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몰리브덴 가격 폭등(1)
“정든 직원들, 광산과 공장, 다 버리고 어디 가시려고요?”
광산주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가야죠. 좋은 분에게 인수되었단 소식을 들었으니, 이제 가야죠.”
“같이 일합시다. 평소처럼.”
“같이? 평소처럼? 그게 말이 되겠어요?”
광산주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태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3일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잖습니까. 이제 와서 어딜 가신다고.”
“······.”
“사장님이 가실까 봐 얼마나 맘 졸이면서 허겁지겁 달려왔는데요. 여기 땀 안 보이십니까?”
“······.”
한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형이 오죽하면 사장님 붙들라고 저를 여기 남겨뒀겠습니까.”
“이것 참······.”
광산주는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슬쩍 돌렸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여기 남습니까. 사업도 다 말아먹고 식구들까지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 뻔했는데.”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이 문제였답니까? 운이 나빴습니다.”
“금광 개발을 결정하고 실행한 것은 나였습니다. 책임도 내가 져야하는 게 맞고요.”
“그럼 책임지시죠.”
“······?”
“사장님을 믿고 따른 직원들, 내팽개치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시라고요.”
태수는 씩 웃었다.
“전 지금처럼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이 잘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장님이 꼭 필요합니다. 함께 일합시다.”
태수의 말에 옆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태수에게 언질을 받은 터라, 적극적으로 붙들 수 있어 기뻐 보였다.
“사장님이 아니라면 우리 회사, 이렇게 못 컸습니다. 우리 직원들 전부 뿔뿔이 흩어질 거구요. 사장님, 이번에도 같이 하죠.”
“자네······.”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사장님. 우리가 왜 여태 기다렸는데요.”
“사장님과 함께 할 게 아니면 진즉 다른 광산으로 일자리 알아보러 갔을 겁니다.”
“사장님이 가버리시면 우리는 어쩌고요?”
지난 십여 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직원들을 보자, 옛날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그건 광산주뿐만이 아니라,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장님께서 우리 어머니 병원비 대주셔서 수술했잖습니까. 사장님을 이렇게 보내면 우리 어머니가 우실 겁니다.”
“시멘트 배달 다녀오다 트럭이 전복됐을 때, 절 업고 병원까지 뛰어가신 분이 누굽니까? 그때 사장님 아니셨으면 전 다리 잃었을 거예요.”
“우리 집에 불났을 때, 사장님과 직원들 전부 달려와서 새벽까지 물동이 이고 날라주신 일, 전 죽을 때까지 못 잊습니다. 사장님이 가시면, 저도 같이 떠날랍니다.”
직원들의 말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속에서 울컥울컥한다.
광산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 한 명 한 명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날의 일을 아련히 떠올렸다.
직원들이 저마다 광산주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고개를 저었다.
가지 말라고. 함께 있자고.
태수는 광산주에게 말했다.
“식구(食口)는 한솥밥을 먹기 때문에 식구라고 한답니다. 밥숟가락 함께 드는 덴 사장이건 아니건, 직함 따윈 중요치 않습니다.”
광산주의 마음에 그 말은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래. 우리 식구들이랑 밥숟가락 함께 드는데 내가 사장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광산주 역시 떠나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맨땅에서 갖은 고생하면서 광산을 일궜다.
공장은 또 어떻고.
정든 직원들과 조금 더 함께 일하고 싶었다.
태수는 광산주의 손을 단단히 붙들어 잡았다.
"저희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합니다. 사장님의 경험과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같이 합시다."
태수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광산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이런 나를 붙잡아주다니. 정말 고맙기도 하지.’
광산주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직원들은 동시에 외쳤다.
“사장님, 앞으로도 우리 계속 한솥밥 먹읍시다!”
“그래요, 사장님 없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겠어요.”
“새로운 사장님도 저렇게 붙잡는데, 이렇게 가시는 건 안 되는 거죠.”
참을 수 없어진 광산주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재빨리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 봐도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그놈의 정이 뭔지.
광산이 넘어가고, 공장이 넘어가고, 밥줄이 끊길 뻔했는데도 못난 사장에게 원망 한 점 안 비추다니.
내가 뭐라고.
그 모습을 보며 태수는 결심을 굳혔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손발이 되어줄 사람은 부족하고. 광산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광산주라면 믿음직한 파트너가 되어 줄 거야. 사람도 괜찮고, 능력도 괜찮고. 딱이지.’
사채업자에게 당해 지긋지긋하던 시절을 보낸 태수다.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절망스러운 일인지 누구보다 태수가 더 잘 안다.
태수는 광산주가 이대로 무너지길 원치 않았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모두가 태수에게 집중했다.
“사장님을 광산과 공장의 총괄 관리자로 모시겠습니다. 연봉은 성과급으로 하죠. 열심히 한 만큼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웅성웅성.
태수의 말에 직원들과 광산주는 서로를 쳐다봤다.
태수는 말했다.
“제가 인수한 금액을 까게 되신다면,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사정이야 어떻던, 호구처럼 그냥 내어줄 수는 없다.
엄연히 태수가 장말동에게서 2천만 원과 바꿔온 광산과 공장이 아닌가.
‘빚을 갚아 공장과 광산을 다시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 해줘야 성과가 팍팍 나오는 법. 광산주가 인수 금액을 다 까게 될 즈음이면 아마 우리 회사 계열사 사장 자리에 앉고 싶어질 텐데?’
그거야 그때 가서 정하면 될 일이다.
당장은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굴려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야말로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제안이다.
광산주는 상상도 못했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과, 광산과 공장을 돌려주신다고요?”
