

“홀쭉아,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그냥 네가 내 곁에서 오래도록 술친구로 남아 있으면 해. 그걸로 족해. 나 혼자 외롭게 남겨지는 게 싫었거든.”

홀쭉이는 피식 웃었다.

“태수야, 술친구는 많아. 앞으로 네가 사업을 하면서 술 접대하다 생길 친구도 있을 테고, 같은 일을 하는 일 친구도 생길 테지. 하지만 말이다.”

홀쭉이는 태수의 어깨를 툭 쳤다.

“네가 맡긴 등은 내가 지켜줄 거다. 게다가 내 꿈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 너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홀쭉아.”

“태수야, 넌 네 일을 맡길 사람은 많지만, 네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지? 난 아니라고 본다. 널 믿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거고, 네 등을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많아질 거야.”

홀쭉이는 씩 웃었다.

“난 네가 사지(死地)에 갈 때 함께 가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

태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홀쭉이의 마음이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자식, 내가 할매한테 면목이 없겠는데?”

“우리 할매가 제일 좋아할걸? 세상에 너 같은 친구 얻기가 어디 쉬운 줄 아냐고 하셨거든.”

홀쭉이가 태수의 오른편에 붙어 섰다.

송창준 역시 마음 단단히 먹었다.

‘나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외무부 공무원이다. 일개 민간인이 저리 당당하게 나오는데 쪽팔리게 백기를 흔들어 목숨을 구걸할 수는 없지.’

송창준은 백기를 등 뒤로 던졌다.

송창준이 태수의 왼편에 섰다.

“나도 같이 갑시다.”

그새 베두인족도 전열을 정렬했다.

대치 상태로 서로를 노려보던 베두인족 중 하나가 크게 외쳤다.

[너희들은 누구냐!]

태수는 영어로 크게 외쳤다.

크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저는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당신들과 제대로 대화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베두인족은 태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두 일족의 족장과 중요 인사들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굳이 태수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수는 족장과 주요 인물들이 하는 기색을 눈치챘다.

‘영어를 할 줄 아는군. 다른 부족원들과 반응이 달라. 저들이 부족의 수뇌부들이다. 기억해 둬야겠군.’

태수의 지시에 송창준은 그제야 통역을 시작했다.

태수가 주요 인물들을 선별하기 위해 미리 부탁했던 것이다.

태수는 외쳤다.

[차를 한 잔 내주고, 한 끼를 내주고, 하룻밤 잠자리를 내주십시오! 전 오늘 베두인족의 손님이 되고자 합니다!]

베두인들의 눈빛이 변했다.

[베두인의 풍습을 알고 있는 자다!]

[베두인의 손님을 자처하는 자다!]

베두인족에게 손님의 의미는 각별하다.

-손님은 성대히 대접하고 정중히 환대해야 한다.

-손님을 공격하는 행위는 손가락질받는 지극히 수치스러운 행위다.

-심지어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도 손님으로 머물기를 청하면 하룻밤은 그를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

그것이 일족들의 문화이며 전통이었다.

척박한 환경을 두고 씨족과 부족 사이에 싸움이 끊이질 않는 사막 유목민족이다.

위협이 되지 않는 손님에게까지 칼을 들이대면?

외부 교류가 어려워지고, 영역 밖으로 나가는 행위 자체에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전 오늘 베두인족의 손님으로 이 자리를 청합니다! 경계를 멈추고, 손님을 맞이해 주십시오!]

베두인족들이 각자 자신들의 족장을 쳐다봤다.

족장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라면 어쩔 수 없지.]

[···손님을 적대할 수는 없지.]

베두인족들 사이로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코리노 부족의 족장이다!]

[난 하코넨의 부족장이다!]

베두인 족장들이 크게 외쳤다.

[우리는 베두인족의 규율에 따라 손님을 환영할 것이다.]

[족장의 뜻이니 믿어도 좋다.]

코리노 족장이 크게 외쳤다.

[넌 어느 족의 손님으로 오겠느냐!]

태수는 씩 웃으며 외쳤다.

[코리노 부족과 하코넨 부족, 어느 쪽의 손님이 될지 두 족장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베두인족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나온다.

가당치도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태수는 자신만만했다.

‘곧 너희들이 먼저 나를 손님으로 청하겠다고 부탁하게 될 것이다.’

내겐 유조선 가득 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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