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39화 (39/230)

39. 한 큐에 쓰리 쿠션(1)

한청호의 서재는 문이 굳게 닫혔다.

밖에 선 송 비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문 너머로 연신 집기들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와장창!

우당탕탕!

쨍그랑!

한참이 지나자 서재가 잠잠해진다.

“들어와.”

송 비서는 조심히 문을 열고 서재에 들어갔다.

서재 안은 역시나 엉망이었다.

한청호는 들고 있던 골프채를 송 비서에게 건넸다.

“여기 물건 싹 바꿔.”

“알겠습니다.”

“알아보란 건 어찌 됐나?”

“깨끗합니다.”

한청호가 턱을 쓰다듬는다.

“깨끗하다? 정말이야?”

“네, 강태수라는 청년과 청일 그룹 임원들 간에 원한 관계는 전혀 없습니다.”

한청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않나?”

“무엇을 말입니까?”

“분명 저리 나오는 이유가 있을 텐데. 대체 그 이유가 뭘까?”

“모르겠습니다.”

“그래, 나도 그걸 도통 모르겠어.”

한청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혹시 일권이 녀석 때문인가?”

아들놈 행실머리라면 아무도 모르게 원한 살 수 있다.

다만 일권이에게 원한 품는 놈 중에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놈이 많지 않아서 문제지.

한청호는 씩 웃었다.

“아무려면 어때. 그 건방진 새끼가 내 앞에서 까분 값은 톡톡히 받아 내야지.”

한청호는 나직하게 웃었다.

“이번에 중동에 가면 최소 3년은 못 돌아올 것이다. 삼원 건설이 괜히 도망갔겠어?”

오죽하면 천하의 한청호가 돈 봉투를 뿌리며 꼬리를 잘랐을까.

“네놈이 없는 3년 동안 광산이 멀쩡할 수 있을지 어디 두고 보자.”

그 건방진 새끼가 중동으로 가기 전에 선물은 하나 보내 줘야지.

나한테 까분 값을 3년이나 미뤄 둘 순 없으니까.

* * *

태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중동에 간다는 말이냐?”

“네.”

“아니, 대체 어쩌다가 그 먼 나라까지 가게 됐니?”

“중동 도로 공사 일을 따게 됐습니다. 이번에 가서 외화 많이 벌어 올 겁니다.”

“돈은 지금 광산으로도 많이 번다면서? 꼭 가야 하니?”

“아파트를 올리려면 돈이 부족합니다.”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어쩔 줄 몰랐다.

아버지는 담배 생각이 나는 모양인지 앞섶을 더듬으신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수는 어머니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지원도 충분히 많이 받았으니 곧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아파트가 뭐라고······.”

“각하께서 직접 부탁한 일이라 거절하기 어려워요.”

“뭐? 각하께서?”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태수 앞에 바싹 다가와 앉으며 말을 재촉한다.

“아니, 네가 어떻게 각하를 만나? 자세히 좀 말해 봐라.”

“음, 제가 포항에 학교 짓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그걸 보고······.”

태수는 이해관계 얽힌 일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일을 따게 된 사정만 간략하게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금산 그룹 총수가? 청일 그룹 총수에다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까지? 다들 한목소리로 널 추천했다는 말이냐?”

“네.”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우리 태수가 그런 대단한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다! 허허허!”

태수 아버지는 너무나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실제로는 귀찮은 폭탄 떠넘기는 일이었지.’

하지만 태수 부모님께는 굉장한 일이었다.

평생 재벌 총수를 면전에서 볼 일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만날 일도 없으신 분들이 아닌가.

나랏일 하는 높은 분들과 만났다는 소리에 그들은 더없이 기뻐했다.

“정말 영광스럽다!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기대에 힘껏 부응해야지!”

흥분한 아버지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나도 같이 중동 가서 한 삽 거들까?”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없는 동안 광산과 어머니를 지켜 주셔야죠.”

“좋다, 나만 믿어라. 네가 없는 동안 이 광산을 잘 지켜 내마. 물론 내 마누라도.”

