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26화 (26/230)

26. 몰리브덴 가격 폭등(2)

몰리브덴 광산을 찾은 태수 부모님은 눈이 동그래졌다.

광산은 태수와 한수가 왔을 때와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광산 개발이 꽤 본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크구나.”

“일제시대 때 버려진 폐광산이라더니, 그것도 전부 허풍이었나 봐요.”

많은 광부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금광 개발에 참여했던 광부들뿐만 아니라, 최일구의 인맥으로 추가 고용한 숙련된 광부들까지 한창 바빴다.

한수가 데려왔던 광부도 몰리브덴 광맥을 열정적으로 찾고 있었다.

덕분에 몰리브덴 광산 개발은 속도가 확 붙었다.

“참 신기하구나.”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변을 연신 돌아봤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태수야, 여기서 그 뭣이냐, 전쟁 광물이 나온다면서?”

“네. 몰리브덴이라고 해요.”

신기하기는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건 어떻게 생겼니? 막 번쩍번쩍 하니? 금이나 은처럼 귀한 것이라며?”

“많이 다릅니다.”

마침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석회 광산주가 달려 나왔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석회 광산주, 아니, 이제는 광산 관리자가 된 남자가 태수를 반겼다.

“사장님, 여기 이분들은 혹시······.”

“네, 저희 부모님 되십니다.”

“어이쿠, 이리 든든한 아들을 두셔서 참으로 좋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여기서 총괄 관리자로 일하게 된 최일구라고 합니다.”

태수 부모님도 마주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족하나마 잡일에 한 손 보태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도 주방일이나마 거들려고요.”

최일구는 광부들에게 손짓했다.

광부들이 낑낑거리며 몰리브덴 원석이 가득 담긴 수레를 밀고 왔다.

“몰리브덴입니다. 안에 생각보다 매장량이 꽤 많더군요. 놀랐습니다.”

“오-, 이게 바로 그······.”

태수 부모님은 수레에 달라붙어 구경했다.

석탄이랑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는 모르지만, 이게 그 귀한 거구나 하고.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동 광산 몰리브덴 매장량은 2019년 기준으로 약 1조 9천억 원가량이라 추정되었다. 지금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거다.’

그래도 이렇게 눈으로 보니 또 좋다.

광부들이 예상외로 몰리브덴을 잘 캐주고 있었다.

최일구도 열성적으로 일을 잘 해주고 있고.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언젠간 다시 되찾겠단 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거 석회석만 캐다가 몰리브덴을 캐려니, 새롭고 신기합니다. 하하하.”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까지 함께 둘러보신다니, 일을 너무 많이 떠넘기게 되어 미안하군요.”

“하하하, 옆 동네 광산이라 다행이지 뭡니까. 전 요즘 매일이 즐겁습니다.”

빈 말이 아니라, 최일구는 요즘이 정말 즐거웠다.

마치 처음 석회석 광산을 시작했던 그때처럼 활기찼다.

직원들과 부대끼며 광산에 매진했던 딱 그 시절이 지금과 같았으니까.

그때였다.

직원 한 명이 헐레벌떡 다가와 크게 외쳤다.

“사장님, 사장님! 누, 누가 찾아오셨습니다!”

박태종이 중절모자를 슬쩍 벗으며 인사했다.

“오-, 여기가 바로 그 몰리브덴 광산이오?”

박태종을 보자 마자 태수는 알아챘다.

‘몰리브덴 석출 중단 소식을 들었겠군.’

권력자라 그런지 소식 한 번 참 빠르다.

매일 들여다보는 신문 귀퉁이에도 안 나와 있던데.

‘눈도장 찍은 결과가 제법 빨리 나왔어.’

그럼 이번엔 눈도장 말고, 제대로 된 계약서에 도장 찍을 시간이로군!

* * *

같은 시각, 미국 몰리브덴 석출 중단 소식은 시장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몰리브덴은 산업 전반에 걸쳐 필히 쓰이는 희귀금속이라 더 그렇다.

당연히 몰리브덴과 관련된 기업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 이유로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독일.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 와! 이러다간 공장이 멈추게 생겼어! 몰리브덴 석출 중단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

일본.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뭣들 하고 있었던 거야! 정보가 이렇게 느려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당장 몰리브덴 전량 쓸어와! 서둘러!”

다른 나라들도 비슷했다.

그만큼 미국 몰리브덴 석출 중단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미국까지도.

“수출은 못 한다 쳐도 내수는 충족시켜 줘야죠! 확보한 몰리브덴 재고량이 너무 부족합니다!”

