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34화 (34/230)

34. 대통령을 이용해 판을 깔다(2)

박태종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삼원 건설이라고 혹시 아시오?”

“삼원 건설이요? 관급 공사를 전문적으로 파고들어서 제법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중견 기업이 아닙니까?”

“그렇소. 바로 그 삼원 건설에서 이번에 사우디 진출을 시작했소.”

태수는 깜짝 놀랐다.

‘삼원 건설이 벌써 사우디 진출을 했을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삼원 건설은 한국 최초로 중동 건설 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맞아.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일러.’

삼원 건설은 일찍 해외로 눈을 돌렸다.

대상은 오일 머니가 풍부하고, 산업 기반 시설 및 건설 자재와 기술이 부족한 중동 국가.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를 타깃으로 삼았다.

‘삼원 건설이 한국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수주를 따낸 건 74년, 카이바 고속 도로다. 시기상으로 아직 이른데 사우디 왕실에서 항의하는 중동 도로 건설 문제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삼원 건설은 홍해 연안에 위치한 지다의 북쪽 카이바에서 알룰라까지 연결하는 총 164km, 왕복 2차선 고속 도로를 짓는다.

그게 한국 최초 중동 건설의 성공 사례로, 이후 오일머니와 맞물려 중동 건설 붐으로 연결된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태수는 얼핏 이해할 수 없었다.

“벌서 말입니까?”

“꽤 됐소. 작년에 도로 건설 계약을 따냈으니까.”

이럴 수가.

‘72년에 도로 건설 계약을 따냈다고? 실패했다고 알고 있는데.’

삼원이 처음 중동 시장을 두드린 것은 7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로 공사 입찰이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중동 지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 기업인 삼원 건설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자국 업체를 최종 계약자로 선정해 공사에 들어갔다.

‘어째서 알고 있던 사실과 조금 달라진 거지?’

의아했다.

그래서 더 집중했다.

“어떤 도로입니까?”

“얌부에서 움라지까지.”

“음··· 제가 아는 것과 다르군요. 사우디 정부는 자국 건설 기업 손을 들어줬잖습니까?”

“작년 사우디 정부는 굵직한 도로 공사 두 건을 계획했고, 삼원 건설이 그중 하나를 따냈소. 사우디 토착 기업이 나머지 하나를 따냈고.”

“으음.”

“1,250만 달러에 공사 예정 기간은 2년이라고 하더구려.”

“외국 기업이라 사우디 정부가 신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따냈군요.”

태수는 다른 면으로 당황스러웠다.

‘돈 냄새가 난다. 이거 돈 된다.’

삼원 건설이 이미 먹은 일에서 돈 냄새가 나면 어쩌라고.

태수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사우디에서 건설 일을 하려면 반드시 스폰서가 필요할 텐데, 그쪽 스폰서는 누굽니까?”

“표면상은 현지 건설 기업인 쇼복시가 삼원의 파트너 자리를 수락했소.”

“표면상? 그럼 실제로 그 뒤를 봐주는 건 누굽니까?”

“라흐만 빈 칼리드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대 국왕의 5남인 칼리드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의 12번째 아들이오.”

“칼리드의 아들?”

태수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맙소사! 칼리드라면 곧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되는 남자가 아닌가! 그의 아들이라니!’

태수는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우디 왕실이랑 얽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돈 냄새가 너무 진해. 이거 진짜 사람 환장하게 홀리는 냄새가 나잖아?’

어지러웠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돈 냄새가 진동해댄다.

‘이건 대박이다! 돈 냄새라면 이제 어지간히 적응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중동 오일 머니가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태수는 애써 호흡을 골랐다.

‘칼리드는 75년 3월, 현재 국왕인 형이 암살당한 후 국왕으로 즉위한다. 그의 아들이 한국의 일개 건설사의 스폰서를 자처했다니, 믿을 수 없어.’

역사상 삼원 건설은 도로 입찰 경쟁에서 밀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은 입찰을 따냈고, 그것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한국이 지금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인가?’

황당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일과 현실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힘 있는 누군가가 이 일을 고의로 아예 묻어 버린 것이군.’

다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왜 이 일을 묻어 버린 거지? 사우디 왕실과 대한민국 정부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지 않고서야.’

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차근차근 제대로 하나씩 짚어 보자.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이 스폰서로 붙었다면 걱정할 일이 없는데, 사우디 왕실은 왜 화가 단단히 나서 항의 서신을 보냈답니까?”

“삼원 건설 수뇌부부터 말단 인부들까지 공사를 내팽개치고 죄다 도망쳐 버렸다고 하오. 벌써 몇 달째 공사가 완전히 멈췄다는군.”