태수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남자는 큰 사람들과 어울려 큰일을 해야 쓰는 법이다. 태수야, 몸 성히 잘 다녀오너라.”

“네, 공사 빨리 마무리하고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엄마는 여기서 아버지와 같이 광부들 식사를 정성껏 차리마. 내 아들 먹인다 생각하고.”

“쉬엄쉬엄 적당히 하세요. 광부들도 많은데 무리하다가 몸 상하시지 마시고요.”

태수 어머니는 태수를 와락 안았다.

시시덕거리며 청춘을 낭비하던 아들이 이렇게 의젓할 수가 없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다 커 버렸나. 어른이 다 됐구나.”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동으로 떠나기 전까지 정리할 일들이 제법 많았다.

* * *

태수의 사장실.

사람들이 미리 모여서 태수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벌컥.

태수가 사장실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울리며 손뼉 쳤다.

짝짝짝.

열성적인 환영 인사에 태수는 피식 웃었다.

“갑자기 왜들 이래?”

홀쭉이가 크게 웃었다.

“너 중동 건설 공사 따냈다며? 태양 건설이 해외 건설 사업까지 따낼 줄이야! 태수야, 너 진짜 대단하다!”

석회 광산주였으며 이제는 광산 총괄 관리자가 된 최일구도 같이 기뻐했다.

“심지어 삼원 건설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사장님께서 맡아 추진하기로 하셨다면서요? 우와, 외국에서 고속 도로를 만든다니!”

경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사장님이 중동에 가실 때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영수증은 진짜 잘 붙이잖아요!”

태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전 아직 아무 말도 안 꺼냈는데, 다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대체 누가 이 기밀을 퍼뜨렸지?”

“접니다.”

저쪽 구석에서 슬그머니 손을 드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박태종의 아들이자 태양 건설 부사장인 박철완이었다.

박철완은 아버지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자마자 광산에 전화 걸었다.

“너무 기쁜 소식이라 태양 광산 식구들에게 먼저 알렸는데······. 제가 잘못한 걸까요?”

“···딱히 잘못은 아닙니다만.”

태수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이렇게까지 열렬히 환영받을 일인가 싶은데요.”

한쪽에서 근육질의 광부들이 크게 웃었다.

청일 화학 부사장이 왔을 때 곡괭이 들고 혼쭐을 내줬던 그 광부들이었다.

그들은 박태종이 따로 보낸 사람들이었다.

지난번 몰리브덴을 계약할 때다.

태수는 힘이 없어 광산을 지키기 힘들다며 보호를 부탁했고, 박태종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동안 형님들 덕분에 광산을 잘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광부들은 손사래를 쳤다.

태수는 씩 웃었다.

“중동에 갈 사람과 남을 사람을 추리고, 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의논하기로 하죠.”

태수와 사람들은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태수는 석회 광산주였던 총괄 관리자에게 말했다.

“출국 절차가 최소화될 겁니다. 전국에 모집 공고를 내주세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집합시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업체도 제법 됩니다. 먼저 가서 현장 둘러보고 계시면 인부들 잔뜩 모아 며칠 내로 뒤따라 들여보내겠습니다.”

자잘한 일들을 의논하고 결정했다.

“현지에 보낼 시멘트 공장 직원들과 석회 광산 베테랑 광부도 몇 명 데리고 갈 겁니다.”

1시간에 걸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도로를 깔고, 도시를 구획하고, 아파트를 설계하고, 학교를 짓고, 상가를 지을 겁니다. 그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중동으로 갑니다.”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의 꿈이 곧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아파트 올릴 목돈을 벌어서 돌아오겠습니다.”

태수는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제가 없는 동안 다들 여기 남아 지금처럼만 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전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떠날 겁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그러자 홀쭉이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태수야, 나도 가자!”

태수는 절친 홀쭉이를 돌아봤다.

“홀쭉아, 넌 할머니가 계시잖아. 연세도 많으신데.”

“내가 안 가면 네 등은 누가 지켜 주냐?”

홀쭉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랑 약속한 거 안 지킬 참이냐? 강태수랑 홀쭉이,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거, 거짓말은 아니겠지?”

“용식아.”

