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41화 (41/230)

41. 한 큐에 쓰리 쿠션(3)

장말동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주판알을 튕겨 보며 입맛을 다신다.

“딱 내가 원하는 간판이긴 한데.”

장말동이 끙 소리를 낸다.

제법 고민이 되는 모양인데, 그게 또 마냥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싫으면 마십시오.”

“생각 좀 해 보자. 뭐가 그리 급하누? 나도 주판알 좀 두드려 봐야 할 것이 아니냐?”

“인륜지대사인 결혼도 3일 만에 해치울 수 있다는 어른이, 이깟 업체 하나 뚝딱 세우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요.”

“끄응.”

뱉은 말이 있기에 말문이 닫힌 장말동.

하지만 쉽사리 결정할 문제도 아니었다.

한복 입은 남자는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장말동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란 말이야. 그나저나 용역 업체라, 흐음.’

그의 눈이 잠시 번뜩였다.

그러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말동은 힐끔 곁눈질하더니 좌탁을 탕 내리쳤다.

“좋다, 한번 해 보마. 은행 세우는 것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어르신 용역 업체에 첫 일을 맡기죠.”

“아니, 아직 회사는 세우지도 않았다만? 아직 만들지도 않은 회사에 일은 무슨 일을 맡긴다는 게냐?”

“장수 은행 세울 때도 별다른 일을 못 드린 게 미안해서 말입니다. 제 호의를 거절하시면 섭섭할 겁니다.”

장말동이 찝찝해하며 대답했다.

“그것참 고맙구나. 손발이 부족하다더니 요즘 인부가 많이 모자라더냐?”

“네, 그러니 잠시만 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까지?”

“지금 인부들 모집 공고 냈습니다. 인원수 채워질 때까지 좀 부탁드립니다.”

한복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말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사채 거둘 일도 없으니 빌려 주겠다. 우리 애들도 요즘 퍽 답답할 테니 콧바람 좀 쐰다 치자.”

“감사합니다. 제가 콧바람 제대로 쐬게 해 주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래.”

갑자기 태수가 씩 웃었다.

“내일 오전 8시 비행깁니다. 공항까지 보내 주시면 됩니다. 아주 이국적인 콧바람을 실컷 쐬게 해 드리는 겁니다.”

“뭣이?”

장말동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모집 공고 냈으니 잠시만 빌려 쓴다며?”

“네, 중동 갈 인부들이 좀 모자랍니다. 한국에서 인부들 모집해서 보내올 동안 잠시 빌려 씁시다.”

“······.”

장말동은 입을 떡 벌렸다.

졸지에 사채업자들을 중동 인부로 보내게 생겼다.

“그럼 어르신의 약속만 믿겠습니다.”

“······.”

“수족들을 흔쾌히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망했다.

장말동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복 입은 남자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게 아닌가.

‘큭큭큭, 정말 못 당하겠군. 이번에도 장말동이의 완패다.’

장말동이 꺼내 든 카드는 결혼이었건만 단숨에 박살 났다.

한데 태수가 꺼낸 카드는 족족 장말동이에게 먹힌다.

‘이거 진짜로 탐나는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아, 흐음.’

한복 입은 남자는 태수를 보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이, 이, 이! 이건 사기가 아니냐!”

“사기라뇨? 전 분명 제대로 대답해 드렸는데요. 심지어 첫 일까지 맡겨 드렸잖습니까? 사기가 아니라 호의란 말입니다.”

“이런 망할!”

장말동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신경질적으로 부채를 좌탁에 냅다 후려친다.

“알았다! 어쨌건 이미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지! 나 장말동이다!”

“역시 신용이 대단하시군요.”

태수가 엄지를 척 올렸다.

‘내가 여기까지 온 목적은 모두 셋.’

첫째, 동맹.

둘째, 인부 수급.

셋째, 물건 구매.

‘전생에선 8.3 사채 동결 조치로 장말동은 파산했다. 그 뒤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청일 그룹은 이 부분에 정보 구멍이 생기고 말았어.’

장말동의 숨겨진 또 다른 얼굴.

장말동이 사라지며 같이 더욱 꽁꽁 숨어 버린 그 자취.

태수는 지금 그걸 노리고 있었다.

‘전생과 달리 장말동은 파산하지 않았다. 아마 물건은 제대로 얻을 수 있을 거다.’