평소 공급량의 13%에 불과한 몰리브덴 공급을 찾아 너도 나도 물량 확보를 위해 전 세계 기업들이 뛰어다녔다.

몰리브덴은 희소금속으로 전 세계 매장량이 미국, 소련, 중국, 호주, 캐나다 상위 5개국에 매장이 집중되어 있다.

그마저도 미국이 세계 몰리브덴 시장의 87%를 독점할 때라 나머지 국가는 개발이 부진했다.

그러니 해당 국가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특히 그러했다.

“뭐? 미국이? 그럼 당장 군수용품 생산부터 차질을 빚게 생겼지 않나! 몰리브덴 광산을 찾아!"

"우리도 몰리브덴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뿐이죠."

"이 넓은 땅덩이에 몰리브덴 광산 몇 개 더 못 찾겠나! 샅샅이 뒤져 봐!”

“쿠테사이 광산에 몰리브덴이 매장되어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만.”

쿠테사이 광산이라면 중앙아시아 남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러시아명 키르기지야)에 있었다.

구 소련권 국가이지만 소련의 지배력이 약한 곳이었다.

하지만 상관 없다.

“그럼 당장 가서 몰리브덴을 캐오면 될 일이 아닌가!”

“채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광산 개발을 진즉 포기했던 터라. 당장 개발하라고 해도 문제가 많습니다. 시일이 꽤 걸릴 것은 자명하고요.”

쾅!

“쿠테사이 광산을 개발하면서 당장 몰리브덴을 수급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중국, 호주, 캐나다 가리지 말고!”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난리가 아니었다.

* * *

태수의 사무실은 참으로 누추했다.

옆 동네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할 법도 하건만, 태수는 몰리브덴 광산 앞 통나무집 중 하나에 둥지를 틀었다.

당분간 몰리브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박태종은 나무로 대충 만든 의자, 아니, 걸상에 걸터앉았다.

목수가 남는 목재로 대충 뚝딱 만들어낸 것 같은 책상과 걸상이었다.

태수는 박태종에게 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한 잔 따랐다.

“음? 향이 상당히 묘하군.”

“이것저것 막 섞어 끓여서 그렇습니다.”

“대체 뭘 섞어 끓이면 이리 묘한 맛이 나는 거요?”

“아들 건강 생각한다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겁니다. 뭐가 들어갔는지까지는 모르겠군요.”

“이거 보약이로군.”

박태종은 껄껄 웃으며 단숨에 들이켰다.

탁.

잔을 내려놓은 박태종은 단숨에 본론으로 직행했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는 알고 있을 거요. 포항 철강에 몰리브덴을 납품해주시오.”

“좋습니다.”

태수가 시원하게 승낙했다.

오히려 박태종이 잠시 눈을 꿈뻑거렸다.

대답이 예상보다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박태종의 호쾌한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이리 시원하게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소!”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처음부터 당신에게 팔려고 했던 겁니다.

안 그러면 내가 굳이 포항까지 내려갔겠습니까?

“보름 전과 달리 갑을이 바뀌었지 않소. 그때 헛걸음한 것에 대해 톡톡히 제 값을 받아낼 것이라 예상했소만.”

“값을 쳐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좋은 것은 역시 거절하는 법이 없다.

박태종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참으로 자신만만하고 시원시원한 청년이 아닌가. 또래 중에는 당해낼 자가 없겠어. 벌써부터 거물의 풍모가 엿보이는군.’

박태종에겐 태수와 비슷한 또래인 아들이 있다.

남들이 다 뛰어난 인재라고 추켜세우는 아들 철완과 비교해도 태수가 훨씬 뛰어나다.

‘이 청년은 처음부터 내게 호의를 보였다. 내 직감은 확실해. 무엇 때문일까. 끈끈한 군사 동맹이라도 맺은 것처럼 든든하니, 이것 참.’

박태종은 흐뭇한 표정으로 태수를 보았다.

“내가 어떻게 값을 치렀으면 하시오?”

“몰리브덴 채굴권을 보장해주셨으면 합니다. 딱 10년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박태종은 어리둥절했다.

“그대의 광산이 아니오? 광산 권리증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오?”

“광산을 지킬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박태종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하다.

지금 박태종은 남 부러울 것 없는 권력자니까.

하지만 태수는 다르다.

“국가 전략 광물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실제로는 몰리브덴으로 폭리를 취하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날 겁니다. 저 하나 제거하면 그뿐이니까요.”

“으음.”

실제로 오춘식을 그렇게 치워버리고 몰리브덴 광산을 꿀꺽하지 않았던가.

