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27화 (27/230)

27. 몰리브덴 가격 폭등(3)

1972년 12월 27일 수요일.

미국이 몰리브덴 석출 중단을 선언한 이후 넉 달이 흘렀다.

그새 8월 한여름 폭염이 12월 한겨울 한파로 바뀌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시끄러웠다.

몰리브덴이 아니라, 취임식 때문에.

치직, 치직-.

-지난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실시한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따라 제8대 대통령직에 박정환이 선출되었습니다.

-오늘 유신 헌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제8대 대통령으로 박정환이 취임했습니다.

-북한은 주석제를 명시한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해, 최용군이 국가수반에서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김일성이 취임하였습니다.

홀쭉이는 라디오를 꺼버렸다.

“뉴스에서 몰리브덴 가격 폭등 소식은 하나도 안 들리네. 모든 언론이 새로운 대통령에 대해 떠들고 있으니. 여긴 지금 아수라장인데 말이야.”

새로운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는가보다 더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따르릉.

“아오, 어쩌다 내가 이 일을 맡게 됐나 몰라.”

사람 좋고, 성격 좋고, 말주변마저 좋은 까닭에 전화 담당으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따르릉.

“태양 광산입니다.”

-몰리브덴을 사고 싶은데요.

“전화주신 곳은 어느 기업입니까?”

-청일 화학입니다.

태수는 보통 광산주와는 다르게, 특이한 기준으로 몰리브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른바, 기업 가려 받기!

<청일 그룹과 그 계열사엔 몰리브덴 찌꺼기도 없다. 안 팔아!>

홀쭉이가 걱정돼서 태수에게 물었더니, ‘파는 사람 마음!’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몰리브덴 다 팔려서 없습니다.”

-지금 며칠째······.

“여, 여보세요? 안 들려요. 여보세요?”

-이젠 안 들리는 시늉까지! 몰리브덴 좀 팔아달라고요!

딸깍.

홀쭉이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따르릉.

“태양 광산입니다.”

-금산 화학입니다.

금산 화학이라.

홀쭉이는 종이로 된 장부에 손가락으로 쭉 따라 읽었다.

‘장부에 없는 이름이다. 통과. 판매 가능.’

-몰리브덴을 사고 싶은데요. 가능합니까?

“그럼요.”

-다, 다행이다. 요즘 몰리브덴 못 구해서 난리잖아요. 지금 미국 쪽 물량이 뚝 끊겨서 공장이 당장 멈출 지경입니다.

미국이 갑자기 석출 중단을 선언한 덕분에 몰리브덴 공급량이 뚝 끊겨서 그렇다.

태수네 광산에서 몰리브덴이 나온다는 소식을 어떻게들 알고 전화하는지.

이러다 전화기에 불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전화가 빗발친다.

-지금 몰리브덴 산지 시세는 얼마나 합니까?

“매일 매 시간마다 시세가 바뀌어서요. 판매 시점이 언젠지 몰라 정확히 확답은 못 드려요. 2시간 전 시세는 kg당 70달러입니다.”

-헉!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kg당 5.8달러 선이던 몰리브덴 가격이 미친 듯이 폭등하여 kg당 70달러 선까지 올라와 있었다.

홀쭉이는 막 전화기를 내려놓는 경리에게 물었다.

“우리 한 달 매출이 얼마나 돼?”

“이번 달은 1억 훌쩍 넘어요. 거의 2억.”

“끄아악! 그렇게나 많아? 우리 태수, 진짜 떼돈 벌고 있잖아?”

“광부들 임금 주고, 새로 기계 설비 들여오고, 기름값이며, 세금이며. 하여튼 돈 들 데도 많아요.”

“그런 거 전부 제하고 한 달 순이익은 얼마나 돼?”

“한 5천? 6천?”

“끄아아! 미쳤다!”

70년대 물가는 2020년에 대비 1/30 정도.

태수는 한 달에 순수익만 15억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소리였다.

그때 벌컥 문이 열리고 한수가 들어왔다.

“용식이 형, 오늘 판매 마감이래.”

“알았어!”

따르릉.

“사방에서 팔아달라고 이 난리인데, 죽도록 캐도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질 못해. 놓치는 돈 아까워 죽겠네.”

노련한 광맥 탐사 전문가가 몰리브덴 광맥을 파는 족족 찾아내고 있음에도.

돈 벌린단 소리에 숙련된 광부들이 구름같이 달려들어 몰리브덴을 엄청나게 캐고 있음에도.

20년 넘도록 광산을 운영해온 유능한 총괄 관리자가 과로할 정도로 일하고 있음에도.