이것이 태수가 일부러 장말동을 찾아온 이유였다.

장말동은 씩씩대며 말했다.

“용건 다 끝났으면 썩 꺼지거라!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아직까지 앉아 있느냐!”

“용건이 하나 더 남아서 말입니다.”

“뭣이? 또?”

장말동의 안색이 핼쑥해진다.

그럴수록 한복 입은 남자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간다.

‘이놈이 여기까지 온 진짜 목적이겠군.’

궁금하다.

한복 입은 남자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장말동은 그 모습을 보자 자꾸 한숨만 나온다.

생각 같아서는 이 또라이 놈을 썩 쫓아 버리고 싶은데 말이야.

“그래. 그 용건,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

태수는 씩 웃었다.

“어르신이 숨겨 파는 물건들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뭣이?”

“마침 어르신 사업이 중동까지 뻗쳐 있잖습니까? 짭짤하게 재미 좀 보고 계실 텐데요.”

“설마!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고!”

태수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 아니 천장을 가리켰다.

“위? 그때 그 네놈의 뒷배!”

장말동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놈의 뒷배가 정녕 누구더냐?”

태수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는다.

장말동은 이를 빠득 갈았다.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는 그 대단한 뒷배 말이다! 대체 어떤 놈이냐!’

이미 사채 동결 조치 정보를 살 때 호되게 당했던 장말동이다.

그 후에 눈에 불을 켜서 이 잡듯이 뒤져도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당연하지. 지금 나한테 그런 정보를 줄 뒷배 따위가 어디 있어?’

미래가 뒷배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 밝혀진 정보들을 청일 그룹에서 차곡차곡 잘도 모아 뒀다.

태수가 청일 그룹 총괄 비서실장이 되어서 열람하게 된 비밀 문서.

장말동의 문서엔 흥미로운 정보가 가득했다.

‘난 장말동이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지하 금융 세력을 일구었는지 잘 알고 있지.’

그 기반은 일제 독립 운동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사채업 뒤에 숨겨진 얼굴이 여럿 있다. 전부 음지에서 추진하는 일들. 하나는 군자금과 정보를 모으기 위한 정보 상인 노릇이었고, 또 하나는······.’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말입니다. 현지에서 물건 좀 조달받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죠?”

“진짜로 그걸 살 생각이냐?”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왕창! 아주 입 떡 벌어지게 사보겠습니다.”

태수는 씩 웃었다.

“몰리브덴으로 벌어 놓은 돈, 이럴 때 좀 쓰는 거죠.”

태수는 구체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의 품목과 배달 장소, 시간 따위를 말했다.

태수가 호언장담한 대로 장말동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한 걸음에 세 가지 용건을 전부 해결했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 * *

태수가 돌아가고 난 뒤.

한복 입은 남자는 한껏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

어느새 장말동이 앉았던 주인 자리엔 한복 입은 남자가 앉아 있다.

장말동은 그 옆에 앉아서 방금 우린 차 한 잔을 올렸다.

한복 입은 남자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음미했다.

“향이 영 좋질 않아. 마음이 흔들렸는가?”

흔들렸다 뿐이겠습니까?

그 또라이 놈만 만나고 나면 아주 복장이 뒤집힙니다.

장말동은 말도 못하고 끙, 소리만 낸다.

“마음에 둘 것 없네. 자네가 상대하기엔 벅찬 놈이었으니.”

장말동이라고 그걸 모르겠는가.

만날 때마다 말문이 턱턱 막히는 것을.

“확실히 그놈, 난놈은 난놈이야.”

그러니 장말동이가 번번이 밀렸지.

감추느라 힘들었던 웃음을 이제야 마음껏 터뜨렸다.

“하하하, 그놈을 찾아간 놈들이 하나같이 그놈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군. 김정남, 김봉남, 한청호에 이어 박정환까지. 난다 긴다 하는 놈들마저 전부!”

“끄응.”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저도 그중에 있겠죠?

장말동은 그저 끙 소리만 나왔다.

한복 입은 남자는 그저 좋다고 크게 웃었다.

“용역 사업이라. 정부의 일거리를 맡아도 그만, 안 맡아도 그만. 간판만 달아 뒀다 필요할 때 수급하는 인부들을 거느린 업체라. 이런 간판이라면 환영이지, 하하하.”

“괜찮겠습니까? 지금껏 음지에서 숨죽여 지내 오시지 않았습니까?”