“그냥 돌려주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값을 치르고 인수해 가는 거지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광산주의 마음에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직원들 역시 손을 꼭 잡고 기뻐했다.
염치 불구하고, 체면 불구하고.
광산주는 눈 딱 감고 외쳤다.
결심한 광산주는 태수에게 물어봤다.
염치 불구하고, 체면 불구하고.
“이런 제가 함께 남아도 괜찮겠습니까?”
태수는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눈물로 얼룩진 광산주는 태수와 악수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힘껏 박수를 쳤다.
그날 태수에게 대한 직원들의 호감은 최고치를 찍고 말았다.
“새로운 사장님, 최고!”
“멋있습니다!”
“우리 함께 열심히 일 해봅시다!”
“잘생겼어요!”
직원들이 휘파람까지 불며 환호를 질러댔다.
광산주 역시 태수에게 환호를 질렀다.
'마지막으로 난 직원들에게 제대로 말해야 한다. 새로운 사장을 위해서.'
광산주는 크게 외쳤다.
“앞으로 이곳 사장님은 여기 이분입니다!”
광산주는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저는 사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식구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쁩니다! 이게 전부 다 새로운 사장님 덕분입니다!”
직원들이 격하게 호응하며 박수를 보냈다.
광산주가 태수의 손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새로운 사장님과 함께 할 대양 중석 만세! 대양 시멘트 만세!”
만세를 따라 부르려던 직원들과 광산주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새로 인수되었으니, 옛 상호를 쓰면 안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태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태양 중석, 태양 시멘트가 될 겁니다. 한 획만 더 그으면 되겠네요.”
대양과 태양은 딱 한 획 차이.
광산주와 직원은 크게 웃었다.
“자, 이리 좋은 날엔 막걸리가 빠질 수 없는 법이죠!”
홀쭉이가 막걸리를 아예 동이 째로 사오자, 직원들은 동시에 환호성을 올렸다.
한수와 태수 역시 막걸리 한 사발씩 받고 단숨에 들이켰다.
광산주는 크게 외쳤다.
“태양 중석 만세! 태양 시멘트 만세!”
직원들도 크게 따라 외쳤다.
“태양 중석 만세! 태양 시멘트 만세!”
옆에서 홀쭉이가 더욱 크게 외쳤다.
“막걸리 만세! 환영회 만세! 우리에게 안주를 달라!”
이번에도 직원들은 웃으면서 크게 따라 외쳤다.
그날 태수는 통 크게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 * *
포항 철강 사장실.
전화기를 든 채 박태종은 벌떡 일어났다.
“미국이 몰리브덴 석출 중단을 선언해? 몰리브덴 수출 전면 중단까지? 그게 사실이오?”
황당했다.
미국에서 직통으로 날아온 소식이란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른 말은 귀에 잘 들리지도 않는다.
통화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만년필로 빈 종이에 마구잡이 낙서를 하고 있었다.
-강태수.
-몰리브덴.
-크로몰리 강.
-제철소 건설 자금.
낙서를 바라보며 박태종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곧 몰리브덴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물론, 덩달아 크로몰리 강 가격까지 뛰겠군.”
크로몰리 강 가격이 폭등한다면, 제철소도 그에 맞춰 서둘러 크로몰리 강을 뽑아 팔아야 할 상황이다.
제철소 건설 자금이 워낙 부족해서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 소매를 걷어붙여야 하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진짜로 크로몰리 강을 팔아 자금을 조달할 상황이 올 줄이야.”
자신만만해하던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만간 몰리브덴 가격이 두 배, 세 배가 뛰어오를 겁니다. 크로몰리 강 가격도 덩달아 뛰게 될 텐데, 그때도 후판만 생산하실 겁니까?
-그래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크로몰리 강으로 제철소 건설 자금을 보다 일찍 확보하는 건 어떠십니까?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때는 두말할 것 없이 특수강부터 생산해 팔아야지. 허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크로몰리 강을 생산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일 거요.
입맛이 쓰다.
그때 그냥 계약했다면 먼저 아쉬운 소리 꺼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 청년이 다녀간 후로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대운 중석도 몰리브덴을 생산하지 못하고, 한국에 어디 몰리브덴 생산한다는 광산도 없지. 몰리브덴 가격이 변동 상황을 좀 더 두고 봐야 하나?”
미국이 전 세계 몰리브덴 시장의 87%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몰리브덴은 안 쓰는 데 없이 여기저기 두루 쓰이는 국가 전략 광물이고.
“가격 변동 여부는 이제 문제가 아니야. 가격이 얼마까지 폭등하느냐의 문제지.”
이렇게 미국이 갑자기 빠져버리면 전 세계가 평소와 비교해 고작 13%밖에 없는 몰리브덴에 몰리게 된다.
가격은 보나 마나 미친 듯이 치솟을 터.
박태종은 피식 웃었다.
“돈 벌 게 뻔히 보이는데도 뛰어들지 않으면 사업가 옷 벗어야지.”
군복을 입을 때야 몰리브덴 가격이 폭등하건 말건 알 게 뭔가.
내 조국, 내 국민을 지키면 그만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제철소를 지어내고, 흑자를 보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할 입장이다.
“가자.”
박태종은 결단을 내렸다.
몰리브덴이 이 나라에서 나온다는 걸 아는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제철소에서 크로몰리 강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도 갖춰야할 테고.”
박태종은 즉시 이동할 채비를 갖췄다.
“강태수. 그 청년이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더라?”
박태종의 손에는 태수가 남겼던 종이가 들려 있었다.
<태양 광산 -강태수->라는 글자 밑에 깨알 같이 크기로 주소와 약도가 남겨져 있었다.