박태종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몰리브덴 공급이 뚝 줄었을 터. 멀쩡한 몰리브덴 광산을 보면 빼앗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런데 어째서 10년이란 기한이 붙은 것이지?

박태종의 의문은 바로 풀렸다.

“10년 후, 국가에 헌납하겠습니다.”

“뭐요?”

박태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황금 알을 낳을 몰리브덴 광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니!

“대신 박 사장님께서 10년 동안 저와 광산을 보호해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지급보증인을 잘 설득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급 보증인이라면 차용증을 쓸 때 넌지시 들먹인 그 분인가.

박태종은 새삼스럽게 태수를 보았다.

태수는 이미 마음 속으로 계산이 끝난 후였다.

‘뺏기기 전에 시원하게 내놓자. 대신 10년 동안이라도 걱정 없이 제대로 해먹자. 박박 긁어 팔아먹지 뭐.’

전생에서 오춘식은 몰리브덴 광산을 빼앗겼고, 광산은 국영 기업인 대운 중석에 흡수됐다.

국가 전략 광물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높으신 분이 몰리브덴에 오래 전부터 눈독 들였기 때문이었다.

국가 주도적 중공업 육성 정책을 펴는데 필요한 매우 중요한 희귀금속이었기에.

태수가 청일 그룹의 힘으로 대신 그 일을 처리했을 뿐이다.

‘광산을 빼앗긴다는 건 거의 정해진 사실이다. 몰리브덴 가격 폭등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니 박정환의 눈에 띈 것이겠지. 오춘식도, 나도. 그건 피할 수 없어.’

그렇다고 그게 무서워서 떼돈을 안 벌 수도 없고!

오춘식은 그나마 재벌 집안에 딸을 시집보낸 덕에 재벌의 그늘 뒤로 잠시 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태수에겐 방패막이가 되어줄 뒷배가 없다.

그래서 태수는 박태종을 택했다.

“몰리브덴을 개발하면서 적지 않은 자금이 소요됐습니다.”

실제로는 광부 하루 일당 값 밖에 안 들었다.

아니다. 광산 권리증을 얻는데 10만 원이나 들었지, 참.

“본전과 이윤만 적당히 건진 후에 깨끗하게 국가를 위해 내놓겠습니다.”

적당히가 아니라, 깨끗하게 바닥까지 박박 긁어갈 생각이다.

태수의 말은 박태종의 가슴을 움직였다.

나라를 위해 제 것을 선뜻 내놓겠다는 갸륵한 청년이 얼마나 대견해 보이는지.

박태종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소. 아주 좋소. 광산을 개발하고 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내 알고 있소. 당연히 그 돈은 회수한 후에 내놓아야 억울하지 않을 터. 그것까지 희생하라 강요할 순 없지.”

잠시 고민에 빠졌던 박태종이 태수를 돌아보았다.

“전화 한 통 쓰리다.”

박태종은 전화기를 들었다.

“각하, 저 박태종입니다.”

오우, 말 끝나기가 무섭게 직통 전화로 대통령을 소환하시네.

“각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광산을 내놓겠다는 자가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버려진 폐광산을 다시 개발했답니다.”

박태종은 태수를 돌아보았다.

“개발하는 동안 쓰인 자금을 생각해 10년 동안만 유예 시간을 줘도 괜찮을지 각하께 여쭙습니다.”

박태종은 전화기를 든 채 90도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박태종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각하께서 승낙하셨소. 이제 계약서 씁시다.”

“감사합니다.”

몰리브덴 납품 계약서는 순식간에 작성되었다.

계약을 마친 박태종은 중절모자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박태종을 배웅하며 태수는 슬쩍 웃었다.

“나중에 각하께 혼나시는 거 아닙니까?”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분이시오. 약속은 지켜질 것이오.”

“몰리브덴 광산이란 걸 알고 나면 속이 꽤 쓰리실지도 모르겠군요.”

박태종은 씩 웃었다.

“그러게 무슨 광산이냐고 안 물으신 탓이니, 어쩌시겠나. 그 정도는 감수하셔야지.”

이런. 이 양반, 이제 보니 배 째라의 대가셨군.

일부러 일제시대 폐광산을 개발했다는 사실만 말하고.

이거 아주 마음에 드는 양반일세. 흐흐흐.

“약속대로 광산을 보호할 사람도 몇 명 보내주겠소.”

“감사합니다.”

그때 직원 한 명이 태수에게 달려왔다.

괜히 박태종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물었다.

“청일 그룹에서 몰리브덴 납품 계약을 맺고 싶다고 하는데요.”

태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안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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