따르릉.

벌써 4달 동안이나 전화벨 소리가 끊기질 않는다.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몰리브덴 가격이 치솟을수록.

미리 사뒀던 몰리브덴 재고가 떨어질수록.

투기꾼과 사재기가 기승을 부릴수록.

태수네 광산에서 몰리브덴이 나온다는 소문이 멀리 퍼질수록.

“태양 광산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영어가 들려온다.

“또 해외전화야. 망할 영어!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 좀 열심히 배워놓을걸!”

어쩔 수 없이 홀쭉이는 미리 적어놓은 한글을 그대로 따라 읽었다.

“쏘리, 투데이 솔드 아웃! 플리즈, 투모로우 콜 어게인!”

대답도 듣지 않고 끊는다.

따르릉.

또!

따르릉.

또!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등.

억양이 달라서 짐작만 할 뿐, 정확히 어딘지도 모른다.

따르릉.

“끄아아아!”

따르릉.

홀쭉이는 벌떡 일어났다.

“한계야!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

그때였다.

벌컥.

“홀쭉아, 퇴근하자.”

“태수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홀쭉이 얼굴이 활짝 폈다.

“오늘 저녁은 우리끼리 조촐하게 망년회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 준비하셨어. 가서 실컷 먹고 마시자.”

“끼얏호!”

홀쭉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옆에 있던 경리도 활짝 웃었다.

* * *

저녁을 먹는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태수 아버지는 입이 귀에 걸려서 숨넘어가라 연신 허허허, 웃었다.

“우리 태수가 이런 걸 줬지 뭐냐. 허허허.”

쨔잔.

진짜로 돈다발로 엮어 만든 돈방석이다.

태수 아버지는 홀쭉이와 주거니 받거니 얼큰하게 취해서, 오늘도 돈방석 위에 털썩 앉으셨다.

“캬-, 강철수 인생에서 돈방석 위에 진짜로 앉아볼 날이 올 줄은 몰랐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허허허!”

태수 어머니가 웃으며 민망해하셨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아들이 준 거라고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하도 닳아서 반들거릴 정도라니까요.”

태수가 어머니께 슬쩍 뭔가를 내밀었다.

글도 모르는 어머니건만, 그걸 받고 눈이 반짝거렸다.

“어머, 태수야, 이게 다 뭐니? 딱 봐도 귀해 보인다.”

“어머니 이름으로 상가 한 채 장만했습니다.”

“상가?”

“네, 전에 약속했잖아요. 어머니 이름으로 목 좋은 상가를 드리겠다고.”

김영희 이름 석 자가 박힌 상가 권리증이었다.

“지금은 광산이 바빠서 여의치 않지만, 머지않아 진짜로 강남에 아파트도 짓고, 그 앞에 상가를 지을 겁니다.”

“태수야, 네가 그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신다.

“괜찮다. 그럴 필요 없어. 아파트고, 상가고, 우리는 괘념치 말아라. 작은 거 신경 쓰면 남자가 큰일을 못 하는 법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겐 가족이 힘의 원천이고, 행복의 근원이니까요. 어머니가 행복하시면 저도 행복합니다.”

“태수야.”

어머니는 감격스러워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고맙다, 그리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내 몫까지 잊지 않고 챙겨줘서 정말로 고맙다.”

어머니는 태수가 준 상가 권리증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한수가 흐뭇하게 웃었다.

태수는 한수를 돌아봤다.

“한수야, 받아라.”

“뭔데?”

종이 한 장에 몇 글자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돈방석과 어머니의 상가 권리증에 비하면 조잡한 종이 쪼가리였다.

하지만 그걸 받은 한수의 눈이 마구 떨렸다.

“이, 이건?”

“거기서 골라 봐라. 마음에 드는 거로 하나 사자.”

“신성 자동차의 뉴크라운, 뉴코로나. 대현 자동차의 뉴코티나. 전부 이번에 야심 차게 출시한 차들이잖아?”

자동차 이름과 차종, 배기량, 출력, 최고 속도가 적혀 있었다.

“형, 진짜 나한테 자동차 사주려고?”

“제일 필요한 거잖아.”

맞다. 필요하다.

서울을 오갈 때도 필요하고, 학교가 지어지고 있는 포항에 다녀올 때도 필요하다.

‘20대 남자에게 차는 곧 명함이지.’

이때라고 21세기와 다를 바 있을까.

오토바이 하나라도 장만하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곤 했으니, 자동차라면 게임 끝나는 거다.

‘2020년은 자동차가 워낙 다양해서 이것저것 고를 선택지가 많았는데. 지금은 여러 의미로 선택지 폭이 너무 좁아서 아쉽네.’