“박정환이가 칼을 빼 들었어. 사채 동결 조치를 내걸었으니 사채업 뒤에 숨어 웅크릴 수만은 없지 않나? 우리도 다른 길을 모색해야지.”

“은행을 설립했잖습니까? 굳이 용역 사업까지 또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복 입은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장말동을 보았다.

“장말동이.”

“예.”

“애송이가 꿰뚫어 본 걸 자네가 못 보았다고 하진 않을 테지?”

“그건······.”

“그냥 진행해.”

“알겠습니다.”

한복 입은 남자는 피식 웃었다.

“강태수라, 제법 똑똑한 놈이란 말이야. 머리 굴리는 게 참 마음에 들어.”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제가 오죽하면 우리 아가씨 배필로 그놈을 찍어 뒀겠습니까? 그놈을 보고 나니까 딴 놈들은 눈에도 안 찹니다.”

“자네가 스스로 상전을 모실 작정을 하는구나.”

“우리 아가씨 배필로 그 정도는 되어야죠.”

한복 입은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군. 자세한 보고를 들어 보고 싶은데?”

“그럽지요.”

“강태수에 관해서부터.”

“예.”

한복 입은 남자는 중요한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었다.

전보로 중요 정보는 받았지만 자세한 보고는 받지 못했다.

“내가 강태수와 관련하여 전보로 받은 중요 소식은 셋이다.”

첫째, 청일의 김정남, 김봉남, 한청호가 차례로 몰리브덴 매입에 실패했다는 것.

둘째, 강태수가 중동에 가서 공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는 것.

셋째, 박정환이 다각도로 강태수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

“전보로 전하기엔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듣고 싶군. 몰리브덴 광산에 청일 그룹이 찾아갔던 것부터 시작하지.”

“예.”

장말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략 몰리브덴 광산에서 있었던 일과 청일 그룹의 대응에 대해 보고했다.

한복 입은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한청호가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대목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한청호는 어르고 매치는 솜씨가 제법 능수능란한데 용케도 안 넘어갔어.”

“또라이의 배짱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간도 크게 청일에 발톱을 드러낸 셈이다. 이유는?”

“모릅니다. 아무리 뒤져도 청일과 접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강태수를 그런 식으로 떠본 건가?”

장말동은 한숨을 쉬었다.

“고 영악한 놈이 제 속을 쉽게 드러내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태연하더군요.”

허를 찔리면 당황했을 만도 한데 꿈쩍도 없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또라이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짐작조차 못하겠습니다. 능구렁이 수백 마리는 족히 들었을 겁니다. 젊은 놈이 눈빛은 꼭 70 먹은 노인네 같아서는. 에잉!”

“우리가 모르는 이유라면 한청호 역시 알 리 없다.”

한복 입은 남자가 느긋하게 차를 마신다.

“한청호가 똥줄 좀 탔겠군. 회유냐, 제거냐. 그놈은 참 극단적이란 말이지.”

“둘 다 실패한 것 같습니다. 강태수는 몰리브덴을 여전히 청일에 납품하지 않고 있고, 한청호는 보복에 실패했으니까요.”

“회유는 그렇다 치고, 한청호가 보복을 시도했었나?”

“예.”

장말동은 말했다.

“한청호가 광산을 다녀오는 길에 바로 청와대부터 들렸다고 합니다. 김정림을 만나 사과 박스를 건넸고, 김정림은 그 길로 대운 중석의 고대운을 만났지요.”

“몰리브덴 광산을 빼앗을 속셈이었겠군.”

한복 입은 남자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 정도 그물이라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겠어. 강태수는 어떻게 광산을 사수했나?”

“그놈이 보통이 아닙니다. 이미 다섯 달 전에 박정환에게서 몰리브덴 광산 10년 독점 채굴권을 미리 받아 놨었답니다.”

“하하하! 수완도 좋다! 이용한 끈은 누구지?”

강태수는 아직 박정환과 연결된 끈이 없다.

필연적으로 박정환과 끈이 닿은 누군가를 통해야 하는 청탁이었다.

한복 입은 남자는 눈을 빛냈다.

“강태수, 그놈의 뒷배냐? 드디어 그림자를 잡았나?”

장말동은 주저했다.

“한 사람, 걸린 놈이 있긴 합니다만······.”

“그놈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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