“넌 꼭 곤란할 때는 내 이름 부르더라. 내가 그 이름 싫다고 우리끼린 부르지 말자고 했냐, 안 했냐?”

홀쭉이는 제 이름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자식 버리고 다른 집에 시집간 엄마가 부르던 이름이라며.

“홀쭉아.”

“몇 시에 출발하냐?”

“친구야.”

“어허, 말리지 마. 포항에서 전화로 네 소식 듣자마자 나 벌써 짐 다 싸 놨어.”

홀쭉이가 눈을 피하지도, 웃지도 않는다.

태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괜찮겠냐? 할머니 두고 멀리 가는 거 싫어하잖아.”

“할매가 등 떠밀었다.”

“할머니께서?”

홀쭉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 벌었다고 친구 가족부터 챙기는 놈은 죽을 때까지 함께 가도 되는 놈이란다.”

“그건 당연한 건데······.”

“좋은 친구는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주는 놈이란다.”

“홀쭉아.”

“난 기쁠 때고 슬플 때고 네 등을 지켜 준다고 약속했다.”

홀쭉이가 씨익 웃었다.

“난 내 입으로 한 약속은 꼭 지켜. 난 중동 꼭 간다.”

“진심이냐?”

“날 떼어 두고 가도 좋아. 그럼 내가 널 찾아가면 되니까.”

태수는 피식 웃었다.

“할매 걱정하시지 않게 공사 빨리 끝내고 들어와야겠다. 공사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네.”

“나도 같이 가는 거지?”

“그래.”

홀쭉이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는다.

“송별회도 없이 이렇게 헤어지는 게 말이 돼? 이런 때일수록 술이 필요하단 말씀이야!”

왜 술 얘기가 안 나오나 했다.

“그럼 그럽시다. 포항에서까지 여기까지 의논한다고 먼 길 온 사람도 있는데, 섭섭하게 맨입으로 보낼 순 없죠.”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에 숨겨 놨던 각종 술병을 꺼냈다.

경리는 재빨리 잔을 돌렸다.

순식간에 송별회 술상이 떡하니 차려졌다.

그때였다.

똑똑.

태수의 사장실 문에 누가 노크를 한다.

들떴던 사람들이 순간 조용해지며 모두 집중했다.

“누구십니까?”

“들어간다.”

송진구가 들어오다가 화들짝 놀랐다.

“으엇! 이 밤에 왜 이렇게 잔뜩 모여 있어?”

사람들이 입 모아 말했다.

“송별회요!”

“사장님 송별회요!”

“잘됐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식구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태수가 송진구를 제 앞에 세웠다.

“다들 잘 아시죠? 아파트 부지를 저 대신 사들인다고 서울에서까지 여기까지 먼 길 다니는 사람입니다.”

“알죠.”

“매주 뻔질나게 드나드는데 왜 몰라요?”

태수는 씩 웃었다.

“이왕 오신 김에 같이 껴서 한잔하시죠.”

“앉아요, 앉아.”

그러자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송진구에게 달려들어 팔을 붙들었다.

어어, 하다가 끌려온 송진구는 소파 끝에 털썩 앉게 되었다.

“한 잔 받으세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샷!”

“나눠 마시면 섭섭하니까 원샷!”

얼결에 소주를 원샷한 송진구.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태수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태수는 반색했다.

“이번엔 얼마나 사들인 겁니까?”

송진구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땅문서가 아니야. 어르신께서 보내셨다. 중동 가기 전에 담판 지어야 할 일이라면서.”

송진구가 내민 문서를 보고 태수가 표정을 굳혔다.

“이건······.”

태수는 이를 갈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왜 이 난리야?”

마치 중동에 한 번 가면 한 10년은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난 베두인 일족 간의 싸움 말리고, 인부들 자리만 잡으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건데?’

사람들이 전부 오버하고 있다.

‘이건 장말동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야겠어.’

서신의 일도 그렇고.

‘장말동에게서 꼭 사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중동에 가기 전에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게 있다.

지금 장말동이 아니라면 절대 구할 수 없는 것.

‘내일 명동부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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