황당했다.

‘그렇다고 비공식적으로 대통령에게 항의 서신을 띄워? 속사정이 따로 있나?’

있을 수 없는 일에 태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요?”

“베두인 일족의 싸움에 휘말렸소.”

“베두인 일족이요? 허, 참.”

태수는 기가 막혀서 혀를 찼다.

베두인족이라면 아라비아반도 및 중동 지역에 씨족 사회를 형성하는 유목민족이다.

씨족 간의 다툼으로 워낙 유명한데, 성격이 맹렬하고 무자비하다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사우디 왕실의 강력한 지지 세력 중 하나다.

“베두인의 싸움에 휘말렸다면 손 털고 도망갈 만하네요. 여러 가지 의미로 맞설 엄두가 안 날 테니까요.”

박태종은 위스키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웃었다.

“자네도 베두인족에 대해 알고 있군. 그들은 꽤 거친 사막의 전사들이지.”

“한데 싸움이 몇 달이나 계속될 수 있습니까?”

“이번 일은 좀 특수하오. 사막의 우물을 두고 싸움이 벌어졌으니까. 듣자 하니 족장의 아들도 죽었다더군.”

“사막에서 물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족장 아들까지 죽었다? 그럼 부족의 생사를 걸고 싸우겠군요.”

“그래서 사우디 왕실에서 먼저 선수 친 것이오. 삼원 건설 수뇌부가 싸움에 휘말려 지금 전원 실종 상태거든. 생사를 알 수 없다 하오.”

그제야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적인 문제로 커질 위험이 있으니 미리 항의를 가장해 상황을 통보한 거군. 외교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야. 일부러 굳이 비공식적으로 수습하라 압박하면서.’

박태종은 눈썹을 찌푸렸다.

“문제는 또 있소. 삼원 건설이 사우디 공사 수주를 확정 지을 때 청일 그룹이 끼어들었는데, 문제가 생기자 나 몰라라 하고 있소.”

“청일 그룹이?”

“삼원 건설이 무슨 수로 사우디 왕족을 스폰서로 둘 수 있었겠소? 청일의 한청호가 힘을 썼으니 가능한 일이었소.”

“이런!”

태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청호가 청일 정유의 인맥을 써서 스폰서를 주선하고 중간에 돈을 받아 챙겼구나.’

그런데 어쩌나.

삼원 건설이 공사를 망치면서 소개해 준 한청호의 얼굴에도 똥물이 튀긴 것을.

“한청호가 이번에 참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군요.”

“말해 무엇하겠소.”

박태종도 빙그레 웃었다.

박태종 역시 한청호와 앙숙 관계인 자니까.

“사장님께선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순리 대로라면··· 삼원 건설 수뇌부가 실종 상태니 사우디 왕실과 접촉한 청일 건설이 그 일을 책임져야지.”

“청일이 그 일을 책임질 것이라 보십니까?”

박태종은 고개를 저었다.

“청일의 한청호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빠져나가고 있소.”

“흐음.”

박태종은 눈을 감았다.

“청일은 사우디 왕실과 삼원 건설을 연결해 준 것밖에 책임이 없다고 우기고 있소. 실제로 삼원 건설이 공사 책임자이며 대금을 직접 받고 있으니.”

“그래도 왕실에서 항의가 올 정도면 대통령께서도 청일더러 일을 해결하라 하시지 않을까요?”

“청일이 워낙 위아래로 뇌물을 잘 먹인 모양이오. 각하 밑에서 일하는 자들이 먼저 나서서 청일은 잘못이 없다며 방패 노릇을 자처하고 있소.”

박태종은 한청호를 떠올리는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사우디 왕국은 62년 남한과 단독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요. 한국과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흔치 않은 중동 국가로, 그 덕에 우리는 석유를 싸게 들여오고 있소.”

“대통령께서 밀고 있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는 석유가 필수 불가결하니 대통령께선 사우디 왕실과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겠군요.”

“바로 그렇소.”

박태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각하 입장에선 참 골치 아프실 일이 되고 말았군요. 포항까지 대책을 의논하러 내려오실 만큼 말이죠.”

“으음. 그저 내 짐작일 뿐이오.”

태수는 눈을 빛냈다.

“만일 대통령께서 사장님께 그 일에 대해 의논하시면······.”

“청일 보고 책임지라 주장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잖소?”

“하지만 대통령께서 그럴 작정이셨다면 굳이 포항까지 내려오진 않으셨을 겁니다.”

“으음.”

맞는 말이다.

박태종이 무겁게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태수는 군침을 삼켰다.

말을 하면 할수록 돈 냄새가 줄줄 샌다.