출시되는 자동차 종류도, 자동차 생산 기업도, 자동차 수출입도 제한이 많다.

더 좋은 차를 사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이 정도 안에서 고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독일에서는 BMW 3.0 CLS가 나와서 쌩쌩 달리고 있을 텐데. 돈이 있어도 수입이 어려우니. 아쉬운 대로 국산 자동차라도 타고 다녀야지.’

한수는 잔뜩 들떴으면서도 조금 망설였다.

“자동차라니. 너무 과하잖아. 우리가 재벌 집도 아니고.”

“받아. 형이 주는 선물은 거절하는 거 아니야.”

80년대에나 들어서야 마이카(My Car)열풍이 불어 중산층에 자동차가 보급된다.

70년대엔 아주 부잣집에서나 자동차를 타곤 했다.

옆에서 홀쭉이가 한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태수가 형 노릇 한다고 어깨에 힘 좀 들어갔나 보다. 이거 받고 그 이상으로 열심히 형 도와주면 되지. 뭘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가족끼리.”

태수는 홀쭉이를 돌아봤다.

“홀쭉아.”

“으하하, 내 것도 있냐? 고맙다, 태수야!”

태수가 뭔가 주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홀쭉이였다.

“받아.”

“내 건 뭐냐? 물론 엄청 비싼 술이겠지? 흐흐흐.”

“할머니가 마당 딸린 집에서 텃밭 가꾸고 싶다고 하셨다며? 집문서랑 땅문서다.”

“켁!”

홀쭉이가 기분 좋게 한 잔 마시다가 사레 들렸다.

입이 귀에 걸려서 웃느라 또 기침.

엉덩이를 씰룩대며, 온갖 오두방정을 떤 후에야 간신히 기침이 멎었다.

“우리 할매 좋아서 뒤로 넘어가시겠다. 킥킥킥.”

태수가 준 집문서랑 땅문서를 보고 홀쭉이가 눈을 비볐다.

“뭐? 대지 180평에 집 20평? 텃밭이 무슨 250평이나 해?”

“너도 효도해야지. 이제 나이도 많으신데.”

홀쭉이는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다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러더니 돌연 경례를 올린다.

“충성!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사장님! 전 사장님 등 뒤를 평생 든든하게 지키겠습니다!”

“전화나 잘 받아, 자식아. 큭큭.”

태수는 광산주를 돌아봤다.

“몰리브덴 광산 일이 요즘 무척 바쁜데,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까지 함께 돌리느라 과로하신다면서요?”

“하하, 옆 동네잖습니까. 할 만합니다.”

“고생하신 김에 좀 챙겨 넣었습니다.”

태수가 두둑한 돈 봉투를 내밀었다.

광산주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주십니까.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고, 월급도 넉넉하게 잘 받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장님께서 우리 길바닥에 나앉지 말라고 살던 집도 그냥 내어주시는데. 제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으로 그 마음 갚겠습니다.”

“좋습니다.”

홀쭉이가 신이 나서 술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 화끈하게 송년회 건배 한 번 합시다!”

“좋습니다!”

“사장님이 건배사 한 말씀 하시죠!”

짝짝짝.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봤다.

모두 태수를 성심성의껏 도와준 공신들이었다.

“오늘 같은 밥 먹고, 기쁨과 성공을 함께 나눴으니, 우리는 모두 한 식구입니다.”

“옳소!”

“여러분들 덕에 오늘의 제가 있고, 우리 광산이 있고, 앞으로의 미래가 있습니다.”

태수는 벽에 걸린 서울 지도에서 한 점을 콕 찍었다.

강남이었다.

“앞으로 대한민국 땅값은 여기가 좌우할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황금의 땅. 저도 이곳에 둥지를 틀 겁니다.”

모두가 태수가 가리키는 곳에 집중했다.

태수는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곳을 개발할 겁니다.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뚫고, 학교를 건설하고, 빌딩을 올릴 겁니다.”

청일 건설은 8년 후, 강남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해 고작 한 달 분양으로 2천억, 2020년 기준으로 4조를 한 방에 벌여 들었다.

‘청일 건설이 짓는 최고급 아파트, 이번엔 내가 짓는다! 청일 건설이 보유한 최고급 건설 브랜드, 이번엔 내가 갖는다!’

태수는 사람들을 보며 씩 웃었다.

“당분간 제 앞으로 떨어지는 돈, 전부 강남땅을 사들이는 데 쓸 겁니다.”

강남 개발을 위해 토지부터 사들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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