‘이거 잘하면 일석삼조겠는데? 한청호한테 엿을 먹이면서, 중동 오일 머니를 끌어올 뿐만 아니라, 사우디 왕실과의 인맥까지 잡을 수 있겠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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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반드시 누군가는 이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마땅히 갈 사람은 없다, 아닙니까?”

“그렇소.”

‘한마디로 베두인족 문제로 다들 꺼리지만 반대로 그 문제만 해결하면? 다들 못해서 안달인 공사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 돈 냄새 봐라.’

돈 냄새는 아무 데나 나는 것이 아니다.

될 법 한 일에!

할 만한 일에!

보상이 큰 일에!

‘내가 엄두도 못 내는 일, 반대로 시시한 일에는 이렇게 군침 도는 냄새가 나지 않아.’

돈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성공이 보인다!

태수는 씩 웃었다.

“사우디 도로 공사, 제가 한번 해 보면 어떻습니까?”

“자네가?”

박태종은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어려운 일일 것이오. 오죽하면 삼원이 도망가고, 한청호가 꼬리를 자르겠소?”

“맞습니다. 무척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해 볼만 한 일이기도 합니다.”

“베두인 일족이 작정하고 달려든 일이오. 그들 사이에 타협점이 있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오.”

“아무리 긴 갈등도 결국 끝은 있습니다. 공중에 떠 있는 시소도 결국 한쪽은 땅에 닿습니다.”

태수는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자와 지우개로 시소를 대충 만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이렇게 시소가 땅에 닿지 않아서 공중에 뜰 때가 있죠. 이게 팽팽한 분쟁 상태입니다.”

시소의 평형을 맞추는 태수.

“시소 한쪽이 땅에 닿는 게 결론이라 치죠. 한쪽을 땅에 닿게 만드는 방법을 아십니까?”

“무게 차이겠지.”

“좋습니다. 첫 번째 방법. 누군가 시소 한쪽에 무게를 더 올리는 거죠.”

태수는 시소 한 편에 동전을 하나 올렸다.

시소는 단번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됐죠? 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시소에 무게를 얹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무게를 얹기 위해선 돈을 얼마나 올려야 시소가 기울까요?”

“으음.”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을 쓸 겁니다.”

박태종은 궁금했다.

태수가 무슨 수를 써서 베두인 일족의 싸움을 말릴 수 있을지 말이다.

“어쩔 작정인가?”

태수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박태종은 그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자넨 이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군. 그러니 공사를 한번 해 보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그래서 말인데, 사장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박태종은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어찌하면 되겠소?”

* * *

부아앙. 끼익.

대통령이 탄 자가용이 포항 철강 사무실 앞으로 멈춰 섰다.

그 앞뒤로 경호 차량이 엄호했고, 그 밖에 몇몇 고급 승용차가 뒤따랐다.

박태종을 비롯해 포항 철강 주요 임원들이 모두 포항 철강 사무실 앞에 도열했다.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태수 역시 대열의 말미에 자리 잡았다.

탁.

뒷좌석 차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잘 차려입은 중년 남자 둘이 차에서 내렸다.

한 명은 텔레비전과 사진으로 익숙하게 보아 온 박정환 대통령이었고, 다른 한 명은 경호실장 차기범이었다.

‘박정환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기범이라.’

태수는 그들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전생에선 한 번도 실물로 본 적 없는 인물들이었기에 조금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둘은 79년 10.26 사태에 같이 휘말렸다더니, 한눈으로 봐도 끈끈한 사이였군.’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박정환은 이번엔 그 신뢰 가득한 눈을 돌려 박태종을 보았다.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반갑게 웃는다.

“오래간만이로군. 태종이, 그동안 잘 지냈지?”

“그렇습니다, 각하. 각하께서도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박태종이 90도로 허리를 꺾어 가며 절도 있게 인사를 올리자 박정환은 피식 웃었다.

“딱딱하기는. 요즘 제철소 건설 속도가 제법 붙었다지?”

“진작 이렇게 짓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제철소 시찰한다고 먼 길 나왔으니 내 이 두 눈으로 확인은 하고 돌아가야지. 앞장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박태종이 앞장서자 박정환과 차기범이 뒤따랐다.

셋은 제철소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박정환 대통령을 뒤따라온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인물을 보고 태수는 깜짝 놀랐다.

‘금산 그룹의 총수 장준용 회장?’

재벌 그룹의 총수가 박정환 대통령을 따라 포항까지 내려온 것이다.

‘안 그래도 이 일을 쉽게 하려면 금산의 배가 꼭 필요하던 참인데 이렇게 판이 깔리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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